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증인의 증언
행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 설 교 >
예수님처럼
행 10장 38절 / 성창용목사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을 몇 번이나 바라보십니까? 사람은 언제 누구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것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수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있지만 가장 완벽한 모델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요즘같이 사랑이 메말라 가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예수님은 더욱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능력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시매(28절).”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능력 있는 삶, 즉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성령 받기 전까지 전혀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성령을 받고 나서 한 번 설교에 3,4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또한 이처럼 능력 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하실 때만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하실 때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님이 임하실 수가 있습니까? 기도하면 가능합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간구하면 반드시 성령님은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소외된 자, 고아들, 과부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교회 내에서 끼리끼리 그룹을 만들어 열등한 사람들을 내몰고 소외시키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입니다.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겨우 2%밖에 되지 않았지만 철저하게 예수님처럼 살아가려 할 때 로마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는 역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마귀에게 붙들린 자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성령의 전과 이에 반대하는 사탄의 군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둘 중의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마귀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영적인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하여 이들을 마귀에게로부터 구원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성령에 충만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며, 착한 일을 하고, 마귀에게 붙들린 자를 구원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닮아가는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
행 10장 38절 / 박헌승목사
오늘 기분이 어떻습니까? 정말 그리스도인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예수믿어 좋고요. 죄사함받아 좋고요. 천국가게 되었으니 좋고요.....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 뭐니해도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성령은 예수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최대의 가장 좋은 선물이지요. 행2:38, 마7:11, 눅 11:13절을 보면 우리가 잘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거듭난 우리들에게 성령은 들어오셔서 영원토록 보혜사가 되시어 우리를 인도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를 몰라요. 오늘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정욕만 생각하지 말고 내 안에 역사 하시기를 원하시는 성령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동행하시고 성령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원한 모델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도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인데 성령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사렛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하셨다고 했습니다. 능력있는 예수그리스도가 된 것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6월은 선교의 달입니다. 선교사들이 능력있는 사역을 위해 성령충만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에는 영어목회에서 비젼투어를 떠납니다. 저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권세,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저는 본문에 나오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1. 선행의 사람입니다.
-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가시는 곳곳마다 착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선행을 하였습니다. 좋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은 자기가 있는 삶의 현장에서 있는 위치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복음전파와 더불어 남의 유익을 구하며 희생하며 덕을 구하며 칭찬받는 일을 많이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갈5:22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선행의 사람이요 빛의 사람입니다. 마5:16에 세상의 빛된 그리스도인은 착한 일을 많이 행하여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둠의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욕심의 사람이요 빛의 사람은 선행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떠날 때는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나 많이 벌었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가 중요합니다. 70,80평생 경점과 같이 짧은 인생이요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값있게 살아야합니다.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때는 나 때문에 무언가 내 주위가 변하고 밝아지고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낮에 해처럼, 밤에 달처럼 그렇게 살수 없을까라는 복음찬송이 있습니다. 거기 가사를 보면 주는 삶을 살고 싶지만 언제나 나의 욕심, 못난 자아가 걸림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욕심이 나의 발목을 잡습니다. 주저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착한 일은 내 힘으로 되지를 않습니다.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갈 5:16절 말씀처럼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길은 성령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롬8:13 성령으로서만이 몸의 행실, 욕심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선행도 성령과 무관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행과 봉사는 반드시 성령으로 해야합니다.
빌3:3,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아야된다고 했습니다.
벧전 4:11,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53세에 불치병과 우울증으로 1년 뒤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세계적인 거부가 있었습니다.
미국 석유산업을 장악한 존 록펠러였습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에게는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한부 선고로 그는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쥐고 있던 돈을 교육과 의학, 시민단체에 기부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삶의 방향을 돌이킨 그는 98세까지 더 살았다고 합니다.
2. 치료의 사람입니다.
-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셨으니" 능력있고 성령충만하셨던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일곱귀신 들렸던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불에도 물에도 넘어지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린된자들 고쳐주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군대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마 8:16,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귀신 쫓아내는 축사의 역사는 마 12:28처럼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과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 권능은 성령충만할 때 크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운 이때에 마귀와 그 졸개 귀신의 역사는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벧전 5:8,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닌다고 했습니다.
고후 11:14,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하였습니다.
마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엡 6:11-12,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4:27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나도 영적전쟁에서 승리의 사람이 되고 남도 구원할 수 있는 치료의 사람이 될 수 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마귀에 눌려 억압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노와 우울증에 빠져 있습니다. 염려와 불안, 공포에 빠져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자들을 복음으로 사랑으로 치료하는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임마누엘의 사람입니다.
