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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여행일기 - 첫날
2월 24일 일요일 오후 5시 40분. 혼자 달나라에 떨어진듯 제주도에 떨어졌다.
날씨도 사람을 덜 외롭게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고적한 마음에 아주 작은 위로랄까.
사실 나는 내 몸 어딘가에 사는 외로움이란 녀석을 해부해보고자 거의 무작정 제주도를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덜외롭게 해서 참 다행이라니? 스스로 놀랍기도 했지만, 외로움의 해부학이야말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항명처럼 처량하게 들린다.
나는 뚜벅이족으로 제주도에 뚝 떨어졌다. 제주도의 광범위한 볼거리를 두고 나같은 족들은 어떤 여행을 계획해야 할까?
되도록이면 특정 장소를 정한 후 단촐한 샘플 몇 개로 한정해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여러 여행지와 관광상품이 즐비한 제주도에서 어느 한 지역을 선택하는 것도 많은 저울질을 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인식한 제주도의 관광지와 한라산행에서 걸었던 올레길(사실 너무 널린 정보의 길)을 빼니 생각보다 빨리 중문 쪽이나 협재 쪽 방면이 떨어져나갔다.
그러다보니 그 무렵 몇권 읽은 책마다 오름 오름... 글 한 줄 쓰기위해 반드시 가야 할 것 같은 제주의 오름이
자꾸만 나의 집중력을 비집고 들어왔다. 계획한지 불과 5분만에 오름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오름도 여기저기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이름에 등재된 오름만 365개라 했으니 한라산을 정점으로 호위무사처럼 빙 둘러선 모습은 가히 상상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약간의 잔머리를 굴려보고 이름이 예쁜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그 곁의 용눈이오름을
한꺼번에 다녀올 수 있는 중산간을 거의 횡재라는 생각으로 택하기에 이르렀다. 흥분이 되었다.
그리고 섬속의 섬 우도를 무작정 정했다. 뜨는 여행지를 고려하지 않지만 섬속의 섬이라는 것은 내 외로움이라는 컨셉과도 어울려 보였다.
게다가 성산일출봉이 우도 여행의 단짝처럼 붙어있는데다 광치기 해변이나 섭지코지 같은 관광지도 슬몃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어떠한 여행이든 그날의 변수에 따라 여행도 달라질 수 있음만은 정확히 각오하고 있었다. 미리 여러 정보를 얻지 않고 오로지 제주도의 동쪽만 믿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 정하기. 제주도같은 관광지에서 설마 나 하나 잘 곳 없으랴 하는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인터넷 서핑을 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지쳐가는 내모습이 보였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에서 오히려 선택권을 방해받는 것 같았다. 이런 데서 나이의 피로도를 본다.
결국 또다시 간추리기 혹은 잔머리. 비싸지 않고 여행 기분 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외로움을 제대로 체험하자며 조금 궁상맞지만 1인 숙박실에 투숙할 것인가로 생각을 좁혔다.
그러나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오로지 숙소 검색에 떠있는 몇군데의 전화번호만 수첩에 적어 갔다.
아무런 예약 없이 오로지 가다보면 만나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것도 성산포 주변의 숙소만 찾아놓고 떠났다.
그곳엔 다행 여러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가 솔직히 잘 적응될지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것은 운명에 맡겼다.
공항에 나와서는 먼저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성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문제는 성산까지 1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것.
공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100번 뿐이었다. 20분 간격으로 있다는데 도무지 바람만 맞는 것 같은 기분으로 거의 20분을 기다렸다.
배낭이 무거워질 무렵 어슬렁 다가오는 100번 버스. 공항에서 터미널까지 15분이 걸렸다. 버스요금은 천원이었다.
잔돈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껌 하나를 샀다. 차라리 초코바를 살 걸....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성산가는 버스가 몇시에 있는지 모르므로 무조건 뛰어가서 표를 끊어야 하고 숨쉬기는 버스에서 해야 한다는 낯선 곳에서의 버스타기 철칙이란 게 있다.
대합실에 도착하자마자 씩씩하게 성산 몇시냐고부터 외치니, 2분 뒤 출발이라고 시원하게 알려준다.
만약 몇시 몇분이라고 답을 했더라면 또 시계를 보느라 두리번거렸을 것을... 그 안내원 참 센스있었다.
2분의 여유를 얻었더니 슬슬 참았던 허기가 달려온다. 하지만 맛있게 먹기 위해 참기로 했다.
버스에 앉자니 여행 온 기분이 와락 들었다. 성산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뭘 먹을까...
그런 생각을 할 줄 알았으나 그순간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어떡하나, 외로움이고 말았다. 외로움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딱 좋은 첫번째 내 해부의 시간이었다.
두서없이 찾아오는 이 결핍의 감정. 도무지 거부할 수 없고 떼려야 뗄 수도 없는데 올때마다 낯선 이 서먹함.
어느날 해질녘이 키운 삽화일까. 심장 어디에서 자연 발생하는 바이러스일까.나이가 만드는 단순 생리증상일까. 몸 어디에 기생하는 숙주일까.
