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탱) 조선 시대 4대 문장가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문집『월사집(月沙集)』 제18권에는
“등운(登雲)은 변산의 절 이름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구치용(具致用, 1590∼1666)의 문집『우교당유고(于郊堂遺稿)』제3권에는
‘야등운암사(夜登雲巖寺)’라는 시문이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與地誌)』에 의하면“월명암(月明庵)은 변산 월정봉(月精峯)에 있는데,
지세가 기이하고 밝아서 왕재(王在)·의상(義湘)·원효(元曉)·덕성(德成)과 함께 이름난 절이다.
그 곁에 또 등운암(登雲庵)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월명암 위쪽에 있었던 등운암의 폐사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지장탱)
등운암은 인도의 유마거사(維摩居士),중국의 방거사(龐居士)와 더불어
세계 불교 3대 거사로 알려진 부설거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의미가 있다.
(본방 한국거사불교의 효시 부설거사 이야기 참조)
대웅전 뒤편을 돌아 산왕전으로 올라가 본다.
산왕전(山王殿)
산신을 모신 전각인데 편액은 산왕전(山王殿)으로 되어 있다.
산신각은 산령각, 산왕각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건물은 殿이 아닌 閣을 쓰는데 등운암의 편액은 산왕전으로 되어 있다.
법당 안에는 여 산신이 봉안되어 있다.
남 산신은 대웅전에 모셨기에 산왕전에는 따로 여 산신을 봉안한 것일까?
산신탱을 보면 호랑이 등에 앉아 승천하는 형성인데
우측 하단에 갓을 쓴 선비가 보이는 것이 일반 산신탱과는 조금 특이하다.
등운암의 이 여 산신은 부설거사의 부인 묘화(妙華) 내지
그의 딸 월명(月明)이 도를 이루고 승천한 것을
묵시적으로상징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흐린 날씨라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신원사의 암자 순례 중
마지막 암자인 보광원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등운암에서 보광원으로 하산하는 길은 평범한 육산으로
내려가는 길 전체가 크게 힘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날이 흐려 전망은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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