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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삼락(人間三樂)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을 일컫는 말이다
人 : 사람 인(人/0)
間 : 사이 간(門/4)
三 : 석 삼(一/2)
樂 : 즐길 락(木/11)
사람은 저마다의 재주가 있고, 목적하는 바가 달라서 각기 느끼는 행복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의 즐거움을 세 가지로 나타내보라 할 때 내세우는 것이 다르다.
욕심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대부분의 인간은 부귀와 명예를 갖고서도 만족을 못한다. 그런데 다른 행복, 다른 즐거움을 드는 선현들이 말하는 행복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모든 유학자의 영원한 스승 공자(孔子)의 삼락(三樂)을 보자.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힘(學而時習),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일(有朋自遠方來),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人不知而不慍)"을 꼽았다. 논어(論語) 첫머리 학이편(學而篇)에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편에는 또 다른 삼락이 나온다. 공자가 태산 기슭을 지나다가 비파를 들고 한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노인 영성기(榮聲期)를 만났다. '영계기(榮啓期)'라고 기록한 책도 있다.
공자가 "뭐가 그리 즐거우시냐?"고 묻자, 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과, 남자로 태어난 것, 이미 95세가 됐을 만큼 장수하는 것을 꼽았다(吾得爲人一樂也 吾得爲男二樂也 吾行年九十五有矣三樂也)." 공자는 그를 "스스로 여유로운 사람(自寬人)"이라고 찬탄했다.
공자 다음의 아성(亞聖)인 맹자(孟子)는 "부모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는 것(父母俱存 兄弟無故), 하늘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굽어 봐 사람에 부끄러울 일이 없는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영재들을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教育)"을 들었다. 모두 남이 주는 것보다 자기가 닦는 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의 다산(茶山) 선생은 젊은 시절 '수종사에서 노닐던 기록(游水鐘寺記 유수종사기)'에서 세 가지 즐거움을 나타냈다.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오는 것(幼年之所游歷 壯而至), 곤궁했을 때 지냈던 곳을 출세한 뒤 오는 것(窮約之所經過 得意而至), 홀로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 맞는 벗들과 오는 것(孤行獨往之地 携嘉賓挈好友而至)"이다. 이때 다산은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었다. 진사가 된 21세 때의 글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일독(一讀), 이호색(二好色), 삼음주(三飮酒)를 세 가지 즐거움이라고 했다. 책 읽고 글 쓰며 항상 배우는 선비정신, 사랑하는 이와의 변함없는 애정, 벗과 함께 어울리는 풍류를 말한 것이리라. 그의 멋진 글씨가 남아 있다.
인생은 잘못을 고쳐 가며 사는 것이다. 인조(仁祖)때 학자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인생삼락을 이렇게 꼽았다.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선인들은 주변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찾고, 조그만 성취에도 자족할 수 있는 것을 가장 크게 쳤다.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서양 격언처럼 자기의 분수를 알고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철학자 안병욱(安秉煜)의 말도 기억하자. "행복과 불행은 같은 지붕 밑에 살고 있으며, 번영의 바로 옆방에 파멸이 살고 있고, 성공의 옆방에 실패가 살고 있다."
공자(孔子)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知之者 不如好之者),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好之者 不如樂之者)"고 말했다.
맹자(孟子) 고자편(告子篇)에 고자(告子)께서 말씀 하시기를, "식욕과 성욕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라(食色性也)"고 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하고 싶을 때 하면 이것이 삼락(三樂)이 아닐런가?
◼ 인간삼락(人間三樂)
閉門閱會心書(폐문열회심서)
開門迎會心客(개문영회심객)
出門尋會心境(출문심회심경)
此乃人間三樂(차내인간삼락)
문 닫으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문 열면 마음에 맞는 손을 맞이하며, 문을 나서면 마음에 드는 산천경개 찾아가니, 이것이 사람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네.
(申欽 象村集)
삼락(三樂)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맹자(孟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을 떠올릴 것이다. 맹자는 말한다. "군자에세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노릇 하는 것은 거기에 끼지 못한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고, 그리고 점잖게 한마디 한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에게 아무 탈이 없으면 첫 번째 즐거움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없으면 두 번째 즐거움이요,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면 세 번째 즐거움이라
(孟子 盡心 上)
일찍이 공자는 논어(論語) 계씨(季氏) 편에서 '유익한 세 가지 즐김(益者三樂)'과 '해로운 세 가지 즐김(損者三樂)'을 예시한 바 있다.
익자삼요(益者三樂)란 예악으로 절제하기를 좋아하고(樂節禮樂), 남의 착한 점을 말하기 좋아하며(樂道人之善), 어진 벗 많이 갖기를 좋아하는 것(樂多賢友益者)이다.
손자삼요(損者三樂)는 방자하게 즐기기를 좋아하고(樂驕樂), 편안히 놀기를 좋아하며(樂佚遊), 주색의 향락을 좋아하는 것(樂宴樂)이다.