- "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의 결정적인 특징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기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그 속에 예수가 살아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마누엘이 우리 안에 온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인 것입니다. 임마누엘을 확신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친구와 함께 길을 가도 즐거운데, 지치고 힘들 때 누가 와서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도 힘이 되는데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나 스스로 한국을 가볼려고 해보세요. 이것은 불가능입니다. 그러나 비행기와 함께 가면 간단합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이 너무나 큽니다.
-형통 (창 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담대함 (수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강성 (삼하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강건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은혜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목표가 성취됨 (대상 28:20) 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능력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선행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치료의 사람의 되어야합니다
-임마누엘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내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베드로처럼
행 10장 42절 / 강성찬목사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활동한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활동을 펼친 전 기간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황제 네로가 대 박해를 가할 때까지 유대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름이 개명되기 전까지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어부 요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자신이나 형제 안드레는 모두 가업을 따라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으며(마 4:18),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동업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눅 5:10).
(눅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베드로는 '고기 잡는 집'이란 의미를 지닌 벳새다지방에서 살았습니다(요 1:44).
그리고 훗날에는 가버나움 지방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기혼자였습니다(마 8:5, 14).
학문이 높지 못했고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 인생이 바뀌었습니다(행 4:13).
(행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시몬에서 게바로 이름이 바뀐 것만큼이나 그의 인생은 폭과 질에 있어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그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따라 나섰으며( 마 4:18),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여 스승을 메시야로 정확히 이해한 개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 16:16).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인정을 받아 변화산 사건을 목격하는 등 총애를 받았습니다(벧후 1:16-18).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벧후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벧후 1: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한 그리스도와의 대담 중, 용서에 관한 진리를 직접 묻고 듣기도 할 만큼 친근한 제자로서의 위치를 가졌었습니다(마 18:21).
그러나 그 역시 인간으로의 약한 면모를 보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스도께 청하여 물 위를 걷다가 믿음이 부족하여 실족하는가 하면(마 14:18-21),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시에는 그의 제자 됨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나약성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막 14:54-7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철저히 회개한 베드로는 이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전도 활동을 왕성히 전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 부활 주를 확인하였고 승천하시는 그리스도를 목격한 이후,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은 베드로는 이전의 나약한 인간 모습을 완전히 떨어버리고 수제자로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행 3:3-8), 이방인 고넬료에게 말씀을 전하는 등(행 10:1-43)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사역을 다하였습니다(행 5:3-10).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 내용의 일부입니다.
베드로는 엄숙하고 정중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풍부한 내용을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34절)라고 합니다.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기 위해서 베드로처럼 전하는 모두가 됩시다.
베드로는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구원의 도리를 전합니다(34-35)
(행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행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고 합니다.
신 10:17-18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하신 말씀의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조건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구원하십니다.
'외모'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과 종교적 제의와 관습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형식적인 경건주의를 상징한다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외형적 구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외식적인 부류들이었기 때문에 고넬료의 말씀을 사모하는 열심이나 남을 섬기는 겸허한 자세가 베드로로 하여금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한 것입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주님을 따르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익혀진 율법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유대적 개념에서 자격요건이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십니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떨어진 옷을 입은 한 신문팔이 소년이 주일 아침에 신문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가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도시 중앙부의 아름다운 집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현관에서 서 있었으며 자기도 깜짝 놀라면서 얼떨결에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실업계의 거물인 로우리씨가 문을 열면서 그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놀란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에게는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니, 나의 아내와 함께 있을 뿐 아이들은 없단다."
"아, 그렇다면 저는 아저씨의 아들이 되고 싶어요."
그는 무척 놀라서 그의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는 부인에게 몸을 돌려 말했습니다.
"여보. 작은 아이를 하나 갖고 싶소."
그녀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작은 소년은 소망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만약 저를 아저씨의 아이로 삼아주신다면,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그는 아이에게 가정이 있는지,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소년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말했습니다.
"얘야, 그러면 너는 어디에서 자니."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길에서요."
그러자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 아이를 맞이해요."
그들은 그 소년을 아들로 맞아들였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 소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인 신문과 13페니를 그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그자비한 남자는 그것을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것을 가지고 있으렴. 나는 우리 둘을 위해서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것을 그에게 드리려고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은 파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은혜와 값없는 입양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우리 죄인들을 환영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주님의 이름이 주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입니다.(구원은 파는 것이 아니다-디럭스 바이블)
외적인 조건을 보시지 않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 안에서 선택하시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심을 전합니다.
(행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화평을 예수님이 전한 복음의 핵심으로 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뜻합니다(Haenchen).
