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간 | 거 리 | 출발시간 | 소요시간 | 비 고 |
안 생 달 |
| 03:40 |
|
|
작은차갓재 | 1.00km | 04:10 | 30 | |
차 갓 재 | 0.61 | 04:30 | 20 | |
황 장 산 | 1.91 | 05:17 | 47 | |
벌 재 | 5.12 | 08:27 | 190 | 20분 휴식 |
문 복 대 | 3.45 | 10:48 | 141 | 30분 휴식 |
저 수 령 | 2.46 | 12:00 | 72 | 10분 휴식 |
계 | 14.55km | 08:20 | 07:20 | 실 소요시간 |
산 행 기 록
지도 #1
생달교에서 안상달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삼거리입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할 경우 여기서 내려,
안으로 좀 들어가야 합니다.
관광버스 주차장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멀리 잠시 후 진행할 황장산 방향 백두대간 능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측 초소가 있고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황장산에서 내려오는 갈림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루트를 통하여 황장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거죠.
안내도에도 나와 있죠?
우틀하면 계곡을 타고 올라 황장산으로 진행을 하고 직진을 하면 차갓재 루트를 이용하여 황장산으로 오른다는....
03:40
그 길에 버스가 정차를 합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입니다.
영하12˚ 정도가 되니....
버스에서 내려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금방 손가락이 얼얼해집니다.
잽싸게 착용하느라고 착용은 하는데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아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산행은 온전하게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입니다.
생달리에서도 산 안쪽에 있으니 안생달이고요.
선두를 쫓아 빨리 올라갑니다.
아까 초소에서 우틀하여 대간길에 접속한 다음 황장산으로 오르는 루트는 이미 봤습니다.
그 루트 이외에 대간길에 접속하는 루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그 입구에서 좌틀하여 좌측 산 언저리에 바짝 붙어 진행을 하여 송전탑 있는 곳으로 오르는 작은차갓재 제1루트.
가운데 오솔길 같은 루트를 따라 아무 생각없이 오르는 루트.
이름하여 작은차갓재 제2루트.
그리고 우측으로 붙어 계곡 언저리 좌측으로 진행하여 공단이 마련해 준 루트를 따르는 차갓재 루트 등이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진행을 합니다.
04:10
그러면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 안내비가 보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대간 ㄱㄹ에는 이 중간 기점 안내비가 두 군데가 있죠?
이 비와 여기서 대미산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비탈에 세워진 비.
잠시 쉬었다 우틀하여 대간길을 이어갑니다.
아무도 진행한 흔적이 없는 길을 선두대장이 러셀을 하며 발자국을 냅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겨울산은 흑색과 백색만 있으면 됩니다.
오리지널 수묵화를 보며 진행합니다.
815.4봉으로 오릅니다.
바람은 별로 없지만 공기 자체가 차갑습니다.
내려가는 길의 미끄러움을 대비하여 스틱을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장재를 지나면 바로 바위 구간이 나옵니다.
그 때 바위나 나뭇가지를 잡고 진행하여야 하기도 하여야 하니 아무래도 스틱이 걸리적 거릴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하고 난 후 걸으면서 얼은 손가락을 맛사지 해주기 위해서더 더욱 그렇습니다.
스틱을 접습니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04:30
그러고는 지도 #1의 '나'의 곳입니다.
지도 상의 차갓재이기도 합니다.
포암산을 지나 관음재 부근에서 시작되었던 월악산국립공원 중 백두대간의 비탐방구간이 잠깐 해제되는 구간을 여기서 만나는 것입니다.
작년에 개방된 황장산 구간에 들어선 것입니다.
여기서 우틀하면 안생달로 빠지는 길입니다.
아까 초입에서 세 가지 루트를 봤었죠?
그 중 마지막 루트 즉 차갓재 루트를 따르면 바로 이리로 올라온다는 것이죠.
대원들이 기념 촬영들을 하고는 다시 대간길로 듭니다.
소나무 가지 위의 눈을 봅니다.
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저 나뭇가지가 부러지겠죠?
소나무는 절대 자신의 잎사귀 위에 걸리는 눈을 터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건가?
국립공원답게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오릅니다.
오늘은 보름이 지난 지 이틀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달이 유난히 밝습니다.
그 달빛으로만 봐도 황장산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는군요.
대원들도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가운데가 황장산.
일단 데크로 된 시설물을 지나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안생달 마을도 봅니다.
멀리 가운데 대미산이 뚜렸하고....
지도 #1의 '다'의 이정표를 따라 우틀합니다.
황장산 0.6km라.
이제 황장산도 지척입니다.
안전 시설물을 지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면,
계단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로프를 잡고 움직이던 구간으로 기억이 되는군요.
대간 라인.
멋진 상고대.
얼어붙은 눈.
그리고 눈꽃과 상고대의 어울림.
좁은 난간 다리를 건너,
아쉬워서 뒤를 다시 돌아보면,
대미산은 그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웠던지 모습을 감추고 말앗군요.
난간을 좌측으로 돌아,
흰눈에 휘어져 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잠시 진행한 난간을 돌아봅니다.
바람이 셉니다.
가까운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곳으로 가니,
05:17
대원들이 기념 촬영 등을 하느라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 추위 속에서 손을 '호호' 불며 사진들을 찌으시느라...
저는 주위나 둘러보아야겠습니다.
정상석이 있고.
눈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2등급 삼각점(단양24)은 마음 속으로만 인식합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즉 이 공신력 있는 지도에는 분명 황정산皇庭山1078.9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황장산이 아닌 황정산으로 말입니다.
지도 #1을 확인해 보십시오.
왜 황정산이 황장산으로 바뀐 걸까요?
일단 황정산의 한자어 皇庭山은 임금의 정원인 산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그리고 황장산은 黃腸 즉 속이 누런 나무 즉 소나무를 이야기합니다.
