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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기종(理主氣從)
이(理)가 주가 되고, 기(氣)가 따른다는 유교의 성리학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理와 氣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 위에 있고, 동시에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理 : 다스릴 이(王/7)
主 : 주인 주(丶/4)
氣 : 기운 기(气/6)
從 : 좇을 종(彳/8)
'이주(理主)'는 이(理)가 주가 되고, '기종(氣從)'은 기(氣)가 따른다는 유교(儒敎)의 '성리학(性理學)'에서 유래했다. 유교는 사서(四書; 논어, 맹자, 중용, 대학)와 오경(五經;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을 중심한 공자(孔子)의 교학(敎學)이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비롯한 도덕의 완성기준과 인(仁)을 최고의 이념으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룩하는 함양의식을 본지로 삼는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구려 372년 소수림왕 2년에 태학을 세우고, 백제는 285년 고이왕 52년 때 왕인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신라는 682년 신문왕 2년에 국학을 설립한 데서부터다.
삼국시대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고려 말 안향(安珦) 등이 성리학(性理學)을 전하고 조선에 정몽주와 정도전 등이 배출되었다. 조선의 숭유정책(崇儒政策)이 국시(國是)가 되면서 유학은 치국의 이념이 되었다.
이황(李滉)과 이이(李珥)가 유학사상의 대표가 되면서 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이뤄졌다. 이 붕당이 씨앗이 되어 동인에서는 남인과 북인, 남인에서 청남과 탁남, 북인에서는 소북과 대북, 대북에서는 골북과 육북과 중북과 피북, 소북은 청서북과 탁서북, 서인에서는 훈서와 청서, 훈서에서는 신서와 공서, 노론에서는 벽파와 시파, 소론에서는 급소와 완소 등으로 첨예화 되었다.
사람은 상호 교류를 통해 교감하고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념과 사상이 다르면 평범한 상식이 막혀 이념을 따르게 된다.
'성리학'은 주희(朱熹)의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 태극에서 음양(陰陽) 이기(理氣)가 생(生)하고, 음양에서 오행(五行) 오기(五氣)가 교감(交感) 결합하여 만물이 생성되며, 태극은 만물에 내재(內在)한다.
따라서 만물은 기(氣)의 집합체이며 기일원론(氣一元論), 태극은 형이상(形而上)의 이(理)고, 음양오행은 형이하(形而下)의 기(器; 氣)로 만물은 기를 받아서 형(形)을 이루고, 이(理)는 만물에 내재(內在)한다.
만물의 근원에 대해서는 이일원론(理一元論), 만물에 대해서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주자 성리학의 기본설이다. 미묘한 인간의 마음(心)과 성(性)과 정(情)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의해서 해명되며, 인간 본성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감성의 발현이다.
이황은 '이'와 '기'를 엄격히 구별하여 이우위성(理優位性)을 견지하고 사단은 이지발(理之發), 칠정은 기지발(氣之發)이라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견지했다.
이에 이이는 성리학의 기본명제인 '이'와 '기'는 하나이면서 둘이요(一而二), 둘이면서 하나(二而一)라는 이기지묘(理氣之妙)로 절충했다. 이처럼 양립된 이기(理氣)에 대하여 氣를 보면 理가 氣의 주(主)가 되고, 氣로부터 理를 보면 氣가 理의 主가 된다. 양설은 동(動)하고 정(靜)하는 것이 원래 떨어질 수 없는 형이상과 형이하로 이주기종(理主氣從)의 묘합(妙合)이다.
인간의 사고는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비어 있음(虛)과 차 있음(滿)을 가리지 않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 한국의 성리학은 치열한 자기 수신으로 중국의 성리학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개척하여 중국은 물론 일본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 이기론(理氣論)
정의
이(理)와 기(氣),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우주와 인간의 존재 구조와 그 생성 근원을 유기적으로 설명하는 성리학 이론이다.
개설
신유학은 중국 남송대의 성리학자 주희(朱熹)에 의해 완성되었고, 명·청대, 그리고 조선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상체계이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이(理)와 기(氣)로써 구성되었으며, 理와 氣에 의해 생성 변화된다고 말한다. 즉, 유형적 존재는 모두 무형의 원리 또는 원인에 의해 생성, 변화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理와 氣에 의한 존재론적 규정과 생성론적 설명은 두 가지 원칙 위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理와 氣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 위에 있고, 동시에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기론은 적어도 理 없는 氣나, 氣 없는 理만을 전제할 수 없으면서도, 理는 理이고, 氣는 어디까지나 氣라고 규정한다.
이기론의 전개는 사실상 理와 氣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이해 방법에서 그 내용과 전개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理와 氣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문제는 理와 氣 개념에 대한 이해와 규정을 선행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理와 氣 개념에 대한 특성과 의미를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理와 氣의 개념
(1) 理의 의미 특성
理는 모든 사물의 존재와 생성과 관련된 법칙과 원리 또는 이치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이러한 원리 또는 이치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理의 이러한 법칙성에 근거해 理는 모든 사물의 생성 현상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모든 사물은 현상적 개체로 생성될 때 그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 또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사물 생성의 원인과 이유를 소이연(所以然),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라고 부른다. 소이연이란 '그렇게 되는 까닭'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모든 사물은 생성 원인과 이유에 의해 생성된다고 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그런데 이는 사물 생성의 필연적인 원인을 나타낼 뿐 아니라, 사물 존재에 있어서 한 사물이 그 사물로 형성되도록 하는 기준 또는 표준을 뜻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사물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기준 또는 표준에 해당하는 말을 이른바 소당연(所當然),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고 부른다.
소당연이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란 의미다. 예를 들면 '무릇 배가 마땅히 물 위로 가야 하고, 수레가 마땅히 육지로 가야 하는 것과 같은, 수레가 수레 구실을 하게 하고 배가 배 구실을 하게끔 하는' 당위 원리를 말한다.
한 사물이 따라야 할 이러한 표준으로써의 당위 원리는 사물 생성의 필연적 근거로서의 소이연과 구별하여 사용될 때도 있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원리(主宰)'라는 근원적 의미에서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理)는 이러한 사물 생성의 원인 또는 존재 이유와 같은 성격으로 인해 "소리와 냄새도 없고, 부피도 없고, 겉과 속도 없고, 정의도 없고, 헤아림도 없고, 조작도 없다(無聲臭 無方體 無內外 無情意 無計度 無造作)"고 규정한다. 이러한 특성은 무형과 무위(無爲)로써, 직접 감각할 수 없는 성질을 말한 것이며, 이(理)의 이러한 초경험적 특성을 형이상자(形而上者)라 부른다.
형이상자란 구체적, 경험적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생사(生死), 궁진(窮盡)도 없는 특성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사, 궁진이 없는 바로 이 성질 때문에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무(無)로 돌릴 수 없는 존재로써 오히려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理의 특성에 근거하여 理는 실재(實在)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理의 실재성은 氣의 가변적 현상성에 비해 선험적 불변적 존재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氣보다 귀한 것일 뿐 아니라 우월한 것이고, 선(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理 개념의 의미와 특성은 유학 경전에 나오는 천명(天命), 도(道), 태극(太極), 성(性), 중(中), 선(善) 등의 형이상학적 개념과 혼용해 사용될 때, 더욱 넓은 의미 영역을 갖는다. 그러나 理는 氣의 개념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는 관계 개념이라는 점에서 氣와 일정한 관련 속에서만 해명될 수 있다.
(2) 氣의 의미 특성
기는 모든 구체적 사물의 존재와 생성과 관련된 질료(質料), 형질(形質)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모든 사물을 이루는데 있어서 필요한 현상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이루는 이러한 현상적 요소를 형이하자(形而下者)라고 말하는데, 이는 직접 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성질을 뜻한다. 사물 존재의 구체적 특성은 음양(陰陽), 오행(五行; 水火木金土)이라 하고, 구체적 성질로는 경중(輕重), 청탁(淸濁), 수박(粹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氣는 또한 사물의 구체적 생성 현상으로서 '모이며, 흩어지며, 굽히며, 펴는(聚散屈伸)'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그 낢과 그 뜀(其飛其躍)'을 뜻하기도 한다.
