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순간에도
나 모르는 것 투성이일까
숨 쉬고 산 것
그게 다일까
낮은 파도이고 밤은 조약돌인 것을
간신히 알까
좋아하는 것보다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려고 했던 것
무엇이 되어야 한다며
머리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던 순간을
굳이 어리석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모르는 것투성이
그것이 얼마나 희망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첫눈 같은 신비였는지
너와 나 사이의 악기였는지를
떠날 때 그때 간신히
소스라치듯이 알기는 할까
-『한라일보/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2024.10.15. -
어쩜 그것을 안다는 것이 능력이라면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선의에 해당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신'(그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지만 내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찬란한 빛 속에 있다는 것이야말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실 안다는 경계를 밟는 순간에 모른다는 경계에 들어서는 것이므로 '깨우침'의 축제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많은 불행과 고통은 '안다는 것'으로부터 온다고도 할 수 있다.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지체 없는 반응이므로 그것이 아무리 선명해도 그것이 드러내지 않는 것까지 파악되지 않는다.
결국 앎이란 허무라는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배와 같다.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과 같이 간다. 그래서 아름답다. 환히 보이는 것도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그것이 들어설 자리는 매우 좁다. 그런 측면에서 시 또한 몰랐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읽어보자. 혹은 갓 문학에 접했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