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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풀이 쏠린다는 뜻으로, 군자의 덕이 소인을 감화시킴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草 : 풀 초(艹/6)
上 : 위 상(一/2)
之 : 갈 지(丿/3)
風 : 바람 풍(風/0)
必 : 반드시 필(心/1)
偃 : 쓰러질 언(亻/9)
출전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있는 말이다. "지도자의 덕성은 바람 같은 것이고, 백성들의 성질은 풀과 같은 것이다. 풀 위로 바람 불면, 반드시 눕는다."
백성들은 풀과 같아서 바람 부는대로 이리로 저리로 눕는 것이다. 지도자가 거짓말하면 백성도 따라서 거짓말하고, 지도자가 배신하면 백성도 따라서 배신하고, 지도자가 부패하면 백성도 따라서 부패하고,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따라서 바르게 되고, 백성들은 모든 것을 지도자를 본받아 따라한다. 그래서 바람(風)인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계강자(季康子)가 공자(孔子)에게 정사(政事)를 물으며 말했다. "만일 무도(無道)한 자를 죽여서 도(道)가 있는 데로 나아가게 하면 어떻습니까?"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공자가 대답했다. "그대가 정사를 함에 어찌 죽임을 쓰겠는가? 그대가 선(善)하고자 하면 백성들이 선해지는 것이니,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정치와 경영은 인간 사회를 바르게 만드는 것인데 사회와 기업을 바르게 만드는 것은 바른 사람이 정치와 경영을 할 때만 가능하다. 바르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바르게 할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풀이 바람이 부는 대로 쏠리듯이, 백성들은 정치하는 사람, 즉 경영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 닮는다. 이것은 다시 말해, '최고 지도자의 자세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그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 그래서 선(善)의 경영, 선(善)의 관리는 진정 중요한 것이다.
'다스리는 자의 덕은 바람과 같으며 백성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을 따라 죽 쓰러질 것이다'는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을 보며 사회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바른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초상지풍(草上之風)과 위정자의 자세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19장에는 노나라 실권자인 계강자가 당시 사회상황이 혼란과 혼돈으로 각종의 범죄행위가 들끓자, 법치주의를 세운답시고 사형제도를 확대하려고 공자에게 의견을 묻는 내용이 나온다.
계강자의 물음은 "국가 기강과 질서를 세우려면 즉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려면 무도(無道)한 범법자에 대해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방식으로 사형시키는 것이 어떠냐?"는 뜻이다.
공자는 모든 책임은 위정자에게 있으니 계강자 자신부터 선정을 펼치도록 충고한다. 논어 위정편 1장에서 공자가 "덕(德)으로써 정치를 함은 비유컨대 마치 북신이 그 곳에 거하면 뭇별들이 그 곳으로 향함과 같으니라(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 共之)"고 말한 이유이다.
또한 논어 위정편 3장에서 "백성을 형벌로써만 다스리면 백성이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망정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므로(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덕과 예로써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른바 덕치(德治)이다. 그런데 계강자는 "형벌로써 그들을 다스림(齊之以刑)을 물은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뜻의 草上之風
공자가 계강자의 물음을 반박하고는 충고하는 말이 그 유명한 草上之風必偃의 유래가 되는 "君子之德은 風이오 小人之德은 草라 草上之風이면 必偃(필언)하나니라"이다.
이는 서경(書經) 군진편에 인용된 "너는 오직 바람이고 아래 백성은 오직 풀이라(爾惟風 下民惟草)"는 주공(周公)의 말에서 유래한다. 즉 위정자가 군자로서 덕치를 행하면 소인에 해당하는 하급관리나 다른 위정자가 감화를 받아 자연히 그를 따라 선행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위정편 3장에서 말하는 "德로써 백성을 이끌고, 禮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이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또한 바로 잡아지느니라(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에 해당한다.
또한 군자와 소인을 바람과 풀에 대비시킨 표현은 위정편 19장에서 공자가 "백성을 어떻게 하면 복종시킬 수 있게 하겠는가?"고 묻는 애공에게 "곧은 자(군자 위정자)를 천거하여 굽은 자(소인 위정자) 위에 두라(擧直錯諸枉)"고 한 말과 같은 맥락에 있다. 즉 곧은 자를 바람으로 보고 굽은 자를 풀로 보면, 곧은 자의 행실에 의해 굽은 자가 교화됨으로써 이를 본받아 백성들도 복종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맹자(孟子) 등문공 상편 2장에는 약소국이었던 등나라 세자에게 맹자가 공자의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정치에 대해 충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맹자 역시 위정자가 먼저 솔선수범하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맹자는 ‘草上之風’의 上을 '더하다'는 뜻의 尙으로 썼다. 또한 군자를 바람에 소인을 풀에 비유한 이 표현은 후대에 풍행초미(風行草靡), 風行草從, 草靡風行, 草偃風行, 초언풍종(草偃風從) 등의 사자성어로 변용되어 널리 회자되었다.