속이 누런 소나무라.
최고의 질인 이 소나무를 일반적으로 황장목이라 부르는 거죠.
그게 울진 쪽으로 가면 금강송이 되고 춘양쪽으로 가면 춘양목이 된다고요?
머리를 스치는 게 낙동정맥을 하다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금강송 이야기입니다.
삿갓봉이나 백병산, 통고산 주위도 그러려니와 나아가 낙동정맥에서 가지 치는 가곡남지맥(신산경표 상의 쇠치지맥과 아구지맥 일부 겸침 부분)으로 가보면 우리나라는 소나무의 나라라는 걸 잘 알 수가 있죠?
이 소나무는 사실 우리나라 선비들의 꿋꿋한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 아니었습니까?
이 소나무는 조선시대의 禁山정책과 封山정책과 아울러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금산(禁山)제도의 기원은 조선 초기에서 비롯되는데, 한양의 궁궐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의 산(북 백악산, 남 남산, 서 인왕산, 동 낙산)의 지맥을 보전하기 위해 채석이나 벌목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집을 짓거나 무덤을 들이는 것을 금했다고 합니다.
이 금산정책은 세종 조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는데, 그 형태는 주맥(主脈)에 대한 보토(補土), 소나무 심기, 나무 베기나 돌 캐기 금지 등으로 실행됐다고 합니다.
결국 요즘의 그린벨트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이기도 합니다.
이 금산제도가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봉산 정책으로 바뀌게 됩니다.
조선시대의 조정에서는 궁실의 건축, 선박의 건조, 관곽과 신주의 조성을 위해 목재의 쓰임새가 매우 다양했습니다.
따라서 산림의 관리 및 정책도 매우 중요했던 것이죠.
특히 위로부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큰 혼란으로 말미암아 중앙정부의 지방 산림에 대한 관리 및 통제력이 약화되어 산림제도를 새로이 정비할 필요를 느껴서 시행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한편 아래의 민간에서는 건축, 조선, 관곽 제작 및 온돌의 보급과 화전의 개간으로 인해 목재의 수요가 증가됐었고.....
그런고로 17세기 후반 숙종 때부터 조선 정부는 산림에 대한 관리 정책을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나무를 이용하는 배를 만드는 정책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봉산의 종류를 지정하기에 이릅니다.
즉 율목봉산(栗木封山), 진목봉산(眞木封山), 황장봉산(黃腸封山), 삼산(蔘山), 향탄산(香炭山)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율목봉산은 영조 21년(1745)에 처음 하동과 구례에 지정됐으며, 말 그대로 밤나무재를 주로 생산했고 그것으로 신주(神主)와 신주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이 황장산은 황장봉산의 다른 이름이고 이 황장봉산은 고유명사가 아닌 조정에서 나무의 벌채 등을 함부로 하는 것을 금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는 이름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황장봉산은 이 산말고도 우리나라 다른 산들도 여러 곳 있는 겁니다.
한편 정부에서는 일반인들이 함부로 나무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금표나 봉산 표시를 하여 마을 어귀나 산 입구에 표시하여 놓았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 본 것만해도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서 사다리병창 오르는 코스 공단 초소 좌측에 있는 황장금표와 주천(백덕)지맥에 있는 사자산과 백덕산에 있는 법흥사 부근의 황장금표는 금산의 예입니다.
그리고 봉산의 예로는 이곳에서 가까운 동로면 명전리 마을 입구 하천변에 있는 봉산표시는 이 근처가 황장목때문에 국가로부터 지정된 봉산임을 알려주는 근거라 할 것입니다.
참고도 #1 명전리 봉산석
참고로 여지도서(18세기 중엽 발간)에는 그 봉산을 이 근처의 대표산인 대미산으로 지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대미산 주위 1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경표에는 이 봉우리가 황장산이나 황정산이 아닌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성으로 근처의 작성鵲城과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고도 #2
제가 2009년도 이곳을 지날 때에는 이 정상석과 다른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당시 찍었던 정상석의 옆면 사진입니다.
그러니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때 피신하였던 루트가 하늘재 ~ 작성(동국여지승람에 기록) ~ 석개재(낙동정맥) ~ 삼척 부근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갑니다.
참고도 #3 황장산과 봉상표석, 작성산성 각 위치
그리고 이 황장산은 그나마 백두대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 준 것이지 주위 경치나 볼거리 등은 이 황장산이 아닌 단양천 건너의 황정산이 원조입니다.
오늘의 산행이 끝나는 저수령에서 분기하는 1081.3 봉~ 수리봉1019m에서 이어지는 황정산960.1m이 이 황장산보다 더 명망이 있고 더 유명한 산이기도 합니다.
이 황정산에서는 도락산이나 소백산의 도솔봉, 금수산 등 멋진 산들이 다 조망되지만 이 황장산은 기껏해야 대간의 대미산 그리고 운달산, 조령산 정도 이외에는 별로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정상은 잡목으로 둘러쌓여 있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도 끼지 못했음은 물론 블랙야크 100명산에도 명함을 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블랙야크 100명산의 황정산은 이 황장산의 오기가 아니고 위에서 말한 황정산960.1m를 얘기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너무 황장산을 폄하했나요?
그래도 월악산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관계로 작년에 개방에 따른 큰 환호를 받았고 내용도 모르는 산악회들의 답사 대상지로 선정되어 관광객들이 몰리고 안생달 마을은 돈 좀 벌고 있습니다.
이정표의 안생달2.5km을 따릅니다.
설국....
가파른 경사를 미끄럼에 주의를 하여 내려가면,
05:32
출입금지 안내판이 대원들을 가로 막습니다.
우틀하면 오리지널 하산 코스.
안생달로 다시 내려가는 길이죠.
우리는 금표가 이닌 금줄을 넘어야 하겠군요.
즉 비탐 구간으로 들어서는 겁니다.