생김은 이국적일까 토속적일까. 사춘기때 보았던 이브몽땅처럼 혹은 까뮈처럼 우수에 젖은 모습이면 좋겠는데
자꾸만 삽삽한 우리네 엄마들의 한숨 같은 건 뭔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되는 건 그냥 정서 같다. 동질의 엄마에게서 얻는 건 그냥 오지 않던가.
때론 바순처럼 깊고 묵직하게 나를 침잠하게 하고 때론 바이얼린 현의 소리처럼 오열하게 만드는 외로움.
불쑥불쑥 찾아올 때는 두려움으로 쿵쾅대게도 하지만 간혹 정이 그리운 것처럼 외로움이 그리워 밤이면 창을 열고 오롯한 바람을 들이는 행위.
청소도 외로워서 하고 손빨래도 외로워서 한 것처럼 외로움은 때로 생활이었다.
전화보단 문자가 외로움 들키지 않아 편하고 일부러 받지 않은 전화는 너무 외로워서 그랬나보다고 이해하기만을 바랐다. 외로움은 이기적이고 외로움은 그냥 삽삽한 차가움.
연락이 끊긴 그 무엇, 곰곰 생각할 때마다 솟구치는 뜨거움, 체념이 익숙해 질때까지 나를 몰아갈 이 미친 열정.
그 산란함을 버스에 앉아 느끼자니 준비도 않았는데 눈물이 뚝 떨어진다.
타고가는 사람들이 없으니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 버스에 스치는 제주나 만나는 것처럼 가만히 창밖 풍경만 감상한다.
이 버스가 중산간을 지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삼나무 숲길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외로움의 속도처럼 저녁이 와버렸다.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는데.. 예상을 깨며 치고들어오는 모습도 영락없이 외로움을 닮았다.
수첩 속의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해 보았다. 두번 세번 할때까지 받지 않는다.
갑자기 외로움은 물러가고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대략 난감은 이럴 때 쓰는가.
스마트한 세상을 뒤져 성산 부근의 숙소 중 자주 눈에 띄던 그곳에 전화를 했더니
친절한 목소리의 주인께서는 이 버스를 타고 성산에 가면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동이란 동네로 와야 한단다.
친절이 고마워 당장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허기였다.
외로움 두려움 다 겪고 나면 무섭게 나를 몰아칠 탄수화물 증후군이라는 나의 현기증.
버스 갈아타기 말만 듣는데도 쓰러질듯 허기가 몰려온다. 나의 허기도 혹 외로움의 변종일까?
암튼 친절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려는데, 그쪽에서 다시 이렇게까지 덧붙인다.
성산 주변에도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있으니 그럼 기사님께 한번 알아보고 내리시라고.
와~ 정말 이렇게까지 친절하시단 말야. 그곳은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인人게스트하우스이다.
시간은 이미 7시를 넘어선다. 낮에 들떠서 먹는둥 마는둥 한 끼도 그나마 겨우 먹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선 삼겹살, 라면, 심지어 계란후라이까지...
버스 기사님께 물어보라고 한 말씀 그대로 기사님께 성산일출봉 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있는지, 그곳에서도 괜찮다고 할만한 곳에 좀 세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때 내 입에서 포도 게스트하우스가 나왔던 것이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기사님께서 꼭 게스트하우스를 가야 하냐고 되물었지만 나는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정하고 온 사람처럼 게스트하우스로 가면 좋겠다고 하였다.
버스가 서고 이곳이 바로 포도 게스트하우스라고 말한다.
왜 포도일까에 대해서는 나올 때까지 묻지 않았고, 나조차 왜 그때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두고 포도를 떠올렸는지,
그렇게 이유도 모르고 그냥 정하는 것에서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는 것인지.. 나는 첫날밤 그렇게 포도와 인연을 맺었다.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지탱하며 들어서는데 구석진 테이블에 게스트하우스만의 풍경이라 할만한 정보교환 겸 여행자 친목도모의 풍경이 들어온다.
대략 젊은 남자애들이 (이런 표현 너무 나이차이 나보이나?) 여럿이 보이고 여학생 두명이 앉아있다.
나는 우선 접수부터 하고 주위에 먹을만한 식당부터 알아보았다.
친절한 사장님이 동네 어귀를 가리키며 그쪽 무슨 식당이 좋을거라 하는데 이름이 가물가물..
그런데 배고픈 자에게 그 식당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꼭 그 집이 맛있나 생각하여 참을성있게 돌아다녀도 가르쳐준 간판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두번 세번 비슷한 거리를 훑고 다녀도 나타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그 주변의 김치찌개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어서 주인은 바깥 테이블을 권하였으나, 나는 방으로 달라고 하였다. 편히 앉고 싶어서가 아니라
바깥에 술손님들이 많아서였다. 이미 소주 두어병 마신듯한 게슴츠레한 아저씨도 있었으니, 자나깨나 사람조심.. 내가 맘먹은 표어대로 해야했다.
