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파인만의 답변에 대해서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고 질문은 결국 수준에 맞게 얘기가 될 수박에 없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만.
흠...저는 좀 다르게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보기엔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듯 "넌 말해도 몰라" 랑 다를바가 없다고 느끼거든요. 말해도 몰라! 라는 무례한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거에 불과한거죠.
질문을 구체적으로(또는 너의 수준이 뭔지 알려주면서) 하라가 정곡을 찌르는 말일 수는 있더라도 그게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답변을 원하는 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한텐 최악의 답변이라고 봅니다.
저는 단적인 예시로 저런 질문을 그냥 기자가 한게 아니라 초등학생이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그 초등학생한테 파인만이 저런식으로 말을 했다면...?
아마 파인만과 같은 답변을 한 초등학생 교사가 있으면 그 교사는 당장에 학부모한테 뒷통수 맞아도 할 말이 없을겁니다.
세상은 무식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 유로파 카페에 계신 분들이라면 영국이 섬나라인건 누구라도 알겠지만, 섬나라인걸 모르는 사람이 은연중에 많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테스트 했는데 대충 동기 10명중에 2명이 영국이 섬나라인거 몰랐습니다. 심지어 영국여행까지 갖다온 인간이 저런 말을 했습니다.
자 영국이 섬나라인지조차 모르는 친구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왜 사이가 나쁜지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무슨 스탭을 밟아야 할 까요? 당연히 백년전쟁 얘기부터 해야겠죠? 네가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튕겨낼게 아니라요.
해당 학문의 지식이 일천한 사람은 그냥 초등학생이 가진 지식체계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을 가르친다면 그런 기준 아래에서 가르쳐야하는게 정답이죠. 괜히 과학전도사들이 다소 유치해 보이는 실험까지 하면서 대중화를 하는게 아니죠.
기자가 말하는 꼴을 보면 딱 초등학생 수준인게 티가 나죠. 만약 파인만이 아닌 김상욱이나 빌나이 같은 사람들이 저런 질문을 들었다면(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아주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을 겁니다.
"자석에는 자기력이란게 있고요~ N극과 S극이 있고 얘네들은 서로를 끌어당겨요~"
파인만이 유명하긴 하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꽤나 퉁명스럽거나 불친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인만의 저서 중에는 일반인을 위한 QED강의가 있는데 여기서 일반인은 그냥 고등학생도 아닌 무려 "물리학 학부생" 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파인만이 얼마나 딱딱한 방식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개인차가 있긴 하겠습니다만. 기자는 학부생이 아니고, 학부생만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저는 파인만보단 김상욱 교수가 더 좋네요.
@강하태수질문자의 수준에 맞춰서 그 지식량에 맞춰서 답변을 해주면 그만인 문제입니다. 계속 궁금한게 생기면 아는한에서 계속 알려주면 되는 노릇이구요. 크킹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크킹의 클레임 시스템을 알려주려고 하기보단 인물중심의 땅따먹기 지도겜이라고 하면 될 뿐이죠. 더 궁금해하면 조금식 심화과정에 들어갈 뿐입니다. 파인만은 이런 과정 자체를 귀찮아서 안할려고 하는 것으로 박에 저는 안보입니다. 수준 안맞으니 네 질문에 답 못해주겠다 인거죠. 저는 이게 교육자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써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본문 내용만 보면, 파인만 교수의 입장과 초등교사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초등교사는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한 반 학생들과 1년 간 함께 동고동락하는 입장이지만, 파인만 교수는 그런 거 없죠. 교사는 자기가 맡은 제한된 숫자의 학생들의 수준을 대략적으로나마 재주껏 파악하고, 그 수준에 맞게 신묘한 방법으로 설명해줄 수 있지만, 파인만 교수는 외부인과 접촉하는 빈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면, 상대의 수준에 맞는 답변을 해주는 건 카지노 룰렛 돌리기나 다름없는 운빨망겜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네녀석의 현재 수준을 대략적으로나마 내게 어필해주면, 거기에 맞게 나도 답변해보려는 시도를 해볼게"라는 건 그리 무리한 요구사항이 아닙니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지식인(시쳇말로 지식소매상?)이라면 상대의 수준을 몰라도 신묘한 방법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데, 그건 자비롭게 봉사해주는 자세로 공짜노동을 해준 것이죠.