제가 홀로 걸었다면 여기부터 대간길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지도 #2
녹색 팬스를 우측으로 우회하여 능선으로 올라섭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군요.
팬스를 넘어 대간 능선에 달라붙자마자 가파른 바위구간이 나옵니다.
감투봉입니다.
어둠 속에서 전방을 주시하며 발 디딜 곳을 찾고 손으로는 잡을 바위와 나뭇가지를 찾습니다.
어두운 밤이라 잘못 헛딛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냥 사망입니다.
이 구간을 사진 촬영도 해야 하고 주위도 살펴보아야 하지만 날씨와 시간 관계로 촬영조차 하지를 못했습니다.
두어 번 조심스럽게 위험 구간인 1043.8봉을 지난 다음,
06:18
985.9봉 전위봉으로 오릅니다.
너른 마치 헬기장 같은 곳입니다.
06:26
985.9봉을 지납니다.
대간길은 오르내림이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봉에 오르면 바람이 너무 차가워지는군요.
1004.5봉 언저리에서 보이던 불빛이 바로 앞으로 다가옵니다.
교행交行을 해야 할 정도로 좁은 바윗길에서 서로 양보하면서 지납니다.
경상도에서 오신 분들 같이 억양이 억세군요.
어느 분은 벌재, 어느 분은 저수령에서 출발을 하셨다고 하는 등 들머리가 헷갈리십니다.
06:42
그러고 지나는 지도 #2의 '다'의 곳 1004.5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고,
07:01
아!
동쪽으로 붉은 빛이 올라옵니다.
그 아래로 동로면의 불빛들이 보이고....
07:12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았습니다.
기온도 서서히 오르고 있고....
1004.5봉에서 고도를 서서히 낮춥니다.
지도 #2의 '라'의 곳이 좀 주의를 할 곳입니다.
여기서 만연히 직진을 하다가는 그대로 864.5봉 ~ 861.0봉을 진행을 하여 바로 공민왕이 됩니다.
즉 작성으로 가는 길이라는 얘기입니다.
대간길은 여기서 급우틀입니다.
어느 친절하신 분이 나뭇가지로 '진입금지' 표시를 해 주셨습니다.
07:27
그러고는 지도 #3의 '마' 폐맥이재입니다.
적성리 새마을과 오목내 마을 이어주던 고개입니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도 확연하게 보이는군요.
무지 가파른 된비알을 내려와 잠시 평평한 길을 걷습니다.
08:15
벌재 건너 822.1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군요.
호젓한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위하여 장갑을 벗으면 그냥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아주 추운 날씨입니다.
08:20
지도 #2의 '바'의 곳의 헬기장에서 그 봉을 봅니다.
08:26
상당한 된비알입니다.
스틱을 하고 내려가는데도 상당히 힘겨워 하시는군요.
저를 비롯해 몇몇 분은 비스틱파들이어서 그 힘듦은 더 합니다.
08:27
벌재에서 황장산 방향으로 이 안내판이 등산객들의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원래는 월악산 방향 관음재에서 이곳까지가 전부 비탐구간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황장산 구간만 살짝 열어놓은 것이고...
동물이동통로를 통하여,
벌재로 내려섭니다.
간단하게 요기도 하고 주이도 둘러봅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벌재 동물이동통로.
단체 사진 촬영도 하고 이바구도 떠는데 버스 한 대가 들어옵니다.
용인팀인데 오늘은 짧게 벌재 ~ 저수령 구간을 간다고 하는군요.
하긴 대원들의 기량을 제일 잘 아는 집행부에서 저수령을 넘어 죽령으로 갈 경우 중간에 끊을 곳이 없다는 걸 염두에 뒀을 구간 조절입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억지로 시간을 내어 온 구간일 텐데...
뒷 얘기지만 제일 뒤에 가던 여성대원.
아직 산행 능력을 제대로 갖추진 못한 것 같은데 그래도 열정적으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대관령을 지날즈음 상당한 기량의 발전이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벌재와 이웃마을을 잇는 길 위로 다리도 새로 생겼습니다.
08:58
30분 정도 쉬었으니까 오늘 2라운드 산행을 시작합니다.
지도 #3
초장은 무조건 고도를 높이기만 하는 그런 곳입니다.
09:26
일단 822.1봉에 오릅니다.
좌로 틀어서 오르는 1026.7봉이 아주 높게 보이는군요.
올라야죠.
그런데 지금 걷고 있는 대간길은 지도에서 보다시피 거의 일직선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물줄기를 잊고 진행하기 십상입니다.
빨리 가기만 하면 됐지 뭔 말이 그렇게 많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대간길을 걷는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 땅을 동서로 구분하는 나라의 기둥 줄기 대간을 걸어보겠다는 서원을 세운지가 얼마나 됐다고 다 잊으신건지....
여히튼 여기서 물줄기를 보기로 합니다.
지금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저수령에서 단양단맥이 분기할 때 나오는 단양천이고 우측은 대미산에서 발원하는 금천이 주된 물줄기가 되어 주변 조그만 개울들을 다 흡수하는군요.
지금 이 우측으로 흐르는 물줄기도 다 그 금천으로 합류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백두대간이라는 것 때문에 그러니까 비가 왔을 때 이 좌측으로 가는 빗방울은 단양천 ~ 남한강 ~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가게 됩니다.
반면 우측으로 간 빗방울은 금천 ~ 내성천 ~ 낙동강으로 들어가 남해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끗 차이로 누구는 일본물들과 합쳐지고 누구는 중국물과 합쳐진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이따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10:10
벌재를 먼저 출발한 용인팀들과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게 되는군요.
1026.7봉으로 오릅니다.
정상은 사람 하나 제대로 서 있을 곳 없는 작은 바위봉입니다.
거기서 좌측으로 지나온 대간길을 바라 보는데 잡목때문에 보일 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가운데 뒤로 황장산이 뾰족하게 보이기는 합니다.
