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서도 갑甲과 을乙이 있다.
함양군 안의면의 안의초등학교는 백여 년 전만 해도 안의 현청이
있었던 곳이라서, 안의 현감으로 부임했던 박지원의 사적비가 서 있으며, 곳곳에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하릴없이 대청을 오가다가 홀연 쌍륙(놀이의 한 가지,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의 끝수에 따라 말을 써서 먼저 궁宮에 들여보내는 것을 겨루는 놀이)을 가져다가 오른 손을 갑甲, 왼 손을 을乙로 삼아 교대로 주사위를 던지며 혼자 쌍륙을 두었다. 당시 곁에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혼자 쌍륙 놀이를 한 것이었다.
쌍 륙 놀이를 끝낸 아버지는 웃으며 일어나 붓을 들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사흘간이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람에 어여쁘던 살구꽃이 죄다 떨어져 땅을 분홍빛으로 물들였습니다. 긴 봄날 우두커니 앉아 혼자 쌍 윷놀이를 하였습니다.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어 ‘다섯이야!’ ‘여섯이야!’ 하고 소리치는 중에도 나와 너가 있어 이기고 짐에 마을을 쓰게 되니 문득 상대편이 적敵으로 느껴졌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나의 두 손에 대해서도 사사로움을 두고 있는 건지. 내 두 손이 갑과 을로 나뉘어 있으니 이 역시 물이라 할 수 있을 터이고, 나는 그 두 손에 대해 조물주의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건만 사사로이 한 쪽을 편들고 다른 한 쪽을 억누름이 이와 같았습니다. 어제 비에 살구꽃은 죄다 떨어졌지만, 곧 꽃망울을 터트릴 복사꽃은 장차 그 화사함을 뽐내겠지요. 나는 또 다시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 조물주가 복사꽃을 편들고 살구꽃을 억누르는 것 역시 사사로움을 두어서인지,
아버지가 편지를 쓰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선생님이 혼자 쌍륙을 두 슨 것이 놀이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글을 구상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실린 글이다.
자기 자신의 몸에 딸린 두 손 중에서도 다른 손을 편드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들 하면서
모든 자식을 고루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자식들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자식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식이 있다.
그것이 세상의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그런데 하물며, 서로 다른 정파들이야 말해 무엇 하랴,
칼과 총만 안 들었지, 전쟁이나 다름없는 선거가 한참 물이 올랐고,
3월 9일 밤에는 그 승패가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변함없는 진리는 모든 것이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고 과거가 되리라.
자!, 흥미진진한 이 싸움, 당신은 어느 편을 들고 있는가?
2022년 1월 28일
함양 안의 초등학교의 박지원 사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