과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심판하는 자와 죄인의 관계였으므로 화해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의 관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롬 5:10, 11).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평화는 사람간의 평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엡 2:14-22),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에 있으서, 그동안 그 둘을 가로 막았던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민족적 편견과 편애가 없어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도구의 역할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이 모든 인생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보내시고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시어 착한 일을 행하시게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시도록 함께 하심을 전합니다. 나아가 나무에 달아 죽였던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심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화평의 역사가 이루어 집니다
기구한 운명의 두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나이가 일본 도쿄에서 얼굴을 마주쳤습니다. 한 사나이는 번화가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있는 제이콥 데시이저였습니다.
그는 일본 본토 공습에 참가했다가 그가 탄 전투기가 격추되었으나,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생명을 보존한 전 미 공군 병사였습니다. 그렇게 살아난 그는 일본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으로 '나는 일본의 포로였다'라는 제목의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전도 집회소를 개설한 사람입니다.
데시이저 씨와 마주친 또 하나의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는 이 전도지를 우연히 받게 된 후찌다 미쯔오였습니다. 그는 진주만 공격을 총 지휘한 원흉이었습니다. 그가 받아 쥔 전도지에는 이런 성구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욥14:1-2).
후찌다 씨는 데시이저 씨의 전도소를 몇 차례 방문한 뒤에 기독교인이 되고, 일본과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하는 열렬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기구한 운명-디럭스 바이블)
서로 대적한 자들이 화평을 이루고 하나 되는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판장이심을 전합니다.
(행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행 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세상에 오신 메시야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하다 이제 세상 마지막 날 수행하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초대 기독교인들의 고백으로서 부활하신 예수가 장차 종말적 심판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되십니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늘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신앙고백을 하는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재판장이 되십니다.
심판의 과정에 양과 염소를 나누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마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마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들은 주인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 달려갈 것입니다. 쏜살 같이 달려갈 것입니다.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그러나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아무리 간곡히 부르실지라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호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을 한 마리 훔쳤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고소당한 피고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그 양은 며칠 전에 잃어버렸던 것으로, 원래 자기 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판사는 그 양을 법정 안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고로 하여금 문밖에 나가서 양을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은 약간 놀란 듯 할 뿐 더 이상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그 특유한 목소리로 양을 부르자 쏜살같이 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양은 주인을 알아봅니다."
"꽝꽝!" 재판은 끝났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고소할지라도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정확히 자신의 양을 구별해 내실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도록 하시는 재판장 이십니다.
죄사함이란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빚을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사람들의 죄의 빚을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것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행 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사 33:24)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죄사함이 선포됨으로써 베드로의 설교가 종결되면서 복음이 사람에게 끼치는 결과가 핵심적으로 진술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짐으로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죄 문제가 해결됨을 선포합니다.
1825년부터 1855년 사이 러시아의 훌륭한 통치자로 니콜라이 황제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군대를 친히 관리하였는데, 종종 평복을 입고 군대를 순찰하였습니다. 태만하고 게으른 군인을 책벌하고 직무에 충실한 군인을 포상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니콜라이 황제는 한 장교의 책상 위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누가 이 산 같은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그 옆에는 번민하던 장교가 누워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를 본 황제는 그 종이 밑에 "니콜라이"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장교가 몹시 의아해 한 것은 물론입니다. 황제의 서명이 웬일입니까?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 그 장교는 황제가 놓고 간 그 돈을 보고 그 서명의 의미를 실감 했습니다. 이 산 같은 빚을 갚아주실 수 있는 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이 바로 자기가 섬기고 있는 황제임을 알았습니다.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일생을 황제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에수님은 우리 죄 값을 자신의 피를 흘려 속량해 주시고 우리를 죄 없다고 선언 하시는 것입니다.
외모를 보지 않고 구원하시는 구원의 도리를 화평의 복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베드로처럼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는 모두가 됩시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행 10장 34~48절 / 민경설목사
얼마 전에 현대 아산 회장인 정몽헌씨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대표 회사의 후계자인 그 분이 자살한 사건은 광복절 주간을 맞이하면서, 또 지금 경제, 사회, 정치 어느 한 분야도 어렵지 않은 이 시점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 그러했겠지만 그의 죽음을 영적으로 분석한다면 그 분은 죽음의 영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을 살리는 영도 있지만 죽이는 영도 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어둠의 영을 이길만한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션스쿨인 연세대학교 재학시절에 라도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했다면 이렇게는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은 정치, 경제가 어렵다해서 노숙자가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죽음의 영에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어둠의 영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영이 넘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살리는 영인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해야 합니다. (요10:9-10)"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어둠의 영이 올 때 막아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삶의 의욕을 주고, 소망을 주고, 능력을 주십니다. 헬렌켈러는 삼중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믿음 좋은 설리반 선생님을 만난 후 예일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말문이 열려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죽는다는 사람도 성령이 임하면 살아납니다. 에스겔서 47장에 보면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이 신이 임하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임하는 까닭을 알아보겠습니다.