10:23
사면을 틀어 진행합니다.
좌측 제일 뒤로 문복대1077.6m가 드디어 고개를 내미는군요.
우측으로 동로 방향을 보고....
잠시 휴식을 가지면서 '산과 스키'님이 주시는 귤을 먹는데 완전히 '아이스 귤'이군요.
씹으면 시원한 얼음물물이 나옵니다.
마치 빙수를 먹는 느낌.
10:36
문복대가 바로 앞으로 다가오고....
10:48
드디어 문복대 정상에 오릅니다.
정상은 잡목이 점거하고 있어,
저수령 방향 바로 아래에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 느끼는 미스터리!
황장산에서 벌재.
그리고 벌재에서 문복대!
전에 이 루트를 진행할 때 눈 감고 다리 한 번 떼니까 벌재였고 문복대였었는데 오늘은 너무 멉니다.
이 체감 거리란 실제 거리의 약 3배 정도 되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눈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제 얘기에 다 동의를 하시는군요.
11:06
문봉재를 지나면서 충청북도 도계를 만납니다.
바로 좌측이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그 도계를 따라 걷습니다.
11:27
좌측으로 소백산관광목장을 봅니다.
그리고 그 뒷라인이 저수령에서 분기하여 수리봉 ~ 황정산으로 가는 단맥입니다.
이 대간길과 저 단맥 사이를 단양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마디 하고 갈까요?
수리봉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수리봉하면 그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잘못 된 교육때문에 "독수리를 닮은 봉우리"라고 얘기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수리'란 말은 우리나라 곳곳의 땅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산이름을 보면 산림청에 등록된 이름 중 랭킹 1위가 국사봉이고 2위가 바로 이 수리봉입니다.
이 수리란 말은 고구려말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즉 '높은 곳', '맨 꼭데기'를 뜻하는 순 우리말인 것이죠.
그러니 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서 억지로 '守理峰'이라고 한자로 표기한 것은 지나친 억지입니다.
이 예로 단오端午날의 순 우리말이 수릿날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태양이 높은 하늘의 한가운데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수리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정수리가 되지 않습니까?
맨 위에 있기 때문이죠.
독수리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이 녀석이 높은 곳을 날아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산봉우리'라는 말 많이들 쓰죠?
이것도 산봉수리에서 'ㅅ'이 탈락하여 산봉우리가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파생어가 '사라', '서리' '수레' '수락' '싸리'등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서울에 있는 수락산도 결국 이와 같은 의미의 높은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단맥을 할 때 많이 나오는 지명이 있습니다.
바로'수레너미'고개라는 곳이죠.
'싸리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레가 지나갈 만한 크기의 고개라거나 싸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보통 알려져 있죠?
하지만 이들은 그저 우리 옛 선조들이 보기에는 '높은 고개'라고 본 것 뿐입니다.
그걸 지역마다 달리 부른 것이고 그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운변화가 일어나서 변형이 된 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11:36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맨 뒷봉우리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려가는 능선을 따라가면 저수령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 앞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흘러가는 봉우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1:42
지도에 임도 표시가 되어 있더니 바로 여기입니다.
오미자 터널을 지나,
임도로 떨어집니다.
임도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바퀴 달린 자동차는 좀 그렇고 케터필러 달린 전차나 올라올 수 있으려나....
11:48
마지막 봉우리를 오를 때에는 항상 마음이 가볍습니다.
하산주에 대한 기대때문입니다.
더욱이 오늘은 송어를 먹으러 간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는 바참내송입니다.
바다는 참돔, 내륙은 송어라는 얘기죠.
11:54
그러고 오르는 봉우리입니다.
지도 #3의 '사'의 곳입니다.
무덤 바로 옆의 줄기가 여기서 분기하는 하나의 산줄기가 됩니다.
지맥의 원조라 할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를 보면,
참고도 #3 신산경표의 국사지맥
이 산줄기는 지금 이곳을 출발하여 매봉 ~ 용문산 ~ 국사봉 ~ 고종산을 거쳐 금천과 내성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9.9km의 국사지맥이 된다고 합니다.
그 기준은 도상거리가 30km가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그 줄기에 있는 산 이름 중 가장 높은 봉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얘기에 수긍을 하고 대간과 정맥을 마친 다음 지맥에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국사지맥은 우연찮게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따라 합수점으로 가게된 것이지 많은 산줄기들이 이론과는 다르게 진행을 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마침 '산과 스키'님과 제가 함께 걸었던 신산경표 상 영월지맥을 보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걸은 섬강지맥(신산경표 상의 영월지맥)을 다녀온 후 적은 글입니다.
신산경표에서 영월(기)지맥(이하 '영월지맥'이라고 표기함)이라고 부르고 있는 섬강지맥을 땜빵하는 날입니다.
섬강지맥 졸업 구간이기도 하죠.
섬강지맥이라고 하니까 낯설게 들리기도 할 겁니다.
사실 제가 신산경표에서 규정하고 있는 산줄기 체계 가령 지맥의 분류 기준, 방식, 이름, 근거 등에 관하여 의심을 품게된 단초를 제공해 준 산줄기가 바로 이 영월지맥입니다.
영월지맥이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에는 영춘지맥이라고 불렸다고 하죠?
저는 그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언제는 영춘지맥이었다가 새롭게 영월지맥이 되었다?
영춘이라는 이름은 영월과 춘천이라는 지역의 이니셜을 딴 이름이라는 걸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게 전혀 별개의 이름인 가령 '갑을지맥'이었다가 영월지맥으로 바뀌었으면 좀 내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즉 "음, 이게 새로운 체제 혹은 분류기준에 의해 변경된 것이로구만."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면 더 이상의 다른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춘지맥이 영월지맥 + 춘천지맥이라는 내용을 보고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더군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얘깁니다.
