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구월 초순 둘째 토요일이다. 가을이 오는 길목 시골 흙내음 나는 푸성귀와 과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데가 마산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이다. 거기는 평일도 몇몇 상인이 물건을 내다 팔지만 주말이면 여러 상인이 제철 농산물을 내다 팔았다. 우리 집에서는 필요한 과일이나 푸성귀가 아닐지라도 나는 순수하게 장터를 구경하기 위해 새벽같이 길을 나서 둘러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102번 버스로 마산역 앞으로 나갔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길목은 상인들과 손님들로 붐볐다. 못난이 가지와 애호박이 수북했다. 풋고추와 호박잎도 보이고 고구마 줄기를 앞에 둔 할머니는 즉석에서 껍질을 벗겼다. 껍질의 흙이 채 마르지 않은 고구마나 땅콩도 임자가 바뀌길 기다렸다. 손부두나 메밀묵을 빚어 팔러 나온 아주머니도 있었는데 나는 관찰자였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은 새벽부터 아침나절만 반짝 장터가 섰다. 앞서 소개한 푸성귀 말고도 계절감이 물씬한 제철 과일도 수북이 있었다. 태풍이라도 스쳐 지난 직후는 비바람에 조기 낙과한 상처 난 풋과일들도 쏟아져 나왔다. 주말이라도 토요일이 성하고 일요일은 댓거리 장날과 겹쳐 상인이나 손님이 분산되는 듯했고 평일은 장터가 썰렁해 광장으로 오르는 길이 넓어 보였다.
역 광장 길목의 노점을 둘러보고 매표구로 올라가 열차 시각표를 한 장 구했다. 코레일은 주기적으로 열차 운행 시각을 개편하는데 구월 첫날을 기준으로 바뀌어 앞으로 이용할 기회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역 광장 모퉁이에서 출발하는 농어촌버스 가운데 진북 정곡으로 가는 74번을 골라 탔다. 어시장을 둘러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 잠시 진동 환승장에 둘러 나왔다.
나는 지산과 예곡을 지난 의림사 바깥에서 내리고 버스는 인곡을 향해 돌아나갔다. 서북산 갈래인 인성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유교 실천 덕목 ‘인의예지신’을 그대로 따 붙인 마을 이름들이었다. 진동 광암 갯가와는 거리가 제법 떨어진 내륙 산중에 논밭을 경작하는 순박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일주문에서 차피안교를 건너 의림사 경내로 들어가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았다.
삼성각 아래 수형이 멋진 고목에 달린 모과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빛깔이 노랗게 물들 뜸을 들여갔다. 석탑이 서 있는 염불당 앞에 넓은 잎을 펼쳐 드리운 두 그루 파초는 햇살이 뜨거웠던 지난 여름날은 추억으로 간직했다. 언덕에는 꽃대가 솟는 꽃무릇이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다. 절집 해우소 바깥 수리봉으로 가는 등산로로 드니 수풀이 무성해 등산지팡이로 헤집으면서 나갔다.
여향산이 서북산으로 이어진 낙남정맥은 감재에서 대부산과 봉화산으로 건너가 무학산으로 이어졌다. 지맥이 나뉘어 부재에서 다시 인성산과 수리봉으로 갈라지는데 의림사는 수리봉 기슭에 자리한 셈이다. 수리봉 정상부도 인성산 국사봉만큼이나 암반 능선 구간이라 나는 고소 공포가 심해 한 번 올라 보고는 밑에서 쳐다만 보고 만다. 이번도 수리봉 언저리만 누비다가 나갈 생각이다.
활엽수림이 우거진 골짜기였고 바위 계곡에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리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여름은 묵혀졌다가 가을을 지나 겨울과 봄에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정도였다. 삼림욕을 겸해 참나무 숲을 누비며 아직 삭지 않은 영지버섯을 찾아봤다. 숲을 누빈 보람은 있어 연전 태풍으로 쓰러졌을 커다란 참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고사목이 되어 영지버섯을 피워 삭아가고 있었다.
갓이 자색으로 물들어 성장을 멈춘 영지버섯은 계절이 바뀌니 벌레가 꾀고 쪼그라져 갔다. 삭아가는 영지버섯을 한 무더기 채집해 배낭에 채운 뒤 바위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고 산등선에서 제피 열매를 몇 줌 따고는 하산해 산문을 나왔다. 인곡리 전원마을을 지나니 고샅에는 분홍색 부용꽃이 화사하게 피어 눈길을 끌었다. 무궁화와 비슷해 보였고 목화꽃과도 닮았는데 부용화였다. 2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