지배와 피지배 이분법은 흑백논리
시인 김수영은 위 문장의 草上之風 偃也에서 발상하여 '풀'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매우 탁월한 시적 묘사로 평가받아 국민들 사이에도 널리 회자되었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진보 운동권은 이 시에서 풀은 억압받는 민중을 비유한 것이고 바람은 민중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를 비유한 것이라 해석하여,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많은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또한 이러한 해설 방식을 공자가 말한 '草上之風'에 연계하여 지배자의 억압정치가 바람에 해당하고, 그에 고통당하는 민중은 풀에 해당한다고 확대 해석하였다.
그리고는 이치에도 맞지 않고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풀이 다시 일어남을 누가 아랴(誰知風中草復立)'의 구절을 댓구로 붙여 마치 '피지배자인 민중이 저항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즉 군자를 지배계급으로 소인을 민중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공자가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고 말한 본래의 뜻을 명백히 왜곡한 것이다. 유학경전에서 군자는 덕치를 바탕으로 선정(善政)을 펼치는 위정자를 말하는 것이지 탄압과 억압의 정치를 행하는 지배자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가 2500년전에 하신 말씀이지만 '草上之風'의 내용은 오늘날의 위정자에게도 꼭 들어맞는 규범과 잣대이다. 공자의 사상과 철학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위정자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냉소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개선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정권 차원의 '공직 기강과 규율'은 적합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위정자 자신이 지녀야 할 잣대와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공정사회'가 화두가 되면서 이것이 향후 국민들의 공직자에 대한 불만과 원성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자본과 물질중심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좌절과 회한은 있을 망정 적대감을 드러낼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흔히 거론되어 온 자치단체 행정가의 평가 잣대인 리더쉽이나 비전이니 하는 것이 식상할 때가 되었다. 교육이니 복지니 예산 등을 통해 드러나는 실적용 행정도 피부에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대자본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기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행정이 글로벌적으로 중앙집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자본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의 행정 개념을 대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어 따라 가다 보면, 자치단체의 독자적인 위상과 존재 의미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한자와 유학경전은 공직자의 잣대와 기준
서구 중심주의가 지나치다 보니, 우리의 문화와 행동규범이었던 한자와 유학경전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심각하다.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과 교육과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유학경전과 한자는 본래 위정자용으로 태동되었기에 공직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지금이야말로 이를 복원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영어와 실무 행정기능 등이 공직자의 자질과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학경전은 2000년이 넘게 공직자로서의 정신과 잣대 그리고 규범으로 검증을 이미 거쳤다. 서구의 정치학은 공직자의 자세를 별도로 논의하고 있지 않는다. 서구의 법치주의 개념상으로 공직자 역시 법 앞에 똑같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한자와 유학경전을 토대로 한 공직자의 잣대와 규범이 오늘날에도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이다
◼ 바람과 풀
季康子問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무법자를 죽여 없애고 사람들을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정치를 한다면서 어찌 죽이는 일을 하려 하시오? 그대가 선하게 할 마음만 먹으면 아랫 사람들은 자연히 선하게 되는 법이라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은 것이라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니까요."
(論語 顔淵篇)
바람과 풀이라니, 공자는 시인인가? 공자는 물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제(齊) 나라에 있을 때 순(舜) 임금의 음악을 듣고서는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잃을 정도였고, 제자들에게도 예(藝)의 경지에서 노닐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자기 아들 백어(伯魚)에게도 시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들과 고상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충고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풀과 바람 속에는 그런 시적(詩的) 여운을 한가하게 음미하기에는 너무도 절박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학덕(學德)이 높아서 모두가 우러러 볼 정도로 훌륭한 사람과, 품성이 거칠고 간사해서 형편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고, 다스리는 사람과 그 다스림을 받는 사람을 뜻하는데, 하나의 개인을 가리키는 용어라기 보다는 나라의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 집단과 그 집단의 통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반 서민들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춘추시대 말기에 노(魯)나라는 이른바 삼환(三桓)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실상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통치하였다. 삼환은 노나라 환공(桓公)의 후예인 맹손씨(孟孫氏)와 숙손씨(叔孫氏)와 계손씨(季孫氏)를 가리킨다.