氣의 이러한 취산, 굴신하는 동작 현상은 또한 생멸(生滅), 궁진의 성질도 가지고 있는데, 氣의 이러한 성격은 전문용어로 유위(有爲), 유욕(有欲)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氣의 유위, 유욕의 성질로 인해 악(惡)의 현상도 있게 되는데, 악의 현상은 氣 때문에 理가 소당연이라는 마땅히 드러내야 할 행위(역할) 기준에 맞게 드러낼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이러한 점에서 氣 자체는 비록 악하지 않지만, 악의 현상은 氣 때문에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氣는 理에 비해 천(賤)하다고 규정한다.
氣의 의미 특성은 유학 경전에서 사용되는 태극, 음양, 오행, 심성정(心性情), 사단칠정(四端七情) 등의 개념과 혼용해 논의될 때 더욱 넓은 의미 영역을 갖는다. 그러나 氣는 理와 상호 규정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理 개념과의 관계 속에서 해명될 수 있다.
理와 氣의 관계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理의 성격은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원리로써, 무형, 무위의 특성을 가지며, 氣의 성격은 모든 사물의 현상적 요소로서, 유형, 유위의 특성을 가진다.
또한, 理의 무형, 무위의 특성에 근거해 이는 생사, 궁진 없는 불변의 존재로 규정되며, 氣는 유형, 유위의 특성에 근거해 가변적 생멸, 궁진성을 가진 존재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기론에 있어서 理와 氣의 특성은 각기 개개로 독립해 존재할 수 있는 구체적 전제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理와 氣를 별개의 존재로 논의한다 해도 결코 실재 사실적으로 떼어 놓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理와 氣의 상호 역할 관계를 구별한 데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理와 氣의 상호 역할 관계를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관계라고 하고, 또는 이이일(二而一), 일이이(一而二)의 관계라고도 말한다.
理와 氣가 서로 떠나 있지 않다는 명제는 현상적 사물의 특성을 두고 한 말이다. 현상적 사물의 존재란 실상 氣의 존재이며, 氣가 있어야 理는 사실상의 실재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기불상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사물상으로 보면 이 두 가지는 혼륜해 있어 나누어 각각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없다(在物上看 則二物渾淪 不可分開 各在一處)."
理의 존재는 현상적인 氣에 의해 그 존재성이 구현되는 반면, 氣의 존재는 그 원인과 이유로서 理가 있어야 바람직한 존재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理와 氣 관계는 사물상의 관점에서 살펴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理와 氣란 본래 시간적, 공간적 이합(離合)이 없는 것이지만, 理는 氣를 주재(主宰)하는 존재요, 氣의 소이연자(所以然者)이며, 氣의 근저(根柢)라는 점에서 理가 氣보다 선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理가 氣보다 먼저 존재(理先氣後)한다는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이치상에서 보면 비록 사물이 아직 있지 않아도 사물의 이치는 이미 있다. 그러나 역시 다만 이가 있을 뿐, 아직 이 사물은 실제로 있지는 않다(在理上看 則雖未有物而已有物之理. 然亦但有理 而未嘗實有是物)."
모든 사물이 현상 세계에 아직 나타나 있지 않았을 때도 사물이 그렇게 된 원인이나 이유는 선행한다고 설정할 때, 이러한 시각은 사실상 理와 氣를 이미 분리해 보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때의 理와 氣 관계를 유행(流行)상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행상의 관점은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이일분수(理一分殊)', '통체태극 각구태극(統體太極 各具太極)'이란 명제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술한 '이기불상잡', '이선기후', '이유동정(理有動靜)', '이생기(理生氣)'와 동일한 관점에서 진술된 명제라 할 수 있다.
전술한 理와 氣 개념에서 사물 생성의 원인으로서의 理나, 사물 존재의 생멸성을 가지는 氣의 규정은 이미 이러한 유행론적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물 생성에 대한 유행론적 해명은 '주역'의 '역유태극 시생양의(易有太極 是生兩儀)'라든지, 주돈이(周惇頤)의 '태극도설'의 '태극동이생양… 정이생음(太極動而生陽… 靜而生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易)에 태극이 있다'고 할 때, 易은 변화하는 현상적 요소를 의미하며, 태극은 변화하지 않는 요소를 지시한다. 변화 요소를 氣, 불변 요소를 理라고 할 때, 변화하는 氣와 불변하는 理는 상호 공존하고 있음을 理 명제는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것(太極)이 양의(兩儀)를 낳는다'거나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는다'고 할 때, '낳는', '움직이는' 주체가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형이상적인 理가 어떻게 동할 수 있으며, 이것(태극)이 어떻게 양의를 낳을 수 있는가 하는 논리적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理가 존재 생성의 원인과 이유로서의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理의 생(生)과 동(動)의 문제는 논리상의 변별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당위 근거를 제시한 논의임을 알 수 있다.
理와 氣 관계를 이렇게 이미 생성된 사물의 존재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사물의 존재 이전부터 이후까지를 일관하는 생성의 차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理와 氣 관계의 유행론적 설명은 더욱 복잡한 理와 氣의 의미 특성을 전제한다. 존재 현상 차원의 생성 과정을 시간적으로 추리해 사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생성 근원자에 소급하고, 반대로 사물 생성의 근원자로부터 현상적 개체에 이르고 미래에 미치는 과정을 유행론적으로 설명할 때, 이기론의 전개는 다양한 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기론 체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심(心)과 성정(性情)에 확대되고 그 발현현상으로서 발(發)의 개념에 확대 적용될 때 이기론적 체계화는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논리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기론의 전개는 이상과 같은 범위 안에서 논의되고 전개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기론의 전개
이기론은 중국 남송대 이후 명·청대 그리고 조선조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조선조를 중심으로 전개유형을 보면 16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탐구되었다.
그 이론 탐구의 중심 인물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였다. 그들이 전개한 이기론의 특징은 우주의 존재와 생성에 관한 문제보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심성정의 문제를 이기론적으로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시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에 앞서 이언적(李彦迪)의 '태극설'이나 서경덕(徐敬德)의 '일기장존설(一氣長存說)', 더 소급해서 정도전(鄭道傳)의 '심기리편(心氣理篇)', 권근(權近)의 '입학도설(入學圖說)'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 체계는 질과 양의 면에서나, 사상사적 의미에서 이황과 이이의 이기론 체계에 비교될 수 없다. 특히,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이황의 이기론적 탐구는 사상사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황의 탐구는 비록 심성론에 한정된 부분적 연구에 불과하지만, 조선조 성리학으로 하여금 당시 중국의 성리학 수준을 능가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왔다. 또한 사단칠정의 이기론적 탐구를 계기로 비로소 조선조 성리학계에 문제 중심의 학파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른바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또는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로 불리는 학파의 형성 역시 이황과 이이를 계기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국 성리학의 전개 방향이 심성론에 대한 이들의 이기론적 해명에서 문제의 소재를 발견하고 그 이론 전개의 단서를 찾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상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선조 성리학은 문제 중심의 학파적 성격을 띠고, 독자적 명제를 제시하고 새로운 이기론을 전개한 것이라 하겠다.
주리적 이기관
주리적 이기관(主理的 理氣觀)의 대표적 이론은 이황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현일(李玄逸)에 의해 계승되고, 이진상(李震相)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황의 이기론은 이기론적 체계를 자연 현상의 해명에 그치지 않고, 당위론적 관점에서 인간 도덕 실현의 준거를 해명하려는 데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이해 태도는 전술한 소이연과 소당연을 동일시하는 이기론의 기본 체계를 그대로 계승한 이론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이황의 가치 지향 의식, 즉 '인간의 도덕 실현 능력'을 확실히 밝히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황은 우주 생성론적 이기관에 근거하여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도덕 실현의 당위 문제를 유기적으로 접근시키고 있다. "천하에 이(理) 없는 기(氣) 없고 기 없는 이 없다. 사단(四端)은 이가 발(發)해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七情)은 기가 발해 이가 타는 것이다. 따라서 기가 따름이 없으면 발현할 수 없고, 기에 이가 탐이 없으면 이욕(利欲)에 빠지므로 금수(禽獸)가 된다. 이것은 바꾸지 못할 정한 이치이다."