공자가 고사(高士)인 영계기(榮啓期)에게 "선생에게는 어떤 즐거움이 있습니까?"고 물었다.
天生萬物, 唯人爲貴, 而吾得爲人, 是一樂也.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존재인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男女之別, 男尊女卑, 故以男爲貴, 吾旣得爲男矣, 是二樂也.
남녀 가운데 존귀한 남자로 태어난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人生, 有不見日月, 不免襁褓者, 吾旣已行年九十矣, 是三樂也.
태어나 해와 달도 못보고, 강보(襁褓)도 면치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90세가 된 오늘까지 살고 있으니 세 번째 즐거움이올시다.
열자(列子) 천서(天瑞) 편에서 영계기는 대답 끝에 한마디 보탠다. "가난은 선비의 마땅한 일이요, 죽음은 삶의 끝인데 무엇이 걱정이리오."
貧者士之常也, 死者人之終也, 當何憂哉.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꼽은 삼락(三樂)도 자못 흥미롭다. "바깥 도둑이 침범하지 아니하고 전야에서 평생을 마치게 된 것이 일락이요, 적도(赤道)의 북쪽, 북극(北極)의 남쪽에 태어나 따뜻하고 서늘함이 알맞은 것이 이락이며, 조상의 덕(蔭德)으로 굶주림을 면하게 된 것이 삼락이라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설파한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신에게 감사했다는 세 가지 이유도 눈길은 끈다. 현대적인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동양적인 '삼락(三樂)'과 맥이 닿아 있다.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 야만인이 아닌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이라 했다.
고대의 성인이나 현인,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지식엘리트들의 '삼락(三樂)'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소박하지만 낯설고 고답적(高踏的)으로 들린다.
어느 중국인이 제시했다는 세 가지 즐거움이 어쩌면 현대를 사는 필부(匹夫)들에게 좀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소회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權尊位高, 前呼後擁, 一樂也.
권세와 지위가 높아 앞에서 부르면 뒤에서 따르니 첫 번째 즐거움이요.
當老板, 開名車, 住豪華別墅, 二樂也.
사장이 되어 명차(名車)를 타고 호화별장에서 사니 두 번째 즐거움이요.
得天下美女而勾引之, 三樂也.
천하의 미인을 만나 그를 유혹하니 세 번째 즐거움이라.
◼ 인간삼락(人間三樂)
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끌리는 곳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 신흠(申欽) 야언(野言) 1 상촌고(象村稿) 中에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성향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다. 옛사람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중임을 맡아 일할 때는 예법과 도학을 숭상하다가도 파직을 당하거나 하면 '장자(莊子)' 같은 책도 읽고 은자들이 좋아하는 아취 있는 글도 즐겨 읽었다.
신흠이 편찬한 '야언(野言)'에는 운치 있는 간결한 문장 속에 삶의 철리가 담겨 있는 청언 소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가 40대 후반에 파직을 당하여 김포와 춘천 등지에 살 때 명나라에서 수입한 서적을 통해 전인의 문장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아 엮은 책이다.
위에 소개한 글은 원래 명나라 문인 오종선(吳從先)의 '소창청기(小窓淸紀)'에 수록되어 있는 글인데, 신흠이 옮길 때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글자를 가감하였다.
문학 평론과 독서에서 당대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법한 허균 역시 이 사람의 글을 '한정록(閒情錄)'에 선록해 놓은 것을 볼 때, 임진왜란의 와중에 명나라 서적이 조선에 끼친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신흠의 글에서 '마음에 들다(會心)'라는 말이 두드러진다. 남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깊이 체험한 것일까. "책속에는 자연 마음 맞는 곳이 있는데, 이 세상엔 나를 알아주는 이 누구일까(書中自有會心處, 世上誰爲知己人)?"는 시구도 보인다.
어디 신흠뿐이랴! 예나 지금이나 고상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지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오죽하면 상우(尙友)라 해서 당대를 벗어나 옛날의 어진 이를 벗하려고 했을까.
'맹자' 진심장(盡心章)에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이 있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이고,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둘째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이 또한 더 없이 좋은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사람이 실의에 빠지거나 하면 밖으로 향한 마음을 거두고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술을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이 일종의 자기 위로나 연민 아니던가.
요즘은 살아가는 속도에 치여 나를 차분히 돌아보거나 마음의 충일감을 느낄 때가 적다. 밤, 장마철과 함께 겨울을 삼여(三餘)로 꼽았던 옛 사람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 신흠(申欽)의 야언(野言)
다음은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이 쓴 상촌고(象村稿) 卷之48 야언(野言)이다.
田居歲久, 已作世外人.
전원생활을 해 온 세월이 오래 흐르다 보니 이제는 세상 밖의 사람이 다 되었다.
適披前修著撰, 有會心者, 錄爲小帙, 間附己意, 名以野言, 迹其實也.
