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간씩 서서 관전하는 ‘열정 원봉회장님’
- 바둑후원 아끼지 않는 냉온수기 정수기 전문회사 원봉루헨스 김영돈 회장
▲ 열혈기업인이자 바둑인 원봉루헨스 김영돈 회장(사진=원봉)
“매 경기 원봉 선수들 옆에 서서 저렇게 관전하세요. 두 게임씩이면 하루 5시간씩인데, 우리가 괜히 미안할 정도죠.”
2016년 어느 날 내셔널바둑리그에서 기자와 모 감독이 나눈 원봉루헨스 김영돈 회장에 관한 얘기다.
단장이라면 팀의 구단주요, 그 팀이 기업이라면 사장님 회장님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 아무리 바둑을 사랑한다고 해도, 회사일이란 게 있으니 주말 2박3일 동안 타지에서 펼치는 내셔널바둑리그 전 경기를 '직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원봉루헨스 김영돈 회장은 작년 한 해 동안 전 라운드 전 경기를 선수들 가까이서 직관한 열혈바둑광이다.
2016~2017년 내셔널바둑리그 2년 연속 출전, 2017년 프로암리그 출전. 2004년 원봉배 아마대회 개최. 2017년 원봉투게더 개최 등 바둑인들과는 지근거리에 있는 중견기업 원봉루헨스. 또 며칠 전 원봉루헨스는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7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우리 바둑계에 이러한 건실한 기업과 기업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진 않았을까. 조용히 소리 없이 바둑을 지원하는 ‘원봉 김회장’을 꼭 소개하고 싶었다.
▲ 2016년 내셔널바둑리그 경기를 5시간 동안 내내 서서 관전하는 원봉 김영돈 회장.
몹시 추웠던 날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원봉루헨스 공장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공장을 방문하기 이전에는 기자의 무식함이겠지만 ‘원봉’이 무슨 회사인지 잘 몰랐다. 글쎄 웬만한 바둑인들도 ‘원봉’이 바둑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줄은 알지만, 뭘 하는 회사인지 제대로 아는 분은 드물지 않았을까 싶다.
원봉은 1991년에 창업한 냉온수기 정수기 전문회사로 국내에서는 효시란다. 25년 이상 정수기 전문 제조 노하우와 필터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수기, 냉온수기, 필터 등 자체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동양매직 LG 현대 에넥스 쿠쿠같은 정수기는 바로 원봉이 만들었던 제품이다. 원봉은 일반인에겐 생소한 기업이지만 정수기 업체 대부분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했다.
원봉은 현재 전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2009년 3000만 불, 2014년 5000만 불, 2017년 올해엔 70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여 글로벌 브랜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2012년부터 내수에도 눈을 돌려 ‘루헨스’라는 제품명으로 자체브랜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2017 내셔널바둑리그 원봉루헨스 선수. 정준환 정찬호 조세현(서진 위) 이단비 이철주.
올해엔 내셔널바둑리그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으시고, 바둑에 취해있는 단장님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안 나타나시니 성적은 더 좋습디다만.(웃음)
작년엔 우리 팀 경기를 빠짐없이 봤는데 제가 너무 맘을 졸이더라고요. 단장이 가니까 오히려 선수들이 부담을 가지는 것 같고…. 그래서 올해는 거의 경기장에 나타나질 않았지요. 뭐, 그래도 간섭할 것은 다 간섭합니다(웃음).
미리 질문 드리는 건데, 이번 크리스마스에 ‘원봉 J.S Together’라는 대회를 올해 피날레로 후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대회입니까?
(손사래를 치며) 공식대회는 아니라서 크게 소문낼 것은 아닙니다. 주니어 시니어선수가 함께 모여서 페어대회로 한 해를 마감하자는 뜻으로 조그맣게 후원한 겁니다. 어려운 바둑계에서도 가끔 인간미 넘치는 분들이 몇몇 계시는데 그런 분들을 대하는 재미로 바둑과의 인연이 지속되는 것 같아요.
과거 ‘원봉배’라고 대회가 있었는데, 혹시 그때 그 원봉이 지금 원봉입니까?