(陶山全書, 卷51)
이것은 기대승(奇大升)에게 보낸 글로써, 사단과 칠정의 발현 문제를 이기론적으로 어떻게 해명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여기에서 사단이란 '맹자' 공손추(公孫丑)편에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서인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네 가지를 뜻한다.
그리고 칠정이란 '예기'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일곱 가지 정서를 가리킨다. 성리학 체계에서 사단과 칠정을 원칙적으로 理와 氣에 분속시켜 인식하는 것은 일반적 견해였다. 이러한 분속 방법에서 볼 때 이황의 수정, 보완은 전적으로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대승은 사단도 칠정 외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氣를 떠난 理가 따로 설정될 수 없다는 원칙에서 볼 때, 理와 氣를 양립시켜 이발(理發), 기발(氣發)을 표현하면 큰 잘못이 되며, 理와 氣 관계의 기본 원칙인 理 무위, 氣 유위의 논리에도 큰 모순을 낳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이황은 이에 대해 理와 氣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긍정하며, 사단과 칠정이 다같이 하나의 정(情)이라는 점을 수긍할 수 있지만, 性에도 이미 순선무악(純善無惡)한 본연지성(本然之性)과 선악 미정의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구별하는 것과 같이, 情이라 하더라도 理에 관계하는 것과 氣에 관계하는 것을 엄격히 구분해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반증한다.
그리하여 '사단 이발이기수지(四端 理發而氣隨之)'와 '칠정 기발이이승지(七情 氣發而理乘之)'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황의 이 명제는 본래 이원적 혐의를 완화하고자 고심한 최선의 명제였으나, 후세에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라는 특정 명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기호발설'은 종래 성리학적 지평에서 미비점으로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호발설'의 중요한 의의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도덕 준거로서 理의 자발(自發)을 주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의 금수화를 방지하고, 타고난 선한 본성을 실현하려는 방법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황이 전개한 '이기호발설'은 이현일의 이기론에 계승되었다. 이현일의 이기론은 이이의 '이기호발설' 부정에 대한 비판이라는 반 명제적 성격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현일은 먼저 기발만을 주장하는 주기론자들은 만화(萬化)의 근원인 이를 허무공적(虛無空寂)에 떨어뜨렸다고 깊이 우려하고 이발설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현일의 이기론은 理는 무위의 정태적(靜態的)인 존재가 아니며, 능동적 자발적 실재자로서 理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현일이 전개한 이발론은 이황으로부터 주장되었던 인간의 도덕적 준거를 확인하여 행위 실현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의 능동성에 대한 탐구를 더욱 투철하게 전개시킨 이론은 이진상의 이기론에서 볼 수 있다. 이진상은 심즉리(心卽理)란 명제를 제시하고 이 개념을 새롭게 규정하였다. 이진상은 性과 情을 모두 하나의 理라 규정하고 성정의 발현 관계 역시 하나의 理로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理로서의 성정은 心에 의해 통솔된다는 점에서 心은 곧 理라고 파악한 것이다. '심즉리'는 바로 이러한 논리 귀결에서 나온 명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진상의 '심즉리'의 명제는 성즉리(性卽理)라는 성리학의 기본 명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며, 중국 명대 왕수인(王守仁)의 명제와 크게 혼란을 야기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진상은 性의 발현 현상에 근거해 理발을 주장하고 氣발을 철저하게 부정함으로써, 이황의 이기호발설에서 미흡하게 강조되었던 理의 능동성, 자동성에 강한 의미 부여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理 우위의 이기론 전개는 이황의 주리적 이기관을 계승시킨 학파적 전통을 수립하게 하였다.
주기적 이기관
주기적 이기관(主氣的 理氣觀)의 대표적 이론은 이이(李珥)에서 비롯되었으며, 송시열(宋時烈)에 의해 계승되고, 한원진(韓元震)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이의 이기론적 관점은 선대의 서경덕이나 이황의 학설에 비해 특징적인 전개 양상을 나타낸다. 理와 氣를 논하는 문제 의식은 동일하지만, 인식의 관점은 크게 달랐다.
이이는 송대 성리학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으며, 서경덕과 이황의 학설을 반명제적으로, 또는 선별적으로 수용, 전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이는 분명히 이기론에 퇴계학설과 그 관점을 달리한다.
이이는 주희(朱熹)나 이황과 다름없이 이 우주현상은 理와 氣로 구성되어 있으며, 理와 氣에 의해 생성, 변화한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이이는 이른바 理와 氣를 두 물건이나 두 물체처럼 판이하게 이원적(二元的)으로 규정하려는 듯한 이황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이는 理와 氣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理와 氣는 본래 합해 있는 것이므로 비로소 합함이란 있지 아니하다. 理와 氣를 둘로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도(道)를 아는 자가 아니다."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
또한, 이이는 사물 생성의 현상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이론 전개를 보여 주고 있다. 동향의 학자 성혼(成渾)에게 보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理와 氣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여 일물인 것 같으나, 그 구별되는 바는 理는 무형이며, 氣는 유형이다. 理는 무위이며, 氣는 유위이다. 무형무위하여 유형유위의 주재가 된 것은 理요, 유형유위하여 무형무위의 기재자(器材者)가 된 것은 氣다. 理는 무형한 것이며, 氣는 유형한 것이다. 그러므로 理는 통하고, 氣는 국한된다. 理는 무위하고, 氣는 유위하다. 고로 氣는 발동하고 理는 승재(乘宰)한다."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
이이는 理는 무형무위한 특성에 의해 불변의 보편자의 성격을 가지는 반면, 氣는 유형유위한 특성으로 가변적 차별상을 가진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무형과 유형의 외적 차이는 理의 관통성과 氣의 국한성을 설명하는 기준이며, 또한 무위와 유위의 작위성은 기발이승(氣發理乘)을 해명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이가 제시한 '이통기국(理通氣局)'이라는 독자적 명제는 후기 주기적 이기론 학파의 전개 방향을 제시한 기본 명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이는 이와 같은 이기관에 기초하여 인간 내면의 심성 문제를 같은 논리로 이해하고 해명한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理와 氣로 분속, 적용하는 이황과 견해를 비판한다. 즉 理가 발한다는 전제 아래서 "사단은 理가 발해 氣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氣가 발해 理가 탄다"고 주장한 이황의 명제에 대해, 이이는 理가 발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부인하는 입장에서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를 반대한다.
이이는 기만이 능동성과 자발성을 가진다는 理와 氣 관계의 기본원칙에서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理가 발하는 사단이란 칠정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氣가 발한 칠정 중에서 특히 선한 부분을 택하여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이는 강경한 입장으로, 만약 주자가 理와 氣가 양립하여 서로 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주자도 잘못이 있다고 덧붙여 말한다. "대저 발하는 것은 氣이며 발하는 까닭은 理이니, 氣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理가 아니면 또한 발할 까닭이 없다. (…) 성인이 다시 나온다 하여도 이 말은 고칠 수 없다"고 말하여 굳은 확신까지 보였다.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
이이의 이러한 독자적 이기론을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조 후기에 나타난 인물성(人物性)에 대한 동이(同異) 문제, 인간 내면의 미발심체(未發心體)에 대한 선악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준거가 되었다.
그런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은 그의 독자적 논리와 체계에 의해 정립된 명제이지만, 이황의 '이기호발설' 명제 가운데에서 그 일부인 '기발설'만을 선별해 계승 전개한 사상사적 의미를 도외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이의 이기론의 전개는 이황의 이기론과 대립된다고 하기보다는 반명제적 계승이라는 지평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철저하게 전개한 이론은 송시열의 이기론에서 볼 수 있다. 송시열은 이황의 '이발설'을 부정하고 이이의 심성론에 대한 이기론적 해석을 더욱 명료히 하였다.
송시열은 理와 氣의 동정 선후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계승하면서도 발의 문제에 있어서는 무위와 무형으로 규정되는 이 개념에 입각해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이황의 '이발설'을 비판한다. "퇴계의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라는 이 일구는 큰 착오다. 理는 정의 운용 조작이 없는 물이다. 理는 氣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氣는 능히 운용 작위를 하며, 理는 이에 부여된다."