1. 예수 믿으면 죄사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행10: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표적을 놓쳤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뒤틀린 삶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약점과 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을 받는 다는 것은 내 약점과 허물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사함 받은 자는 천국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여 죄사함 받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2. 예수만이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행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만이 진리이며, 빛입니다. 예수가 아니면 살아날 자가 없습니다. 사탄에 눌린 자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내게도, 세상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둠의 영, 사탄의 영에 눌린 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3. 부활의 주님을 믿어야 오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10:39-40)"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예수가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을 모든 사람은 알 수 있지만 보여지는 것은 한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이겨야 합니다. 오늘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늘을 이기지 못하면 눈에 보이는 것에 붙들리게 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오늘을 이겨야 신앙에 승리자가 됩니다.
4. 예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행10:42)"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심판이 있기에 어려울 수록, 억울할수록 예수를 더욱 잘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이기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처해있는 지금의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 성령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만유의 주 되신 예수
행 10장 34~43절 / 서금석목사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 있는 베드로의 세 번째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설교의 대상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설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 후에 있었고, 두 번째 설교는 미문 앞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 뒤에 있었는데, 두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3-33까지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34-43까지의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 44-48까지는 설교 후에 나타난 사건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설교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의 핵심, 복음의 진수에 대해 간단하고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바로 본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평생 예수 믿으면서 복음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설교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 살아가면서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 느끼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대단히 기분이 좋은 경우, 대단히 불쾌한 경우 - 모두 생각해 보면 사소한 몇마디 말 때문이 아닙니까 몇마디 말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기도 하고, 몇마디 말 때문에 밤새 잠 못이루기도 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시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받아들여지겠습니까? 식사시간에 물건 파는 외판원이 왔다면 그 물건 사시겠습니까? 한 여름에 스키용품 광고가 나간다면 보시겠습니까? 때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그때 그때의 감정과 기분에 민감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잠 25: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것과 같고 상처에 초를 부음같으니라" 셋째는 상황에 민감해야 합니다. 시간과 기분과 상황 -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이 잘 되어야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7:6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존 웨슬리는 '거룩한 것'을 복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진주'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뜻합니다. 복음을 아무에게나 전하지 말라는 뜻 아닙니까?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의 복음 -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여 땅끝까지 전해야 하는 복음을 아무에게나 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차별을 두라는 말씀을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고 하신 예수께서 개, 돼지에게는 전하지 말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됩니다만, 마음의 상태가 개(짐승)과 같아서 도리어 물어 뜯으려고 으르렁대고 소리지르고 야단치는 그런 심령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설교에 있어서도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전하는 사람도 중요하고 듣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오늘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난 자리는 하나님께서 두 사람 모두에게 기도 중에 같은 환상을 주셔서 만나게 하신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쌍방주선을 하셨습니다.
듣는 자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베드로를 만나면서 어찌했습니까? 베드로에게 땅에 엎드리어 절했습니다. 베드로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질겁을 하며 일으켰을 때 고넬료가 뭐라 했습니까? 사도행전 10:33 후반부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 한마디만으로 설교를 듣는 마음의 자세가 어떻해야 하나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당신의 설교는 당신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당신이 내게 설교하는 것도 당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당신이 전하는 설교를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겠나이다. 전하는 당신이나 듣는 나나 모두다 하나님 앞에 있지 않습니까? - 이쯤되면 설교를 듣는 자세가 됐습니다.
전하는 자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설교하기 전에 먼저 은혜를 받았습니다.
"34…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설교자가 고넬료를 보고 먼저 은혜가 되었습니다. 설교자 마음에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 마음에 분노와 원한이나 괴로움, 걸리는 것이 있으면 설교가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보면서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시지 않는다 -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설교에는 듣는자와 전하는 자 모두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구나,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자 - 이런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전하는 자도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확신하며 은혜를 마음에 담고 전해야 합니다. 말씀답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2.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1) 화평의 복음입니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베드로는 예수가 전한 복음의 핵심을 '화평'으로 봅니다. 화평은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해를 뜻합니다. 과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심판하는 자와 죄인의 관계였음으로 화해 될 수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의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이 평화는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에베소서 2:13이하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13)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 졌습니다. 14)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사람이 양쪽으로 갈려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사람과 이방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여러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16)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입니다. 17)그분께서는 오셔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이방인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따지지 않고, 계급과도 관계없이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을 이루게 하기 위해 주님은 이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마음이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갈등 속에 있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켜 둘씩 짝지어 세상으로 보내실 때도 "가는 곳마다 평안을 빌어 주라"분부하셨고 부활 후에 제자들과 만나 처음으로 하신 말씀도 "평안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였습니다. 언제 평안해 집니까? 화평을 이룰 때. 좋은 관계가 될 때 아닙니까? 누구와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평화, 이웃과 평화,
어떻게? 하나님 사랑을 믿고 순종할 때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어린아이가 주운 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음 아니면 중상입니다. 사람이 마음과 생활 속에 죄 - 불순종, 향락을 품고 즐기다가 어느날 그것이 터지는 날이면 중상 아니면 죽음입니다.