222 저도 영상은 보지 않았지만, 글쓴이가 말씀하신 비유들은 안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야 기본 고등 교육까지는 대부분 받는다지만, 외국은 정말 사정이 안된 사람들도 많기때문에 이해도 안될거 이해못하냐고 주입시키는거보단 눈높이 맞춰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자라는 입장에선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갓 들어온 신입학부생들의 지식 수준도 그다지 일천하지 못한게 현실이니까요. 일반인의 지식 수준을 모르는 것도 아닐테구요. 파인만급 되는 사람이 초등교사급의 설명을 못해서 저런 답변을 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속된말로 귀찮아서 저런 말을 하는거죠. 게다가 질문에서 이미 기자의 수준의 밑천이 다 드러났는데 굳이 저런 말을 해야할 필요도 없구요. 차라리 직설적으로 "오우 너무 모르시는군요. 시작하기가 어렵겠어요" 했으면 재치라도 있었겠죠.
귀찮았으면 답변 안하면 그만이죠. 교수는 무려 7분 30초짜리 영상이 만들어질 정도로 장문의 답변을 했는데, 그걸 가지고 '귀찮아서'라구요? 제가 귀찮았으면 7.3초 안에 답변을 끝냈을 겁니다. 초등교사가 초등학생에게 '자석이 왜 밀리는가'를 설명하려면 7.3초면 됩니다. "그 힘을 자기력이라고 약속한단다. 이걸 더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최소한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이 필요해."라고 말하면 돼요. 대부분의 일반적인 초등학생들은 거기에서 갑자기 궁금해지지 않아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궁금해지는 초등학생이 존재한다면(실제로 종종 있죠), 그건 그 사람의 '직업'이 초등학생일 뿐 '수준'은 이미 초등학생을 넘어섰을 겁니다.
@인생의별빛zomur님은 지금 교육학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무시하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교육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으로서 성립할만큼 전문적인 활동입니다. 어떤 지식에 아주 정통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기존 지식체계를 이해하고 오개념을 수정하고 새로운 개념을 인식시키는 과정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사람의 기존 사고방식을 '개조'하는 것이 쉬운 일일 리 없습니다. '습관화''생활화''세뇌'는 쉽지만, '교육'은 어려워요. 대학교수는 사실 교육자라기보다는 연구자에 더 가깝습니다. 인류 지식의 프론티어를 개척하는 사람이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을 주로 하는 사람이지, 배포를 하는 것을 본연의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지식배포는 일선의 교육자들과 '지식소매상'들이 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대중교육에 관심있는 대학교수'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교수를 교육자의 한 하위 카테고리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은, 물론 교육자와 교수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존재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하위 카테고리에 있지는 않습니다. 지식에 목마른 일반인이 있을 때, 그걸 교수가 반드시 앎의 영역으로 끌어가야 한다고 기대받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인생의별빛교육은 훈련받은 전문인력이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 주입시키는 과정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는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합니다. 사람은 초중등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학습과정을 이수하고, 고교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성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사회에 바로 진출하지 않고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일상생활을 영유하는 것과는 무관한 지식을 '자발적'으로 채우겠다는 의사표현입니다. 따라서 대학 과정에서는 어떤 지식을 쌓을지, 어떤 과정과 방식을 거쳐 쌓을지, 누구의 강의를 받아 쌓을지 등은 대학생 본인이 결정합니다. 석박사 수준까지 올라가면, 교양지식을 쌓는 수준을 넘어 아예 학계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사표명에 해당하죠. 그러므로 대학교수는 근본적으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지식을 찾아볼 자세를 갖춘 학생'을 상대합니다. 학생이 물어본다고 해서 무조건 이해하기 쉽게 변형해서 대답할 의무 같은 건 없습니다. 그 질문에 맞는 논문을 던져주고 네가 직접 읽어보라 지시해도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대학생에게 기대되는 태도죠.