참고도 #1 영춘지맥의 중복구간
영춘지맥이라고 명명한다면 소위 삼계봉1104.6m ~ 청량봉920.3m까지의 한강기맥의 일부 구간이 이 지맥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당한 모순입니다.
물론 이들 두 지맥이 한강기맥에서 분기되는 지점 그러니까 삼계봉1104.6m ~ 청량봉1054m까지의 거리는 약 11.2km정도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이 두 지맥을 이어갈 때에는 하뱃재 ~ 청량봉 ~ 삼계봉 ~ 태기산 주차장 정도로 진행을 하면 그 이후 구간부터는 접속 구간 없이 연속하여 진행할 수 있는 편리성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진행하는 이들이 판단할 문제이지 세워놓은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아무런 까닭도 없어 보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영춘지맥이라는 이름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변경된 것은 아주 타당하고 당연한 결과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삼계봉이나 청량봉 등 이 두 봉우리의 이름도 국가에서 공인한 이름이 아닌 이 두 지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편의에 따라 작명된 산이름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맥岐脈이니 지맥枝脈이니 하는 용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 개념은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그것들이 아닙니다.
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10년 육당 최남선은 일제로부터 우리나라 고전을 지키고자 조선광문회를 만들어 '산경표'를 영인본으로 발간합니다.
이 영인본 '산경표'를 1980년 이우형 선생이 인사동 고서적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이에 앞서 1903년 일본인 고토 분지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줄기 개념인 '산맥山脈'을 마치 자신이 새롭게 명명한 이름인양 '조선 산맥론'이라는 자신의 논문에 버젓이 도용盜用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일제 통감부, 총독부에 의해 그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산줄기들이 분해되어 지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고 그것은 정당한 산줄기 체계기 되어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것을 이우형 선생이 산경표를 발견하면서 일제가 우리 산줄기 체계를 곡해曲解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산맥 즉 태백산맥이 맞느냐 산줄기 즉 백두대간이 맞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논쟁을 '제 1차 산맥논쟁'으로 부릅니다.
- 2005년 국토연구원 김영표 박사에 의해 주도된 제2차 산맥논쟁은 이 내용과 무관하므로 거론하지 않기로 함
이 '제1차 산맥논쟁'에 힘입어 백두대간을 답사하는 열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허상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지질구조선을 걸을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실상인 백두대간을 걷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뒤로 미루겠지만 이우형, 박용수 같은 이들에 의해 산경표가 해제가 되고 그리고 조석필 같은 이에 의해 산경표의 1대간 9정맥이 정착되기에 이르릅니다.
물론 여기에는 1988년 한국대학산악연맹의 학술지 엑셀시오와 1990년 월간지 '사람과 산'에 특집으로 실린 관련 내용들이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이어 조석필 선생의 '산경표를 위하여'와 그 책의 개정증보판 '태백산맥은 없다'가 산맥을 차별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게 됩니다.
즉 조석필 선생은 이 '태백산맥은 없다'에 기맥이니 지맥이니 하는 개념을 제안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생은 1대간 9정맥에 한정되어 있는 산줄기의 개념을 기맥, 지맥까지 확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백두대간은 간幹 즉 기본 산줄기이니 더 건드릴 게 없고 맥脈은 가지 줄기이니 얼마든지 개념 확장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줄기들 중에는 정맥급에 해당하는 즉 10대강 혹은 10대강에 버금가는 세력을 가지고는 있는 줄기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산경표에 이미 13정맥을 한정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해 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줄기에 정맥 대신 기맥岐脈이라는 계급을 하나 도입하여 부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한강기맥, 영산북기맥 그리고 땅끝기맥을 제시합니다.
여기까지가 조석필 선생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톤을 이어 받은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입니다.
선생은 2004년 발간한 신산경표에서 당연히 기맥 개념을 도입합니다.
나아가 기맥에 이어 지맥으로 산줄기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그리고 2010년 개정판에서는 북한의 산줄기까지 포함시키면서 남한의 경우 1대간 7정맥 6기맥 157지맥-최근 5지맥을 추가하여 162개 지맥이 됨-으로 산줄기를 정리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거론이 되고 있는 지맥枝脈은 산맥이나 일반 지리학이나 지형학에서 얘기하는 산맥의 가지줄기인 지맥支脈과는 다릅니다.
즉 지맥枝脈은 그 이름과 붙여져 고유명사로 활용되고 있으며 반면 지맥은 그저 보통명사의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죠.
어쨌든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가 발간을 저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칭합니다.
한편 선생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즉 남한의 한북정맥, 낙동정맥 등 9개의 정맥을 7개의 정맥으로 정리를 한 것입니다.
- 7개의 정맥 해설에 관하여는 월간 산 2014. 5월호 ~ 같은 해 12월호에 게재된 졸고拙稿 '남한의 7정맥 가이드' 참조-
산경표의 대원칙인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즉 정맥은 10대강을 가르는 산줄기이므로 당연히 그 10대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야하고 거기서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산경표의 호서정맥과 금강정맥이 그 결과물입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신산경표의 호서정맥과 한남정맥 그리고 산경표 상의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 한남정맥을 그 예로 보기로 합니다.
참고도 #2 신산경표의 호서정맥, 한남정맥 산경도
위 참고도 #2의 빨간선이 한남금북정맥이고 파란선이 한남정맥 그리고 검은선 + 녹색선이 금북정맥입니다.
산경표를 근거로 그은 그림입니다.
살펴보면 겸침줄기인 빨간색의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 상의 속리산에서 분기하여 금강과 한강의 지류를 발원시킵니다.
그러니 이 조건은 정맥의 조건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이 정맥이 맥을 다하는 곳은 이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이 아니라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칠장산 부근입니다.
모순입니다.
신산경표는 이 점에 주목합니다.
그러고는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댑니다.
