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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도원과 연호는 앞뒤 사정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무릎 꿇고 비는 낯선 사람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더 놀란 건 팔짱을 낀 채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유미의 말이었다.
“결혼식이 코앞인데 이제와 빌어봐야 소용없다니까. 어느 누가 선뜻 취소해주겠어? 뒤늦게 나타나 이러는 거 너무 뻔뻔하잖아.”
“아..알고 있어.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당신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니... 제발 그것만은...”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며 핏줄이 서도록 주먹을 움켜쥐는 남자.
이내 얼굴을 들고 도원에게 애원한다.
“부탁드려요. 전 유미를 사랑합니다. 그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요!”
도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유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도원과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만지는 척하며 슬쩍 시선을 피한다.
도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고는 이내 모든 걸 이해한 듯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흠.. 그랬단 말이지? 좋아. 장단에 한번 맞춰주지.’
그는 생각이 정리되자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며 유미의 연인을 향해 말했다.
“음, 그렇게 사랑한다면 애초에 헤어지질 말았어야지. 이제와서 이러면 내가 곤란한데...”
그렇게 말하며 도원이 다시 유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묘한 눈짓을 그제야 알게 된 연호도 상황을 이해하고 입을 다문 채 슬쩍 한걸음 물러선다.
사정을 모르는 건 유미의 연인인 민철 뿐이었다.
유미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그야말로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회유와 협박으로 이별을 강요받았었다.
민철은 자신이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 유미까지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현실을 감당하기 힘겨웠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유미가 보기 힘들어 결국 이별을 말했다.
하지만 혼자가 된 후에 겪은 아픔은 둘이 있을 때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괴로웠다.
게다가 유미의 결혼소식은 그를 거의 미치게 만들 뻔 했다.
그제 서야 깨달은 것은 그녀와 헤어져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진실이었다.
이미 늦은 걸 알지만 그는 유미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온 민철에게 유미는 파경지경에 이른 결혼에 대해서 함구했다.
자신을 버렸던 일에 대한 약간의 복수이기도 했다.
좀 더 애타하고 간절하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민철을 데리고 도원의 집에 온 것이다.
사정을 알 리 없는 민철은 그저 도원에게 이 결혼을 취소해 달라고 매달릴 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어리석어서...... 하지만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겁니다! 절대 유미를 누구에게도 보낼 수 없습니다!”
강한 어조로 말하는 민철의 모습에 유미의 표정이 흐뭇해진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도원과 연호도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도원은 애써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며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이거 참. 결혼식장에 신혼여행지까지 들어간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제가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그리 간단한 액수가 아닐텐데요.”
“평생에 걸쳐서라도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결혼식을 취소해 주십시오!”
진심을 담아 애원하는 민철의 모습에 도원도 더 이상은 연극을 할 수가 없었다.
“이봐요, 남민철씨. 사실 애원할 사람은 접니다. 제발 진유미씨한테 이 결혼 좀 취소해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네??”
민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한다. 도원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더 이상 결혼 할 수 없다고 아무리 얘길 해도 도대체 들어주질 않아.”
도원이 연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민철은 그저 눈만 끔뻑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다.
그제야 유미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민철의 눈이 더 휘둥그레진다.
“아, 아깝다. 속 좀 더 끓여야 했는데.”
아쉬워하는 유미를 민철은 어리둥절해하며 돌아본다.
“그게 무슨...”
당황해하는 민철을 가볍게 노려보며 유미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했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절대 용서하고 싶지 않지만 무릎 꿇고 싹싹 비는 걸 보니 불쌍해서 봐주기로 했어.”
순진한 얼굴로 아직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의 민철.
도원이 나서서 사정설명을 했다.
“어차피 결혼식은 취소할 겁니다. 아까 말했듯이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유미씨도 이제 연인을 찾았으니 우리가 결혼식을 올릴 필요가 없어진 거죠.”
그제야 이해를 한 듯 민철이 야속하단 얼굴로 유미에게 하소연했다.
“어째서 말하지 않은거야! 내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민철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갑자기 유미가 벌떡 일어서더니 민철의 뺨을 한 대 후려치고는 와락 그 가슴에 안겼다.