이들 집단은 서로들 권력 투쟁을 전개하는 와중에서도 임금의 세력이 커져서 자기들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 잠시 싸움을 멈추고 상호 연합하여 임금을 축출하거나 제거하고는 자기들의 구미에 맞는 사람을 뽑아서 임금 자리에 앉히곤 하였다.
공자 이전의 시대는 차치하고라도, 공자가 태어나서 36세 되던 해에는 노 나라 소공(昭公)이 계손씨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삼환의 공격을 받아 제나라로 망명하였고, 공자가 죽고 나서 11년 뒤에는 애공(哀公)이 또 미약한 공실(公室)을 걱정하다가 삼환의 공격을 받고는 각국을 떠돈 끝에 가까스로 귀국해서 곧바로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는다.
위의 대화는 아마도 공자의 나이 67세 때인 애공 8년 무렵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한다. 계강자(季康子)는 계환자(季桓子)의 아들이다. 공자는 계환자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에 노 나라 재상의 일을 대신 행하다가 계환자의 소행이 마음에 들지 않자 노나라를 떠나 제자들을 이끌고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였다.
계환자는 죽기 며칠 전에 계강자를 불러서 당부하였다. "내가 죽으면 네가 나의 뒤를 이어서 집정(執政)을 할 것이니, 그 때에는 꼭 공자를 초빙해서 나처럼 하지 말고 그의 말을 잘 듣도록 하라."
공자는 애공 8년에 귀국하였다. 아마도 계강자는 공자를 깍듯이 모시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공자의 제자들을 관원으로 채용하려고 애를 쓰기도 하였고, 정치나 그밖의 사항에 대해서 공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 사례가 논어 에 몇 차례나 나온다.
그 때마다 공자 역시 그에게 진지하게 답변을 해 주곤 하였는데, "정치의 정이라는 글자 속에는 바르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당신이 솔선수범하여 바르게 행동한다면 그 누가 감히 부정을 저지르겠는가(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는 유명한 말도 바로 그에게 해 준 말이었다.
그러나 계강자 역시 자기의 부친처럼 권력을 쥔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만과 독선과 편견의 타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공자 앞에서 무법자를 죽여 없애면 어떻겠느냐는 끔찍한 말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기에 이른 것인데, 이에 대해서 공자가 풀과 바람의 비유를 들어서 점잖게 타이르는 한편 이와 동시에 강력하게 그에게 경고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계강자여! 그대가 무법자로 여기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계강자여! 그대는 과연 무법자가 아니라는 자신이 있는가. 만약 그대가 무법자라면 그대가 무법자라고 여기는 그 사람은 논리적으로 볼 때 무법자가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진정 무법자라고 어느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무법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우선 그대부터 바르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설혹 그런 무법자가 있다고 한다면 욕을 하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듯이 혹시 권세를 쥐고 있는 그대의 행동을 본받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겠는가.
풀을 보시게!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지 않던가. 그대는 무슨 바람인가. 산들바람인가 훈훈한 오뉴월 바람인가, 폭풍인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인가.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아는가, 계강자여! 보고 배운 풀들이 이제는 온통 뒤흔들고 죽이려 드는 거센 바람의 세력을 향해 죽이자! 죽이자! 소리없이 외치며 한데 들고 일어날는지도.
◼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사람을 죽이려 합니까?
춘추전국 시대 노나라 실권자인 계강자가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가 있는 데로 나아가면 어떻습니까?"고 묻자, 공자가 "당신은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사람을 죽이려 합니까?"라며 이렇게 말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은 위에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정치(政)는 바르게 하는 것(正)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아진다. 윗사람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따르고 바르지 않으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계강자는 힘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었다. 강력한 철권통치로 적폐를 뿌리 뽑아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공자가 이렇게 대꾸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쓰러지게 마련이다. 통치자가 덕으로 정치를 하면 백성들도 욕심을 버리고 통치자의 착한 정치에 따른다. 국민이 물이라면 통치자는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한다. 정치의 기반은 민심에 있으므로 정치하는 사람은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
계강자가 "말 안 듣고 항명하고 상갓집에서 대드는 자들을 싹쓸이하면 공자가 말하는 도(道)를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공자를 구슬리려 드니까 공자가 하는 말씀이 "너나 잘 하세요"였던 것이다. 너 자신이 정의롭고 선(善)하면 백성들도 따라서 정의로워지고 착해질 것인데, 문제는 바로 너인데 왜 엉뚱하게 밖에서 문제를 찾느냐는 것이다. '내로남불 하지말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잡초는 참으로 생명력이 질기다. 바람이 부는 데로 눕기는 하지만 뽑히질 않는다. 아무리 제멋대로 가져다 붙이고 이리저리 쪼개고 만신창이를 내어도 잡초는 다시 살아난다. 누군가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다. 잡초는 새벽의 이슬과 뒤이어 오는 찬란한 햇살을 양분으로 살아 남는다.