송시열은 이황의 '이발설'이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크게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주자서(朱子書) 전체를 고구해 보니 기록자의 잘못이거나, 일시적인 발언인 것 같으며, 주자의 정론(定論)이 아니라고까지 근거를 밝히고 있다.
송시열은 또한 이황의 "氣의 발은 칠정이 바로 이것이며, 理의 발은 사단이 바로 이것인데 어찌 둘이 있어서 그런 것이랴(氣之發 七情是也 理之發 四端是也 安有二致而然耶)"고 한 진술을 들어, 기발과 이발을 전제하면서 둘이 아니라고 주장함은 논리적으로 큰 오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송시열은 이와 같은 '기발설'에 근거해 '심즉기(心卽氣)'라는 새로운 명제를 제시하였다. 그는 "동하는 것은 心이며, 능히 동하게 하는 소이의 물은 성이다(動者是心 所以能動之物是性)"고 性과 心을 대비시키면서, 性은 발하지 못하고 발하는 것은 心이므로 心의 능동성에 근거해 '심시기(心是氣)'라는 명제를 도출한 것이다.
그런데 '심즉기'라는 명제는 명료한 개념적 규정의 시도이지만, 다시 혼동을 가져올 소지를 후기에 남겼다.
주기적 이기관이 이이와 송시열로 계승된 뒤, 이를 보다 철저하게 심화된 이론으로 정립한 것은 한원진이다. 한원진은 '이통기국설'을 근거로 이기와 성정에 대한 개념을 재검토하고 그 논리적 타당성에 의한 이론의 체계화를 모색하였다.
한원진은 기본적으로 性을 간단히 理로 간주하지 않는다. 性을 일정한 氣와 결부된 사물의 개별성으로 한정시켜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理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제한시켜 사용하고, 性은 인간 내지 인간의 마음이라는 구체적 현상계에 국한시켜 사용함으로써 개념의 혼란과 모순을 막으려고 시도한다.
한원진은 性은 기질이 형성된 이후 붙여진 개념이며, 理가 氣 중에 내재한 이후에 성립된 개념이라는 전제에서 사람과 사물의 성이 한결 같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사물 현상계에서 기질을 고려하지 않은 理의 보편성을 전제하는 어떠한 이론도 성립하기 어려움을 '이통기국설'에 기초해 설명한다. "율곡이 기국을 논하여 말하기를 '사람의 성이 사물의 성이 아님은 氣의 국 때문이다'고 하였고, 또 '이의 만수(萬殊)는 氣의 국 때문이다'고 하였으며, '만물은 곧 성의 전덕을 품수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런 말은 다만 기만을 논한 것이다."
한원진의 이 발언은 이간(李柬)과 함께 '인물성'에 대한 문제를 놓고 논의한 내용의 일부지만, 존재 차원에서 구체적 인간과 현실 세계에 대한 이기론적 해명을 시도한 것으로써 주기적 이기관의 학파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원적 이기관
일원적 이기관(一元的 理氣觀)을 전개한 대표적 인물은 기정진(奇正鎭)과 임성주(任聖周)이다. 기정진은 중심 명제로서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새롭게 제시하고, 임성주는 기일분수설(氣一分殊說)로서 이론적 전개를 시도하였다.
이 두 사람이 공통으로 제기하고 있는 일원적 이기론의 과제는 인성과 물성 동이론(人物性同異論)을 해명하는 데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인물성동이론'의 논리적 기초는 '이통기국설'에서 그 기초와 단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원적 이기론은 주기적 이기론을 계승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일분수설'과 '기일분수설'은 '이통기국설'에서 미비점으로 나타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일과 분수의 논리적 관계를 재분석한 검토라고 할 수 있다.
기정진은 '이일분수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인물성동이론'을 해명하고자 한다. 기정진은 한원진과 이간 사이에 거론된 인송과 물성에 대한 동이(同異) 문제를 분석한 다음, 양인의 논술은 모두 한편에 치우친 점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정진은 현상과 본체를 설명할 때 본체로서의 이일(理一)은 초월적 존재로 제한하고, 현상으로서의 분수(分殊)는 형기 속에 떨어진 뒤에 성립하는 존재로 설명함으로써, 본체와 현상이 사실상 매개점을 갖지 못하고 서로 떠나 있는 결과가 된 것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기정진은 이일지리(理一之理)와 분수지리(分殊之理)가 대대관계(對待關係)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기초로 해결점을 찾고자 하였다. 대대관계란 하나의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 상대방의 개념을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내포 관계를 뜻한다.
기정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들은 바로는 분(分)이란 이일(理一) 가운데의 세조리(細條理)이니, 理와 分은 층절(層折)이 있을 수 없다. (…) 이일을 말할 때에 분이 이미 함유된 것을 알 수 있으며, 분수를 말할 때에 이미 일(一)이 자재함을 볼 수 있다."
(蘆沙集, 卷12)
이일과 분수가 이러한 관계에 있다면 이일은 개념 그 자체에 분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으며 분수에도 이일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정진은 종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에 근거해 인·물성의 문제를 해명하였기 때문에 논의가 더욱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하면서, '이일분수설'을 새롭게 해석하여 이의 주재성을 더욱 부각한다.
즉, 그는 "이의 존귀함은 상대가 없는 것이다", "기는 역시 이 가운데의 일이요, 이가 유행하는 데 있어서의 손과 발이다(蘆沙集, 卷12)"고 주장하며, 기의 일체의 작용성을 이에 부여하는 이일원적 체계를 전개하였다.
기정진의 이 일원론은 후에 유리론(唯理論)이라고 불리는데 '이통기국설'을 반명제적으로 계승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임성주가 전개한 이기론의 과제는 기일분수설에 근거하여 인·물성 동론의 이론적 결함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사람들은 매양 이일분수를 이동기이로 인식해 이지일(理之一) 기지일(氣之一)에 즉해 드러나는 것임을 도무지 모른다. 진실로 '기지일'이 아니면 무엇으로부터 이가 반드시 일(一)임을 알겠는가, '이일분수'는 주리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니, 분자도 당연히 이에 속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주기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기일분수'라 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鹿門集, 卷19)
임성주는 이렇게 '인물성동이론'에 있어서 낙론(洛論)은 성즉리(性卽理)에만 치우쳐 모든 현상을 일원지리(一原之理)의 소생으로 파악, 동론(同論)을 주장한 것이라 지적하면서, 사실상 '성즉리'와 '성즉기'는 다를 것이 없으며, 또한 '이통기국설'은 이기를 분리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이통기국설'을 근거로 우주와 사물 세계를 해명하는 방법은 이원적 분화를 초래하므로 '기일분수'의 기일원관(氣一元觀)에 기초하여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통기국을 논함에 있어 오로지 기를 '만수'에 돌리며, 또 담일청허지기(湛一淸虛之氣)를 다유부재(多有不在)라 하였다. 그러니 그 끝을 궁구해 보면 이기를 이물(異物)로 여기는 의혹을 면치 못한다."