그 끝을 바다와 강의 만나는 합수점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남정맥의 경우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으로 진행을 하니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금북정맥의 경우에는 그 끝이 합수점이 아닌 태안의 안흥진으로 가잖습니까.
금북.
말 그대로 금강 북쪽의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산줄기가 금강과 바다의 합수점이 아닌 안흥진으로 가다니!
선생은 백월산에서 그 줄기를 안흥진이 아닌 장항쪽으로 남진南進시킵니다.
그렇게해서 만든 산줄기가 검은선 + 노란선입니다.
그 줄기가 올바로 진행하는 금강과 관련된 정맥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의 처리가 문제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를 한남이나 금북에 소속시켜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 잣대로 '길이' 즉 '도상 거리'를 내세웁니다.
승자독식제勝者獨食制가 여기에 도입됩니다.
금북에 해당하는 그 줄기의 도상 거리는 219.4km이고 한남정맥은 177.4km.
금북의 줄기가 한남정맥보다 세력이 더 큽니다.
따라서 겹침줄기인 옛 한남금북정맥의 158.8km는 금북줄기의 몫이 됩니다.
선생은 이 점에 관하여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 줄기의 끝이 반도를 향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등급의 강을 따르는 줄기를 본줄기로 하였고, 동일등급에서는 긴산줄기를 본줄기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신산경표 32쪽).
그래서 생성된 줄기가 378.2km의 빨간선 + 검은선 + 노란선입니다.
새로 줄기를 만들었으니 이름을 붙여야죠.
당연히 금강이북을 지키고 있는 울타리이니 금북정맥이라고 명명해야 하나, 이 이름은 원산경표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박성태선생은 호남정맥이 호남이라는 지방 이름을 붙인 것에 착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충청남도 지방 부근이 '호서'라는 지방이름이 있으니 여기서 '호서'를 따 호서정맥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남금북정맥은 없어지고 호서정맥과 한남정맥 등 두 개의 정맥으로 정리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겹침줄기인 호남금남정맥도 같은 방법으로 정리되어 호남정맥과 금강정맥으로 정리되고....
이렇게 남한의 1대간 9정맥이 1대간 7정맥으로 바뀌게 됩니다.
적어도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에서는 말입니다.
이럴 경우 한 가지 명제를 바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정맥은 대간과 또 다른 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라는 개념입니다.
원산경표에서도 "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한 산줄기"여야 한다는 개념은 겹침 줄기 문제때문에 극복이 될 수 없었는데 이 점은 신산경표에 들어서도 마찬가지 결과입니다.
여기에 정리하고 남은 녹색의 옛 금북정맥 자투리가 문제됩니다.
박성태 선생은 "이 줄기(129.4km)가 그래도 예전에는 정맥이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격을 존중하여 기맥"이라는 계급을 부여하여 금북기맥이라 이름합니다.
기맥을 성골聖骨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골眞骨 정도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맥岐脈은 ① 정맥급에 속할 정도의 세력을 가졌으나 10대강을 구획하지 못한 줄기 가령 영산기맥, ②과거에 정맥이었으나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하 구획을 하다보니 그 계급을 잃어버린 줄기 가령 금북기맥 등으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내용이야 어떻든 신산경표가 산줄기의 영역을 확장하여 이를 지도로 만들고 책으로 정리하였다는 데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이 7정맥이 산꾼들이나 민간지리학자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더 큰 이유는 중요하고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즉 선생은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의 정신에 충실하게 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용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9정맥을 7정맥으로 바꾸고 나아가 그 정맥의 끝을 10대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돌리는 어쩌면 혁명에 가까운 결단이었습니다.
산자분수령이 무엇입니까?
물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원래의 의미는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온다."라는 뜻일 것이고 이게 어법에도 맞습니다.
즉 自는' ~로 부터'라는 조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분수령은 낮은 산이나 고개를 뜻하는 고유명사일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대동여지도 발문跋文에 등장하는 말이니 산경표와도 그리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산경표에 들어오게 되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즉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는 관용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곧 산줄기는 분수계가 된다는 것이죠.
저는 이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1원칙'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다시 신산경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선생이 위와 같이 9정맥을 7정맥으로 만든 주된 이유는?
예. 그렇습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충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의 산줄기는 그 기본 줄기(가령 백두대간)에서 다른 가지 줄기가 갈라져 나올 때(가령 호서정맥) 그 두 줄기 사이에서는 반드시 물줄기 하나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지 줄기(가령 호서정맥)는 그 사이에서 발원한 물(가령 금강)이 더 큰 물(가령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2원칙'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2원칙'은 정맥뿐만 아니라 그 계급 이하의 줄기에도 공히 적용된다고 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칙이 중요하고, 이 원칙은 기맥이나 지맥을 논할 때 그 중요도가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내륙에서 소멸하는 산줄기에 적용을 해보면 위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하나의 산줄기 가령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다른 산줄기 가령 영월지맥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 자세히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편 박성태 선생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즉 정맥과 기맥 이하의 산줄기에 눈을 돌립니다.
그러고는 전국의 산줄기를 지도에 그린 다음 백두대간. 정맥, 기맥에서 가지를 쳐 나간 산줄기들을 추려 낸 다음 그 중에서 30km급 이상의 줄기를 다시 추려냅니다.
'30km'라는기준을 세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정적이어서 가장 선호하는 '3'이라는 숫자에 착안한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어쨌든 30km 이상의 산줄기들을 추려 지맥의 범주에 집어 넣고 거기에 이름을 붙입니다.
작명법은 ①일단은 그 지맥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을 사용하여 이름을 붙입니다.
대부분의 지맥이 이에 해당합니다.
②그리고 산 높이에 불구하고 유명한 산이 있을 경우 그 산 이름을 붙이는데 여기에는 병풍지맥이 해당됩니다.
③또한 특정한 곳으로 가는 경우 그 지방의 이름 등을 고려해 이름을 붙이기로 한 것입니다.