평화의 복음, 화평의 복음, 바로 나를 향한 예수의 복음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과 이웃과 화평을 이루어 평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능력의 복음입니다.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하심으로 일어났던 각가지 기적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과 능력이 충만한 사역이었습니다. 병도 고치셨습니다. 귀신도 쫓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모든 착한 일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처음부터 이런 신앙을 가졌었습니까? 아닙니다. 무서워서 여자 종 앞에서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자신도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체험하고 성전 미문 앞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성도의 신앙이 맥이 없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주무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 때, 초대교회 때 일어났던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습니까? 병 나을 줄 믿습니까?귀신이 쫓겨갈 줄 믿습니까? 못 믿어요? 하나님은 초대교회에서는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지금은 힘이 빠져 피곤해서 주무시느라, 기적도 잘 일으키시지 못하시는 분이라고 믿으십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 살아계신 하나님. 2000년에는 '움이 돋는 새 풀 같이' 사시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초대교회의 능력이 이 시대 나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씀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어가고, 말씀은 많이 읽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병든 지식인이 되고, 말씀은 읽지 않고 기도만 하면 감정에 빠진 광신도가 되기쉽다. 말씀과 기도가 모두 풍성하면 건강하고 능력있는 성도가 됩니다."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능력을 체험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구속의 복음입니다.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왜 죽으셨는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사실이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입니다.
이사야 53:5-6 "5)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조선일보 1984.6.20색연필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대학 강사였던 남모(南某) 씨는 신발장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사진이 붙어있는 대학학생증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다그쳤으나 아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심한 꾸중을 들은 아들은 가출했고, 아버지는 근심과 걱정으로 며칠을 뜬눈으로 지냈습니다. 며칠 후 아들이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삭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씨는 아들을 관할 경찰서에 남의 학생증을 훔친 비행으로 신고했습니다. 훔친데 대한 벌을 받지 않고서는 새 출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은 남군에게 사문서 위조의 죄가 있지만 정상을 참작하여 불구속 입건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도 삭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의 뉘우침을 보고 함께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왜 머리를 삭발했을까요? 아버지가 잘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나의 죄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신 것이지 예수 자신의 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그 아픔 / 그 사랑을 아십니까?
죄의 삯이 무엇이라고요? 죽음! 내가 죽어야 하는데 누가 대신 죽었어요?
예수님! 그래서 십자가만 보면 '아,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죽으셨구나. 이제 정신차리고 머리를 깎지 않더라도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바로 살아야지' 결심하는 것이 신앙있는 성도의 바른 태도/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십자가 때문에 용서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무슨 차이 입니까? 믿음의 차이입니까?
(4) 부활의 복음입니다.
"40)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베드로는 분명히 선언합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누가 살리셨어요? 하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제일 기초이며 중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저는 이 시간 부활을 여러분에게 증명하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 어느 종교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유명한 사람들은 호화롭고 대단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예수의 무덤만은 빈 무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였지만 하나님은 살리셨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인간이지만 다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도 공생애 동안에 분명하게 요한복음 11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2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믿고 안 믿고는 누구의 문제입니까? 바로 나의 문제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은 죄의 삯인 사망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도에게 죽음은 끝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입니까?
확실하게 말씀하세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성도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고전15:19 "우리가 이 세상만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걸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떤 노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아내와 둘째, 셋째 막내에게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맏아들에게는 "얘야, 잘있거라" 하더랍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천국에서 다시 볼 수 없으니 영원한 이별이 아니겠습니까? "움이 돋는 새 풀 처럼" 살려면 언제나 종말의식을 가지고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열심히 믿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기독교 신앙은 부활의 신앙입니다.
(5) 용서의 복음입니다.
"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赦)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성도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받는 감격을 아십니까?
우리가 만일 지은 죄대로 형벌을 받는다면 모두다 감옥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성자같이 앉아있지만 지은 죄 생각하면 떳떳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용서받아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바다 깊은 곳으로 죄를 던져 버림같이, 햇빛이 나면 사라져 버리는 안개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 아닙니까?
용서의 기쁨과 감격을 아십니까?
제 아버지께서 평소 아끼시던 회중시계. 옛날 손목시계가 귀할 때 얼마나 차고 다니고 싶었던지 그 아버지 회중시계와 바꿔서 차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시계가 시원찮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화를 내시던지. 그렇게 화내시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끼시던 시계가 바보같은 아들 때문에 없어졌으니 대단히 분노하셨습니다. 한동안 아버지 얼굴을 피해 살았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잊어버리자' 말씀하시는데 '용서하겠다'는 말씀아닙니까? 머리 깎은 아버지 보는 아들의 심정은 못되었지만 어찌나 좋은지.