(鹿門集, 권14)
임성주는 더욱 기를 강조해 이란 기의 작용 법칙으로서 우주의 본질인 기의 속성에 불과하며, 이 자체가 독자적 능동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기와 상대 또는 대등한 개념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임성주의 이론 배경은 서경덕의 '태허설(太虛說) 일기장존설(一氣長存說)'에서 문제의 발단을 제기하고 있으며, 자(自), 연(然)의 개념 분석도 서경덕의 '능자이(能自爾), 기자이(機自爾)'에서부터 유추하여 전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임성주의 '기일분수설'은 후대에 유기론(唯氣論)이라고 하며, '이통기국설'에서 미비점으로 나타난 문제를 재체계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理와 氣론은 조선조 성리학에서 수용, 전개된 명제에 한정하여 소개하였지만, 사상사학의 관점에서 볼 때 理와 氣 개념의 출현과 적용 범위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주역'의 형이상과 형이하의 명제로부터, 태극과 음양과 오행, '맹자'의 이른바 이의(理義)와 호연지기(浩然之氣),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천리, 장재(張載)의 태허지기(太虛之氣), 그리고 주희에 이르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理와 氣 문제는 황간(黃榦), 진순(陳淳), 정복심(程復心) 등에서 理와 氣 분리의 경향이 나타나고, 육구연(陸九淵)과 왕수인(王守仁)의 심즉리설(心卽理說), 나흠순(羅欽順)의 성즉기설(性卽氣說)에서 理와 氣 합일의 새로운 명제 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기론은 정도전과 권근에 이르러 학적 대상으로 되었고, 서경덕과 이언적에서 학문적 탐구를 보였으며, 이황과 이이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황의 이발, 이이의 기발설의 독자적 명제를 비롯해, 주리와 주기적 특징은 후기 이기론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주리와 주기의 대립적 전개는 이현일과 이진상을 고비로 심즉리로써 주리설의 철저화와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기정진에 이르러 유리론적 성격으로 전개되었다. 주기설은 송시열과 한원진을 정점으로 심즉기(心卽氣)로써 범주명제가 확립되고, 임성주에 의해 유기론의 성격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론의 학파적 전개 과정에서 우리는 남송 성리학의 이론 체계에서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였다고는 볼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조의 성리학자들은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사고와 논리를 통해 성리학 체계에서 일찍이 제기되었어야 할 개념적 정의와 논리적 체계화를 시도하였다는 점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理와 氣 개념의 기본 의미 특성에서 理는 소이연과 소당연으로서의 원리와 도리를 가리키는 반면, 氣는 모든 사물 현상과 존재의 바탕이 되는 질료를 의미함을 보았다. 이때 理의 의미가 당위적 준거를 나타내는 도리의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理와 氣는 사실 현상과 가치 현상으로 구분하여 살필 수 있다.
그런데 특히 가치의 측면으로 볼 때 氣는 그 자체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가치 중립적인 성질을 갖는다. 그리고 理는 소당연이라는 의미에서 선의 원리 혹은 실천의 도리를 뜻하며, 이러한 理를 실재시할 때, 이 자체는 순수선이라는 이론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理에 치중하는 주리적 관점은 氣에 치중하는 주기적 관점보다 가치 의식이 높으며, 규범적 요청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주리론자들이 이존기비(理尊氣卑), 이주기복(理主氣僕), 이명기수(理命氣受) 등을 주장하는 이유는 사실의 측면보다는 理의 이러한 당위적 요청성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氣에 치중하는 주기적 관점은 理에 치중하는 주리적 관점보다 경험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사실의 객관적 기술을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론에 있어서의 주리설과 주기설에 대한 이해는 이와 같은 경향성으로의 분류나, 논리적, 철학적 분석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 그 사회의 구체적인 조건과 관련해 검토될 때, 이기론에 내포된 공통된 가정과 전제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철학자가 있다. 바로 천원과 오천원권 속에 있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이다. 화폐 속 인물이라는 점 외에도 이황과 이이는 조선시대 중반에 활동했다는 점과 성리학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이들의 철학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일단 이황과 이이의 사상을 알기 전에 이(理)와 기(氣)의 개념부터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理'는 변하지 않는 근본 원리를 뜻하고 '氣'는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를 뜻한다. 물이 들어있는 그릇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때 물 자체는 理에 해당하고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은 氣에 해당한다. 물이 어느 그릇에 담아도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물질이라면 그릇은 그 모양과 넓이에 따라 달라지는 피상적인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이황과 이이 사상의 차이는 理와 氣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황은 "理는 귀하고 氣는 천하다"는 이귀기천(理貴氣賤) 사상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도덕적 원리와 인식에 뜻을 두고 본성을 중시했다.
이황이 정의하는 理에는 양반, 상민, 천민과 같은 계급도 포함됐다. 그는 신분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신분제를 옹호하는 정책을 폈다. 특히 "理가 발하면 氣가 이를 따른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은 理를 우선시하는 이황의 핵심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이이는 "理는 통하고 氣는 국한된다"는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을 펼치며 理와 氣가 서로 의존, 보완 관계를 유지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황과 달리 氣를 중시해 사물의 본성인 理가 氣를 통해 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이는 밖으로 보이는 인간의 행동이 氣에 해당한다고 생각했고, 이 행동이 이념과 생각을 발현한다고 주장했다. 이이의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理에 해당하는 신분도 氣로 바꿀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이론은 후에 신분제 철폐를 주장하는 학파에게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처럼 이이의 사상은 이황의 사상에 비해 유연하고 현실적인 면이 많았다.
이황과 이이가 살던 시대는 조선의 전, 후기를 나누는 격변의 시대였다. 이렇기에 변화하는 사회를 안정시킬 지도적 사상이 필요했고 이황과 이이는 이러한 사상의 두 축을 담당했다.
후에 이황의 사상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위정척사운동으로 이어지며, 이이의 사상은 실학을 넘어 개화주의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황과 이이는 우리나라 사상의 흐름에 중요한 두 갈래를 제공했다.
◼ 理와 氣의 논쟁
理와 氣의 논쟁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주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다.
주리론과 주기론이 있는데,
주리론(主理論)은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이(理)로 보는 이황(李滉)의 학설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철학을 가리킨다. 즉 이(理)와 기(氣)가 어디까지나 두 가지이지 한 가지가 아니며, 氣는 결코 상존하지 않고 생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理는 항존불멸하는 것으로 氣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 법칙이며, 능동성을 가진 理가 발동하여 氣를 주재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심성론(心性論)의 주요 논제인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설명함에 있어 심성 내부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선한 본성인 사단은 理가 발동한 것이고,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칠정은 氣가 발동한 것이라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이 처음 주장한 것을 이황이 집대성하였고 이현일(李玄逸), 이재(李栽), 이상정(李象靖), 유치명(柳致明), 이진상(李震相), 이항로(李恒老) 등에게 계승되었다.
주기론(主氣論)은 우주 만물의 존재 근원을 氣로 보는 이이(李珥)의 학설을 계승한 기호학파의 철학을 가리킨다. 즉 氣만이 능동성을 가지고 발동할 수 있으므로 모든 현상은 氣가 움직이는데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理는 단순히 氣를 주재하는 보편적 원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사람의 의식이나 감정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심성 내부에 존재하는 氣가 동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심성 내부의 기질을 선한 것으로 변화시키면 자연히 인간의 선한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심성론(心性論)의 주요 논제인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설명함에 있어 사단과 칠정은 모두 氣가 발동하여 된 것이며, 사단은 칠정 가운데 선한 측면만을 가리키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념적 윤리보다 실천적 윤리를 중시하는 이 견해는 서경덕(徐敬德)에서 비롯되어 이이에 의해 집대성 되었으며, 김장생(金長生), 정엽(鄭曄),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에게 계승되었다.
이기론에서는 일반적으로 理와 氣의 관계를 "理와 氣는 서로 뒤섞이지 않으며(理氣不相雜), 理와 氣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理氣不相離)"는 말로 정리한다.
존재의 본질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수양철학에서는 理를 중시해야 하므로 전자의 입장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고, 현실의 개혁에 치중하는 실천철학에서는 氣를 중시해야 하므로 후자의 입장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전자에만 치중하면 이기이원론으로 발전하고 후자에만 치중하면 이기일원론으로 발전한다. 이기일원론적 입장에서는 理가 氣보다 먼저 존재하며 理가 氣를 낳는다고 하는 이기이원론적 주장을 거부한다.
명나라 때의 학자 나흠순(羅欽順)은 이기일원론적 입장을 강화하였고, 청나라 때의 학자 대진(戴震)은 "理는 氣의 조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명언함으로써 理의 초월성과 불변성을 부정하였다.
한국의 성리학에서는 이기일원론의 입장이 일부 수용되었다. 서경덕(徐敬德)은 "기 밖에 이가 없으며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기일원론적 입장을 취하였다.
이이(李珥)는 기본적으로는 이기이원론을 계승하면서도 "이와 기는 혼연하여 사이가 없고 서로 떨어지지 않으므로 다른 물건이라 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이기일원론적 입장에 비중을 두었다. 이기일원론의 입장이 더욱 강화된 것이 후에 실학사상에 드러난다.