가령 영월지맥이나 춘천지맥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하여 157지맥을 만들어 신산경표에 일일이 그 이름을 부여하였습니다.
대단한 작업이었습니다.
지리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보는 지는 몰라도 산꾼들의 산행 방법에 대단한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사실 기존에 능선 종주산행의 대표적인 것이 태백산맥 대종주, 화대종주, 서북능선 종주 등이 대단한 꾼들 사이에서만 진행되던 것들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독점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두대간이 알려지고 이어서 정맥, 기맥, 지맥 등이 알려지면서 종주 산행은 일반화 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즉 이제는 백두대간, 1대간 9정맥 종주 등에 이어 157지맥 종주에 도전하는 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아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인터넷의 보급은 이를 더 거들고 오히려 촉진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산악회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대간, 정맥 나아가 지맥만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산악회와 모임들이 늘어나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신산경표의 효과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산자분수령의 토대하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산꾼들은 마치 "절대로 물을 건너지 않기로 맹세를 한 사람들의 집단" 같았습니다.
한편에서는 신산경표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 의해 신산경표의 모순점을 하나둘 씩 검증을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작업의 일환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한결같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2원칙'을 준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루하시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진행하는 영월지맥은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산줄기입니다.
영춘지맥이라는 이름은 절대적으로 안 됨은 이미 말씀드렸고...
간단하게 영월지맥을 봅니다.
참고도 #3 신산경표 상 영월지맥
인터넷을 찾아보면 대체로 영월지맥은 이렇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한강기맥 상의 삼계봉(1,06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풍취산(699m), 매화산(1,084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까지 달리다가 다시 남대봉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 감악산(954m), 용두산(871m), 삼태산(87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지나 남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4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문제는 한 사람이 이렇게 쓰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걸 무슨 신줏단지나 되는양 무조건 퍼 나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그 맥을 다하는..."이라고 만 말할 뿐 합수점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다시 그 영월지맥의 진행상황을 살펴보까요?
영월지맥은 삼계봉을 출발하여 태기산을 넘어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처음에는 백덕지맥을 낳고 남대봉에서는 백운지맥을 낳습니다.
그 백운지맥은 천등지맥과 봉화지맥을 낳는군요.
계속 진행하는 영월지맥은 다시 갑산지맥과 금수지맥을 낳고는 태화산이 있는 영월에서 남한강으로 잠깁니다.
구약의 창세기편을 보는 듯하군요.
어쨌든 이 지맥은 지맥의 끝인 영월이라는 지방 이름을 따서 영월지맥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합수점이 아닌 그저 남한강으로 들어간 것만 나옵니다.
지도를 보면 오히려 평창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으로 가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참고도 #4 주왕지맥, 백덕지맥 그리고 영월지맥 지도
하지만 평창강의 역할은 이 영월지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산줄기입니다.
위 참고도 #4에서 보듯 평창강은 오히려 주왕지맥과 관련이 있는 물줄기입니다.
보시다시피 주왕지맥은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줄기이고 평창강은 이때 한강기맥과 주왕지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입니다.
즉 평창강은 이 주왕지맥만 책임지면 되고 또 그게 맞습니다.
이른바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왕지맥은 계방산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분기하여 평창강과 자신보다 상위 개념의 물줄기인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줄기라는 얘기입니다.
위 참고도 #4의 주왕지맥지도를 보면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 줄기가 영월지맥입니다.
이 영월지맥도 위 주왕지맥과 같은 경로로 같은 방식이 공히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줄기는 가장 유명한 산인 치악산의 이름을 제치고 영월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신산경표에서는 '특정한 곳으로 가는 줄기'라고 해설을 달았습니다.
특정한 곳이라...
추측해보면 그저 산경을 위주로 파악했다는 게 제1감第1感입니다.
오히려 치악지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도 #5 섬강
영월지맥을 분기 부분을 좀 더 확대하여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산경표의 정신에 입각하여 백지도 위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이 줄기가 삼계봉에서 가지를 칠 때 이 갈라진 줄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있습니다.
바로 섬강입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나오는 바로 그 섬강입니다.
平丘驛(평구역) 말을 가라 黑水(흑슈)로 도라드니,
蟾江(셤강)은 어듸메오, 雉岳(티악)이 여긔로다.
그렇다면 이 영월지맥이 가야 할 곳은?
이 영월지맥이 맥을 다하는 곳이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이미 눈치채셨을 겁니다.
바로 섬강과 이 섬강보다 상위 계급의 강인 남한강이 만나는 곳.
그 합수점에서 이 영월지맥의 맥이 끝나야 합니다.
아까 주왕지맥도 그랬죠?
평창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서 맥을 다했으니까....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에 따라 이 줄기는 이 섬강과 섬강보다 한 끗발 높은 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일 터!
그 합수점만 찾으면 됩니다.
참고도 #6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
자주색 - 겹침 줄기, 하늘색 - 백운지맥, 연고동색 - 신산경표 상 영월지맥
위 지도의 연두색으로 싸인 부분.
거기가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입니다.
따라서 이 줄기가 맥을 다하는 곳은 바로 그 줄기여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산경표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이론입니다.
후에 이야기할 대한산경표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고요.
줄기를 찾아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아 합수점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입니다.
이른바 수체계이론樹體系理論이죠.
신경수 선생이 주창한 이론이기도 하죠.
우리나라 산줄기의 체계를 나무와 같다고 보는 겁니다.
즉 뿌리는 백두산이고 줄기는 백두대간 그리고 큰 가지들은 정맥 작은 가지들은 지맥이라고 보는.....
그러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산경표의 백운지맥을 그대로 따라 올라가면 치악산의 남대봉에서는 본 궤도로 접어들게 됩니다.
