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더워”
찌는 듯한 더위에 공원 한쪽 시원한 벤치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매년마다 여름은 더워지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조만간 숯불이 되어서 사라질꺼야”
한 손에는 들고 있던 부채를 들면서 조금이라도 더위를 가시게끔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것들은 오늘 약속이 있는거 아는거야 모르는거야”
일주일전 여름방학 때 한번 만나서 놀자라는 취지로 모인건데 약속시간 1시간이 지나도록 개미 한마리 지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 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며 문자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은아 미안해 오늘 남친이랑 놀기로 했어 미안 – 주현’
‘미안해 오늘 남친이랑 놀기로 했어 – 희숙’
친구들이 보내온 문자들이었다. 하지만 거의다가 남친이랑 논다는 이유로 약속해 못 나가겠다는 그런 메시지였다.
“아씨 이것들이 정말”
난 재빨리 답문을 보냈다.
‘겨우 남친 때문에 나랑 약속을 파기해 니들이랑은 절교야 절교 연락하지마’
라는 끝으로 핸드폰 밧데리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아 짜증나 누구는 남친 없어서 이런대서 놀고 있는 줄 알아”
사실 다은이에게는 남친이 없었다. 얼마전에 사귀던 남친이랑은 이미 깨지진 오래였다.
‘남자새끼가 쪼잔하게 벤뎅이 속인 줄 누가 알았겠어’
헤어지게 된 이유 길가다 우연히 예쁜 목걸이가 있는 노점상을 발견하고는 그거 하나만 사달라고 했더니 너무 비싼거 아니냐면서 투덜되기 시작하더니 사주고서도 계속해서 투덜되었지 겨우 2천원 밖에 안 했는데 결국에는 참다못한 내가 그 목걸이를 주면서 헤어지자고 했지
‘남자랑 자고로 돌같이 보라’
다연이 언니의 명언이었다. 남자들 너무 믿지 말며 남자들을 갖고 놀아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다연이 언니의 말이 그날따라 더 생각이 났었지 아무튼
“덥단 말이야 이 더운날 만나자고 약속을 해놓고서 이것들 정말 친구도 아니야 친구의 인연을 끊어버릴꺼야”
공원이 떠나가라 길길이 날뛰는 다은 누가 쳐다보던 상관 안하는 성격이기에 난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날뛰고 나자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누가 지나가나 보고는 이내 자신의 가방을 머리말에 올려놓으면서
“여기서 좀만 자고 가야지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을꺼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고는 벤치에 드러누운 다은이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구나”
벤치위에는 나뭇가지가 그늘이 되어주어서 그런지 바람은 솔솔 잘도 불어왔다.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다은이는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이상한 비명소리에 잠이 확 깨어지면서 눈을 반짝 뜬 다은이
“어 벌써 날이 어두워졌잖아”
자다 일어나 보니 어느덧 주위는 어둠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 몇 시지?”
부스스한 몰골로 자신의 왼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다은이
“에?! 벌써 9시야”
부랴부랴 일어나서 가방을 챙기고는 벤치에 나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근데 아까 그 비명소리는 뭐지? 비명소리에 놀라서 깬거 같은데”
귀를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아도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까 잘못 들었나 보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발은 빠르게 공원을 빠져 나갈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뭔가 폭신한 느낌이 발 끝에서 느껴졌다.
“엉?!”
그 때 뭔가 신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윽”
“어라?!”
앞으로 좀더 걸어와서 뒤쪽으로 보니 사람이 한명이 엎어져 있는게 보였다.
“까악”
다은이는 무의식 적으로 치한인줄 알고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아까전에 다은이 때렸던 남자는 다은이 보다 2살 어린 남자 아이였다. 남자아이는 오만가지 인상을 쓰면서 다은이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치한?”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 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뭔가 신기한 듯 다연이를 쳐다보았다.
“너 나 몰라?”
“네?”
“나 모르냐고”
“모르는데”
남자아이는 다은이의 말에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너 정말 나 몰라?”
“누군데요?”
뭔가를 말하려던 남자는 뭐가 그리 웃긴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혹시 내가 아까 밟으면서 이상해진건 아닐까?
“괜찮아 너 텔레비전 안보냐?”
“네 안보는데요”
“그러니까 나를 모르지”
“네?”
“아니야 아무것도”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어보이는 남학생 나보다 2살 어리니까 올해 14살이겠구나 근데 14살 치곤 너무나 이쁘게 생겼다. 남자한테 이런 말 미안하지만 정말 여자인 줄 착각할 정도로 이쁘게 생겼다. 모자를 너무 깊게 푹 눌러씀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보이는 그 아이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썬글라스를 끼고 있었지 그리고 나보다 좀 작은 키구나 그 녀석을 관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핸드폰 소리가 들리면서
“여보세요”
목소리도 좀 미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아직 변성기가 지나가지 않았는지 목소리는 여자처럼 가늘었지만 그리 싫지 않는 목소리였다.
