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어디에 기고한 글입니다.
마을 안쪽에 작은 초가집은 꼭 둘러보세요.
70년대 새마을운동 전까지 농촌 대부분이 그런 집에서 살았으니까요.
제가 갔을 때 비포장길이 지금은 포장됐을 겁니다.
<충북 괴산 갈론마을>
칡뿌리를 캐먹으며 숨어 살만한 곳. 갈은(葛隱). 세월이 흐르면서 갈론이라 부르게 됐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갈론마을’.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오지 마을이다.
티 없는 시골마을에서 하룻밤
마을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괴산댐에 가로막혀 초록색 물빛 가득한 달천 본류를 옆에 두고 가야한다. 길은 아직 비포장.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가 있으면 눈빛으로 적당히 타협해 한쪽이 뒷걸음쳐야 한다.
옹색한 콘크리트 포장길은 괴산댐에서 뚝 끊어지고 5.3km는 비포장길로 이어진다. 가는 길 오른편은 주변 산과 언덕을 담아 비추는 맑은 물. 멀리 보이는 건너편 작은 마을 앞 선착장에 매 놓은 거룻배 한 척이 눈에 띌 뿐 인적이 없다. 덜컹대는 비포장길은 그리 멀지 않지만 길게 느껴진다. 아직도 지도상에는 나오지 않는 길. 한참을 가다 길은 왼쪽으로 휘어져 돌아간다. 옥녀봉과 군자산이 인색하게 벌려놓은 계곡 틈으로 파고드는 길이다. 그리고 그 끝에 갈론마을이 있다.
갈론마을에는 20여호의 집에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겨울철 멀리서 보는 마을풍경은 황량하고 초라하다. 대부분의 집들이 해묵은 양철지붕을 이고 있는 데다 마을 고샅길 주변 풀과 나무들도 빛이 바랜 지 오래기 때문이다. 몇 해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마을 구판장쯤으로 보이는 가겟방에 ‘민박’과 ‘식사’를 알리는 간판이 붙어있는 것이다.
대부분 예순을 훌쩍 넘긴 주민들만 살던 마을에 바깥사람들의 발길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민박은 가게 앞의 이원득 씨 집에서도 하고 있다. 이들 민박집에서 밥을 청하면 집에서 담근 된장에다 지난 여름과 가을 산에서 뜯어다 말린 산나물 반찬을 만들어준다. 도회지 식당가에서 ‘시골밥상’이라고 이름만 붙인 것과 완전히 다른 진짜 시골밥상이다. 가격은 1인분 4000원.
갈론마을은 여늬 관광지처럼 한 번 휙 둘러보고 나오려 한다면 굳이 험한 길 무릅쓰고 갈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하룻밤 정도 머물며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시골정서를 찾으려 할 때 다른 곳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아궁이에 잔솔가지를 때는 온돌방에서 아침밥상을 받는 체험.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네 옛 살림이다.
알져지지 않은 비경 간직한 계곡
마을의 윗편에는 이미 10여년전 문을 닫은 칠성초교 분교장이 빈 터를 지키고 있다. 교실 2칸에 교무실 1칸짜리 아담한 분교건물 앞에는 독서하는 소녀상과 이승복 어린이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운동장은 이제 마을 주민들의 타작마당으로 쓰인다.
분교 아래쪽에는 아직도 옛 초가집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 주민도 있다. 납작한 지붕과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는 방문, 툇마루도 없는 것이 정말 옛 초가집이다. 요즘 민속촌이라는 이름 아래 짓는 고대광실같이 커다란 초가와는 너무나 다른 모양새다. 집주인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초가집을 굳이 양철지붕으로 바꿀 필요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 마을에서는 그의 말이 맞다.
여름과 가을이면 갈론마을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많이 이어진다. 마을 뒤로 이어진 청정계곡에서 탁족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제철에는 계곡 양쪽으로 달래넝쿨과 산딸기, 산복숭아가 지천이다.
계곡 곳곳의 바위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갈은동문,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제, 칠학동천, 선국암 등등. 기이한 바위를 끼고 흐르는 물은 말 그대로 맑디 맑은 옥류. 마치 깨끗이 닦아놓은 수정알과 같이 맑다. 선국암은 바둑판바위라고도 부른다. 옛날 이 바위에 바둑을 두던 노인 4명이 해가 질 무렵 마을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찾아보니 바둑알 하나하나가 다 꽃이 되었더라는 시구도 적혀있다.
고송유수제는 근처에 노송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에는 옛 선비들이 남긴 글이 또렷이 남아있다. 괴산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 월북해 부주석까지 지냈던 벽초 홍명희의 조부인 홍승목이 남긴 글귀도 눈에 띈다. 홍명희는 소설 ‘임꺽정’으로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큰 자취를 남겼으나 월북했다는 이유로 90년대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던 괴산의 인물이다. 이밖에 선조 당시 영의정까지 올랐던 노수신과 국어학자 이능화의 아버지인 이원극이 남긴 이름도 또렷하다.
가는 길 오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에서 나와 증평-괴산으로 가는 것이 좋다. 괴산읍내를 통과한 뒤 수안보방면으로 가다보면 괴강교가 나오고 괴강교 건너 연풍·문경 방면으로 우회전 4km쯤 가면 칠성면이다. 칠성면에서 우회전해 괴산댐까지 가서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댐 위부터 비포장길이다. 비포장 길로 4~5km 달리면 왼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길이 있고 멀리 갈론마을이 보인다.
나들이 길 먹거리
괴산은 다른 먹을거리보다 괴강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이용한 매운탕이 유명하다. 괴강다리 아래 매운탕집이 3∼4개 몰려있다. 간판에 가게 이름 대신 방송에 6차례 소개됐다고 적어놓은 원조 할머니집과 괴강 팔도강산 등이다. 쏘가리매운탕도 있지만 잡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미나리와 함께 끓인 잡어매운탕이 별미다. 강 건너편 연풍 가는 길가에 있는 괴강관광농원의 메기찜과 매운탕도 얼큰하면서 달착한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