숭숭 구멍 뚫린 외양간에서
늙은 소 한 마리 여물을 먹는다
인적 드문 마을의 슬픈 전설
허물어진 담장 위에서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내린다
한낮의 논배미 출렁이는 산그림자를
되새김질하듯 물 한 대접 없이
우직우직 여물을 먹는다
어두워지는 때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는 것
따순 햇살 흠뻑 먹은 들녘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은,
우리 아버지 뜨뜻한 아랫목에서
벌겋게 밥 비벼 먹는다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4.10.15. -
- 시집〈식량주의자〉시와에세이 / 2010 중에서
느릿느릿 먹는 모습은 여유로운 식사 장면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힘이 빠져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면, 그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늙은 소’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물 한 대접 없이 우직우직 여물을 먹는’ 모습이 그러하지 않을까? 거기다 ‘되새김질’까지 하면서 먹는 모습은 무언가 안쓰럽고 처연해 가슴 먹먹한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늙은 소의 먹는 모습은 시인에게 늙은 ‘우리 아버지’의 식사 장면으로 전이되고 포개진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늙은 아버지의 ‘벌겋게 밥 비벼 먹는’ 모습은 늙은 소가 되새김질하며 여물을 먹는 것처럼 무심하고 쓸쓸하여 처연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어두워지는 때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움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하여 홀로 어둠 속에서 음식을 씹는 것은 생의 덧없음을 반추(反芻)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