“그러니까 두 번 다시 혼자 도망치지 말란 말야!”
“미안해.. 잘못했어..”
시원스런 따귀 한 대와 함께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앙금이 사라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긴 유미는 한없이 편안해보였다.
흐뭇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도원과 연호는 서로를 마주보며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민철 덕분에 유미의 마음이 돌아섰고 결혼식은 취소되었다.
물론 양가 부모님들로부터 호된 야단을 맞았다.
그래도 두 사람 모두 마음만은 행복했다.
퍼즐조각처럼 꼭 맞는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유미와 민철을 갈라놓으려는 훼방꾼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두 사람 또한 예전처럼 쉽게 당하진 않았다.
일단 절대 헤어지지 못하도록 둘 사이에 든든한 끈을 이어놓기로 했다.
임신소식이 들린 건 그로부터 두 달쯤 후였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도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방해는 계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어진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끝까지 잘 해 나갈 거란 믿음이 있었다.
두 사람의 고군분투를 들으며 연호는 안쓰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았으니 그들은 이제 누가봐도 단란한 가족인 것이다.
그에 비해 아무리 사랑해도 자신과 도원을 그들처럼 가족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예전같으면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비참한 기분에 빠졌을 것이다.
더는 도원의 곁에 있으면 안되는 게 아닐까 하며 자책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달라졌다.
비록 사람들의 못마땅한 눈초리를 받는다 해도 기꺼이 감수해 낼 용기가 생겼다.
또 언젠가 도원의 가족들로부터 민철이 당했던 것 이상의 수모와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이겨내리라 마음먹었다.
곁에 도원만 있다면 뭐든 지 해낼 자신이 생겼다.
사실 지금 주변의 현실을 보자면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었다.
빚은 여전히 쌓여있고, 병약한 어머니에 사고뭉치 여동생도 그대로다.
다만 달라진 것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든든함.
신기하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달라 보인다.
지긋지긋한 현실에 있는 대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존심 때문에 고개 한번 숙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인상을 찌푸리며 살았던 나날이 이제 달라졌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포근하게 안아주는 두 팔이 있다.
사랑해, 라며 귓가를 울리는 속삭임이 있다.
괜찮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힘껏 안아주는 사람.
그 모든 게 삶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하루가 지나면 지난 시간만큼의 추억이 쌓인다.
쌓여가는 추억만큼 사랑도 깊어갔다.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도 금세 서로의 품이 그리워진다.
한나절쯤 지나면 목소리가 듣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전화를 걸고, 점심메뉴에 대한 흔해빠진 대화를 나누고... 그것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고.
행복이 날마다 가까이에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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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준비 멀었어? 뭐 도와줄까?”
도원이 주방을 기웃거린다.
“여긴 됐고, 거실 좀 치워줘. 세미가 이것저것 만질지도 모르니까 깨질 물건은 다 서랍에 넣고 잘 닫아둬. 요즘은 어찌나 활발한지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다닌다니까.”
“알았어. 아, 참. 와인이 거의 떨어졌을 텐데..”
“세훈이가 사온대.”
“언제부터 세훈씨가 세훈이로 바뀐 거야?”
“벌써 잊어버렸어? 지난달에 술마시며 그냥 다 친구하기로 했잖아.”
“...그랬나?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튼,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니까. 한껏 취해서 자기가 먼저 친구하라고 주선해놓고는.”
“흐음...”
도원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연호가 새로 온 문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지연씨 거의 다 왔대. 무슨 케익 좋아하냐고 묻는데? 뭘로 사오라고 할까?”
“뭐?! 그 여자도 오는 거야?!”
연호는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난 싫단 말야! 아직도 널 좋아하잖아!”
“그냥 친구야”
“아주 개나소나 다 친구구만!”
연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식칼로 도마를 탕하고 내리쳤다.
도원이 움찔한다.
“나한테 아주 고마운 사람이야. 예의있게 대해. 알았지?”
칼을 든 채 살벌한 표정으로 말하는 연호의 기세에 도원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제일 먼저 도착한 손님은 벌써 임신 8개월로 접어든 유미와 민철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미를 안은 주희, 와인과 꽃을 든 세훈, 케익과 쿠키를 잔뜩 산 지연이 줄줄이 도착했다.