◼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이기론(理氣論)
1. 이기(理氣)의 개념
율곡의 철학사상을 살피는 데 있어서 먼저 그의 이기(理氣)에 대한 개념부터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주자와 마찬가지로 이기이원(理氣二元)의 존재관을 전제하였다.
즉,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이(理)와 기(氣)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理)란 어떤 것이 그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치요, 본래성이며, 기(氣)란 어떤 것의 이치가 실현될 수 있는 재료이자 실현될 힘이다.
이처럼 이(理)과 기(氣)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이 세계 만사만물이 있기 위해서는 이 양자가 반드시 하나로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이(理)와 기(氣)는 그 존재적 역할과 기능에 있어 대등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그는 "理는 형이상자(形而上者)요, 氣는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개념적 구별이요, 가치적 구별이다.
理는 태극(太極)이요, 氣는 음양(陰陽)이다. 형이상(形而上)은 자연의 理이고 형이하(形而下)는 자연의 氣이다. 유형(有形) 유위(有爲)하여 동정(動靜)이 있는 것은 氣이고, 무형(無形) 무위(無爲)하여 동정에 존재하는 것은 理이다.
율곡은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은 동시적임을 주장한다. 즉, 태극과 음양은 선후(先後), 주종(主從)관계가 아니라 그 소임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또 理는 무형(無形) 무위(無爲)의 형이상(形而上)적 존재로서 순선(純善)한 것이며, 氣는 유형(有形) 유위(有爲)의 형이하(形而下)적 실재로서 청탁수박(淸濁粹駁)이 같지 않아 선악이 공존하는 세계라고 보았다. 이는 우주와 인생에 대해 두루 적용이 가능한 理와 氣의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기(理氣)의 관계
율곡은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요소를 갖고 있는 理와 氣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을까? 그것을 그는 이기지묘(理氣之妙), 기발이승(氣發理乘), 이통기국(理通氣局)이란 말로 표현한다.
(1) 이기지묘(理氣之妙)
율곡 이전에 이언적, 퇴계 이황은 理를 중시하는 관점에 있었고, 또 화담 서경덕은 氣를 중시하는 관점에 있었다. 이에 대해 율곡은 理와 氣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묘합(妙合)의 논리를 주장한다. 그것이 이른바 '이기지묘(理氣之妙)'라고 불리는 것으로 율곡 이기설의 중심사상이다.
그는 "천하에 理 밖의 氣가 있겠는가? '이기지묘'는 보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理와 氣는 두 가지 물건(二物)이 아니요, 또한 한 가지 물건(一物)도 아니다. 한 가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이면서 둘이(一而二)요, 두 가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면서 하나(二而一)이다.
理와 氣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다. 理와 氣는 혼연하여 사이가 없어서 원래 떨어지지 않은 까닭에 두 가지 물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자는 말하기를, '그릇은 또한 도이고, 도는 또한 그릇이다(器亦道, 道亦器)'고 하였다.
또한 양자는 떨어지지 않을지라도 혼연한 가운데 실제로는 섞이지 않아서 한 가지 물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자가 말하기를, '理는 스스로 理요, 氣는 스스로 氣(理自理, 氣自氣)이기 때문에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두 말을 합하여 생각하면 이기지묘(理氣之妙)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에 理와 氣는 서로 떠나지 않는(不相離) 관계와, 서로 섞이지 않는(不相離) 관계를 지속한다. 이것이 이른바 理와 氣의 묘합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논리 체계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인 까닭에 율곡이 '이기지묘(理氣之妙)'라고 이름한 것이다.
중국 유학에서는 氣를 理의 하위개념으로 보아 종속시킨 반면에, 율곡은 理와 氣를 똑같이 대등하게 두어서, 이 둘은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지도 않고 서로 분리되지도 않도록 한다. 그것을 묘합(妙合)이라 한다.
합이라 하지 않고 묘합(妙合)이라 하는 것은, 그냥 합이라 하면 분리됨이 없이 붙어있는 관계, 그러니까 다(多)가 없는 하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묘합(妙合)이라고 말하는 원인은 구별은 되어도 분리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부간에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구별은 되어야 한다. 만약 여자가 남자같고 남자가 여자같으면 부부생활이 재미가 없다. 부부유별(夫婦有別)에서 말하듯 여자는 여자답고 남자는 남자다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여자이고 나는 남자이니까 우리 분리하자고 하면 그것은 이혼이 된다. 따라서 구별은 되어져도 분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의미는 理와 氣의 오묘한 관계성 뿐 아니라, 철학적 사유에 있어서 합해 보기도 하고 나누어 보기도 하는 양쪽의 관점이 아울러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즉, 종합적 사유와 분석적 사유를 아울러 할 수 있는 입체적 사유라 할 것이다.
(2) 기발이승(氣發理乘)
그러면 율곡은 理와 氣가 묘합(妙合)의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각기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가? "대저 발(發)하는 것은 氣요, 發하는 까닭이 理이다. 氣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理가 아니면 發할 까닭이 없다."
그는 理와 氣의 기능에 대해, 氣는 발동(發動)하는 기능을 갖고 있고, 理는 氣가 발동하는 원인 내지 원리로서 존재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기발이승(氣發理乘)'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규정하여, 그 역할과 기능이 구별되는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理는 작위(作爲)가 없고 氣는 작위가 있기 때문에 氣는 발동하고 理는 타는 것이다."
율곡은 자연세계나 인간세계를 막론하고 일체 존재의 존재구조를 기발이승(氣發理乘)으로 일관되게 설명한다. 氣가 발(發)함에 理가 탄다고 할 때 기발(氣發)과 이승(理乘)은 동시적인 것이다. 또 공간적으로도 이합(離合)이 없는 것이다.
본래부터 하나로 있는 묘합(妙合) 구조를 기발이승(氣發理乘)이란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승(理乘)의 승(乘)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그의 동정(動靜)을 주재하는 理의 근저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기발이승'은 존재 자체의 표현으로 '이기지묘'의 다른 표현이며 '이통기국'의 다른 표현이다.
(3) 이통기국(理通氣局)
율곡은 理의 차원에서는 하나인데, 氣의 세계에서는 나누어지게 되는 것은 理와 氣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理는 형체가 없고 氣는 형체가 있기 때문에 이는 공통되고 기는 국한된다."
즉, 理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성을 가졌다는 말이고, 氣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국한성을 가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理는 언제 어디서나 두루 통하고, 氣는 언제 어디서든지 한계지워지고 국한된다는 의미이다.
그의 이통기국(理通氣局)은 이일분수(理一分殊), 기일분수(氣一分殊)의 사고를 거쳐 창출된 이론이다. 이일분수(理一分殊)는 이기지묘(理氣之妙)하에서 理를 중심으로 본체와 현상을 아울러 본 것이라면, 기일분수(氣一分殊)는 이기지묘(理氣之妙) 하에서 氣를 중심으로 본체와 현상을 아울러 본 것이다.
따라서 理와 氣 중 어느 한 면으로 치우쳐보는 관점을 지양하고, 이기지묘(理氣之妙)의 관점에서 이일(理一)과 기일(氣一), 이분수(理分殊)와 기분수(氣分殊)를 아울러 본 것이 이통기국(理通氣局)이다.
율곡은 이통기국을 설명하기를, "인생이 물성(物性)이 아닌 것, 이것이 기국(氣局)이고, 사람의 理가 곧 물(物)의 理인 것, 이것이 이통(理通)이다"고 한다.
또한 모나고 둥근 그릇이 같지 아니하나 그릇 가운데의 물은 마찬가지이며, 크고 작은 병이 같지 아니하나 병 속의 공기는 마찬가지라 비유한다.
따라서 氣가 만가지로 다른데도 근본이 하나일 수 있는 것은 理의 통함(通) 때문이며, 理가 하나인데도 만가지로 다를 수 있는 것은 氣의 국한됨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율곡의 '이통기국'은 이무형(理無形), 기유형(氣有形)의 개념을 통해 이기지묘(理氣之妙)의 관계성 속에서 理의 체용(體用)과 氣의 체용을 유기적으로 통찰한 표현이다.