즉 남대봉 ~ 1104.6봉(이른바 삼계봉)에서는 신산경표의 영월지맥이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지맥은 남대봉(79.8km)에서 좌틀하여 감악산 ~ 가창산 ~ 태화산으로 진행을 하여 그냥 남한강(54.5km)으로 들어가는 그 맥은 산경표에 충실하지 못한 진행입니다.
주왕지맥에서는 분명 합수점으로 갔는데 영월지맥에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일관성의 결여입니다.
생각건대 신산경표는 산경 즉 산줄기가 긴 쪽으로 무조건 진행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히려 치악산 남대봉에서 우틀하여 신산경표 상의 백운지맥(46.9km)을 따라 진행을 하여 섬강과 남한강의 함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게 산경표의 기본 정신에 맞다고 할 것입니다.
신산경표에서 그렇게 산자분수령을 외쳐 9정맥을 7정맥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음에도 정작 지맥에 와서는 산자분수령이 아니라 긴 산줄기 위주로 편제를 하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산경표파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자분수령에 충실하다고 할 '대한산경표'에서는 이 올바른 줄기를 이름하여 섬강지맥이라고 부릅니다.
어차피 수계水系를 따라야 올바른 산줄기가 나오는 만큼 그 강江 혹은 천川의 이름을 그대로 붙이자는 것입니다.
그게 오히려 그 강이나 천에게도 책임감을 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니 일견 타당하다고 보여집니다.
대한산경표의 취지를 지지합니다.
이럴 경우 주행거리는 영월지맥이 134.3km, 섬강지맥이 126.7km로 섬강지맥이 조금 짧습니다.
역시 신산경표는 산경위주로, 대한산경표는 수계 위주로 지맥이 그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월지맥의 나머지 줄기의 처리도 문제가 됩니다.
참고도 #7 제천지맥
지도를 보면 이 '섬강지맥'과 기존의 영월지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제천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곳으로 진행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남대봉 ~감악산 ~석기암 ~ 가창산(38.4km + 0.9km) ~ 갑산~대덕산 ~부산(64.2km)에서 남한강과의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85.5km의 줄기로 확정되게 됩니다.
곧 영월지맥의 자투리 구간과 기존의 갑산지맥이 여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섬강지맥이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을 향하여 진행하다 태기산을 조금 더 내려간 지점에서 좌측으로 줄기를 하나 내고 그 줄기와의 사이에서 주천강을 발원시킵니다.
주천강도 책임을 느끼는 만큼 임무를 부여하여 주기로 합니다.
그 주천강은 이 섬강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를 싸고 진행합니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강 즉 평창강을 만나는 합수점에서 이 산줄기를 소멸시킵니다.
참고도 #8 주천지맥
즉 이 산줄기는 태기산에서 1.3km 진행한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분기하여 청태산1194.2m, 백덕산1350.1m등을 거쳐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고 도상거리 약 56.1km의 산줄기가 됩니다.
신산경표는 이 산줄기를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덕산의 이름을 따서 백덕지맥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이 백덕지맥은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에 충실합니다.
영월지맥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입니다.
영월지맥은 백덕지맥이나 주왕지맥과 다른 '특별산줄기'입니까?
그렇지 않잖습니까.
그럼 다른 줄기를 더 보겠습니다.
그 윗줄기인 주왕지맥은 이미 살펴봤고 섬강 다음의 흑천을 봅니다.
참고도 #9 흑천지맥
같은 원리로 한강기맥 상의 금물산을 떠난 줄기인 신산경표 상의 성지지맥은 한강기맥에서 가지를 칠 때 흑천을 발원시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흑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면 간단해집니다.
즉 성지봉 ~ 덕갈고개 ~ 삼각산을 지나 우틀하여 수리봉 ~ 한치고개 ~ 매봉산 ~ 주읍산 ~개군산을 지나 흑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이 잠기게 되고 이게 올바른 주행입니다.
그럴 경우 이 지맥의 거리는 성지지맥(녹색선)의 55.9km보다 다소 짧은 49.3km의 줄기(참고도 #7의 진분홍색)가 됩니다.
역시 산산경표는 긴 산줄기 즉 산경을 따랐습니다.
산자분수령을 왜곡했다기 보다는 충실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대한산경표에서는 수계水系를 근본으로 산줄기를 그었기 때문에 그 산줄기의 이름을 강 혹은 천의 이름을 따 작명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섬강지맥이니 흑천지맥 그리고 평창지맥이니 주천지맥 등입니다.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혼란스러우시지요.
뭐 그렇다고 해서 산줄기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박성태 선생의 큰 업적이 반감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들은 다 박성태선생의 신산경표를 근간으로 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대한산경표의 견해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것들은 선생께서 하신 작업의 모조품 혹은 이른바 짝퉁입니다.
따라서 이런 박성태 선생의 업적이나 명예에 조금이라도 누累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위와 같은 내용들을 박성태 선생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선생의 폄훼貶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누구라도 제 글로서 충분히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맥도 국사지맥이라는 이름보다는 금천지맥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 갈림길의 이정표도 하루 빨리 금천지맥이라고 표기를 해야겠지요.
금천지맥에 대한 안내판과 함께....
된비알을 내려갑니다.
양지바른 곳에 용인팀들이 먹거리 안주를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드시는 건 좋은데 뒷정리는 깔끔하게!
12:00
정확하게 정오에 하산을 하게 됐군요.
12:00
익히 눈에 익은 저수령 표지석.
쇠락한 저수령 휴게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입니다.
단양 쪽 표지석을 보고 오늘 구간 산행을 마칩니다.
오늘 바로 안생달에서 대간 길로 들어와 진행을 했으면 아마 10시 좀 넘은 시간에 도착을 하여 죽령으로 향했을 건데...
그랬을 경우 저녁 9시 정도에 죽령에 떨어졌을래나요?
그만큼 등로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 열심히 함께 걸은 온누리팀 대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산줄기에 대한 얘기 많이 하십시오.
자주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