소인들 세상에서는 고고한 군자가 바로 잡초로 변해 버린다. 바로 우리나라 정치판이 그렇다. 아무리 덕망있는 사람이라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망신창이가 된다. 그러나 사실 군자의 덕은 바람이며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
공자의 이 말은 "앞으로 대덕(大德) 군자가 나타나 정치를 바로 잡으면 너 같은 소인배는 납작 엎드려야 할 것이다"는 경고로도 들린다.
◼ 바람과 풀
지도자는 민초와 옳고 그름을 다투지 않는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이 1968년 6월16일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 '풀'의 끝 연이다. 풀은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김 시인의 눈에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의 저항심과 자립심이 눈에 띄었다.
'풀'은 논어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안연)"는 말이 그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는 것처럼, 군자가 올바른 덕을 닦아 제대로 행동하면 소인은 그에 따라 저절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눕는 것을 바람 부는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본다면 이런 해석이 옳다. 하지만 눕는 것을 그냥 바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공자의 絶四 : 毋意 毋必 毋固 毋我
여기서 풀은 대나무를 닮았다. 센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면 부러진다. 하지만 대나무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다가 바람이 그친 뒤 다시 곧바로 선다. 이런 적극적이고 저항적이며 자립적인 풀의 모습을 김수영 시인은 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군자가 주도하고 소인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군자와 소인이 서로 협력하여 사회를 살맛나게 만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군자와 소인, 지도자와 국민, 최고경영자와 임직원의 협력은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에 필수적이다. 공자는 이를 위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4가지를 강조했다. 바로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다.
意는 객관적 근거 없이 제멋대로 생각을 만들어 내 스스로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必은 상황과 여건이 어떠하든 하고자 한 일은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이며, 固는 한 번 정한 것은 무조건 지켜낸다고 하는 고집불통이다. 我는 나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다.
따라서 毋意, 毋必, 毋固, 毋我는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스럽게 이루겠다"는 이기주의를 끊어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절사(絶四)는 애제자였던 자공(子貢)에게 평생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가르쳐 주었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제자 중궁(仲弓)이 仁(어짊)에 대해 물었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집밖에 나서면 중요한 손님맞이 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 모시듯 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으면, 나라와 집안에서 원한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예수의 산상수훈과 황금률 :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
나만 생각하고 내 욕심만 차리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성경'에도 황금률로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황금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속한 것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온다.
먼저 마태복음에서 "그럼으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와 누가복음의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게 그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말과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내 몸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나만 옳다는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상대방이 옳을 수 있으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포용이 절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역'에서는 포용의 출발을 '어리석음을 품어 끌어안는 포몽(包蒙)이라'고 했다. 그렇게 "포몽을 실천하면 길하고 지어미도 얻어 길하며 자식이 제대로 커서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을 키우려면 열심히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공자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편찬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 곧 학습을 '논어'의 맨 앞에 놓았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이 그것이다.