사람들을 초대하자고 처음 제안한 건 연호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지 꽤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연호와 도원이 함께하게 되기까지 신세 진 사람들도 많아 이번 기회에 늦은 집들이 겸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한 것이다.
넓기만 하던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제 제법 잘 걷기 시작한 세미는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오가며 온갖 재롱을 부려댄다.
앙증맞고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곧 출산을 앞둔 유미는 이미 경험이 있는 주희를 상대로 이것저것 열심히 질문을 쏟아낸다.
주희는 출산선배로서 약간의 잘난 척을 더해 자신의 경험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도원과 연호를 간간이 흘끔거렸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오빠가 남자와 사는 게 싫고, 또 스스로가 도원에게 여러 가지 켕기는 일이 많아 영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했다간 오빠가 또 다시 멀리 떠나버릴까 두려웠다.
늘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무서웠고, 도원이 괜찮은 남자란 걸 알기에 주희는 그럭저럭 마음을 정리하고 두 사람을 지켜보는 중이다.
폭풍 같은 식사시간이 지나고 각자 와인과 커피를 마시며 거실에 둘러앉았다.
“아, 배불러. 역시 연호씨 음식솜씨가 최고야.”
지연이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연호 대신 도원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많이 먹는 줄 몰랐군. 그러고보니 살이 붙었어. 예전에 사귈 땐 호리호리한 몸매였는데..”
그녀를 약올리려는 의도가 명백했지만 쉽게 넘어갈 지연이 아니었다.
“어머 그래요? 잘됐다. 연호씨 통통한 스타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렇죠?”
“그럼요. 볼살이 통통하면 얼마나 귀여운데요.”
연호가 맞장구를 쳐준다.
“뭐라고?! 나한테는 요즘 배나왔다고 다이어트 하라고 했잖아!”
“남자랑 여자는 틀리지. 남자가 나이 들어 배나오면 완전 아저씨 되는 거잖아. 여자들은 나름 귀여운 매력이 있거든.”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남녀차별이야?”
“이게 무슨 차별이냐? 다 네 건강을 생각해서 뱃살 좀 주의하라는 거지.”
“내가 어디가 뱃살이 나왔다는 거야! 이 탄탄한 복근을 보라고! 아직 식스팩이 건재하다니까!”
“그거 원팩 된 지 오랜데...”
연호가 중얼거리는 말에 금세 웃음바다가 되었다.
도원만 자기 배를 만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여전히 남자다운 멋진 몸매를 자랑하는 그이지만 연호가 작정하고 놀리는 데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연호의 농담 덕분에 대화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계속 이어졌다.
언뜻 보면 부조화스러운 모임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연호에게는 모두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유미와 민철 또한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눈 덕분인지 그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위로도 해주고, 도와주며 친해지게 되었다.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유미도 알면 알수록 다정하고 사랑스런 여자였다.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연호였다.
차를 마시고, 술잔을 나누며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자칫 서먹해질 수 있는 지연과의 관계도 그녀의 친절함과 너그러움으로 원만하게 지속할 수 있었다.
서로 불편해하는데 괜한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닌가 했던 당초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세미 덕분인지 주희마저도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연호는 도원과 함께 뒷정리를 했다.
적잖은 양의 음식들을 해치운 뒤라 주방엔 설거지가 쌓였고 거실 또한 세미가 휩쓸고 지나간 터라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휴우, 이거 다 치우려면 밤새도 모자라겠다.”
연호가 앞치마를 집어들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도원이 재빨리 연호에게서 앞치마를 빼앗았다.
“준비하느라 힘들었지? 정리는 내가 할게.”
그리고는 스스로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 앞으로 간다.
“꽤 많은데...”
연호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도원이 맡겨만 두라며 자신있는 얼굴로 고무장갑을 낀다.
“내가 다 할 테니까 넌 소파에 앉아서 좀 쉬어.”
“괜찮겠어? 아무래도 내가 하는게 나을텐데...”
라고 말하면서도 못이기는 척 소파에 앉는 연호.
그가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쨍그랑하며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깜짝 놀라 달려가자 아직 본격적인 설거지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접시 하나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게 .. 저기.. 손이 미끄러져서..”