요컨대, 율곡의 이통기국은 理만도 아니고 氣만도 아니며, 理의 통함과 氣의 국한됨이 하나로 묘융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세계, 이기지묘의 가치를 표현한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통기국'이란, 理는 조금도 구애됨이 없이 통하여 어디에서나 관통하는 것이지만(理通), 氣는 바름과 치우침, 맑고 흐림의 차별상을 이루어 구애됨이 많다(氣局)는 것이다. 즉 율곡은 만물의 보편성과 차별성을 이통기국(理通氣局)의 개념으로 정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통기국의 논리는 불교 화엄철학의 논리를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 理(다스릴 리/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구슬옥변(玉=玉, 玊; 구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里(리)가 합(合)하여 다스리다를 뜻한다. 음(音)을 나타내는 里(리)는 길이 가로 세로로 통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 뜻이 갈라져서 사리(事理)가 바르다, 규칙 바르다의 뜻과 속, 속에 숨어 있다의 두 가지 뜻을 나타낸다. 玉(옥)은 중국의 서북에서 나는 보석, 理(리)는 옥의 원석(原石)속에 숨어 있는 고운 결을 갈아내는 일, 나중에 옥에 한한지 않고 일을 다스리다, 사리 따위의 뜻에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理자는 '다스리다'나 '이치'를 뜻하는 글자이다. 理자는 玉(구슬 옥)자와 里(마을 리)가 결합한 모습이다. 里자는 '마을'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理자는 본래 옥에 새겨 넣은 무늬를 뜻했었다. 단단한 옥을 깎아 무늬를 새겨 넣는 작업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理자는 후에 간혹 실수로 구멍 낸 곳을 메운다는 의미에서 '메우다'나 '수선하다'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일을)처리한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理(다스릴 리/이)는 (1)용언(用言)이나 체언(體言) 술어의 어미(語尾) ~ㄹ 다음에 있다 없다 따위와 함께 쓰이어 까닭 이치(理致)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숫자 다음에서 이(浬)의 뜻으로 쓰는 말 (3)해리(海里) (4)사물 현상이 존재하는, 불변의 법칙(法則), 이치(理致), 도리(道理) (5)중국 철학에서 우주(宇宙)의 본체. 만물을 형성하는 정신적(精神的) 시원을 뜻함 (6)이학(理學) (7)이과(理科) 등의 뜻으로 ①다스리다 ②다스려지다 ③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다) ④수선(修繕)하다 ⑤깨닫다 ⑥의뢰하다 ⑦사리(事理) ⑧도리(道理) ⑨이치(理致) ⑩매개(媒介) ⑪거동(擧動) ⑫나무결 ⑬잔금 ⑭학문(學問), 과목(科目)의 약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치(治), 간략할 략(略), 지날 경(經), 다스릴 할(轄), 다스릴 리(釐)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지러울 란(亂)이다. 용례로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을 이해(理解), 이성에 의하여 얻어지는 최고의 개념을 이념(理念),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를 이치(理致), 이치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성품을 이성(理性),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를 이상(理想), 옳음과 그름을 이비(理非), 머리털을 다듬어 깎음을 이발(理髮), 사람을 통제하고 지휘 감독하는 것을 관리(管理), 일을 다스려 치러 감을 처리(處理),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히 바로잡음을 정리(整理), 옳은 이치에 어그러짐을 비리(非理),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규범을 윤리(倫理), 사물이 근거하여 성립하는 근본 법칙을 원리(原理), 말이나 글에서의 짜임새나 갈피를 논리(論理),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審理),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좋은 도리를 발견하려고 이모저모 생각함을 궁리(窮理), 도리에 순종함을 순리(順理), 고장난 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을 수리(修理), 말이나 글에서의 짜임새나 갈피를 논리(論理),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를 사리(事理),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옳은 길을 의리(義理),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 사이를 비유하는 말을 연리지(連理枝), 사람이 상상해 낸 이상적이며 완전한 곳을 이르는 말을 이상향(理想鄕),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가 명백하다는 말을 사리명백(事理明白), 이판과 사판이 붙어서 된 말로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이르는 말을 이판사판(理判事判), 의논이나 언설이 사리에 잘 통하고 정연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이로정연(理路整然), 비익조와 연리지의 뜻으로 부부의 사이가 썩 화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연리비익(連理比翼), 헛된 이치와 논의란 뜻으로사실에 맞지 않은 이론과 실제와 동떨어진 논의를 일컫는 말을 공리공론(空理空論), 모든 문제를 흑이 아니면 백이나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방식의 두 가지로만 구분하려는 논리를 일컫는 말을 흑백논리(黑白論理), 소리를 듣고 그 거동을 살피니 조그마한 일이라도 주의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영음찰리(聆音察理),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가 명백함을 일컫는 말을 사리명백(事理明白), 모든 생물이 생기고 번식하는 자연의 이치를 일컫는 말을 생생지리(生生之理), 성하고 쇠하는 이치라는 뜻으로 끊임없이 도는 성쇠의 이치를 일컫는 말을 성쇠지리(盛衰之理) 등에 쓰인다.
▶️ 主(금 주/주인 주)는 ❶상형문자로 등잔 접시 위에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문자의 윗부분의 丶(주)는 등불이 타는 모양이고, 王(왕)은 촛대의 모양이며 임금이란 王(왕)과는 관계가 없다. 主(주)는 처음에 丶(주)로만 쓴 것을 더욱 자세하게 쓴 자형(字形)으로, 나중에 그 뜻으로는 炷(주)를 쓰고 主(주)는 등불의 중심(中心), 주인, 군주(君主)의 뜻이다. ❷상형문자로 主자는 '주인'이나 '주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主자는 王(임금 왕)자에 丶(점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主자는 본래 촛대를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 나온 主자를 보면 긴 촛대 위에 심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主자의 본래 의미는 '심지'였다. 그러나 후에 主자가 '주인'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火(불 화)자를 더한 炷(심지 주)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한 집안을 밝혀야 할 사람은 가장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主자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主(주)는 (1)주인(主人) (2)임금 (3)임자 (4)주장(主張), 근본(根本)이 되는 것을 이르는 말 (5)천주(天主) (6)구세주(救世主) (7)만백성(萬百姓)의 주인(主人)이라는 뜻으로, 여호와 또는 예수를 이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임금 ②주인(主人), 임자, 소유주(所有主) ③우두머리 ④상전(上典) ⑤여호와, 하느님, 알라(Allah) ⑥주체(主體) ⑦당사자(當事者), 관계자(關係者) ⑧결혼(結婚) 상대자(相對者) ⑨자신(自身) ⑩위패(位牌) ⑪주견(主見), 줏대 ⑫자신의, 주관적인 ⑬가장 주요한, 가장 기본적인 ⑭주관하다, 책임지다 ⑯주되다 ⑯주장하다 ⑰예시(例示)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손 객(客),백성 민(民), 신하 신(臣), 손 빈(賓)이다. 용례로는 신하가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을 주상(主上), 한 집안의 책임자를 주인(主人), 직장이나 단체에서 어떠한 일을 주로 담당함을 주임(主任), 어떤 일의 주장(主將)이 되어 움직임을 주동(主動), 중심되는 힘을 주력(主力), 주창하여 개최함을 주최(主催),주의나 주장을 앞장 서서 부르짖음을 주창(主唱), 주인과 손을 주객(主客), 주장이 되어 이끎을 주도(主導), 어떤 일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주역(主役), 자기 의견을 굳이 내세움을 주장(主張),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한 집안의 주장이 되는 주인을 호주(戶主),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행함을 자주(自主), 영업에 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주인을 업주(業主), 가게나 식당 따위의 손님을 화주(華主), 붙어사는 동식물을 제 몸에 붙여서 그에게 양분을 주는 동식물을 숙주(宿主), 황후 몸에서 태어난 임금의 딸을 공주(公主),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맹약을 서로 맺은 개인이나 단체의 우두머리를 맹주(盟主), 나와 대상이 일체가 됨을 이르는 말을 주객일체(主客一體), 주인은 손님처럼 손님은 주인처럼 행동을 바꾸어 한다는 것으로 입장이 뒤바뀐 것을 이르는 말을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과 손 즉 나그네의 사이를 일컫는 말을 주객지간(主客之間), 남에게 매여 있는 사람은 주도적인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당해 내지 못하는 형세를 일컫는 말을 주객지세(主客之勢), 주인은 손에게 술을 권하고 손은 주인에게 밥을 권하며 다정하게 먹고 마심을 일컫는 말을 주주객반(主酒客飯),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임금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도와 생사고락을 함께함을 이르는 말을 주욕신사(主辱臣死) 등에 쓰인다.