여러분.
우리가 고백한 모든 죄와 허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용서함 받은 기쁨과 감격이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 아시지요?
아들의 자리로 복귀할 생각은 감히 엄두도 못내고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하자' 아버지 옆에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돼지치기 아들 -목욕도 못하고 세탁도 못한 옷을 입은 냄새 나는 아들-을 껴안고 입 맞추고 기뻐하며 목욕시키고, 용서해 주고 새 옷 입히고,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키고, 반지 끼우고, 권리까지 회복시키고, 잔치를 베풀어 주던 아버지, 이 모습이 바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기뻐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 아닙니까?
여러분. 믿기만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묻지도 책망도 않으시고 받아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할 일은 ? - 전도하라 /증거하라
"42)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시고"
베드로는 '전도는 명령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재림주로 정하신 분이 바로 예수시라는 말씀입니다. 증인이란 책에서 본 내용이나 귀로 듣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만난 사람의 체험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부활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모시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에게 명한 것이 있는데 바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다구요? 하나님께서 산자와 죽은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예수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심판자 되십니다. 후에 천국과 지옥을 결정할 때 무엇이 기준이 됩니까? 예수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성도 여러분. 생명의 복음을 들은 후에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구원받았으니 이젠 됐습니까?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복음은 받은 자 만이 전할 수 있습니다. 세계인구가 50억이 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됐습니까?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것도 10개월만에 또 낳고 2-3년에 한번씩 한 가정에 많아야 2-3명. 그렇게 해서 50억이 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 갑자기 '펑'하고 나타나셔서 '나를 믿어라'하시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방법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쓰셨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이 너무 무질서하고 무책임하니까 단체로 벌을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반장이 뛰어 내려와 '선생님 제가 제대로 일하지 못해서 이리 되었으니 한번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하니까 선생님이 믿고 모두를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반장이 '고맙습니다'하고는 자기만 집으로 가버렸으니 벌받고 있는 교실의 반 아이들은 어찌되겠습니까?" 알려야지요.
본문은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한 설교 / 복음의 내용입니다.
설교는 듣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 모두에게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 내게 주시는 명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설교자도 마음에 막힌 것이나 분노, 거리낌이 없는 은혜 속에서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었습니다.
능력의 복음이었습니다.
구속의 복음이었습니다.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용서의 복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2000년 한 해 복음의 깊은 의미를 삶속에 체험하고 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가족을 구원한 믿음의 가장 고넬료
행 10장 34절 / 이근수목사
110년 전 우리민족은 흑암 속에, 무지와 가난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민족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셨습니다. 110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을 들어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무지몽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언더우드 기도 영상. 1]
2000년 전 로마인
2000 년 전 로마인들이 세계를 재패하고 이스라엘을 점령했지만 저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이사랴에 주둔해 있는 로마 군인 가족과 친지를 구원하시려고 사도 베드로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 사도와 이방인과의 만남
하나님은 로마인 고넬료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1. 백부장 고넬료가 환상을 봄[3-6]
고넬료는 지중해 해안 도시 가이사랴의 이스라엘 점령군 부대에서 100명의 군사를 이끄는 장교였습니다.
1) 고넬료는 경건했고 온 가족도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2) 가난한 유다 백성을 구제하였습니다.[1-2]
3) 매일 오후 3시면 기도를 했습니다.
4) 기도 시간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기도를 응답하시고 구제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4]
1) 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되었고, 네 구제를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4]
하나님이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셨고, 구제한 것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기도하는 군인, 기도하는 성도를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복지를 챙기는 것처럼, 가난한 이웃 의 복지도 고넬료 처럼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제 25회 사랑의 바자회
10월 14,15일 이틀간 제 25회 사랑의 바자회를 합니다.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때 전도도 합니다. 성도님들이 바자회에 참여 하여 봉사하시고 바자회를 널리 알리시고,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봉사를 기억하시고 복 주십니다.
바자회 때에 나의 베스트를 초청해서 우리교회도 소개하고, 음식도 대접하시고, 새우젓도 사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사랑으로 구제하는 고넬료가 너무 예뻐서 기도를 응답하시고, 큰 복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고 구제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2) 사도 베드로를 집으로 초청하라 명하심[5-7]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욥바 시몬의 집에 묵고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환상 중에 명하셨습니다. 고넬료는 순종하여 신실한 종 3명을 40km 쯤 떨어진 욥바 항구 시몬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2. 베드로가 환상을 봄[9-16]
사도 베드로가 낮 12시에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는데 짐승과 땅에서 기는 것과 조류가 담긴 그릇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는데 ‘베드로야 일어나 이것들을 잡아먹으라’[13] 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저는 깨끗지 않고 속된 것을 먹은 적이 없다'[14]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15]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세 번 하신 후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16]
여러가지 짐승은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잡아먹으라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라는 뜻 입니다.