@인생의별빛다시 원래 주제의 파인만 교수 영상으로 돌아가면, 교수의 접근방식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자석에 대한 설명'을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치면 병원에 가는 과정'을 먼저 설명합니다. "고관절을 다치면 어떻게 병원에 가? 남편이 병원에 연락했거든. 왜 남편이 연락을 해? 남편은 아내의 건강에 관심이 있으니까.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지."라는 식으로 흘러가면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으로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을 밟습니다. 한편으로, "왜 얼음에서 미끄러져? 얼음을 밟으면 압력이 가해져 물이 되고, 물 위에 올라타게 되어 미끄러지지."라는 식으로 흘러가면 자연과학으로 흘러갑니다. 파인만 교수는 이걸 계속 설명하면서, "왜?"라는 질문이 반복될수록 점점 '생활상식'의 영역에서 '전문학문'의 영역으로 흘러가는 그 자체를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과 말투로 설명하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식의 프론티어를 개척'하는 연구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별빛그러면 "자석은 왜 서로를 미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려면 '생활상식'의 영역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기는 거죠. 전자기력을 설명하려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4가지 기본 상호작용(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설명해야 하는데, 사실 기본 상호작용들은 낮은 수준의 학문에선 '공리'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고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설명해보겠다고 대통일 이론이니 초끈이론이니 하는 별 외계어 같은 이론들이 튀어나오는데, 이건 명백히 프론티어거든요. 학문의 프론티어를 일반인에게 들이미는 건 무례함이죠. 그러니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그걸 '제대로' 설명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시키려 시도하는 무례한 행위이고, 그렇다고 해서 생활상식의 온갖 비유를 끌고 와서 대충 설명하는 예의를 차리자니 그 과정에서 '오개념'이 대량생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그럴 때에는 결국 '공리'라는 만능 요술지팡이를 휘둘러서 "그냥 그런 것이니 믿으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인생의별빛하지만 파인만 교수의 입장에서는, 그런 만능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는 건 '지식인'이 휘두르는 권위주의적 폭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파인만 교수는, 그런 일방적 폭력을 행사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왜 그런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지, 어째서 당신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없는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굳이 죄없는 할머니 한 분을 빙판길에서 미끄러뜨린 겁니다. "왜?"라는 질문이 계속 반복되면 '생활상식'의 영역에서 '전문학문'의 영역으로 흘러가는데, 너의 질문은 '생활상식'의 영역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니 이해해달라는 의사표현을 한 것이죠.
저는 이 정도로 친절하고도 단호한 교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식무능한 저는 이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데에 대략 3500자 내외의 장문을 동원했는데, 저보다 훨씬 유능한 파인만 교수는 7분 30초 안에 압축해서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학술에 종사하는 분들로서는 가장 적절한 응답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똑같은 학부 수업을 듣는 수강생 중에서도 질문자의 배경 지식은 천차만별이고, 그 이유는 단순히 학년부터 수업의 성실도, 수업의 이해 정도, 그날 수업에 할당된 읽기 자료를 얼마나 읽고 또 얼마나 잘 이해했는 지 등 무궁무진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리딩이 많은 사회과학 수업을 들으면서 실감하는데, 기본적으로 수업의 접근 방식을 이해하고 또 그걸 질문의 내용과 얼마나 잇느냐에 따라서 답변 가능 여부부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풍부한 자료를 가져와봐야 수업의 접근 방식을 이해하고 그 맥락 하에서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냥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인 거죠. 답변의 깊이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고요. 그래서 아카데믹한 질문을 하려면 최소한 질문자 나름의 소양과 수고는 당연한 예의라 봅니다.
첫댓글 말씀하신데로 전적으로 개인차라고 생각됩니다
파인만의 불평도 개인차 그자체를 말하잖아요 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강하태수 질문자의 수준에 맞춰서 그 지식량에 맞춰서 답변을 해주면 그만인 문제입니다. 계속 궁금한게 생기면 아는한에서 계속 알려주면 되는 노릇이구요.
크킹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크킹의 클레임 시스템을 알려주려고 하기보단 인물중심의 땅따먹기 지도겜이라고 하면 될 뿐이죠. 더 궁금해하면 조금식 심화과정에 들어갈 뿐입니다.
파인만은 이런 과정 자체를 귀찮아서 안할려고 하는 것으로 박에 저는 안보입니다. 수준 안맞으니 네 질문에 답 못해주겠다 인거죠. 저는 이게 교육자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써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영상을 보지 않았음을 우선 밝힙니다.
