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공화국 풍경들]-부조리의 記述學
세상에 삶에 깃든 비극적 풍경을
지적 언어로 유머러스하게 풀어
웃다 보면 문들 슬픔이 차올라
성미정의 시들은 독자의 좌뇌를 간질이는 지적 언술들로 채워져 있다. 그 잔혹하고 발랄한 시들은 삶이 결코 환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징그러우리만큼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박서강기자
우리 발길이 스쳐온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김정환의‘지울 수 없는 노래’는 이를테면 시인공화국의 한길에 자리잡은 성채나 카페다. 시인공화국을 서울에 견준다면 ‘진달래꽃’은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종로쯤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고, ‘지울 수 없는 노래’는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강남대로쯤에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서울이 신시가 구시가를 막론하고 수많은 골목길을 품고 있듯, 시인공화국도 간선도로 외에 수많은 이면도로와 오솔길과 뒷골목을 품고 있다. 그런 뒷골목들엔 일정이 빡빡한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닿기 어렵지만, 그곳들을 둘러보지 않고는 한 도시의, 한 공화국의 섬세한 숨결을, 속살을 느낄 수 없다.
그런 오솔길들과 뒷골목들을 통해 도시는, 공화국은 깊이와 입체감을 얻는다. 오늘 훑어볼 성미정(38)의 첫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1997년)은 시인공화국의 신시가지 어느 골목길에 자리잡은 카페라 할 만하다.
카페 ‘대머리와의 사랑’에 들어선 나그네는 대뜸 이 집의 낯선 인테리어에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쉬러 들른 카페에서 그의 숨결은 외려 가빠진다. 이 카페의 실내 장식은 끔찍하게 드러난 뇌수와 뼈, 문드러진 살, 검붉게 엉킨 피, 인육을 우려 만든 비누, 궤짝 속에 담긴 성기(性器), 잡아뜯긴 음모(陰毛) 따위의 엽기컨셉트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처음의 그 불편한 마음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테이블 앞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동화차(童話茶)’든 ‘쿨월드주스’든 ‘야구처녀주(野球處女酒)’든 이 집의 색다른 마실 거리를 시켜 음미하는 동안, 불편함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나그네의 마음은 유쾌하게 달아오른다.
그 마음은 한없이 고양돼, 나그네는 이내 이 차, 저 주스, 그 술을 다 주문해본다. 그러나 흥겨운 시간이 흐르고 이 집을 나올 때, 나그네의 내면에선 어떤 슬픔이 치솟는다. 아니 가라앉는다.
‘대머리와의 사랑’은 별난 시집이다. 거기 실린 작품 대다수가 줄글 형태의 산문시여서 별나다는 게 아니다. 산문시는 시인공화국 어디서라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대머리와의 사랑’에 실린 작품들은 이미지들의 돌발적 맞부딪침, 시공간의 압축과 확대, 과장과 아이러니 등 그것들을 그저 짧은 산문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한 시로서 읽히게 할 기법과 장치들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
‘대머리와의 사랑’을 별난 시집으로 만드는 것은 거기 묶인 작품들이 독자의 감성이 아니라, 주로 지성에 호소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미학’이나 ‘심미적’이라고 번역된 유럽어 단어가 본디 ‘감각학’‘감각적’이라는 뜻이었던 데서도 드러나듯, 예술은 주로 인간의 감성을 겨냥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런데 ‘대머리와의 사랑’은 지성에 호소한다. 이 시집은 좌뇌를 간질이는 지적 언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지성에 대한 호소는, 오래지 않아, 우뇌까지 집적거리며 우울한 감성의 침전물을 만든다. 지성은 감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둘은 꽈배기처럼, DNA 사슬처럼, 전위적 춘화도 속의 두 육체처럼 꼬여 있다.
시집을 읽기 시작한 독자에게 대뜸 떠오르는 말은 엽기일 것이다. 들머리에 실린 ‘대머리와의 사랑1’에서 “그녀”는 “대머리를 위하여 음모를 잡아뜯”고, 세 번째 시 ‘모자를 쓴 너’에서 “머리를 뚜껑이라고 부르는 늙은 의사”는 (뇌수술에 실패한 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뚜껑을 꿰맨다 마무리로 질긴 탯줄을 한번 더 묶어준다.” 그러나 이 해괴함은 화자가 능란하게 구사하는 익살과 기지와 능청을 타고 올라 독자들에게 이내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이 웃음은 씁쓸한 웃음이다.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이 유머러스할지라도, 그 유머는 블랙유머이기 때문이다. 카페 ‘대머리와의 사랑’ 주방에서는 설탕을 내놓지 않는다. 그 집에?파는 커피?죄다 블랙커피다.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의 시들은 그 한 편 한 편이 빼어난 동화다. 고전 동화들을 패러디한 ‘동화’ 연작만이 아니라 작품 대다수가 그렇다. 그 동화는 엽기동화이고, 자주 잔혹동화다. 거기 해피엔딩은 없다. 거기 해피엔딩이 없는 것은 이 동화의 화자가 다 큰 어른, 세상의 그늘을 이미 알아버린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 동화 또는 콩트는 삶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은유로 우울하다.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새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때리란 말이야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때??게 중요해(...) 맞아서 파랗든 원래 파랗든 파랑새라는 게 중요한 거야 그리고 비밀 없는 행복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 거야 뼛속 깊이 퍼렇게 골병든 행복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행복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동화--파랑새’).