▶️ 氣(기운 기, 보낼 희)는 ❶형성문자로 気(기)의 본자(本字), 气(기)는 간자(簡字), 炁(기), 餼(희), 饩(희)는 동자(同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기운기 엄(气; 구름 기운)部는 공중에 올라가 구름이 되는 것, 굴곡하여 올라가는 수증기, 목에 막히어 나오는 숨을 뜻하고, 米(미)는 쌀을 뜻하므로 김을 올려서 밥을 짓다, 손님을 위한 맛있는 음식을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氣자는 '기운'이나 '기세', '날씨'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氣자는 气(기운 기)자와 米(쌀 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氣자는 米자가 없는 气자가 먼저 쓰였었다. 气자는 하늘에 감도는 공기의 흐름이나 구름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획을 세 번 그린 것으로 하늘의 기운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숫자 三(석 삼)자 혼동되어 위아래의 획을 구부린 형태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米자가 더해진 氣자는 밥을 지을 때 나는 '수증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气자와 마찬가지로 '기운'이나 '기세', '날씨'와 관련된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氣(기)는 (1)숨 쉴 때에 나오는 기운 (2)생활이나 활동하는 힘으로 원기, 정기, 생기, 기력 따위 (3)동양 철학의 기초 개념의 하나6로 만물을 생성, 소멸 시키는 물질적 시원(始原) (4)옛날 중국에서 15일을 일기로 하는 명칭으로 이것을 셋으로 갈라 그 하나를 후(候)라 했음 (5)느낌, 기운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五官)으로 느껴지는 현상) ②기백(氣魄) ③기세(氣勢: 기운차게 뻗치는 형세) ④힘 ⑤숨(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⑥공기(空氣) ⑦냄새 ⑧바람 ⑨기후(氣候) ⑩날씨 ⑪자연(自然) 현상(現狀) ⑫기체(氣體) ⑬가스(gas) ⑭성내다 ⑮화내다(火--) 그리고 ⓐ(음식을)보내다(=餼)(희) ⓑ음식물(飮食物)(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대기의 온도를 기온(氣溫), 바야흐로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를 기운(氣運), 바람, 비, 구름, 눈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기상(氣象), 마음에 생기는 주관적이고 단순한 감정 상태를 기분(氣分),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정신과 육체의 힘을 기력(氣力), 사람의 타고난 성품과 몸가짐을 기상(氣像), 기운과 세력을 기세(氣勢), 대기의 유동을 기류(氣流), 바탕을 이루는 성질을 기질(氣質),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기개(氣槪),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기품(氣稟), 기운이 만장이나 뻗치었다는 뜻으로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남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을 일컫는 말을 기고만장(氣高萬丈), 의기가 관중을 압도한다는 뜻으로 의기 왕성함을 이르는 말을 기개관중(氣蓋關中), 기운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는 뜻으로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림을 일컫는 말을 기진맥진(氣盡脈盡), 인간의 성질을 본연지성과 기품지성의 두 가지로 나눈 중에서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가리키는 말을 기품지성(氣稟之性), 기세가 대단히 높음을 일컫는 말을 기염만장(氣焰萬丈), 생각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맞음을 일컫는 말을 기미상적(氣味相適), 생각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맞음을 일컫는 말을 기미상합(氣味相合), 글씨나 그림 등의 기품과 품격과 정취가 생생하게 약동함을 일컫는 말을 기운생동(氣韻生動), 기세가 매우 높고 힘찬 모양을 일컫는 말을 기세등등(氣勢騰騰), 놀라서 정신을 잃음을 일컫는 말을 기급절사(氣急絶死), 모두가 운수에 달린 일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을 기수소관(氣數所關), 기운은 산과 같이 높고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다는 의미의 말을 기산심해(氣山心海) 등에 쓰인다.
▶️ 從(좇을 종)은 ❶형성문자로 従(종)의 본자(本字), 徔(종)은 통자(通字), 从(종)은 간자(簡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从(종)은 사람 뒤에 사람이 따라 가는 모습으로,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간다는 뜻이다. 止(지)는 발자국의 모양으로 나아가는 일과 사람이 잇따라 나아감이니 따르다의 뜻이다. 옛 글자 모양은 사람을 어느쪽을 향하게 하여도 좋아, 人의 모양을 둘 그려 따른다는 뜻을 나타냈다. 나중에 오른쪽을 향한 것은 比(비), 왼쪽을 향한 것은 从(종)으로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從자는 '좇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從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止(발 지)자, 从(좇을 종)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좇다'라는 뜻은 从자가 먼저 쓰였었다. 从자는 사람을 나란히 그린 것으로 뒷사람이 앞사람을 '좇아가다'를 뜻했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와 止자가 더해지면서 길을 따라 뒷사람이 앞사람을 좇아간다는 의미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從(종)은 (1)종속적(從屬的)인 것 주(主)가 되는 것에 딸리는 것 (2)사촌(四寸)이나 오촌(五寸)의 겨레 관계를 나타내는 말 (3)직품(職品)을 구별하는 한 가지 이름 정(正)보다 한 품계(品階)씩 낮고, 종1품(從一品)부터 종9품(從九品)까지 있음 등의 뜻으로 ①좇다, 따르다 ②나아가다, 다가서다 ③모시다, 시중들다 ④일하다 ⑤놓다 ⑥모이다 ⑦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⑧높고 크다 ⑨조용하다, 느릿하다 ⑩방종(放縱)하다, 제멋대로 하다 ⑪말미암다 ⑫따라서 죽다 ⑬오래다 ⑭세로, 남북(南北) ⑮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흔적(痕跡) ⑯시중드는 사람, 심부름꾼 ⑰종(친족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 ⑱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⑲높고 큰 모양 ⑳부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왕(王)이다. 용례로는 이제부터나 지금으로 부터를 종금(從今), 지금까지 내려온 그대로를 종래(從來), 줏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사람을 종복(從僕), 어떤 일에 매달려 일함을 종사(從事), 남편을 좇음을 종부(從夫), 주가 아닌 간접적인 원인을 종인(從因), 이전이나 이제까지를 종전(從前), 남에게 따라 다니며 심부름하는 사람을 종졸(從卒), 주되는 것에 딸려 붙음을 종속(從屬), 꾸밈이 없이 사실대로 함을 종실(從實), 침착하고 덤비지 않음을 종용(從容), 어떤 사업에 종사함을 종업(從業), 이로부터나 이 뒤를 종차(從此), 뒤를 따라서 죽음을 종사(從死), 남의 명령이나 의사에 좇음을 복종(服從), 고분고분 따름을 순종(順從), 뒤를 따라서 좇음을 추종(追從), 굳게 맹세하여 서로 응함을 합종(合從),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남을 따름을 맹종(盲從), 서로 따르며 친하게 지냄을 상종(相從), 사실 그대로 고함을 일컫는 말을 종실직고(從實直告), 물이 신속히 낮은 쪽으로 흐르듯이 선善임을 알았으면 지체없이 이에 따르는 것을 뜻하는 말로 서슴치 않고 착한 일을 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을 종선여류(從善如流),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종심소욕(從心所欲),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순순히 간언을 따름을 일르는 말을 종간여류(從諫如流), 욕심 내키는 대로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충족시킴을 일컫는 말을 종욕염사(從欲厭私), 다수자의 의견을 좇아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종다수결(從多數決), 착한 일을 쫓아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말을 종선여등(從善如登),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좇아서 함을 이르는 말을 종오소호(從吾所好), 우물에 들어가 남을 구한다는 뜻으로 해 놓은 일에 아무런 이득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종정구인(從井救人),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편할 대로 쉬울대로 쫓아 함을 이르는 말을 종편위지(從便僞之), 자기 마음대로 하고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말을 종회여류(從懷如流)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