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시내에 마음을 씻고
백로를 하루 앞둔 구월 첫째 목요일이다. 한밤중 잠을 깨 기온이 서늘해 방문은 닫힌 상태지만 열어둔 거실의 문도 닫아야 했다. 눈이 침침해 와도 책상머리에 놓인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펼쳤다. 채씨 성에다 필명 사장을 붙인 젊은 철학자의 잡학 박식한 내용의 책이었다. 저자가 젊은이답게 유연한 사고와 신선한 감각으로 와 닿았다. 아침 식후에 반나절 산행 걸음을 나섰다.
나의 일과는 일찍 시작되어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그제야 외등의 불이 꺼졌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정류소에서 첫차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탔더니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는 이들이 다수 타고 왔다. 큰 회사 정규직이라면 통근버스를 타거나 회사 상징 로고를 붙인 모자나 티를 입을 법도 한데 그럴 처지가 못 되어 허드렛일로 근근이 생계를 잇는 이들인가 싶었다.
나는 자연학교로 등교하는 학생으로서 생업 현장에서 신성한 노동을 제공하는 분들을 경건하게 대했다. 시청 광장을 지난 상남시장 근처에 내리는 아주머니가 있고 남산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타려는 사내도 있었다. 나는 안민터널을 앞둔 사거리에서 내렸는데 진해까지 가는 승객들도 있었다. 남천 상류 천선동 유허비를 세워둔 수문당 당산나무를 지나 성주사 수원지 곁을 지났다.
아득한 불모산 정상부 송신탑으로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기미가 보였다. 절집 진입로는 아침 이른 시간인데 승용차가 줄을 지어 들어가 무슨 법회에 참석하려는 신도들인가 싶었다. 산문을 들어 돌층계를 따라 오르니 주지인 듯한 노승은 의관을 정제하고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나섰다. 나는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으고 연지 화분에 늦둥이로 피어난 마지막 연꽃을 한 송이 완상했다.
지장전에서 관음전으로 오르니 아까 앞서 보낸 승용차 탑승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법회에 참석한 신도가 아니었고 관음전 뒤에 제법 규모가 큰 토목공사의 석축을 쌓는 인부들이었다. 아직 한낮은 늦더위가 있는지라 기온이 서늘한 이른 시각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비공식 등산로를 따라 숲길로 들어 맑은 물이 흘러오는 개울가 바위에 배낭을 벗고 앉았다.
매미 울음소리는 그쳐도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시원함을 더해주었다. 간식으로 가져간 빵과 생수를 먹으면서 아침 이른 시간 절집 언저리 풍경을 담았던 사진을 지기들에게 보내면서 안부를 전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등산로가 아닌 산자락으로 들어 부엽토가 덮인 숲 바닥을 거닐었다. 지난 두 차례 활엽수림에서 영지버섯을 찾아낸 곳이라 이제 영지가 더 없을 텐데 미련은 남았다.
간간이 소나무가 섞인 활엽수가 주종인 숲을 누비면서 영지버섯에 대한 기대는 저버리지 않았으나 귀하신 몸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고작 숟가락 크기 귀엽게 생긴 영지를 두 개 찾아냈다. 산등선을 넘으니 골짜기에서는 물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려왔는데 거기는 성주사 수원지로 흘러드는 중심 계곡이었다. 도심에서 빤히 바라보인 불모산 정상 송신소에서 옴팍한 그 골짜기였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계곡에는 맑은 물이 넉넉하게 흘렀다. 배낭과 모자를 벗어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청정 계류에 신발을 벗고 발까지 담그고 싶었으나 그럴 여건이 못 되었다. 선계에서 한동안 머물다 깊숙한 계곡의 우거진 숲을 빠져나가니 ‘황토곰숲길’을 맨발로 걷는 이들이 보였다. 템플스테이 숙소를 벗어나 산문 밖으로 나갔다.
상수원수원지를 돌아 안민동 성주사역 근처로 갔더니 점심때라 상가 몇몇 식당은 자리가 붐볐다. 연락이 닿은 두 지기와 합류해 옛날식 짜장집에서 쟁반짜장을 시켜 점심을 함께 들었다. 식후에 가을이 내려앉는 안민고개로 올라 창원과 진해 시가지를 부감하고 찻집에서 커피 향을 맡았다. 귀로에 창원의 집과 이웃한 창원 민속박물관에서 창원에 계신 어르신 나무 사진전을 둘러봤다. 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