어느 날 예전에 지었던 글들을 펼쳐 보다가 마음속으로 부합되는 것이 있기에, 자그마한 책자로 엮어 그 속에 나의 뜻을 곁들이고 야언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나의 현실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其言宜於野, 可與野人言也.
여기에 나오는 말들은 그저 야어(野語)라고나 해야 맞을 것이니, 야인(野人)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 볼 만한 것들이라고 하겠다.
口中不設雌黃, 眉端不掛煩惱, 可稱煙火神仙.
입 속에 자황(雌黃)을 담지 않고 미간(眉間)에 번뇌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면, 연화(烟火)의 신선이라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隨意而栽花竹, 適性而養禽魚, 此是山林經濟.
뜻 가는 대로 꽃이나 대나무를 재배하고 성미에 맞게 새나 물고기를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산림(山林)에서 경영하는 생활이라 하겠다.
子雲玄亭, 停橈問字; 淵明菊逕, 携酒款扉, 終覺多事.
자운(子雲)의 현정(玄亭)엔 배를 타고 와 기이한 문자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연명(淵明)의 국화길엔 술병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일들은 아무래도 번잡스럽게만 느껴진다.
不如仲蔚逢蒿, 袁安高臥.
쑥대밭 속에 묻혀 살았던 중울(仲蔚)이나 태평스럽게 누워 있었던 원안(袁安)의 처지가 낫지 않겠는가.
諸病皆可醫, 惟俗不可醫, 醫俗者唯有書.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으나 속기(俗氣)만은 치유할 수 없다. 속기를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飮酒有眞趣, 不在醉, 不在不醉.
술을 마시는 진정한 아취(雅趣)가 있는데, 그것은 취하는 데에도 있지 않고 취하지 않는 데에도 있지 않다.
微酡有邵堯夫, 酩酊有劉伯倫.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사람으로는 소요부(邵堯夫)를 들 수 있고,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으로는 유백륜(劉伯倫)을 들 수 있다.
逸客高蹤, 幽人妙韻, 與會心友談之, 亦自神王.
일객(逸客)의 고상한 행적과 유인(幽人)의 절묘한 운치에 대해서 마음에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 또한 신기(神氣)가 저절로 뛰놀게 된다.
友之疏狂者, 足啓庸俗, 通達者足破拘攣, 博學者足開孤陋, 高曠者足振頹墮, 鎭靜者足制躁妄, 恬淡者足消濃艶.
현실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도 의기(義氣)가 드높은 친구를 만나면 속물 근성을 떨어버릴 수가 있고, 두루 통달한 친구를 만나면 부분에 치우친 성벽(性癖)을 깨뜨릴 수가 있고, 학문에 박식한 친구를 만나면 고루함을 계몽받을 수 있고, 높이 광달(曠達)한 친구를 만나면 타락한 속기(俗氣)를 떨쳐 버릴 수가 있고, 차분하게 안정된 친구를 만나면 성급하고 경망스러운 성격을 제어할 수 있고, 담담하게 유유자적하는 친구를 만나면 화사한 쪽으로 치달리려는 마음을 해소시킬 수가 있다.
名心未化, 對妻孥亦自矜莊; 隱衷釋然, 卽夢寐亦成淸楚.
명예심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처자의 앞에서도 뽐내는 기색이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무의식에까지 침투했던 그 마음이 완전히 풀어지면 잠이 들어도 청초(淸楚)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事當快意處能轉, 言當快意處能住.
일은 마음에 흡족하게 될 때 전환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은 자기 뜻에 차게 될 때 머물러 둘 줄 알아야 한다.
不特尤悔自少, 且覺趣味無窮.
이렇게 하면 허물과 후회가 자연히 적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음미할 것이 무궁무진 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破綻處, 從周旋處見; 指摘處, 從愛護處見; 艱難處, 從貪戀處見.
주선(周旋)하다 보면 파탄(破綻)되는 곳이 눈에 보이고, 애호(愛護)하다 보면 지적할 곳이 나타나고, 욕심에 끌려 연연하다 보면 어려운 곳에 봉착하게 되는 법이다.
惟讀書, 有利而無害; 愛溪山, 有利而無害; 玩花竹風月, 有利而無害; 端坐靜默, 有利而無害.
독서는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시내와 산을 사랑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꽃과 대나무와 바람과 달을 완상(玩賞)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으며, 단정히 앉아 고요히 입을 다무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다.
茶熟香淸, 有客到門可喜; 鳥啼花落, 無人亦自悠然. 眞源無味, 眞水無香.
차가 끓고 청향(淸香)이 감도는데 문 앞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기뻐할 일이지만, 새가 울고 꽃이 지는데 찾아 오는 사람 없어도 그 자체로 유연(悠然)할 뿐.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취가 없다.
雲白山靑, 川行石立.
花迎鳥歌, 谷答樵謳.
萬境俱寂, 人心自閑.
