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영지를 찾아서
구월 중순 수요일이다. 오늘 오후부터 태풍과 연관 없이 중국으로부터 접근하는 기압골 영향으로 주말까지 흐리고 강수가 예보되었다. 저기압은 골이 되어 우리나라에 정체전선으로 걸쳐져 가을장마가 되다시피 며칠 궂은 날씨를 보일 모양이다. 날이 밝아온 이른 시각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오후는 비가 온다기에 서둘러 아침나절만이라도 근교 숲으로 들었다가 나올까 싶었다.
아침밥을 먹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산행 차림으로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버스 정류소로 향하니 보도는 전날에 이어 은행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새잎이 싱그럽던 곡우절 꽃을 피워 / 우리도 남과 같이 사랑을 나눴어요 / 바람이 맺어준 인연 때가 오길 바랐다 // 저만치 멀찌감치 바라만 봤는데도 / 점지된 꼭지마다 알알이 영근 열매 / 샛노란 잎보다 먼저 자유낙하 하네요”
인용절은 시조 ‘은행나무 사랑’ 전문인데 내일 아침 지인들에게 낙과 은행 사진과 함께 보내려고 준비해 놓았다. 나는 매일 아침 자연 현장 사진을 글감으로 삼아 시조를 지어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 오늘 아침에는 어제 다녀온 작대산 임도를 걸으면서 길섶에서 본 ‘풀여치’였다. 여치는 내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면 숙제로 나왔던 곤충 채집 대상이기도 했다.
반송여중 정류소에서 진해로 가는 151번 버스를 타 시내를 관통해 안민터널 사거리에서 내렸다. 무척 이른 시각인데 나와 같이 내린 한 아가씨도 횡단보도를 건너 천선동 산업단지로 향해 갔다. 거기는 차량 정비를 비롯한 몇몇 소규모 공장이 위치한 곳인데 이른 시각부터 부여받은 일이 있는 듯했다. 내가 퇴직하고 보니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예사로 보이질 않았다.
성주사 수원지 바깥 남천 상류 천변 예전 자연마을 시절 천성동 당산나무를 지났다; 당산나무와 동신제를 지냈던 막돌탑 일대를 원주민들은 ‘수문당(樹門堂)’으로 불렀다. 승용차로 성주사를 찾는 외지인들은 차도를 따라 드나들기에 산업단지 뒤편 냇가 위치한 수문당은 알지 못한다. 제2 안민터널 진입로 토목공사 현장에서 수원지를 돌아 성주사로 가는 차도의 보도를 따라 걸었다.
무척 이른 시간이라 산행을 위해서나 신도로 성주사 산문으로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절집 들머리 템플스테이 숙소에서 성주교를 건너니 황토곰숲길이 나왔다. 수년 전 관내 향토 기업의 협찬으로 성주사 개울 건너 숲에다 황토를 깐 맨발 걷기 산책로를 개설해 놓았다. 황토곰숲길은 몇 해 사이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가 늘어 주말에는 산책로가 붐빌 정도로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나는 건강을 챙기려 황토곰숲길을 걸을 생각은 없다. 굳이 거기 아니라도 경계가 어디까지인 줄 모를 자연을 누벼 걷는다. 안민고개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산등선 북향 비탈에 해당하는 산자락에 철이 지나긴 해도 영지버섯이 있을까 싶어 아침 일찍 숲을 찾았다. 작은 개울을 건너기 전 쉼터에 앉았다가 안민고개 약수터 가는 숲길을 벗어나 내가 목표 지점으로 삼은 산자락을 올랐다.
올여름에 용제봉이나 불모산에서는 영지버섯을 찾아냈으나 안민고개에서 시루봉 가는 북향 비탈은 처음이다. 날씨가 서늘해져 지나간 한여름에 숲으로 들었을 때보다 숲을 헤쳐 나가기 훨씬 수월했다. 철이 지나 딱딱하게 굳어지긴 했으나 고사목이 된 삭은 참나무 등걸에서 붙은 영지버섯을 찾아낸 성과를 거두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삼림욕을 겸해 숲속을 두어 시간 거닐다 나왔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 손을 담가보고 이마의 땀을 씻고 모자와 옷자락에 엉겨 붙은 거미줄을 정리했다. 황토곰숲길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산문 바깥에서 안민동 폐역 성주사역 근처로 나가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귀로에 집 앞 농협 마트를 지나니 뜰에서는 수요 장터가 파장 무렵이었다. 고구마와 포도를 박스째 사 양손에 들었더니 묵직했다. 2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