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이 상했다고? 그럼 치과나 가."
"너랑 말 장난 할 기분 아니야, 최혜진."
학교에 오자마자 꺼낸 첫 마디가 바로 저거. 덕분에 최혜진의 첫 마디는 말 장난이 되어버렸다.
오늘 아침 일찍, 또 종이 비행기가 진유린의 책상에 착륙했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창밖을 내다 봐도,
그 사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오늘은 노랑색 종이 비행기-.
날짜가 평범하게 흘러갔다. 김한중과의 데이트는 여전히 달콤했으며,
최혜진과의 대화는 여전히 재미 없었고, 은화령은 여전히 충성심이 넘쳤고,
백희안은 도통 보이질 않았으며, 윤혜란의 괴롭힘은 수그라들었고,
심하민은 여전히 귀여움이 철철 흘러 넘쳤지만......
하민과 현비환의 눈동자는 가끔 슬프게 빛나며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노랑색 종이 비행기 다음으로, 초록색 종이 비행기, 파랑색 종이 비행기,
남색 종이 비행기까지 모두 진유린의 책상에 착륙해 책상 서랍에 박혔다.
***
화창한 금요일 아침, 진유린은 평소보다 30분은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유린이 일찍 일어난건 어떻게 알았는지 종이 비행기도 30분 일찍 날라왔다.
유린이 잘 떼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손으로 비비며 책상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때 유린의 잠옷은 핑크빛 원피스였으며,
그때 유린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는지는 따로 말 안할테니 알아서 상상하기 바란다.
"보라색?"
그때 진유린의 입에서 흘러 나온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으면 남녀 노소 유린을 덮치려 들었을 것이다.
막 잠에서 깨어서 그런지 유린의 목소리는, 경이로울 정도로 애교스러웠다.
유린은 막 도착한 보라색 종이 비행기를 집어 들어, 똑같이 책상서랍에 집어 넣으려 하는데......
유린의 시아에 보라색 종이 비행기 안쪽에 쓰여있는 글씨가 잡혔다.
"댈?"
분명히 무지하게 못 썼지만 최고의 정성을 들인 것만 같은 글씨체로 '댈'이라 쓰여 있었다.
무언가가 진유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유린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라색 종이 비행기를 책상 위에 두고 책상 서랍을 열어 종이 비행기들을 모두 꺼냈다.
7 가지의 종이 비행기...... 이 정도면 알아차릴만 하지만,
눈치는 무지 빠르면서도 이상하게 눈치 채지 못한 유린이 종이 비행기들을 하나 하나 열어보았다.
"댈, 그, 무, 개, 은, 지, 같...... 댈그무개은지같?"
그리고 눈을 감고 종이 비행기들이 도착한 순서를 생각해내고, 그 순서대로 종이 비행기들을 정렬했다.
빨강색 종이 비행기, 주황색 종이 비행기, 노랑색 종이 비행기, 파랑색 종이 비행기, 남색 종이 비행기,
그리고 보라색 종이 비행기.
왜 빨주노초파남보라는 간단한 공식을 이해하지 못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유린은 그 글자들을 하나 하나 읽었다.
"무, 지, 개, 같, 은, 그, 댈."
이 정도면 감 못잡은 사람들 없다. 이렇게 읽어야 정상이다. '무지개 같은 그댈',
하지만 우리의 진유린은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이렇게 읽어주셨다.
"무지 개 같은 그댈? 이런 썅!!!!! 이 개새끼가 뒤질려고 환장했나, 씨발!!!!!!!! 개? 개?
이런 썅 놈의 새끼야!!!!!!!!! 개는 너 겠지, 이 멍멍이 똥같은 새끼야!!!!!!! 아오!!!!!! 씨발!!!!!!!"
진유린이 얼른 창가로 달려나가 유린의 시아에 잡히지도 않는 사람에게 아주 크게 소리쳤다.
유린은 알고 있을까......
종이 비행기를 보낸 사람이 처음엔 적잖게 당황했다가 나중엔 배꼽 빠지게 웃었다는 것을......?
***
"내일이면 알게 되겠지...... 우리의 멍청한 유린씨. 너와의 관계를 확실히 하려고......
계속 거리감이 들게하는 호칭으로 불렀지만, 그 호칭이 더 나를 미치게 한다. 어떻하지, 진유린?
내가 이 일주일동안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당장 달려나가서 너를 붙잡고 고백하고 싶었어,
너의 손을 잡고, 너를 껴안고, 너의 입술을 덮치고, 너를...... 가지고 싶었어.
하지만 내일이면...... 모든게 끝나겠지.
더이상 너를 부르면서 너의 대답을 기다릴 수도, 너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도,
너의 인간을 뛰어 넘은 아름다움을 볼 수도...... 없겠지. 그 생각만 하면 온 몸이 떨리고,
심장이 갈기 갈기 찢기는것만 같아. 넌 이런 내 마음 알아?
혹시 김한중이 떠나면 너는 그런 마음이 들까...... 하지만 그런 마음은 들 수가 없겠지.
내가 장담하건데, 김한중은 널 떠날 수 없으니까."
그는 틀렸다. 그의 장담도 틀렸고, 그런 마음이 들 수가 없겠다는 말도 틀렸으니까.
그의 말중에는 맞는 말도 몇가지 있었지만, 틀린 말도 몇가지 있었다.
그의 입에서 경이로울 만큼 매력적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니, 목소리가 아니라 노래소리였다.
"나의 마음, 알고 있었니- 정말로 너만을 생각하며 지냈던 날들. 하지만 너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 수록 나는 더욱 더 힘들어 해야만 했어, 불안에 떨어야만 했어.
이제는 내 자신이 지쳐서 너를 볼 자신이 없어. 그래,
비겁하게 너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려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싫어. 하지만,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거야. 내가 너를 좋아한단 걸 알았을때, 하지만 그땐 너무도 늦어버렸어,
모든게 변해 버렸어. 나는 너무도...... 초라했던 내... 가...... 너에게 말하...아....알......"
노래 자체가 렙이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말하는것 같았다. 아니면,
그렇게 그의 심정과 가사와 음율이...... 저렇게 딱 들어맞을 수가 있을까?
언젠가 심하민이 이 노래는 그와 무서울 정도로 어울린다고 말했던게....... 정말 이었다.
너무 잘 어울려서...... 무섭고, 두렵고, 불안했다. 그의 눈에서 거짓말처럼 투명한 눈물이 떨어지고,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진유린이 좋아하던 아름다운 갈색빛의 눈동자가......
보기 싫은 붉은색으로 충혈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눈동자가 보기 싫은 붉은색으로 충혈되어도......
여전히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그는 목이 막혀 더이상 노래를 이을 수가 없었다. 노래를 부르니......
자신의 심정과 워낙 똑같아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진유린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 유린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정말...... 병이다, 벼엉. 상사병."
그는 목이 막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고, 새는 소리가 나왔지만, 그의 목소리는 정말,
인간의 것이라 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소름끼치도록 매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