흰 구름 둥실 산은 푸르고, 시냇물은 졸졸 바위는 우뚝. 새들의 노랫소리 꽃이 홀로 반기고, 나뭇꾼의 콧노래 골짜기가 화답하네. 온갖 경계 적요(寂寥)하니, 인심(人心)도 자연 한가하네.
意盡而言止者, 天下之至言也. 然言止而意不盡, 尤爲至言.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말하고 그치는 것은 천하의 지언(至言)이다. 그러나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다 말하지 않고 그치는 것은 더욱 지언이라 할 것이다.
人生一日, 或聞一善言, 見一善行, 行一善事, 此日方不虛生.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착한 말을 한 가지라도 듣거나 착한 행동을 한 가지라도 보거나 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행한다면, 그날이야말로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詩堪適性, 過則刻苦, 酒取怡情, 過則顚佚.
시(詩)는 자신의 성향(性向)에 맞게 할 따름이니 이를 벗어나면 각박하고 고달프게만 되고, 술은 정서를 부드럽게 푸는 정도로 그쳐야 할 것이니 이를 지나치면 뒤집혀 질탕(佚蕩)하게 되고 만다.
風流得意之事, 一過輒生悲涼, 淸眞寂寞之鄕, 愈久轉增意味.
아무리 만족스럽게 풍류(風流)를 즐겨도 그 시간이 한번 지나고 나면 문득 비애의 감정이 솟구치는데, 적막하면서도 맑고 참된 경지에서 노닐게 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花太麗者馨不足, 花多馨者色不麗.
너무 화려한 꽃은 향기가 부족하고 향기가 진한 꽃은 색깔이 화려하지가 않다.
故侈富貴之容者少淸芬之氣, 抗幽芳之姿者多莫落之色.
이와 마찬가지로 부귀의 자태를 한껏 뽐내는 자들은 맑게 우러나오는 향기가 부족하고, 그윽한 향기를 마음껏 내뿜는 자들은 쓸쓸한 기색이 역력하다.
君子寧馨百世, 不求一時之艶.
그러나 군자는 차라리 백세(百世)에 향기를 전할지언정 한 시대의 아리따운 모습으로 남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爲文而欲一世之皆好之, 非至文也;
爲人而欲一世之皆好之, 非正人也.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며 지은 문장은 지극한 문장이 아니고,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른 인물이 아니다.
山棲是勝事, 稍有繫戀則亦市朝;
書畫是雅事, 稍一貪念則亦商賈;
杯酒是樂事, 稍一徇人則亦狴牢;
好客是達事, 稍涉俗流則亦苦海.
산중 생활이 수승(殊勝)한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얽매여 연연하는 마음이 있으면 또한 시조(市朝; 사람이 북적대는 시장이나 조정)와 같고, 서화(書畵)가 아취(雅趣) 있는 일이긴 하지만 한 생각이라도 이를 탐(貪)하게 되면 또한 장사꾼과 같게 되고, 한 잔 술 드는 것이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한 생각이라도 남의 흥취에 따라가는 것이 있게 되면 또한 감옥처럼 답답하기 그지없게 되고, 객(客)을 좋아하는 것이 화통(和通)한 일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속된 흐름에 떨어진다면 또한 고해(苦海)라 할 것이다.
才俊人宜學恭謹, 聰明人宜學沈厚.
재기가 뛰어난 사람은 공근(恭謹)함을 배워야 하고, 총명한 사람은 침후(沈厚)함을 배워야 한다.
俗語近于市, 纖語近于娼, 諢語近于優. 士夫一涉乎此, 損威重.
속된 말을 하면 장사치에 가깝고, 섬세한 말을 하면 창기(娼妓)에 가깝고, 농담을 하면 광대에 가깝게 된다. 사대부의 말이 이 중 한 가지에라도 관련이 되면 위중(威重)함을 잃는 것이 된다.
仁厚刻薄, 是修短關;
謙抑盈滿, 是禍福關;
勤儉奢惰, 是貧富關;
保養縱欲, 是人鬼關.
인후하게 하느냐 각박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장(長)과 단(短)의 관건이 되고, 겸손하게 자신을 제어하느냐 교만을 부리느냐의 여부가 화와 복을 초래하는 관건이 되고, 검소하게 하느냐 사치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가난과 부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되고, 몸을 보호하여 양생(養生)을 하느냐 욕심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느냐의 여부가 죽음과 삶의 관건이 된다.
盛名必有重責, 大巧必有奇窮.
이름을 드날리게 되면 반드시 중한 책임이 뒤따르게 되고, 너무 기교를 부리다 보면 반드시 뜻밖의 어려움을 당하게 마련이다.
看中人, 要在大處不走作;
看豪傑, 要在小處不滲漏.
중인(中人)을 보는 요령은 큰 대목에서 나대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에 있고, 호걸을 보는 요령은 작은 대목이라도 빠뜨리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에 있다.
濃於聲色生虛怯病, 濃於貨利生貪饕病, 濃於功業生走作病, 濃於名譽生矯激病, 濃於學古生畫葫蘆病.