화자는 이런 엽기적 상황들을 묘사하며 가족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의 힘듦, 삶의 찌듦과 부대낌과 난처함과 지긋지긋함과 시시함과 지루함과 (아, 이게 중요하다, 이 지랄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이 모든 것의 “얽히고 설켜 있”(‘동화--엉킨 나라’)음을 소파 위의 신경증 환자처럼 풀어놓는다. 이 시집의 화자들은, 그래서 어쩌면 시인 자신은 삶과 세상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품지 않는다.
제도와 (소수자로서의) 개인 사이의 긴장을 탐색하는 데 그 일부분이 바쳐진‘야구처녀’연작의 화자는 세상의 룰이 힘센 다수파의 것이라는 점을, 그 다수파들은 또 제멋대로 룰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수자로서 그는, “내 마음엔 심판이 살고 있다”(‘내 마음의 심판’)고 버티면서도, 결국 세상의 철칙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그는 세계의 부조리에 부아가 나지만,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견딜 수 없이 많은 살의를 품으며 나는 둥글어진다 밤마다 나는 증오로 부푼 나를 멀리 날려보낸다 날려버리고 싶은 놈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야구에 대한 세 가지 슬픔’). 그는 고독하다.
삶이 결코 환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대머리와의 사랑’은 징그러우리만큼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내향적인 외향시이자 외향적인 내향시라고도 할 만한 이 시집의 작품 하나하나는 한 편의 연극처럼도 보인다. 연출가 성미정은 삶과 세상의 비극적 풍경들을 희극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인상적인 잔혹소극(殘酷笑劇)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관객은 공연 내내 깔깔대지만, 객석에서 일어설 때 한 줄기 날카로운 슬픔이 그의 마음을 에어낸다.
텍스트를 관통하는 놀라운 속도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의 발화 같은 그 자동기술적 외양에도 불구하고,‘대머리와의 사랑’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시집이다.
이 시집의 큰 매력 하나가 시인의 능숙한 말놀이이기 때문이다. 그 말놀이는 가축/가죽(‘가축들 또는 가죽들’), 토끼/도끼(‘동화--토끼 만만세’), 백살/백설(‘동화--백살공주), 헌실/현실(’쿨 월드--헌실 또는 현실), 질/길(‘그녀가 멈추었던 순간) 따위의 초보적이고 고전적인 최소대립쌍 놀이에서가 아니라, 통사나 담론 수준의 입심에서 도드라진다.
예컨대 “그녀의 이름은 장화 신은 슬픔이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울먹였다 슬픈 나라 백성이었다 슬픔만큼 무거운 장화 속에 슬픔만큼 창백한 발을 감추고 슬프게 걸었다(...)장화는 국경선의 일부가 되었고 그녀는 기쁜 나라 백성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미소지었다 이름도 장화 벗은 기쁨으로 바뀌었다(...)그런 날이면 장화 벗은 기쁨은 국경에 세워진 장화를 신고 발이 빠지는 슬픔 속으로 도망치는 꿈을 꾸곤 했다 깨어나면 그녀는 자신 있는 곳이 기쁜 나라인지 슬픈 나라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다시 걸었다”(동화--장화 신은 슬픔) 같은 대목은 그 비의(秘義)를 따져보기에 앞서 섬세한 형태적 균형미로 도도하다.
성미정은 두 번째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2003년)의 마지막 시 ‘실험적이고 모더니티한 시를 쓴다는 성미정 씨의 고백’에서 “저는 실험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가장 실험적인 일은/ 고작 열무김치 담그기와 실패의 반복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모더니스트도 아닙니다/ 제가 하는 가장 모던한 일은 가끔 밥 대신 빵에 잼을 발라먹는 것입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별난’ 것이 꼭 ‘실험적이고 모던한’ 것은 아닐 테니, 시인의 말을 믿기로 하자.
대머리와의 사랑 1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머리털을 뽑는다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음모를 잡아뜯는다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겨드랑이털을 깎는다
검은 털이 수북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는 추억 속의 벗겨진 머리가죽 말라붙은
가죽 위에 털들을 꼼꼼히 심는다 대머리가
만족할 만한 가발을 가지고 대머리에게 간다
진짜 머리털보다 더 진짜 같은 가발을
대머리에게 준다 이걸 만드느라 일찍 오지
못했어요 대머리는 가발을 던져버린다
기다리느라 비를 너무 많이 맞았어 머리가
불어서 이제 그 가발은 나에게 맞지 않아
대머리의 육체 가득 출렁이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공들여 만든 대머리를 위한 가발이
찢겨진 우산처럼 빗속에 버려져 있다.
글: 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