1) 베드로에게 고넬료의 사신들이 도착함[17-22]
베드로가 고민하고 있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신들이 도착 했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두 사람을 네게 보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만나 함께 가라 - 고 하셨습니다.[19-20]
고넬료의 사신들은 - 주인은 신앙과 인격이 출중한 분이라고 베드로에게 소개하며, 베드로를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고 여기에 왔고, 주인과 온 가족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가시자고 말했습니다.[22] 베드로는 그들을 영접 하여 유숙하게 하였습니다. [23]
3. 사도 베드로와 백부장 고넬료의 만남 [23-25]
이튿날 베드로와 욥바 성도들 그리고 고넬료의 사신들은 가이사랴 백부장의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니 고넬료는 그의 일가와 친구들을 불러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4] 베드로가 들어서자,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극진한 환영을 했습니다.[25] 베드로가 말려 나도 사람이니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 고넬료에게 청한 이유를 묻는 베드로[28-29]
사도가 자기를 청한 이유를 고넬료에게 물었습니다. 본래 유대인과 이방인은 교제를 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방인을 ‘속되다. 깨끗하지 않다‘고 하지 말라고 명하셔서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으니 부른 이유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28-29] 고넬료는 자기가 본 환상을 베드로에게 설명하며 사도를 청하라는 명을 받고 이렇게 모셨으니 잘 오셨다고 다시 감사를 했습니다 [30-33]
2)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 [34- 43]
베드로는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시는 분임을 깨달았다고 하며, 그동안 유대인이 가졌던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예수님의 화평의 복음으로 깨끗이 해결되었으니 이방인과 유대인이 만나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갈릴리에서 온 유다로 전파되었고,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셔서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셨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살리셔서 부활하셨는데 우리들이 주님의 부활을 본 증인이라고 했습니다.[34-41]
부활 하신 예수님,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전도’하여 증인이 되라고 명 하셨습니다. [42]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기 때문이라고 베드로 사도가 설교를 했습니다. [43]
3) 성령을 부어주심[44-47]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온 성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가족 일가친지들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첫 번 째 이방인들이었습니다.
110년 전에 하나님이 언더우드를 우리나라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우리 민족의 눈을 뜨게 하셨고 멸망 받을 백성들을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언더우드 영상 2]
선교사들 - 잘 배워서 잘 먹고 잘 살수 있고 대접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 조선의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 헌신하고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도 전도하고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1. 가장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2]
* 온 집안 식구, 일가, 친지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한 모범적인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가장이 안 믿는 가정이 많습니다. 믿지 않는 30, 40, 50대 가장 자녀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초청하여 전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전도수첩을 열어보세요]
남편전도 핵심 포인트 p. 23
1. 웃는 얼굴로 남편을 대하라
2.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라. 아내는 지친 남편의 휴게소다
3. 음식을 잘 대접하라. 천 마디 말보다 음식 대접이 최고다
4. 가끔 특별 요리를 하라
5.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라
부모전도 핵심 포인트 p. 21
1. 효성을 다하라
2. 모범적으로 살아라
3. 기도하라
4.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라
5. 예배에 부모님을 초대하라
고넬료가 온 가족 식구에게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청한 것처럼 - 목사님, 장로님, 섬김이를 집으로 초대해서 부모님이 복음을 듣고 구원 받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전도 핵심 포인트 p. 19
1. 사랑 안에서 단호하게 훈련하라
2. 모범적인 삶을 통해 주께로 이끌라
3. 자녀를 본 교회 주일학교에 보내라.
- 혹 친구 교회 간다는 자녀가 있는데 그것은 속는 것입니다.
4. 자녀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우라
5. 자녀의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져라. - 믿는 친구에 대해
2. 우리가 받은 명령은 무엇입니까? [42]
[전도]입니다.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나의 베스트를 정하고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 금년에 1-2 명은 전도해야 합니다.