공자도 논어 곳곳에서 배움(學)을 강조했다. 특히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움을 좋아하지 않는 폐해는 제멋대로 방탕에 빠진다(好知不好學 其蔽也蕩)"고 밝혔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운 것에 그치지만(學而不思則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고 거듭 지적한 것은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한 예수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동서고금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넓고 깊게 배우고 익힘으로써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타당하고 유효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고, 그런 올바른 대책을 실행함으로써만 밝고 발전된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치는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
한국은 지금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미국과 중국이 끝나기 쉽지 않은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평화와 안보를 함께 지키는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수출국인 중국이 세계패권을 놓고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갖고 있는 미국과 아편전쟁에서 당한 망신을 200년 만에 갚아주고 5000년 동안 찬란했던 중화민족의 영광을 부흥시키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는 중국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다. 마치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에 서 있어 자칫 잘못해 한 발이라도 헛디디면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아슬아슬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태평세월이다. 모든 민생과 법 개정 등으로 부터 갈등을 빚고 있는 정치권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잘못한 것 없고 모두 네 탓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 제발 공부를 해서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위정자가 할 일'이라는 가르침을 깨닫기를 요구한다. 미.중 무역전쟁 앞에 흔들리는 증시와 경제에 민심도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 草(풀 초)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을 나타내는 早(조, 초)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풀의 뜻으로는 처음에는 艸(초)라고 썼지만 나중에 음을 나타내는 早(조, 초)를 곁들여 草(초)로 쓰게 되었다. ❷형성문자로 草자는 '풀'이나 '황야', '초고'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草자는 艹(풀 초)자와 早(일찍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이미 풀을 뜻하는 글자로는 艸(풀 초)자가 있지만 주로 부수 역할로만 쓰이고 草자는 단독으로 '풀'을 뜻할 때 사용되고 있다. 草자에 쓰인 早자는 뜻과는 관계없이 '조, 초'로의 발음 역할만을 한다. 草자가 흔해 빠진 '풀'을 뜻하다 보니 '엉성하다'나 '보잘것 없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草(초)는 (1)기초(超草) (2)초서(草書) (3)건초(乾草) (4)갈초 등의 뜻으로 ①풀 ②거친 풀, 잡초(雜草) ③황야(荒野) ④풀숲, 초원(草原) ⑤시초(始初) ⑥초고(草稿), 초안(草案) ⑦초서(草書: 서체의 하나) ⑧암컷 ⑨풀을 베다 ⑩시작하다, 창조하다 ⑪엉성하다, 거칠다 ⑫초고(草稿)를 쓰다 ⑬천하다, 미천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풀이 나 있는 땅을 초지(草地), 풀이 난 들을 초원(草原), 사업을 일으켜 시작함을 초창(草創), 볏짚이나 밀짚 또는 갈대 등으로 지붕을 인 집을 초가(草家), 풀과 나무를 초목(草木), 서체의 하나인 초서(草書), 문장이나 시 따위를 초잡음을 초안(草案), 시문의 초벌로 쓴 원고를 초고(草稿), 녹색보다 조금 더 푸른색을 띤 색깔인 초록(草綠), 푸성귀로만 만든 음식을 초식(草食), 풀과 티끌이라는 초개(草芥), 꽃이 피는 풀과 나무를 화초(花草), 무덤에 떼를 입히고 다듬음을 사초(莎草), 무덤의 잡초를 베는 일을 벌초(伐草), 바다 속에서 나는 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해초(海草), 약이 되는 풀을 약초(藥草), 베어서 말린 풀을 건초(乾草), 시들어 마른 풀을 고초(苦草), 백성을 달리 일컫는 말로 민초(民草),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초가삼간(草家三間), 풀 사이 곧 민간에서 삶을 구한다는 뜻으로 욕되게 한갓 삶을 탐냄을 이르는 말을 초간구활(草間求活), 풀뿌리와 나무 껍질이란 뜻으로 곡식이 없어 산나물 따위로 만든 험한 음식을 이르는 말을 초근목피(草根木皮), 풀잎 끝의 이슬 같은 천자라는 뜻으로 덧없는 대장으로 강도의 수령을 이르는 말을 초두천자(草頭天子),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 있게 마음 씀을 이르는 말을 초려삼고(草廬三顧), 초목과 함께 썩어 없어진다는 뜻으로 해야 할 일을 못 하거나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이르는 말을 초목동부(草木同腐), 초목의 잎이 누렇게 물들어 떨어진다는 뜻으로 가을철을 이르는 말을 초목황락(草木黃落), 길 없는 초원을 걷고 들에서 잠잔다는 뜻으로 산야에서 노숙하면서 여행함을 이르는 말을 초행노숙(草行露宿), 풀빛과 녹색은 같은 빛깔이란 뜻으로 같은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거나 기우는 것을 이르는 말을 초록동색(草綠同色), 온 산의 풀과 나무까지도 모두 적병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적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찮은 것에도 겁냄을 이르는 말을 초목개병(草木皆兵), 풀을 베고 뿌리를 캐내다는 뜻으로 즉 미리 폐단의 근본을 없애 버린다는 말을 전초제근(剪草除根),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꽃다운 풀이라는 뜻으로 여름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을 녹음방초(綠陰芳草),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乙을 징계하여 甲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타초경사(打草驚蛇) 등에 쓰인다.