15년쯤 된 대회였는데 역시 기억하시네요. 2004년인가 역시 Club A7에서 원봉배를 개최했어요. 단체전의 효시가 바로 원봉배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A7 홍시범 대표가 밝고 활기차고 그의 사상이 맘에 들어 선뜻 후원했지요. 앞으로 제2회 원봉배를 계속 이어갈지 고심해보겠습니다.(웃음)
원봉이 무슨 뜻인지요. 기업정신이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원봉(圓峰)은 봉우리가 둥그렇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사실은 작고한 부친의 아호(雅號)여서 좀 더 깊은 뜻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업정신이라면, 부친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기 때문에 부친의 명예와 뜻에 흠집을 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인연을 맺은 개인이나 회사에게는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아버님과 원봉과 바둑은서로 관련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생전에 부친께서는 지는 걸 싫어했어요. 학처럼 살다 가신 분인데 그분이 그렇게 바둑을 좋아했습니다. 아버님 생각에서라도 바둑에 관한 인연을 꼭 이어가고 싶습니다. 지금 원봉이 하는 내셔널바둑리그나 프로암바둑리그 그리고 원봉대회 등도 아버님의 바둑사랑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부친께서 생전에 바둑을 좋아하셨고 저 또한 바둑이 너무 좋아졌고, 사업을 하다 보니 홍보 마케팅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지요.
▲ 원봉루헨스 김포공장 내부 모습.
작고한 부친과 지금 회장님의 기력은 어느 정도 되십니까? 회장님께서 바둑을 접하신 것도 아버님 때문이겠네요?
그렇진 않습니다. 아버님은 시간이 남으면 친구 분과 늦은 시간까지 바둑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권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체득했다고나 할까요. 당시엔 월간바둑지 하나 밖에 없었죠. 고수들은 일본책을 구입해서 보곤 했고요, 중학교 때 오목을 두다가 기원 원장님에게 바둑을 배웠습니다. 한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바둑을 두었는데 재미도 있었고 유리한 판을 끝까지 승리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때 인생의 좌우명을 하나 얻었죠. 한순간 방심하면 안 된다는. 아버님은 저보다 3점정도 치수정도일 겁니다. 제가 아마5단이니까 대략 3단 정도. 기원급수로는 3~4급 되실까 모르겠습니다.
부친께서 바둑에 너무 빠지지 말라고 안 가르쳐주신 건 아닐까요?(웃음) 크면서 바둑이 뭐가 그리 재밌던가요?
교육자이신 아버님은 학교에서 바둑을 두시고는 통행금지 직전에 들어오시곤 했었어요. 부전자전이라고 꼭 우리 아버님과 닮았어요. 상대방을 이겼을 때 승리의 쾌감이 크죠. 만약 졌을 때는 아쉬움에 잠을 못 이뤄요. ‘그때 요걸 요렇게 했으면’하고 아직도 천장에다 바둑판을 그려보니까요. 하하.
바둑과 경영에는 어떤 모멘텀이랄까, 공통점이 있을까요?
일단 둘 다 승부니까 이기면 기분 좋고 지면 섭섭하죠. 감동의 교차하는 데 매력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유리한 형세도 한번 경시하면 덜컥수가 나와서 바둑을 버려놓듯이, 경영도 마찬가지고 초심의 자세로 꾸준히 매진해야 합니다.
▲ 글로벌 생활가전 브랜드 ㈜원봉루헨스가 12월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7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김영돈 회장과 큰 따님 김상신 전무.
사업을 하던 중에 덜컥수가 나온 적도 있나요(웃음)?
당연히 덜컥수가 있었죠. 국내 사업에서는 때를 잘 만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1998년 중국시장을 완전 철수하는 아픔을 겪었지요. 또 2008년 키코 사태로 수십억 원의 손실을 떠앉은 적도 있었어요. 그때도 역시 외부 차입금 없이 두텁게 경영을 한 덕에 위기를 넘겼지요. 한판의 바둑을 이기는 것이 어렵듯이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김포로 오던 길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봉루헨스가 얼마 전에 70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했다고 하던데요. 대단한 것 아닙니까? 자랑 좀 하세요.
이달 초에 한국무역협회 주관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하는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2009년 3000만 불. 2014년 5000만 불에 이어 2017년 7000만 불 수출 탑을 받은 겁니다.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의 획기적 증대에 기여했고 글로벌브랜드 입지를 다졌다고 각 언론에서 칭찬을 했죠.
끝으로 기업인보다는 바둑인으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인연을 맺은 바둑친구들과 사범님들은 모두 아마사범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바둑이 그리울 때 늘 곁에 같이 있었던 분입니다. 그러나 인연을 맺긴 했지만 솔직히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사범들이나 친구들의 마인드가 명쾌해야 우리의 인연도 오래가는 것이죠. 장차 그들에게 바둑연구실 같은 것을 만들어 주고 싶고, 원봉바둑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 "이제 정수기는 웰빙 가전제품"이라며 신제품 대표 정수기를 가르키는 김회장.
▲ ‘조진웅 정수기’로 알려진 루헨스 슬림다이렉트 정수기
진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