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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라.
(사사기 6 : 11-18)
"큰 용사여!" 네 힘을 의지해서 가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작은 므낫세 지파의 한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출생 콤플렉스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큰 용사라고 칭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하시며 큰 용사로 만들어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현재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소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부정적인 것들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사탄의 계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봐야 합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묶인 사람도 많습니다. 사탄은 물질적인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환경 문제들로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과는 다른 관점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진짜 우리의 자아상입니다. 사탄이 보여주는 것은 왜곡되고 거짓된 자아상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약하지만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지금은 부족해도 내가 너를 온전하게 하리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내가 세상을 이기는 담력을 주겠다. 소망을 주겠다. 격려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보는 시각은 약한자가 아닌 강한자로 비겁한 자가 아닌 큰 용사로 보십니다. 왜냐하면 현재에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미래에서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성도들에게 <큰용사여!>오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 성도들이 왜 큰 용사여라는 음성을 들어야 할까요? 큰용사여!라는 말씀에 무슨 큰 의미가 있습니까?
1. 큰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절)
본문 12절에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에 기드온의 대답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3백명이라는 적은 군사로 무수한 미디안 군사를 쳐부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극히 작은 자라고 겸손한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에 그 사람을 큰 용사로 위대한 일꾼으로 써 주신다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 왕이 될 때 "나는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내가 감히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겸손한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은 기뻐서 이스라엘 왕을 삼았으나 후에 그가 왕이 된 다음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다윗왕은 이새의 말째 아들로 양치는 목동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평생 교만하지 아니하고 "나는 보잘 것 없는 집의 말째 아들 목동 출신인데 무엇이관대 나를 이렇게 왕으로 삼으시고 나라를 부강하게 해 주십니까?"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므로 하나님이 평생 다윗왕을 떠나지 아니하고 함께 해서 통일왕국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자기의 무능함과 약함과 부족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나타 납니다. 하나님은 훌륭한 가문에서만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위대한 사람을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입다라는 사사는 기생의 아들로서 어느 에미의 자식인지도 모른다고 본실 자식들이 쫓아내서 산속에 숨어서 도둑의 두목 노릇을 하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들어서 사사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힘의 원천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사야 40장 31절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힘을 공급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 7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어려운 문제가 있으니까 기도합니다. 내힘으로 할수 없는 일이 생기면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강해집니다.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인간의 비극은 약한 데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스스로 섰다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데 비극의 원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성도들이란 자기의 무능함과 약함을 깊이 깨닫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서 당신의 자녀들이 약함과 무력함을 깨닫고 돌아오지 않는가 하고 밤낮으로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실패가 옵니까? 근심 걱정이 옵니까? 두려움이 옵니까? 이 때야말로 나의 부족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라고 하는 기회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찍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적으로 볼때 우리는 너무나도 약합니다. 빽도 없고 줄도 없고 도울 사람도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때가 많습니다. 그때 <큰용사여>부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네 힘을 의지하여 가서...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4절)
본문 14절에 <너의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합니다.
누군가 나타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지 않을까? 생각할 때 너가 하라고 합니다.
미디안과 싸울 용사는 바로 너다. 너의 힘으로 싸우라. 그 힘이 미약한 것을 알지만 너희 힘으로 싸우라 합니다.
마치 물매돌로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처럼, 오병이어를 드려 5천명의 문제를 해결한 소년처럼 너의 작은 힘으로 일하라고 합니다. 너가 시작하면 내가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결과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반응은 15절입니다.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이니다.> 철저한 열등감입니다.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열등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능력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사실 27절에 <종이 10명이 있는 집안이지만 자기는 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의심과 열등감이 있는 기드온을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합니다.