성색(聲色)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허겁병(虛怯病)에 걸리고, 화리(貨利)에 빠지다 보면 탐도병(貪饕病)에 걸리고, 공업(功業)만 추구하다 보면 주작병(走作病; 마구 치달려 궤도를 이탈하는 폐단을 말함)에 걸리고, 명예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교격병(矯激病; 과격하게 일을 처리하는 폐단)에 걸리고, 옛 학문에만 관심을 쏟다 보면 호로(葫蘆)를 그리는 병에 걸린다.
客散門扄, 風微日落. 酒甕乍開, 詩句初成. 便是山人得意處.
손님은 가고 문은 닫혔는데 바람은 선들 불고 해가 떨어진다. 술동이 잠깐 기울임에 시구가 막 이루어지니, 이것이야말로 산인(山人)이 희열을 맛보는 경계라 하겠다.
長廊廣榭, 曲水回磴.
叢花深竹, 野鳥江鷗.
瓦罏爇香, 玉麈談禪.
是爲眞境界, 亦爲淡生活.
긴 행랑 넓은 정자 굽이쳐 흐르는 물에 돌아드는 오솔길, 떨기 진 꽃 울창한 대숲 산새들과 강 갈매기, 질그릇에 향 피우고 설경(雪景) 속에 선(禪)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경계인 동시에 담박한 생활이라고 하겠다.
有可有不可是爲世法.
無可無不可是爲出世法.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것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고, 할 일도 없고 해서는 안 될 일도 없는 것, 이것이 출세간법(出世間法)이다.
有是有不是是爲世法.
無是無不是是爲出世法.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는 것 이것은 세간법이고,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는 것 이것은 출세간법이다.
鹿養精, 龜養氣, 鶴養神, 故能壽.
사슴은 정(精)을 기르고, 거북이는 기(氣)를 기르고, 학은 신(神)을 기른다. 그래서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靜處煉氣, 動處煉神.
고요한 곳에서는 기(氣)를 단련하고, 움직이는 곳에서는 신(神)을 단련한다.
君子不辱人以不堪, 不愧人以不知. 卽寡怨.
군자는 사람들이 감당해내지 못한다고 모욕을 가하지 않고, 무식하다고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원망이 적은 것이다.
春序將闌, 步入林巒, 曲逕通幽.
松竹交映, 野花生香, 山禽哢舌.
봄철도 저물어가는데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오솔길이 아슴프레하게 뚫리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비치는가 하면 들꽃은 향기를 내뿜고, 산새는 목소리를 자랑한다.
時抱焦桐, 坐石上, 撫二三雅調, 幻身卽是洞中仙畫中人也.
거문고를 안고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두서너 곡조를 탄주(彈奏)하니 몸도 두둥실 마치 동천(洞天)의 신선인 듯 그림 속의 사람인 듯하였다.
桑林麥壟, 高下競秀, 雉雊春陽, 鳩呼朝雨. 卽村居眞景物也.
뽕나무 숲과 일렁이는 보리밭, 위와 아래에서 경치를 뽐내는데, 따스한 봄날 꿩은 서로를 부르고, 비오는 아침 뻐꾸기 소리 들리네. 이것이야말로 농촌 생활의 참다운 경물(景物)이라 할 것이다.
與衲子坐松林石上, 談因果說公案, 久之松際月來, 踏樹影而歸.
납자(衲子; 선승禪僧)와 소나무 숲 바위 위에 앉아 인과(因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안(公案;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질문.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흘러 어느새 소나무 가지 끝에 달이 걸렸기에 나무 그림자를 밟고 돌아왔다.
同會心友登山, 趺坐, 浪談, 談倦仰臥巖際, 見靑天白雲飛繞半空中, 便欣然自適.
마음에 맞는 친구와 산에 올라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다가 이야기하기도 지쳐 바위 끝에 반듯이 드러 누웠더니,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날아와 반공중(半空中)을 휘감았는데, 그 모습을 접하면서 문득 흔연해지며 자적(自適)한 경지를 맛보게 된다.
霜降木落時, 入疏林中, 坐樹根上, 飄飄黃葉點衣袖, 野鳥從樹梢飛來窺人, 荒涼之地, 乃反淸曠.
찬 서리 내려 낙엽 질 때 성긴 숲 속에 들어가 나무 등걸 위에 앉으니, 바람에 나부껴 누런 단풍잎 옷소매 위에 떨어지고 산새 나무 끝에서 날아와 나의 모습을 살핀다. 황량한 대지가 청명하고 초연한 경지로 바뀌어지는 순간이었다.
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문을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계를 찾아가는 것, 이 세 가지야말로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霜降石出, 潭水澄定.
懸岩峭壁, 古木垂蘿, 皆倒影水中.
策杖臨之, 心境俱淸.
