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으면 맨 먼저 책상머리에 놓여있는 잉크병이 눈에 들어오고,
그 잉크병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 옆에 꽃힌 펜을 잡게 되요.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내 손은 뭔가를 쓰고 있답니다.
주홍신을 신은 무희처럼 무언가에 이끌려 마구 춤을 추게 되죠.
그럴듯한 편지지 일수도 있고 버려지는 이면지 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든 무대가 될 만 하면 펜촉이란 토슈즈를 신고 정신없이 돌고 또 돌며 춤을 춥니다.
내용이야 우습든 하찮든 그저 춤추는 것이 즐거워 졸필에 악필을 사정없이 휘둘러 댑니다.
그래도 이 펜끝은 나의 혀끝보다 무디어 다른이를 베거나 상처주지는 않는답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렇게 춤을 추다보면 춤속에서 추억을 만나기도 하고 잃어버린, 아니 잊고지내던 꿈을 다시 그려볼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좋아요.
어느해 여름엔가 무더위와 갈증에 시달려가며,
오랜 자동차여행으로 멀미를 느껴가며 힘들게 도착한 인제!
거기에서도 계곡옆 좁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간 후에야 경험할수 있었던 레프팅의 쾌감을 맛 볼 수 있었답니다.
지금의 내 느낌이 바로 그 쾌감처럼 보람을 닮아 있어요.
성취감도 있고, 자부심도 생기고......
아무도 몰라 주고 저 혼자 느끼는 행복이지만 난 이게 좋아요.
그래서 오늘도 펜을 들고 춤을 춥니다.
이 펜이 나에게 주홍신이라면 난 이 운명을 기꺼이 받아 들이겠어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지쳐가고 싶어요.
털이 다 빠지고 비루한 몸을 가지고도 계속 창공으로 비상하던 "조나단 리빙스톤 시걸"처럼 행복한 고통을 느끼고 싶어요.
푸훗!
맞죠?
이 펜이 날 꿈꾸게 만드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