주방세제가 묻은 채 그릇을 잡다 깨뜨린 모양이다.
“깨진 거 밟지 않게 조심해.”
연호는 걱정스런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접시 조각들을 치웠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자마자 도원이 난감한 얼굴로 유리컵을 든 채 연호를 바라본다.
자세히 살피자 컵에 지그재그로 금이 가 있었다.
“됐어! 저리 비켜!”
“아니야! 조심해서 할게!”
라고 말하며 다시 황급히 그릇을 들어 올리다 그대로 수도꼭지에 쨍하고 부딪치는 도원.
“하기 싫으면 그냥 말로 해라.”
연호가 서슬퍼런 눈으로 노려보자 도원이 얼른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야. 진짜 일부러 그런거 아니야!”
그대로 뒀다간 집에 있는 그릇이 반으로 줄 것 같아 연호는 도원에게서 강제로 고무장갑을 벗겼다.
“가서 거실이나 치워!”
주방에서 쫓아낸 다음에야 마음 놓고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산처럼 쌓인 그릇을 치우고 나오자 어느새 거실이 말끔해져 있다.
못한 설거지를 대신해 도원이 열심히 치운 흔적이 보인다.
마치 칭찬받길 기대하는 아이처럼 깨끗해진 거실을 보여주며 흐뭇하게 웃고있는 도원.
연호는 그의 엉덩이를 톡톡 쳐주며 잘했어라고 말했다.
“그게 다야?”
“그럼 뭘 더 바래? 머리라도 쓰다듬어줘? 이리 와. 실컷 쓰다듬어 줄게.”
“머리는 안 돼!”
도원이 얼른 손으로 머리를 가린다.
지난번 탈모가 심해 대머리가 되는거 아니냐는 연호의 농담을 들은 후 아닌 걸 알면서도 은근히 머리카락에 신경이 쓰이는 도원이었다.
“진한 프렌치키스 정도는 해줘야지.”
도원이 연호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아직 이도 안 닦았잖아. 아까 보니까 구운마늘을 엄청 주워먹던데...”
스테이크에 곁들여 나온 구운 마늘이 맛있어 좀 과하게 먹었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마늘냄새 나니까 키스하기 싫다는 거야?! 너도 아까 양파 튀긴거 많이 먹었잖아!”
“그러니까 빨리 가서 양치부터 하라고. 나도 할테니까.”
“와아, 서연호. 완전 변했구만! 머리카락 빠졌다고 구박하고, 배나왔다고 구박하더니 이젠 입냄새 나서 키스하기 싫다고!!”
요즘 도원을 놀려먹는데 한창 재미가 붙은 연호였다.
도원이 이렇게 길길이 뛰며 반응할 때 마다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 참기 힘들다.
“흠흠, 내가 언제 구박을 했다고 그래. 그냥 서로 깔끔하게 씻은 뒤에...”
“어차피 밤마다 볼 꼴 못 볼꼴 다 보는 사이에 깔끔은 무슨!! 에잇, 몰라!”
도원이 다짜고짜 연호의 얼굴을 붙잡더니 막무가내로 입술을 부딪쳐온다.
“읍!”
순식간에 도원의 혀가 입속을 헤집는다.
놀라 저항하는 척 그의 가슴을 밀어내던 연호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키스에 결국 항복해버렸다.
그렇게 도원이 원하던 프렌치 키스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지금은..안..돼.. 샤워 하고..”
입맞춤이 이어지는 내내 도원이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참다못해 연호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쉽게 도망가게 놔둘 도원이 아니었다.
“샤워보다 내가 더 급해.”
그는 연호를 가뿐히 안아들고는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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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뿌옇게 스며들어 마치 안개에 감싸인 듯 은은한 분위기가 방안을 감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서로의 몸에 나른하게 팔다리를 얹고 누워 있었다.
밤이 늦었지만 두 사람 모두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차례 격렬한 행위가 지나간 뒤 그 여운을 음미하며 피부에 희미하게 남은 자국들을 손끝으로 매만진다.
고요하고 따뜻한 평화로움이 침대 주변에 내려앉는다.