찬 서리 내려 바위가 드러났는데 고인 물 잠잠히 맑기만 하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암벽, 담쟁이로 휘감긴 고목, 모두가 물 속에 거꾸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팡이 짚고 이곳에 오니 내 마음과 객관세계 일체로 맑아지누나.
鼓琴偏宜于桐風澗響之間, 自然之聲正合類應.
거문고는 오동나무 가지에 바람이 일고 시냇물 소리가 화답하는 곳에서 연주해야 마땅하니, 자연의 음향이야말로 이것과 제대로 응하기 때문이다.
杏花疏雨, 楊柳輕風, 興到忻然獨往.
살구꽃에 성긴 비 내리고 버드나무 가지에 바람이 건듯 불 때 흥이 나면 혼자서 흔연히 나서 본다.
得閑多事外, 知足少年中, 棲遁之情也.
種花春掃雪, 看籙夜焚香, 棲遁之興也.
硏田無惡歲, 酒谷有長春, 棲遁之味也.
일 많은 세상 밖에서 한가로움을 맛보고 세월이 부족해도 족함을 아는 것은 은둔 생활의 정(情)이요, 봄철에 잔설(殘雪)을 치워 꽃씨를 뿌리고 밤에 향을 피우며 도록(圖籙)을 보는 것은 은둔 생활의 흥(興)이요, 연전(硏田)은 흉년을 모르고 주곡(酒谷)에 언제나 봄 기운이 감도는 것은 은둔 생활의 맛(味)이다.
良宵宴坐, 篝燈煮茗.
萬籟俱寂, 溪水自韻.
衾枕不御, 簡編乍親. 一樂也.
어느 쾌적한 밤 편안히 앉아 등불 빛을 은은히 하고 콩을 구워 먹는다. 만물은 적요한데 시냇물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릴 뿐,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채 책을 잠깐씩 보기도 한다.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다.
風雨載途, 掩關却掃.
圖史滿前, 隨興抽檢.
絶人往還, 境幽室寂. 二樂也.
사방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문을 닫고 소제한 뒤 책들을 앞에 펼쳐놓고 흥이 나는 대로 뽑아서 검토해 보는데, 왕래하는 사람의 발자욱 소리 끊어져 온 천지 그윽하고 실내 또한 정적 속에 묻힌 상태,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空山歲晏, 密雪微霰.
枯條振風, 寒禽號野.
一室擁爐, 茗香酒熟. 三樂也.
텅 빈 산에 이 해도 저무는데 분가루 흩뿌리듯 소리없이 내리는 눈, 마른 나무가지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에 떠는 산새 들에서 우짖는데, 방 속에 앉아 화로 끼고 차 달이며 술 익히는 것,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須一小舟, 短帆輕棹, 舟中雜置圖書鼎彝酒漿荈脯, 風利道便, 或訪故人, 或訪名刹.
짧은 돛에 가벼운 노를 장치한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여 그 속에 도서(圖書)며 솥이며 술과 음료수며 차(茶)며 마른 포(脯) 등속을 싣고는 바람이 순조롭고 길이 편하면 친구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명찰(名刹)을 탐방하기도 한다.
且畜一歌娃一笛童一琴奚, 與兒小隨意往來煙波間, 以弭寥靜.
그리고 노래 잘하는 미인 한 명과, 피리 부는 동자 한 명과, 거문고 타는 한 사내와 이이를 태우고는 안개 감도는 물결을 헤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왕래하면서 적막하고 고요한 심회를 푼다.
最勝致, 顧我國無此境, 亦難辦此具爾.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막힌 운치라 할 것인데, 다만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 할 만한 경개도 없을 뿐더러 이런 도구를 마련하기도 쉽지가 않다.
初夏園林, 隨意拂苔蘚坐石上, 竹陰漏日, 桐影扶雲.
초여름 원림(園林) 속에 들어가 뜻 가는 대로 아무 바위나 골라잡아 이끼를 털어내고 그 위에 앉으니, 대나무 그늘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오동나무 그림자가 뭉실 구름 모양을 이룬다.
俄而山雲乍起, 微雨生涼.
就榻午眠, 夢亦得趣.
얼마 뒤에 산속에서 구름이 건듯 일어 가는 비를 흩뿌리니 청량감(淸凉感)이 다시 없다. 탑상(榻床)에 기대어 오수(午睡)에 빠졌는데, 꿈속의 흥취 역시 이때와 같았다.
勑斷家事, 擇二三童子自隨.
其強幹者以備炊爨, 弱者以備洒掃抄寫.
집안일을 정리한 뒤 동자 2, 3명을 골라 따라오게 한다. 근력이 있는 자는 불때고 밥 짓는 일을 맡기고, 힘이 약한 자는 청소나 글 베끼는 일을 맡게 한다.
子孫能相體者則送供養, 賓朋能相念者則通餽問足矣.
믿음이 가는 자손이 있으면 공양(供養)하러 보내고, 서로 염려해주는 빈붕(賓朋)이 있으면 선물 꾸러미를 보내 문안을 통한다. 이러면 족할 것이다.