▶️ 上(윗 상)은 ❶지사문자로 丄(상)은 고자(古字)이다. 上(상)은 一(일)위에 짧은 一(일)을 쓰기도 하고, 또는 긴 一(일)위에 (ㆍ)을 쓰기도 하여 어떤 위치보다도 높은 곳을 나타낸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본디는 무엇엔가 얹은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며 下(하)에 대한 上(상), 위에 얹다, 위쪽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❷지사문자로 上자는 '위'나 '앞', '이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上자는 하늘을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上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二(두 이)자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만 아랫부분은 오목하게 윗부분은 짧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다. 上자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위'나 '윗'을 뜻하고 있다. 다만 소전에서는 二자와의 혼동을 피하고자 윗부분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上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上(상)은 (1)상감(上監) (2)위나 상부 (3)등급이나 차례 따위를 상(上), 중(中), 하(下) 또는 상, 하로 나눌 경우의 맨 첫째 , 중(中), 하(下) (4)무엇에서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따위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위, 윗 ②앞 ③첫째 ④옛날 ⑤이전 ⑥임금 ⑦군주(君主) ⑧사성의 일종 ⑨높다 ⑩올리다 ⑪드리다 ⑫진헌하다(임금께 예물을 바치다) ⑬오르다 ⑭탈것을 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隆), 밝을 앙(昻), 귀할 귀(貴), 무거울 중(重), 높을 고(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위로 올라감을 상승(上昇), 토의할 안건을 회의에 내어놓음을 상정(上程), 윗 등급이나 계급을 상급(上級), 높은 지위나 윗자리를 상위(上位), 위와 아래를 상하(上下), 정부에 세금을 냄 또는 진상품을 윗사람 에게 받침을 상납(上納),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오름을 상륙(上陸),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의 부근을 상류(上流), 높은 하늘이나 어떤 지역에 수직되는 공중을 상공(上空), 윗자리의 관원을 상관(上官), 위쪽의 부분을 상부(上部),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손을 상객(上客), 퍽 오랜 옛날을 상고(上古), 아래쪽으로부터 위쪽으로 향함을 상향(上向), 가장 좋은 대책 또는 방책을 상책(上策), 보통 사람보다 아주 많은 나이 또는 그 사람을 (上壽), 가장 좋은 계교를 상계(上計), 지붕 위를 옥상(屋上), 맨 위나 정상을 최상(最上), 책상이나 식탁 등 탁자의 위를 탁상(卓上), 상품을 사들임을 매상(買上),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위를 지상(至上),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끌어 올림이나 물건값을 올림을 인상(引上), 한 집안이나 한 민족의 옛 어른들을 조상(祖上), 위나 앞을 향해 발전함을 향상(向上), 산꼭대기나 그 이상 더 없는 것을 정상(頂上),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부상(浮上),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 오른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비유하는 말을 상루하습(上漏下濕),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괸다는 뜻으로 몹시 꼬이는 일을 당하여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맞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상하탱석(上下撑石),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당치 않은 데 가서 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는 말을 상산구어(上山求魚),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따름을 이르는 말을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 있는 하늘과 아래에 있는 땅으로 곧 천지를 이르는 말을 상천하지(上天下地),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을 천상천하(天上天下)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風(바람 풍)은 ❶회의문자로 风(풍)은 간자(簡字), 凨(풍), 凬(풍), 凮(풍)은 고자(古字)이다. 무릇(凡)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 병충(蟲)이 많이 번식한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람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바람'을 뜻하는 風자는 본래 봉황새를 그린 것이었다. 갑골문에 나온 風자를 보면 큰 날개와 꼬리를 가진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갑골문에 나온 風자는 바로 그 상상의 새를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라는 뜻으로 혼용되기 시작했다. 