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소신과 줏대
[특파원 리포트]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입력 2024.05.21. 00:07
1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대를 찾은 공화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로런 보버트, 윌리엄 티몬스, 바이런 도널즈 하원의원. /AP 연합뉴스
백악관에서 지척인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 캠퍼스에선 지난달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 간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反戰)’ 시위가 한창이었다. 캠퍼스 한복판에 학생들이 설치한 텐트 100여 동이 들어서 “정부는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중단하고, 대학 기금은 이스라엘 연계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라”고 했다. 공권력 투입을 요구한 공화당 의원 6명이 1일 현장을 찾았다.
격앙된 학생들이 주위로 몰려들었고 천막촌을 둘러보는 데만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거기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거론되는 바이런 도널즈 하원의원도 있었다.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한 학생을 향해 “나와 토론을 하고 싶다면 그 마스크와 두건부터 벗으라”고 받아쳤다. 동행한 로런 보버트 의원은 국부(國父)인 조지 워싱턴 장군 동상을 이불처럼 감싸고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걷어내려다 학생들의 제지를 받았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사안이다. 학교 시설을 불법 점거한 시위대를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이제는 친이스라엘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 인상 깊었던 건 학생들의 야유와 위협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옳다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의원들의 태도였다. 본인의 소신을 밝히고 토론해 반대파를 설득하려는 정치인들이 한국에선 천연기념물이 됐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분위기 봐가면서 적당히 영합하고 당원과 지지자들 듣기에 달콤한 소리만 한다면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와 다를 것이 없다. 소셜미디어(SNS)엔 게시된 글의 수정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입장을 내놓고 20~30차례 고치는 의원이 많다. 지지자들이 뭐라 하면 단어나 문구를 들어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삭제하고 없던 일로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내 편이 아닌 ‘남의 편’만 있는 현장은 가볼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다는 고참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6선이 된 모 의원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씁쓸함을 넘어 애처로움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미국 정치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장면이 있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의 출생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난무했을 때다.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이 “오바마는 테러리스트와 협력하는 아랍인”이라는 지지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이렇게 말했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고, 대통령이 된다 해도 두려워할 건 없다. 우린 근본적인 이슈에 이견이 있을 뿐이고 그래서 이렇게 캠페인을 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그래도 무소불위의 당 대표나 극성 지지자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할 말은 하는 정치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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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4/05/21/CTMIV4SO6JHBNKDU3ZGTFP2IJM/
https://m.cafe.daum.net/bondong1920/8dIJ/6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