荊楚歲時記; 小寒三信梅花山茶水仙, 大寒三信瑞香蘭花山礬, 立春三信迎春櫻桃望春, 雨水三信菜花杏花李花, 驚蟄三信桃花棣棠薔薇, 春分三信海棠梨花木蘭, 淸明三信桐花菱花柳花, 穀雨三信牡丹荼蘼楝花.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소한(小寒)의 3신(信; 소식)은 매화(梅花)와 산다(山茶)와 수선(水仙)이고, 대한(大寒)의 3신은 서향(瑞香)과 난화(蘭花)와 산반(山礬)이고, 입춘(立春)의 3신은 영춘(迎春)과 앵도(櫻桃)와 망춘(望春)이고, 우수(雨水)의 3신은 채화(菜花)와 행화(杏花)와 이화(李花)이고, 경칩(驚蟄)의 3신은 도화(桃花)와 체당(棣棠)과 장미(薔薇)이고, 춘분(春分)의 3신은 해당(海棠)과 이화(梨花)와 목란(木蘭)이고, 청명(淸明)의 3신은 동화(桐花)와 능화(菱花)와 유화(柳花)이고, 곡우(穀雨)의 3신은 모란(牡丹)과 다미(茶蘼)와 연화(楝花)이다.
人生唯寒食重九愼不可虛擲. 四時之變, 無如此節者.
사람이 사는 동안 한식(寒食)과 중구(重九)만은 삼가서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사시(四時)의 변화 가운데 이들 절기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竹几當窓, 蒲團坐地.
대나무 안석(案席)을 창가로 옮긴 뒤 부들 자리를 땅에 폈다.
高峯入雲, 淸流見底.
높은 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시내는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맑기만 하다.
籬邊種菊, 堂後生萱.
울타리 옆에 국화 심고 집 뒤에는 원추리를 가꾼다.
花妨過塢, 柳礙移門.
둑을 높여야 하겠는데 꽃이 다치겠고 문을 옮기자니 버들이 아깝다.
曲逕煙深, 路接靑帘.
구비진 오솔길 안개에 묻혔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주막이 나타난다.
澄江日落, 船泊漁村.
맑게 갠 강 해가 저무는데 고깃배들 어촌에 정박한다.
凡山具設經籍子史, 備藥餌方書.
산중 생활을 위해서는 여러 경적(經籍)과 제자(諸子)와 사책(史冊)을 갖추어 둠은 물론 약재(藥材)와 방서(方書)도 구비해야 한다.
儲佳筆名繭, 留淸醪雜蔬, 畜古書名畫.
그리고 좋은 붓과 이름있는 화선지도 여유있게 비치하고 맑은 술과 나물 등속을 저장해두는 한편 고서(古書)와 명화(名畵)도 비축해두면 좋다.
製絮枕蘆被, 足以遣老.
그리고는 버들가지로 베개를 만들고 갈대꽃을 모아 이불을 만들면 노년 생활을 보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深山高居, 爐香不可缺, 退休旣久, 佳品乏絶.
깊이 산중에서 고아(高雅)하게 지내려면 화로에 향 피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벼슬길에서 떠나온 지도 이미 오래되고 보니 품질이 괜찮은 것들이 모두 떨어지고 없다.
取老松柏根枝葉實擣之, 斫楓肪和之, 每焚一丸, 亦足助淸苦.
그래서 늙은 소나무와 잣나무의 뿌리며 가지며 잎이며 열매를 한데 모아 짓찧은 뒤 단풍나무 진을 찍어 발라 혼합해서 만들어 보았는데, 한 알씩 사를 때마다 또한 청고(淸苦)한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하였다.
竹榻石枕蒲花褥, 隱囊蘆花被紙帳, 欹床藤墩蒲石盆, 如意竹鉢鍾磬道服, 文履道扇拂麈, 雲舃竹杖, 癭杯韻牌, 酒罇詩筒禪燈, 皆山居之不可闕者也.