바람의 생성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인들은 봉황의 날갯짓으로 바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風자가 '봉황'과 '바람'으로 혼용되기도 했지만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凡(무릇 범)자에 鳥(새 조)자가 결합한 鳳자가 '봉황새'를 뜻하게 되었고 봉황이 몰고 왔던 바람은 凡자에 虫(벌레 충)자가 더해진 風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風(풍)은 (1)허황하여 믿음성이 없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 허풍 (2)바람을 막으려고 둘러 치는 천 (3)정신 작용, 근육 신축, 감각 등에 고장이 생긴 병. 전풍(顚風), 중풍(中風), 비풍(痺風) 따위 (4)원인을 알기 어려운 살갗의 질환(疾患). 두풍(頭風). 피풍(皮風). 아장풍(鵝掌風) 따위 등의 뜻으로 ①바람 ②가르침 ③풍속(風俗), 습속(習俗) ④경치(景致), 경관(景觀) ⑤모습 ⑥기질(氣質) ⑦병(病)의 이름, 감기(感氣), 중풍(中風: 뇌혈관의 장애로 인한 병) ⑧기세(氣勢: 기운차게 뻗치는 형세) ⑨절조(節操: 절개와 지조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⑩노래, 악곡(樂曲), 여러 나라 민요(民謠) ⑪뜻, 낌새 ⑫풍도(風度: 풍채와 태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⑬소식(消息), 풍문(風聞) ⑭멋대로, 꺼리낌 없이 ⑮바람을 쐬다 ⑯바람이 불다 ⑰풍간(諷諫)하다(완곡한 표현으로 잘못을 고치도록 말하다) ⑱감화시키다, 교육하다 ⑲외우다, 암송하다 ⑳유전(流轉)하다(이리저리 떠돌다), 떠돌다 ㉑암수가 서로 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옛적부터 행하여 온 모든 생활에 관한 습관을 풍속(風俗), 바람의 세력을 풍력(風力), 음식의 고상한 맛을 풍미(風味), 기후와 토지의 상태를 풍토(風土), 바람이 부는 방향을 풍향(風向), 어떤 상황이나 형편이나 분위기 가운데에 있는 어느 곳의 모습을 풍경(風景),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을 풍파(風波), 속사를 떠나 풍치가 있고 멋들어지게 노는 일을 풍류(風流),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을 풍문(風聞), 뜨거운 바람을 열풍(熱風), 몹시 세게 부는 바람을 폭풍(暴風), 자기가 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역풍(逆風), 첫여름에 부는 훈훈한 바람을 훈풍(薰風), 갑자기 거세게 일어나는 바람을 돌풍(突風), 미친 듯이 사납게 부는 바람을 광풍(狂風),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 또는 사물이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바람에 불리면서 먹고 이슬을 맞으면서 잔다는 뜻으로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찬노숙(風餐露宿),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이미 돌아가셔서 효양할 길이 없어 한탄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목지비(風木之悲), 바람이 불어 우박이 이리 저리 흩어진다는 뜻으로 엉망으로 깨어져 흩어져 버림이나 사방으로 흩어짐을 이르는 말을 풍비박산(風飛雹散), 뚫어진 창과 헐린 담벼락이라는 뜻으로 무너져 가는 가난한 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창파벽(風窓破壁), 태평한 시대에는 나뭇가지가 흔들려 울릴 정도의 큰 바람도 불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상이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풍불명지(風不鳴枝),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라는 뜻으로 일정한 주의나 주장이 없이 그저 대세에 따라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풍타낭타(風打浪打), 구름과 용이 만나고 바람과 범이 만나듯이 밝은 임금과 어진 재상이 서로 만남을 이르는 말을 풍운지회(風雲之會),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친다는 뜻으로 매우 빠름을 이르는 말을 풍치전체(風馳電掣), 맑은 바람과 밝은 달 등의 자연을 즐기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풍월주인(風月主人),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뜻으로 들떠서 어수선한 것이 가라앉음을 이르는 말을 풍정낭식(風定浪息),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짐을 이르는 말을 풍류운산(風流雲散), 바람과 비가 순조롭다는 뜻으로 기후가 순조로워 곡식이 잘 됨 또는 천하가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풍조우순(風調雨順),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바람과 구름 고기와 물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아주 가까운 사이를 비유하는 말을 풍운어수(風雲魚水), 바람 앞의 티끌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풍전지진(風前之塵),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목욕한다는 뜻으로 외지에서 겪는 고생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풍즐우목(風櫛雨沐) 등에 쓰인다.