김치찌개 1인분이 보글보글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나는 식당에 갔을 때 하던 버릇 그대로 제주도 음식 잔반처리반이 되었다.
밑반찬은 밥이 나오기 전에 이미 먹어치웠고 본격적인 김치찌개마저 싹싹 다 비웠다.
어딜 가나 먹성 하나는 인간성 좋아 보일만큼 제대로 먹어준다. 물론 허기진 혀 속에 밀어넣은 뜨거운 찌개 덕분에 입천장에 데고 말았지만....
숙소도 정했겠다 배도 부르겠다... 동네 길 걸어오는데 살짜기 살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 동네사람처럼 걸어가는 내모습이 괜찮게 보였다.
포도 게스트하우스로 걸어오는데 대략 허둥거리는 듯한 한 남자가 내 앞을 걸어가고 있다.
배낭을 멘데다 조금은 지친 듯도 한데, 그 사람이 불쑥 골목에서 걸어나왔다는 것이 신기하여 조심조심 뒤에서 간격을 두고 걷는데, 내가 가려는 포도로 들어선다.
묵직한 배낭을 맨 50대 아저씨였다. 어딘지 겁나게 겁먹었거나 바쁜 상황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숙소찾기에 애를 먹었거나....
예약없이 무작정 이 간판을 보고 부나비처럼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 카운터에서 하는 말씀이 내일 새벽 6시 30분 비행기를 타야 한단다.
아이고.. 공항과의 거리를 정확히 방금 체험하고 온 나는 도대체 이분이 지금 이 시간에 왜 굳이 성산에서 묵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항 근처에다 숙소를 잡아도 뭣할 것을, 이렇게 멀리까지 떨어진 곳에서 무슨 비보를 접한 사람처럼 허둥거리기까지 하는지...
분명 여행 도중에 무슨 부고소식이라도 들었다는 것이 내 추측이었지만... 그가 결국 거기서 잤는지 안잤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는 그 길로 2층 도미토리 방으로 갔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양치만 하고 곧바로 1층의 여행자들 이야기에 합석을 했다.
외로운 건 질색인 것처럼 사람들 틈에서 어울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무래도 공복에 든든해진 위장 덕분 같았다.
자연스럽게 빈자리를 비집고 앉았더니 어른의 자리(상석)이다. 아마도 이 여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어도 이런 대접을 받을 것 같은 불길함이었다.
나이도 있지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이는 쏙 빼고 그냥 아줌마라고 했다. 경상도 아줌마...
갑자기 여기저기 자기도 경상도라고 반가워한다. 친목회가 따로 결성될 분위기다.
무엇보다 나는 혼자 여행이 처음이어서 지금 아주 간이 쪼글어져 있다고 하였다.
모두 자신도 같은 처지라며 흔쾌히 내 두려움을 녹여준다. 갑자기 와락 든든해진다.
그때 젊은이들 사이에 약간은 40대일 것 같은 사람이 마치 여행에서 태운 살결처럼 까만 얼굴을 하고 자리에 합석한다.
40대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금 반갑게 얘기가 될 법도 한데, 스스럼없이 젊은이들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태도에서 미량의 거부감이 생긴다.
그러면서 사돈 남 생각하듯, 대체 저 사람은 가정은 어떡하고 이렇게 이기적인 혼자 여행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역시 남들도 나에게 이런 궁금함을 가질거라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나? 나는...왜 여행을 왔을까? ....
이 질문은 왜 사냐는 것처럼 곰곰 나를 또 돌아봄과 동시에 괜히 기분 꿀꿀하게 만들었다.
당장 심사가 복잡해진다. 나는 도대체 왜 여행을 왔을까?
아, 갑자기 피로해진다. 더 있다간 분명 술이나 마실 것 같고.. 진짜로 피로하기도 하여 슬며시 자리를 뺐다.
가장 늦게 와서 가장 일찍 빠지는 김새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1시간 가까이 어울렸으니 적당할 것도 같다.
이층 침대 세 개가 놓여진 여자 도미토리 방에는 다섯명이 자게 되었다. 자매끼리, 친구끼리.. 그리고 나.
이 홀수의 조합에서 나는 불현듯 지금까지 내가 찾고자 하던 외로움의 실체를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마치 지각변동으로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이상한 동그라미.
마음에 맨홀 하나가 생겼다. 짝도 없이 이곳까지 홀로 떠나왔다는 동공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같은 방을 쓴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더한 외로움에 떨게 하는 그 다정한 짝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만 짝들의 세계에 불시착한 외로운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외로움은 그토록 가려워하던 내 옆구리에 살고 있었음을.
첫댓글 사무국장이 제주도에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왔네요. 지독한 외로움도 느끼고 혼자 하는 무모(?)한듯한 여행도 하고...하긴 인생이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니...
아무턴 이번 제주 여행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홧팅, 즐감하고 갑니다.
봄오는 소리가 그리워 제주도까지...
땅속깊이 새싹들의 움직이는 소리에 맘껏 듣고 왔나요
값 비싼 보약보다 혼자만의 여행 그것도 보약이죠.
어다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때 그 기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약효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