5. 베드로가 말씀 전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44-46]
모두가 성령을 받고, 믿어,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47] 이들은 이방인 가운데 최초로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집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불신 가족이 구원받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복된 일이 성도님들 가정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결론
하나님은 불신가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안 믿는 식구가 복음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족 전도요, 가족 구원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 성령님이 역사 하십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구원받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고넬료의 회심
행 10장 34~48절 / 정방원목사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청을 받습니다. 그는 욥바에 머물고 있고,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하여 있습니다.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48km를 걸어가는 베드로의 발걸음은 선교 역사상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위대한 발걸음입니다. 그런데 절대 쉽지 않은 발걸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환상을 주셔서 베드로를 초청하게 하시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주셔서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결국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게 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초청한 이후 심방을 받을 준비를 합니다. 특히 세 가지를 준비합니다. 첫째, 사모하는 마음으로 베드로를 기다립니다. 그가 가족과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불러서 기다리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베드로 앞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베드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전하는 모든 말씀 즉 쓴 말씀이든 단 말씀이든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심방을 준비하면서 음식을 장만하거나 집안을 청소하거나 감사헌금을 준비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대심방 때 어떤 권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십니다. 옛날에 심방을 받을 때 집안을 도배하고 심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단한 정성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정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은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고넬료는 회심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고넬료의 회심’입니다. 고넬료의 회심은 한 사람의 회심을 넘어 이방인 최초의 회심 사건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세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 전도 대상자를 만나야 합니다.
본문 34~35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깨달은 중요한 진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유대인의 율법적인 시각으로 이방인인 고넬료를 바라본다면, 결코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넬료와 같은 전도대상자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와 기도라는 의를 많이 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최고의 전도대상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첫 번째 단계는 전도 대상자를 선정하고,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전도 대상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먼저 전도대상자를 찾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전도 대상자를 찾을 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사람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합니다. ‘저 사람은 예수님을 절대 믿지 않을 거야.’라는 선입관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뱀처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마 10:16>“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전도 대상자를 잘 선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을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씨를 뿌릴 때,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뿌리면 절대 결실할 수 없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야만 결실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고넬료 같은 좋은 전도 대상자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하고 따뜻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 마음 밭이 옥토와 같은 사람, 추수 때의 곡식처럼 무르익은 영혼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전도 대상자로 삼고, 베드로처럼 기도하면서 담대하게 만나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기 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질문합니다. “엄마, 발바닥이 왜 넓고 평평해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사막을 걸어갈 때 모래에 빠지지 말라고 그런 거야.” 아기 낙타가 또 질문합니다. “눈썹이 왜 이렇게 길어요?” 엄마가 자상하게 설명합니다. “사막의 모래 바람에 모래가 눈 속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런 거야.” 또 질문합니다. “그럼, 등에 왜 혹은 있어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사막을 건널 때 마실 수 있도록 필요한 물을 저장해 두는 거야.” 아기 낙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엄마, 우리는 왜 사막에 있지 않고 동물원에 있어요?” 동물원 안에 갇혀 있는 낙타에게 넓고 평평한 발바닥이나 긴 눈썹이나 등에 있는 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세상에 나아가 전도 대상자를 만나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 화평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 36~3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마 3: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를 뒤이어 예수님도 역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마 4:17>“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전파하신 천국 복음을 본문 36절에 ‘화평의 복음’이라고 설명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베드로는 지금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 복음 즉 화평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 천국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갖고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의 표현대로 유대인은 이방인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원수처럼 여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화평의 복음을 들고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표현한 ‘화평’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 즉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평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3~18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루신 복음 즉 화평의 복음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원수된 것 즉 막힌 담을 허무십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십자가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한 몸을 이루게 하시며, 교회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그리고 죄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수가 되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누구실까요?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본문 39~43절에 베드로는 화평의 복음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설교합니다. 그가 전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 본문 39절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본문 43절에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둘째, 본문 40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기 어려운 진리인데, 본문 41절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요 11:25~26>“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까? 셋째, 본문 42절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의 징조를 가르시치고, 복음을 전하라고 지상명령을 주시며,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은 재림하여 온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합니까?
셋째,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본문 38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불신앙적인 세상과 싸워 이기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능력 사역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약속하십니다. <눅 24:29>“볼지어다 내가 내 어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은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심방갈 때 이미 주도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하여 보낸 사람들이 도착할 때, 성령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 10:19>“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와서 화평의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본문 44절>“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마치 오순절 날에 성령이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것처럼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임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직접 지켜본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모든 사역 특히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반드시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성령은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에게 역사하실 뿐 아니라, 고넬료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시며,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성령은 중생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시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닮은 성화의 삶을 살게 하시고, 교회 안에서 직분과 은사와 사역대로 봉사의 삶을 살게 하시며, 세상에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은 내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불가능합니다. <엡 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본문 45절에 고넬료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부어 주심 즉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합니다. 은사가 나타나서 방언을 말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고넬료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 세례를 베풉니다. 이것이 바로 고넬료의 회심 사건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영적으로 천국 열쇠를 갖고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의 문을 활짝 열면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이방인 중에 첫 열매는 고넬료의 회심입니다. 우리는 고넬료의 회심 사건에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고넬료 같은 전도 대상자를 만나야 하고, 둘째, 화평의 복음을 전해야 하며, 셋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