▶️ 必(반드시 필)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八(팔; 나눔, 필)과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의 합자(合字)이다. 땅을 나눌 때 말뚝을 세워 경계를 분명히 하여 나눈다는 데서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必자는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必자는 心(마음 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심장'이나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必자는 물을 퍼 담는 바가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나온 必자를 보면 바가지 주위로 물이 튄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必자는 바가지나 두레박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더한 柲(자루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참고로 必자는 心자에서 유래한 글자가 아니므로 글자를 쓰는 획의 순서도 다르다. 그래서 必(필)은 ①반드시, 틀림없이, 꼭 ②오로지 ③가벼이, 소홀히 ④기필하다, 이루어 내다 ⑤오로지, 전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없어서는 아니 됨을 필요(必要), 그리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필연(必然), 반드시 없으면 안 됨을 필수(必需), 꼭 이김이나 반드시 이김을 필승(必勝), 필연이나 반드시를 필시(必是), 반드시 패함을 필패(必敗), 반드시 읽어야 함을 필독(必讀), 장차 반드시 이름이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됨을 필지(必至), 반드시 죽임 또는 그런 마음가짐을 필살(必殺), 꼭 얻음 또는 꼭 자기의 물건이 됨을 필득(必得), 필요하게 씀을 필용(必用), 반드시나 틀림없이 꼭을 필위(必爲), 꼭 그리 됨을 필정(必定), 반드시 명중함을 필중(必中), 반드시 앎을 필지(必知), 우편물 따위가 정해진 기일까지 틀림없이 도착함을 필착(必着), 꼭 이루기를 기약함을 기필(期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 또는 어찌하여 반드시를 하필(何必), 필요가 없음을 불필(不必), 생각하건대 반드시를 상필(想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을 해필(奚必),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일컫는 말을 필사즉생(必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일컫는 말을 필생즉사(必生則死),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필유사단(必有事端), 틀림 없이 꼭 망하고야 맒이나 패멸을 면할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필망내이(必亡乃已),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필유곡절(必有曲折), 품은 원망을 반드시 풀어 없애고자 애씀을 일컫는 말을 필욕감심(必欲甘心), 결코 이러할 이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필무시리(必無是理),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말을 여필종부(女必從夫),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상만사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생자필멸(生者必滅),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을 거자필반(去者必返),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덕필유린(德必有隣),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세상일은 무상하여 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성자필쇠(盛者必衰), 어찌 꼭 이익만을 말하는가 라는 뜻으로 오직 인의에 입각해서 일을 하면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필왈이(何必曰利),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결국은 본뜻대로 됨을 이르는 말 또는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말을 만절필동(萬折必東) 등에 쓰인다.
▶️ 偃(쓰러질 언)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匽(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偃(언)은 ①나부끼다 ②쓰러지다 ③눕다 ④눕히다 ⑤쉬다, 휴식하다(休息--) ⑥편안하다(便安--) ⑦그치다 ⑧교만하다(驕慢--) ⑨쏠리다 ⑩깃발(旗-)이 나부끼는 모양 ⑪방죽(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 ⑫뒷간 ⑬사람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거드름을 피우고 거만스러움을 언연(偃然), 거드름을 피우며 거만함을 언건(偃蹇), 걱정이 없어 편안하게 누워서 쉼을 언식(偃息), 젠체하고 뽐내며 거만함을 언오(偃傲), 물리어 싫증이 낢을 언권(偃倦), 편안하고 편리함을 언편(偃便), 엎디어 누워서 봄을 언견(偃見), 누운 잣나무를 일컫는 말을 언송(偃松), 거만하게 벌떡 누워 있음을 언와(偃臥), 음력 보름 전후의 반달이나 반달처럼 생긴 둥글고 우뚝한 물건 모양 또는 모자나 벙거지의 가운데 둥글게 우뚝 나온 부분을 언월(偃月), 풀이 바람에 나부낌과 같이 백성이 교화에 복종하는 일을 언초(偃草), 한쪽으로 쏠리어 쓰러짐을 경언(傾偃), 무기를 보관하고 쓰지 않음 곧 전쟁이 끝이 남을 언무(偃武), 누웠다 일어났다 한다 또는 편안하게 한가로이 쉼을 언앙(偃仰), 쥐는 작은 동물이라서 강물을 마신대야 자기 배 하나 가득히 밖에 더 못 마신다는 뜻으로 자기 정한 분수가 있으니 안분하라는 말을 언서지망(偃鼠之望), 전쟁터에서 군기를 누이고 북을 쉰다는 뜻으로 휴전함을 이르는 말을 언기식고(偃旗息鼓),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풀이 쏠린다는 뜻으로 군자의 덕이 소인을 감화시킴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 바람에 물결이 밀리고 풀이 쓰러진다는 뜻으로 뭇사람이 시국의 형편이나 추세에 휩쓸려 따름을 이르는 말을 파분초언(波奔草偃), 풀이 바람 따라 쏠린다는 뜻으로 임금의 덕이 백성을 감화시킴을 이르는 말을 초언풍종(草偃風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