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 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언니가 울퉁불퉁한 벽에 볼을 댄 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마법의 성이다. 오늘 수입이 없어 내일 아침거리를 걱정하는 아버지 곁에서 눈치가 보인다. 당연히, 알 수가 없다. 언니는 내가 보살펴야 하는 일곱 살배기 철부지나 다름없으니. 쿵, 덜컹덜컹. 빙산이라도 만난 듯 집이 덜컹거리자 깜짝 놀란 언니가 뚝 노래를 멈추고 옷장으로 달려간다.
“괴물이다, 괴물이다!”
“영주 괜찮냐?”
언니를 놀라게 한 그 괴물은 아마 노란 방지턱일 것이다. 운전석의 아버지가 가운데 유리창으로 언니를 확인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무서울 때의 언니는 괴물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손을 달달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운전을 계속 하신다. ‘중고 싸게 삽니다-물건 적재됨, 싸게 팝니다’라고 쓰여져 있는 깃발을 다시 달아 고정한다. 언니가 옷장에서 나온다. 어렸을 때 아빠가 선물한 바람개비 모형을 들고 있다. 꽃을 받았다며 기분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언제 또 판매 물건을 깨뜨릴지 모르는 일이다. 방 한쪽에 쌓여있는 중고 물건들을 언니는 자신의 하인들이라고 알고 있다. 언니를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나는 가끔 언니의 기사 노릇을 해 준다. 아버지는 왕인 셈이다.
끼이이익. 급정거에 언니가 앞쪽으로 주저앉는다. 밖에서 웅얼웅얼 사람 목소리가 들리더니 컨테이너 문이 쾅 열린다. ‘그 사람’들이다.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소리를 지르며 우리 집을 부수고 가는 사람들. 왕조차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
“오늘 수입이랑 우리 돈이랑 무슨 상관이야!”
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신다. 언니는 가만히 손을 달달 떨고만 있다. 이런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나는 그저 벽 한쪽으로 언니를 데려간 채 묵묵히 그들을 바라본다.
한 차례 일이 끝났다. 오늘도 역시나 저 괴물들의 승리다. 아버지, 이 성의 왕은 저 판매 물건들을 모두 없앨 때까지 괴물을 물리치지 못할 것 같다.
“희주는 안 다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괴물들이 사라지자 언니가 바람개비 꽃다발을 든다. 우리는 물건을 치운다. 언니만 빼고.
성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의 운전이다. 적막한 트럭 속 아버지가 라디오를 켠다. 마침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 나온다. 더 클래식이라는 가수의, 마법의 성. 우리의 집은 보통 평범한 집이 아니다.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 속에서……. 언니가 기분이 좋은지 바람개비를 손으로 돌린다. 꽃다발이 돌아간다며 방긋방긋 웃는다. 언니는 역시 영락없는 공주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다른 바람개비를 들고 언니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언니가 나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언니만의 미소다. 노래가 울리고 성이 움직인다. 우리 집은 평범한 집이 아니다. 아름다운 선율 속 왕이 움직이는, 마법의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