“참 질긴 인연이지?”
낮은 음성이 기분 좋게 연호의 귓가를 울렸다.
연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남들이 보면 지긋지긋한 인연이라고 할 거야.”
연호의 표현이 재밌었는지 도원이 작게 키득거린다.
“맞아. 지긋지긋하게 질긴 인연. 그게 우리야. 그래도 한번씩 이별통보를 주고받았으니 꽤 공평한 관계잖아. 그렇지?”
고등학교 시절 처음 만나 사랑했을때 연호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재회하고 사귀었을때는 도원이 버림받았다.
어쩌다보니 한번씩 이별을 주고받아 버린 것이다.
“무슨 스코어 매기냐? 1:1 동점도 아니고...”
헤어졌을 때의 아픔이 떠올랐는지 연호가 짐짓 토라진 말투로 말했다.
“그거 재밌는데? 현재 이별스코어 1:1. 양 선수 동점입니다!”
“유치하니까 그만하셔. 이게 무슨 운동경기인줄 알아? 아예 한점 더 얻어서 이기지 그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경기는 이미 끝났어. 이제부턴 ‘둘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해피한 동화를 만들어야지.”
도원이 더 바짝 연호를 끌어안았다.
내려다보이는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대로 끝나도 내겐 해피엔딩이야. 지금 죽어도 내일 아침에 웃는 얼굴로 발견될 것 같아.”
“그런 끔찍한 농담은 사양하겠어.”
“그 정도로 지금이 행복하단 말씀이지.”
오글거릴만큼 낯 뜨거운 고백에 연호는 얼굴을 붉혔다.
달아오른 뺨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이고는 들릴 듯 말듯 작게 속삭인다.
“...나도...”
“응? 뭐라고?”
“.....나도.. 그렇다고..”
“뭐라고?? 안 들리는데?”
심술궂게 보채는 도원.
“..나도 그렇다고! 나도 지금 행복하다고!!”
고개를 들고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도원은 기쁜 듯 웃는다.
얼굴 가득 서서히 퍼지는 그 미소에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순간 연호의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이 미소를 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수많은 고민과 아픔, 눈물이 있었는지...
그때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순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애써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연호는 손을 뻗어 도원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먼저 입술을 포개었다.
아이처럼 담백하고 솔직한 키스였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조금 놀랐던 도원도 어느새 연호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음~ 이런 적극적인 자세, 아주 좋아.”
도원의 장난스런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연호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뺨으로 따뜻한 체온이 기분 좋게 스며든다.
그제야 행복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스르륵 눈꺼풀이 감겼다.
그리고 잠시 후,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연호의 낮고 편안한 숨소리를 들으며 도원도 졸음이 몰려옴을 느낀다.
가슴으로 연인의 기분 좋은 무게감을 느끼며 그는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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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이 났어요. ^-^
지금까지 잊지 않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꾸 늦어지는 바람에 성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 죄송하고요...ㅜㅜ
끝으로,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행복하게 마무리되서 기분좋네요
그동안고생하셨어요
해피앤딩이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지금까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제 끝이네요...연호랑 도원이 주변 친구들과 어울려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 그려줘서 좋네요.
연재중인 데코님 글 처음 접했는데 연재텀이 긴게 좀 아쉽긴 했지만 전체적인 글 짜임이나
내용이 참 좋았어요. 다음번에도 좋은 내용의 글 가지고 오세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잘봤어요~ 행복한앤딩조아여~^^
수고하셨어요 ㅠㅠ 완결볼슈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요 ㅋㅋㅋㅋㅋ 해피엔딩 언제나 데코님을 응원합니다
너무도 잘봤어요! 그동안 글 쓰시느라 수고도
많으셨어요! 그리고 새로운 소설 기대하고 있을게요.
정말수고하셨어요~ 완결이뿌듯하네요!정말 재밋었어요 다음소설도기대할께요!
잘봤어요 ㅋㅋ 수고하셨어요. 다음에.......
잘 봤습니다. 넘 잼있어요... ^^
해피... 엔딩이야ㅠㅠㅠ 좋아요 아주 좋아요 바람직해!
너무 너무 잼있엇어요 ㅎㅎ 결말도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