두려움과 의심과 열등감등 치명적 약점이 많지만 큰 용사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약점이 많은 우리를 큰 용사로 부르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본몬을 통해 턱없이 부족한 우리지만 큰 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불렀으니 큰 용사이지 기드온이 잘 나서 큰 용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부르시던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한 자에게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은사도 주셔서 큰 용사로 사용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80세의 모세를 불러 큰 용사로 사용하지만 어린 나이의 예fp미야를 불러 선지자로 사용하시고 열등감을 가진 기도온을 부르시고, 어부 출신의 베드로를 부리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큰 용사가 아니라 큰 용사가 될 꿈을 가지시고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은 두려움, 의심, 열등감이 있지만 훈련하여 큰 용사로 쓰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을 보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약점이 있어도 주님이 부르심에 무조건 순종하고 말씀을 무조건 청종하겠다는 믿음만 있으면 주님은 오늘도 불러서 쓰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약점을 보는 것은 사람들의 눈이고 하나님께 함께 하시어서 큰 용사가 될 것을 보는 눈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지만 하나님은 가능성을 보십니다. 그 가능성을 보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믿음으로 잘될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나가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처음 예수 믿는 분을 볼 때 많은 약점을 보지 말고 1년 후 2년후에 큰 용사로 쓰임 받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격려하고 기도하고 인정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갑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했습니다.
현재 남편, 아내의 모습을 보지 말고, 훈련받아 쓰임 받게 될 남편과 아내를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격려해 주세요. <당신이 최고야> <당신은 잘할수 있어> 자녀를 볼 때도 훈련하고 준비하여 앞으로 큰 용사가 될 것을 보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능력이 보인다>
많은 약점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약한데 하나님은 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함되시네
3.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리...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사람치듯 하리라(16절) ...표징을 네게 보이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는 미디안 13만 5천 군대를 섬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믿어지면 담대해 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빽이 있는 사람은 빽을 의지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의지합니다. 빽도 없고 돈도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큰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멸망해 가는 나라도 구합니다. 꺼져가는 교회도 살려냅니다. 힘을 잃은 가정도 살려냅니다. 살리는 큰 용사를 하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자녀도, 가정도, 교회도, 지역도 살려내는 하나님이 함께 한 큰 용사가 되는 부름에 아멘으로 순종하길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29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이 말은 나는 아무것도(nothing)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everything)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많은 약점이 있지만 부름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큰 용사로 훈련시켜 큰 용사가 되게 하십니다. 필요한 능력, 은사, 지혜는 주십니다. 치명적 약점을 가진 기드온이지만 하나님 백성의 최대 위기를 해결할 용사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기드온처럼 순종하면 큰 용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인생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한 기드온은 표징을 구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여 미디안 사람을 한 사람 치듯 하리라 할 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징을 구합니다.
17절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예물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기까 지 이곳을 떠나지 마옵소서.
19절 가서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누룩 없는 떡인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와 국을 가지고 옵니다. 한 10명 이상이 먹을 음식입니다. 예물을 크게 드립니다. 표징을 얻기 위해 큰 예물을 드립니다.
20절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떡을 반석 위에 두고 국을 쏟으라 합니다.
21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떡을 살 라버립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 보이지 않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불은 지 팡이 끝에서 나와야 하는데 반석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상징입니다. 불은 능력입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도구인 기드온입니다. 우리들입니다. 반석은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은 기드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온다는 표징입니다. 생수도 반석에서 나오고 불도 반석에서 나오고 능력도 반석에서 나옵니다. 능력이 반석이신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 때 열등감도 해소합니다. 두려움도 이깁니다. 의심도 사라집니다.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확신이 강할 때 능력이 강합니다. powerful합니다. 소명을 받고 확신을 얻기 위해 표징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나를 이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신은 능력을 배나 증가시킵니다. 소명을 받았지만 우리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오는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반석이신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힘입어 일하는 것이고, 반석이신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불을 받아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명 받은 일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말라 주지 아니하리라>
어느 아파트에서 한 귀부인이 유명한 사상가인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내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것인데 누국가가 여기에 잉크를 쏟아 버렸어요. 손수건에 얼룩무늬가 생겨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존 러스킨이 귀부인에게 말헸다. "부인 그 손수건을 며칠만 제게 빌려 주십시오"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러스킨은 소수건의 잉크 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그려넣어 부인에게 주었습니다.
오히려 그 이전의 손수건보다 훨씬 고상하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러스킨은 손수간을 받아들고 감격해 하는 부인에게 말했다.
"잉크 자국이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려 넣는 동기가 됐습니다. 이전의 손수건보다 훨씬 아름답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허물 많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의 허물과 약점을 사용하셔서 뜻을 이루십니다.
약하고 약한자에게 하나님께서
<큰용사여 네 힘을 의지하여 가서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