본문 내용만 보면, 파인만 교수의 입장과 초등교사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초등교사는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한 반 학생들과 1년 간 함께 동고동락하는 입장이지만, 파인만 교수는 그런 거 없죠. 교사는 자기가 맡은 제한된 숫자의 학생들의 수준을 대략적으로나마 재주껏 파악하고, 그 수준에 맞게 신묘한 방법으로 설명해줄 수 있지만, 파인만 교수는 외부인과 접촉하는 빈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면, 상대의 수준에 맞는 답변을 해주는 건 카지노 룰렛 돌리기나 다름없는 운빨망겜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네녀석의 현재 수준을 대략적으로나마 내게 어필해주면, 거기에 맞게 나도 답변해보려는 시도를 해볼게"라는 건 그리 무리한 요구사항이 아닙니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지식인(시쳇말로 지식소매상?)이라면 상대의 수준을 몰라도 신묘한 방법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데, 그건 자비롭게 봉사해주는 자세로 공짜노동을 해준 것이죠.
222 저도 영상은 보지 않았지만, 글쓴이가 말씀하신 비유들은 안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야 기본 고등 교육까지는 대부분 받는다지만, 외국은 정말 사정이 안된 사람들도 많기때문에 이해도 안될거 이해못하냐고 주입시키는거보단 눈높이 맞춰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자라는 입장에선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갓 들어온 신입학부생들의 지식 수준도 그다지 일천하지 못한게 현실이니까요. 일반인의 지식 수준을 모르는 것도 아닐테구요. 파인만급 되는 사람이 초등교사급의 설명을 못해서 저런 답변을 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속된말로 귀찮아서 저런 말을 하는거죠. 게다가 질문에서 이미 기자의 수준의 밑천이 다 드러났는데 굳이 저런 말을 해야할 필요도 없구요. 차라리 직설적으로 "오우 너무 모르시는군요. 시작하기가 어렵겠어요" 했으면 재치라도 있었겠죠.
@zomur 영상을 보고 왔습니다.
귀찮았으면 답변 안하면 그만이죠. 교수는 무려 7분 30초짜리 영상이 만들어질 정도로 장문의 답변을 했는데, 그걸 가지고 '귀찮아서'라구요? 제가 귀찮았으면 7.3초 안에 답변을 끝냈을 겁니다. 초등교사가 초등학생에게 '자석이 왜 밀리는가'를 설명하려면 7.3초면 됩니다. "그 힘을 자기력이라고 약속한단다. 이걸 더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최소한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이 필요해."라고 말하면 돼요. 대부분의 일반적인 초등학생들은 거기에서 갑자기 궁금해지지 않아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궁금해지는 초등학생이 존재한다면(실제로 종종 있죠), 그건 그 사람의 '직업'이 초등학생일 뿐 '수준'은 이미 초등학생을 넘어섰을 겁니다.
@인생의별빛 zomur님은 지금 교육학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무시하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교육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으로서 성립할만큼 전문적인 활동입니다. 어떤 지식에 아주 정통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기존 지식체계를 이해하고 오개념을 수정하고 새로운 개념을 인식시키는 과정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사람의 기존 사고방식을 '개조'하는 것이 쉬운 일일 리 없습니다. '습관화''생활화''세뇌'는 쉽지만, '교육'은 어려워요.
대학교수는 사실 교육자라기보다는 연구자에 더 가깝습니다. 인류 지식의 프론티어를 개척하는 사람이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을 주로 하는 사람이지, 배포를 하는 것을 본연의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지식배포는 일선의 교육자들과 '지식소매상'들이 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대중교육에 관심있는 대학교수'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교수를 교육자의 한 하위 카테고리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은, 물론 교육자와 교수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존재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하위 카테고리에 있지는 않습니다. 지식에 목마른 일반인이 있을 때, 그걸 교수가 반드시 앎의 영역으로 끌어가야 한다고 기대받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인생의별빛 교육은 훈련받은 전문인력이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 주입시키는 과정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는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합니다.
사람은 초중등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학습과정을 이수하고, 고교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성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사회에 바로 진출하지 않고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일상생활을 영유하는 것과는 무관한 지식을 '자발적'으로 채우겠다는 의사표현입니다. 따라서 대학 과정에서는 어떤 지식을 쌓을지, 어떤 과정과 방식을 거쳐 쌓을지, 누구의 강의를 받아 쌓을지 등은 대학생 본인이 결정합니다. 석박사 수준까지 올라가면, 교양지식을 쌓는 수준을 넘어 아예 학계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사표명에 해당하죠.
