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 놈 목소리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2006년 영화였네요. 이형호 유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인데 애초에 아동 납치 살인범에 대한 영화인데다가 감독이 아마 의도적으로 범인에 대한 적대감을 끌어올린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실제 납치범의 통화 목소리가 나오면서 끝이 납니다. 좋은 영화였다고 기억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제가 그 영화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는건, 정말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분통을 터뜨리며 범인을 저주하고 욕하고 어떻게든 범인이 잡히길 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성향상 그런식의 감정을 건드리는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 특히 한국영화들은 좀 더 건조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국가부도의 날 이라던가 블랙머니라던가 잘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어야할 영화들이 욕할 대상 세워놓고 실컷 감정이나 분출하라는 식으로 나온데에 대해서 상당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영화들이 빅쇼트, 스포트라이트, 우리나라 영화중에 찾자면 1987 같은 영화죠. 감정을 쏟아낼 허수아비를 세우고 너는 나쁜놈이니깐 거기, 우리는 착한사람들이니 여기, 이런 편가르기에 열중하는게 아니라 그 사건이 어째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의 봄은 최초에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를 굳이 언급한 것처럼, 절대악을 하나 세워놓고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쌓으면서 그 절대악에 대한 적개심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류의 영화입니다. 미리 말했듯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대놓고 끌어올리는데다가 그게 꽤나 성공적입니다. 저처럼 냉소적인 사람도 영화 후반부 가면 "감독님 제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보셨죠? 한번 달립시다. 사실이고 나발이고 스트레스 한번 시원하게 날리고 갑시다! 쏴! 쏘라고!!!! 닥치고 그냥 쏘라고!!!!!!!" 그러고 있었으니깐요ㅋㅋ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부터는 비판적인 태도를 접었습니다. 그래 시간도 많이 지났고 잘 모르는 세대도 많을꺼니, 이렇게 적개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불러일으키는 영화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가 취하는 태도가 또 나쁘다고만은 할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직 그 놈 목소리를 기억하는것처럼, 관객들 기억에 강렬하게 세겨질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김성수 감독님은 좀 묘한 분인거 같습니다. 비트는 사실 제 나이 근방 남자애들한테는 어떤 로망이 있는 영화였죠. 아직도 영화 대사 상당수가 기억날 정도로 정말 많이 봤고 당시에 좋아했습니다. 런어웨이-비트-태양은 없다-무사 같은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쉬한 화면 연출로 주목을 많이 받았던 감독님이였죠. 그러다가 갑자기 거의 10년을 사라지셨다가 돌아오셔선 감기를 내놨는데, 이게 굉장히 별로였죠. 그래서 아, 예전에 한때 좋아했던 감독님.. 정도로 평가가 끝나나 하던 시점에 아수라가 나왔죠. 아수라는 평이 썩 좋은 영화는 아니였을껀데, 저는 좋아했습니다. 지저분하고 눅눅하고 엉망진창 정리안된 아수라장 느와르라는 장르로서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원래 본인의 장기이던 스타일이 있는 촬영도 좋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감독님이였는데, 늘 장르영화에서 강점을 보이시던 분이 시대극에서 갑자기 터지시네요. 이 영화로 돈 많이 버시고 또 장르영화도 찍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ㅋ
배우들 연기도 좋았습니다. 늘 황정민 같은 연기를 한다고 까이는 황정민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그런 이야기가 덜 나오지 않을까요. 정우성씨는 평균적으로 연기를 상당히 못하는 배우죠. 그나마 괜찮다고 느꼈던 작품이 빠담빠담 정도였는데, 서울의 밤이 최고작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어투가 캐릭터랑 안맞아서 문제가 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상당히 잘 붙었습니다. 그리고 시대극 특성 상 굉장히 많은 조연배우들이 나오는데 배우들 면면을 살피는것도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아 그리고 소송 관련 문제 때문에 다 가명에 최초 시작할때 창작물이라고 못을 박고 시작해서 헷갈릴수 있는데 영화 내용 대부분은 알려진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극 진행 상 필요해서 수정된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뼈대들은 거의 그대로인거 같더라고요.
총평하자면, 대부분의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다음주에 오랜만에 한국들어가서 친구놈이랑 보기로 했는데, 기대되네요.
좋은 평 잘 봤습니다
어! 한국 가시는군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요!! 부럽..
@둠키 네~! 근데 휴가안쓰고 일로가는거라, 기간이 넘 짧네요. 시차풀리기전에 돌아올것같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어쩜 이리 멋진 영화평을!!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기껏 재미있다! 정도가 다인데~ㅎ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정우성의 인생캐릭터라고 다 그러더라구요.
전 유독 눈빛이 다르게 보이더라구요ㅎ
매불쇼에서 김의성배우님이 그랬는데
원래 첫대본도 다실명이었고
감독도 실명으로 할려고했는데
어쩔수없이 가명으로 했다고하더라구요
장태완장군님 바로 밑에배신한놈이 그유명한장세동
그리고 추후 장태완장군님 가족사도 정말 비극입니다.
김오랑 소령(영화에서 정해인)도 비극적인 가족사로 귀결되죠. 그에 비해 반대편 집안들은 지금도 떵떵
정우성 최고 영화 동의합니다
감상평이 가슴 좌우팍에 차알싹차알싹 감동의 싸대기를 때리네요. ㅎㅎ
오늘 막 보고 와서 댓글 달 수 있어요 ㅎㅎ theo님께서 풀어주신 감정의 흐름을 저도 거의 따라갔던 것 같아요. 제발 허구여도 좋으니 다 쏘고 다 출동해서 싹 잡아 들였으면 하다가,,
어느순간엔가에는 이렇게 영화적 재미를 잘 갖췄으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어도 괜찮은 것 같다고요.
개인적인 평가로 정우성 배우도 시대정신을 갖췄다 생각하는데, 말씀대로 인생 캐릭터 하나를 만난 것 같기도 해요. 하나 아쉬운 건 전작인 헌트와 마찬가지 결과를 맞이한다는 정도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