죽탑(竹榻), 석침(石枕), 포화욕(蒲花褥; 갈대꽃을 넣어만든 요), 은랑(隱囊), 포화피(蒲花被; 갈대꽃 이불), 지장(紙帳), 의상(欹床), 등돈(藤墩; 등나무 의자), 포석분(蒲石盆), 여의(如意; 등 긁는 막대), 죽발(竹鉢; 대나무 바리), 종(鍾), 경(磬), 도복(道服), 문리(文履), 도선(道扇), 불진(佛塵; 먼지떨이개로서 일종의 지휘봉으로 쓰이는 불구拂具), 운석(雲舄; 등산용 신발), 죽장(竹杖), 영배(癭杯), 운패(韻牌), 주준(酒罇), 시통(詩筒), 선등(禪燈) 등은 모두 산중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間(사이 간)은 ❶회의문자로 簡(간)과 통자(通字), 閒(간)은 본자(本字)이고, 间(간)은 간자(簡字)이다. 옛날엔 門(문)속에 月(월; 달)을 쓰거나 또는 門(문)속에 外(외)를 쓰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집의 대문이나 방문을 모두 門(문)이라 한다. 閒(한)은 방문으로 달빛이 비치다에서 틈을 말하고, 후에 間(간)자가 생겨 間(간)은 사이, 閒(한; 閑(한)은 '여가' 또는 '조용함'으로 나누어 사용한다. ❷회의문자로 間자는 '사이'나 '틈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間자는 門(문 문)자와 日(해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과 소전에서는 月(달 월)자가 들어간 閒(틈 한)자가 '틈새'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閒자는 어두운 밤 문틈으로 달빛이 비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어두운 밤에야 달빛을 통해 문틈이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으니 閒자가 '틈새'라는 뜻을 더 잘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후에 閒자가 시간에 틈이 있다는 의미에서 '한가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자 해서에서는 間자가 만들어지면서 '틈새'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間(간)은 (1)집 간살의 수효(數爻)를 세는 말 (2)집 간살의 면적을 나타내는 단위로서, 보통 일곱 자(210cm) 평방 또는 여덟 자(240cm)나 아홉 자(270cm) 평방을 이름 (3)여섯 자 곧 180cm를 단위로 하여 거리를 세는 이름 (4)성(姓)의 하나 (5)둘의 사이 (6)주로 간에로 쓰이어 어느 경우든지 가릴 것 없이의 뜻을 나타내는 말 (7)무엇이 존재하거나 또는 무엇으로 사용되는 곳이라는 등의 뜻으로 ①사이 ②때 ③동안 ④차별(差別) ⑤틈, 틈새 ⑥간첩(間諜) ⑦혐의 ⑧사사로이 ⑨몰래, 비밀히 ⑩간혹 ⑪사이에 두다, 끼이다 ⑫섞이다 ⑬이간하다(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헐뜯다 ⑭간소하다 ⑮검열하다 ⑯엿보다 ⑰살피다 ⑱틈을 타다 ⑲섞이다 ⑳참여하다 ㉑범하다 ㉒차도(差度)가 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이 뜰 격(隔), 틈 극(隙), 한가할 한(閑)이다. 용례로는 한 작물 사이에 딴 작물을 심어 가꿈을 간작(間作), 어떤 한 곡 도중에 삽입하여 연주하는 것을 간주(間奏), 물건과 물건과의 거리를 간격(間隔), 군음식을 먹음을 간식(間食), 주기적으로 그쳤다 일어났다 함을 간헐(間歇), 어쩌다가나 가끔을 간혹(間或), 잠깐 끊임이나 쉴 사이를 간단(間斷), 군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을 간식(間食), 사물 사이의 틈을 간극(間隙), 하루 또는 며칠씩 거름을 간일(間日), 차이 따위와 함께 쓰이어 순간적이거나 아주 적음을 나타내는 말을 간발(間髮),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시간(時間), 극히 짧은 시간을 순간(瞬間), 어느 일정한 시기에서 어떤 다른 일정한 시기까지의 사이를 기간(期間), 일반 백성의 사회를 민간(民間), 한 해 동안을 연간(年間),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 부터 현재까지의 동안을 저간(這間), 일정한 지점 간의 사이를 구간(區間),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음을 이르는 말을 간어제초(間於齊楚), 여러 세대를 통하여 드물게 나는 뛰어난 인재를 일컫는 말을 간세지재(間世之材), 머리털 하나 들어갈 틈도 없다는 뜻으로 사태가 단단히 급박하여 조그마한 여유도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간불용발(間不容髮), 세상에 드문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말을 간기인물(間氣人物), 개와 원숭이의 사이처럼 매우 사이가 나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견원지간(犬猿之間), 눈 한 번 깜짝하거나 숨 한 번 쉴 사이와 같이 짧은 동안을 일컫는 말을 순식간(瞬息間), 얼음과 숯 사이란 뜻으로 둘이 서로 어긋나 맞지 않는 사이 또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를 일컫는 말을 빙탄지간(氷炭之間),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초가삼간(草家三間), 복수 강가의 뽕나무 숲 사이라는 뜻으로 음란한 음악 또는 망국의 음악을 일컫는 말을 상간복상(桑間濮上),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일컫는 말을 지호지간(指呼之間), 서로의 차이가 썩 심함 또는 썩 심한 차이를 이르는 말을 천양지간(天壤之間),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사물을 좀처럼 잊지 못함이나 이룰 수 없는 일에 너무 지나치게 몰두함을 이르는 말을 몽매지간(夢寐之間), 한 말들이 말 만한 작은 집이란 뜻으로 한 칸밖에 안 되는 작은 집을 이르는 말을 일간두옥(一間斗屋), 풀 사이로 민간에서 삶을 구한다는 뜻으로 욕되게 한갓 삶을 탐냄을 이르는 말을 초간구활(草間求活) 등에 쓰인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