그러므로 대학교수는 근본적으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지식을 찾아볼 자세를 갖춘 학생'을 상대합니다. 학생이 물어본다고 해서 무조건 이해하기 쉽게 변형해서 대답할 의무 같은 건 없습니다. 그 질문에 맞는 논문을 던져주고 네가 직접 읽어보라 지시해도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대학생에게 기대되는 태도죠.
@인생의별빛 다시 원래 주제의 파인만 교수 영상으로 돌아가면, 교수의 접근방식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자석에 대한 설명'을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치면 병원에 가는 과정'을 먼저 설명합니다.
"고관절을 다치면 어떻게 병원에 가? 남편이 병원에 연락했거든. 왜 남편이 연락을 해? 남편은 아내의 건강에 관심이 있으니까.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지."라는 식으로 흘러가면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으로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을 밟습니다. 한편으로, "왜 얼음에서 미끄러져? 얼음을 밟으면 압력이 가해져 물이 되고, 물 위에 올라타게 되어 미끄러지지."라는 식으로 흘러가면 자연과학으로 흘러갑니다. 파인만 교수는 이걸 계속 설명하면서, "왜?"라는 질문이 반복될수록 점점 '생활상식'의 영역에서 '전문학문'의 영역으로 흘러가는 그 자체를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과 말투로 설명하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식의 프론티어를 개척'하는 연구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별빛 그러면 "자석은 왜 서로를 미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려면 '생활상식'의 영역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기는 거죠. 전자기력을 설명하려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4가지 기본 상호작용(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설명해야 하는데, 사실 기본 상호작용들은 낮은 수준의 학문에선 '공리'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고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설명해보겠다고 대통일 이론이니 초끈이론이니 하는 별 외계어 같은 이론들이 튀어나오는데, 이건 명백히 프론티어거든요. 학문의 프론티어를 일반인에게 들이미는 건 무례함이죠.
그러니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그걸 '제대로' 설명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시키려 시도하는 무례한 행위이고, 그렇다고 해서 생활상식의 온갖 비유를 끌고 와서 대충 설명하는 예의를 차리자니 그 과정에서 '오개념'이 대량생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그럴 때에는 결국 '공리'라는 만능 요술지팡이를 휘둘러서 "그냥 그런 것이니 믿으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인생의별빛 하지만 파인만 교수의 입장에서는, 그런 만능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는 건 '지식인'이 휘두르는 권위주의적 폭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파인만 교수는, 그런 일방적 폭력을 행사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왜 그런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지, 어째서 당신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없는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굳이 죄없는 할머니 한 분을 빙판길에서 미끄러뜨린 겁니다. "왜?"라는 질문이 계속 반복되면 '생활상식'의 영역에서 '전문학문'의 영역으로 흘러가는데, 너의 질문은 '생활상식'의 영역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니 이해해달라는 의사표현을 한 것이죠.
저는 이 정도로 친절하고도 단호한 교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식무능한 저는 이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데에 대략 3500자 내외의 장문을 동원했는데, 저보다 훨씬 유능한 파인만 교수는 7분 30초 안에 압축해서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학술에 종사하는 분들로서는 가장 적절한 응답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똑같은 학부 수업을 듣는 수강생 중에서도 질문자의 배경 지식은 천차만별이고, 그 이유는 단순히 학년부터 수업의 성실도, 수업의 이해 정도, 그날 수업에 할당된 읽기 자료를 얼마나 읽고 또 얼마나 잘 이해했는 지 등 무궁무진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리딩이 많은 사회과학 수업을 들으면서 실감하는데, 기본적으로 수업의 접근 방식을 이해하고 또 그걸 질문의 내용과 얼마나 잇느냐에 따라서 답변 가능 여부부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풍부한 자료를 가져와봐야 수업의 접근 방식을 이해하고 그 맥락 하에서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냥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인 거죠. 답변의 깊이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고요. 그래서 아카데믹한 질문을 하려면 최소한 질문자 나름의 소양과 수고는 당연한 예의라 봅니다.
저분이 하시고싶으신 말씀은 물리는 '왜?'가 아니라 그렇다고 믿는 것이라는걸 강조하시는것 같습니다. 뉴턴의 운동법칙을 배울때 왜냐고 묻는건 의미가 없죠. 물리는 그냥 믿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