“알았어요 지금 xx공원 안이예요 예 10분이면 온다고 알았어요 거기에 가 있을게요”
남자아이는 전화통화를 짧게 하고 끊더니 나를 보면서
“야 너 앞으로 길거리 돌아다닐 때 양쪽 좌우는 기본이요 아래위도 잘 보고 다녀 그럼 안녕”
이라는 말을 하고 다시 한번 웃어보이고는 바람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 한동안 멍해져 있던 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찮게 본 청소년들이 나온 드라마로 기억을 한다. 거기에 얼마 전 공원에서 마주친 그 녀석을 볼 수 있었다.
“푸하 엄마”
물을 마시다 말고
“왜 다은아?”
“저 아이?”
나는 그 남자애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누구 지금 나오는 애”
“네”
“저 아이 요즘 잘 나가는 아이라지 아마”
우리 엄마는 드라마의 광팬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연예인들의 대해서는 박식하다고 할 수 있다.
“이름이 뭐야?”
“이름이 아마 류은이라고 했지 너 아는 사람이야”
“아니 류은이라고?”
“그래 요즘 한창 잘나가는 아역배우라고 하지 아마”
“그렇구나”
그래서 그 아이가 나 모르냐고 했던 거구나 워낙에 내가 텔레비전을 잘 안봐서 말이지 그나저나 저렇게 보니까 또 다른 모습이네 그때도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보니까 더 이쁘게 보인다. 그때부터 나와 엄마는 류은의 광적인 펜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 하겠다.
시간이 흘러 전다은 비운의 고3이 되어버린 어느 아침
“다은이 언니 일어나”
늘 아침마다 다빈이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도 늘 잠만자는 이 시대의 불행한 고3인 전다은
“지금 몇시야?”
“응 6시 30분”
“일찍도 깨운다.”
“어제 오늘 6시 30분까지 깨어 달라고 했잖아”
“그건 그렇치”
“아무튼 나 나갔다 올게”
“약수터 가?”
“응”
“잘 갔다와”
“응”
다빈이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침대 속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꼭 껴안은 인형을 보고 씩 웃었다.
“류은아 안녕”
그날 이후로 나는 류은의 왕팬이 되어버렸다. 텔런트에서 얼마전에는 가수로도 활동 영역을 넓힌 류은, 1년전에 다희언니한테 부탁해서 만들어 달랬던 류은인형에게 인사를 함으로서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제 네 꿈을 꾸었어 너랑 처음 만나던 꿈”
인형을 황홀하게 쳐다보는 다은이, 이러다가 지각하는거 아닌지 걱정이 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잘 잤니”
“네 엄마”
그리고 부엌 한켠에 있는 어느 여자보고는
“까악”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는
“언니”
놀랬다. 아침부터 언니의 모습을 보자니 놀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늘 늦게 일어나는 언니였는데
“뭘 그렇게 놀라냐?”
“아니 언니 그 모습 봐도 적응이 안돼 근데 오늘 일찍가네?”
“응 시험이 있어서”
“헤헤 역시 대단한 언니야”
늘 느끼는 거지만 다연이 언니는 대단하다. 중.고등학교 통틀어서 1등을 놓친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대학교 가서도 늘 과 수석은 맡아 놓았고 그리고 장학금까지 받는 언니였다.
“그래…잘 먹었습니다. 저 갈께요”
“다연아 좀 있다가 아빠도 나가실꺼 같은데 데려다 달라고 하지”
“싫어요 엄마 그냥 버스타고 갈께요”
“다연아”
“다녀 오겠습니다.”
물끄러미 언니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엄마
“엄마?”
“왜 다은아?”
“언니가 아직도 아빠 미워하는걸까?”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모르겠구나 어머 여보 일어났어요”
우리가 이야기 하는 사이에 부엌쪽으로 고개를 내미시는 아빠
“다연이 나가는거 같은데…”
“오늘 시험이라고 일찍 나갔어요”
“그래 요즘 얼굴을 볼 수가 없네”
“그러게 말이예요 많이 바쁜가 봐요”
“그런가?”
어렸을적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무슨 사건으로 사이가 벌어졌는데 아직도 아빠와 다연이 언니 사이는 안좋았다. 앗! 이럴때가 아니지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렴”
엄마의 인사 소리와 함께 오늘도 고3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손을 번쩍 들은 내 모습에
“어 전다은 왜 그래?”
“좀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잠시 양호실 갔다와도 될까요?”
“어디 아프니?”
“아니 좀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래 어서 내려가렴”
내 말에 어서 내려가라고 말하는 선생님, 이럴 때 보면 우등생은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열이 있구나 좀 쉬다 가렴”
보기 좋게 웃어보이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얌전히 침대위에 누웠다.
휴우 날씨 정말 좋다. 이런 날에도 공부해야하는 내 처지야 서럽구나
‘꿈에서 류은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류은 왕자님?
”다은 공주님”
서로 맞 잡은 손에 춤을 추는 나와 류은왕자 이건 분명히 꿈이겠지…..하지만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씨발 내가 일 잡지 말랬지”
“그게 말이 되냐고”
너무나 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버린 다은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큰소리를 내는거야’
하지만 이런 내 생각도 잠시 뭔가 던져버리는 소리와 함께 내쪽으로 가려진 커튼이 천천히 열리면서 예쁘장한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 아까 목소리는 남자였는데???”
그 아이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후에는 좀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잠시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