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겐 누구나 주홍 글씨가 있다./ 배찬희 사랑은 아플수록 유치할수록, 치열할수록 더 빛이 난다. 특히 이루지 못한 사랑은 더 많이 아플수록 그 상처가 더 깊을수록 더 많이 반짝이는 밤하늘 일등 성되어 그 사랑을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우리 눈에 보여 지는 겉보기 등급과 실제등급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듯, 더 근사하고 더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도 깊숙이 파고들면, 모두가 악취 줄줄 흐르는 상처를 보듬어 그럴듯한 모습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지……. <주홍글씨> 이 영화가 바로 인간의 이런 양면성을 유감없이 그려낸 작품이었다, 영화는 한 남자와 세 여자 사이에서 어긋난 사랑과 그 사랑의 대가를 그리는 작품으로, <이중간첩> 이후 한석규의 스크린 복귀 작으로 제작 초기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다 한석규는 이 영화에서 순종적으로 보이는 아내, 수현<엄지원>과 열정적인 애인 가희<이은주> 사이를 별 죄책감 없이 오가며 삶을 탐닉하다가 결국 자기 덫에 빠지고 마는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남자로 변신했다. <이중간첩>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그는 지난 2 년간 스크린에서 자신의 연기를 볼 수 없었던 팬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신들린 연기를 잇달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기훈 역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한석규를 빛나게 했다. 그의 기훈 연기가 그처럼 인상적인 것은 그가 기훈을 유치한 동시에 누구나 공감이 가는 캐릭터로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시 한석규야“하는 말이 저절로 터져 나올 만큼, 그는 정말 이기적이며 본능만 가지고 사는 남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했다. 이은주 역시 기존의 청순하고 단정된 이미지를 버리고 도도하고 당당하지만 내면에 깊은 고독을 품고 있는 ‘가희’로 분해 도발적이고 요염한, 때로는 광기가 느껴지는 연기까지 흐르는 물처럼 아주 자연스레 보여 주었다. 엄지원 역시 백지처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수현' 이라는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의 애인과 결혼한 여자 수현의 행동은 열어서는 안 되지만, 열고 싶은 마음을 뿌리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주는 유혹과도 비슷한 현대인의 쾌락 뒤에 오는 그 반대 급부까지를 쥐고 있는 복잡 미묘한 역할을 충실히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단순한 불륜의,3류 통속 멜로드라마를 벗어나게 해준 열쇄 역할을 한 경희 역의 성현아도 "사랑했다면 괜찮은 건가요?"라는 변혁 감독의 목소리를 대신 해주는 대사처리를 지독한 절제된 감정으로 잘 해 주어, 변감독이 의도한 메시지를 무리 없이 전달해 주었다. 이렇게 신들린 듯한 한 남자 배우와 세 여배우의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주된 볼거리였다. 물론 다소 무리수가 따른 주제-불륜과 도덕 불감증과 극도의 이기심등의-와 다소 산만한 내용 때문에 억지스러운 면도 더러 있었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 했던 감독의 욕심 때문에 영화가 다소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듯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음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기도 하고 또 누구나 한 번 쯤 기웃거려보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영화 <주홍글씨>는 몹시 갈망했으나 어긋난 사랑과 그 사랑이 심장에 치명적인 독처럼 퍼져 각자의 가슴에 남겨지는 사랑의 주홍글씨의 문신을 새기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치정 극이 화해와 가족의 재결합으로 결말을 맺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참혹한 결말로 끝을 낸다. 사실 사랑은 현실이고, 또 불륜 또한 사랑의 한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려해도, 이미 잡초처럼 퍼져있는 요즘 사회의 단면이다. 사랑, 그 사랑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그 사람을 단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념하지 못하는 사람은 집착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성적 판단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자기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주홍글씨>에서 변혁 감독이 인물 군상을 다루는 솜씨와 배우들의 연기에서 순간순간 끌어내는 차가운 리얼리티는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관객을 사로잡고, 그러면서 그동안 보아왔던 당연한 결말, 일반화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채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갔다 사랑했지만 그녀의 친구와 결혼한 남자 결혼 후에도 그 여자를 정부로 두고 사는 남자 아내의 자리를 포기하고도 그 남자를 떠날 수 없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해서 그 남자와 결혼한 여자 영화는 이렇게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관계를 쥐고 시작되면서 살인사건이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축이 되어 끌고 나간다. 한 번뿐인 인생을 극적으로 디자인해 보고자 하는 유혹은, 어쩌면 세파에 시달려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절절하고 충동적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에 문득 뒤 돌아보니 괴물 같은 세월이 어느 순간 집 채 만한 억울함이 되어 허전한 가슴을 때리며 달려든다. 이 때, 순종적인 아내와 열정적인 애인 사이를 죄책감 없이 오가며 삶을 탐닉하고 있는 남자 기훈을 통해 변감독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남자에게 돌을 던지라’ 라고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 안 짓고 사람은 없기 때문일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지만 “빨간 불도 함께 건너면 두렵지 않다“는 일본 속담처럼 안도의 공범의식을 갖게 만든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주는 마지막 울림이었다. 더 짜릿한 쾌락을 찾아들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희의 사랑이 결혼반지를 빼냄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던 수현의 사랑이 "사랑했다면 괜찮은 건가요?"라고 반문하던 경희의 사랑이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짐승처럼 통곡하던 기훈의 엔딩 씬이 모두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몸짓이리라. 그래 사랑의 이름으로도 용서가 되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불륜 아닐까? 사랑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불륜의 사랑일수록 가장 귀한 담보물을 요구하기에 가정이 파괴되고, 정신병을 앓게 되고, 목숨을 끊게 되는 것 아닌지. 물론 사랑에는 기득권이 없다. 더 먼저 사랑했다고, 그 소유물이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부부라는 형식 속에 있을 땐 빈 형식의 사랑- 불륜- 보다는 훨씬 강하다. 그리고 마땅히 보호 받아야 할 또 다른 얼굴의 사랑이리라.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눈물나도록 푸른 가을 하늘과 내 눈길이 닿기만 하면, 금새 발갛게 “나 여기 있어요”하고 유혹하는 단풍 아래 한참을 앉아서 반문했다. 왜 내 사랑은, 항상 도덕과 함께 양팔저울에 얹어 무게를 잰다면 항상 도덕 쪽으로 기울까? 왜 새로운 사랑의 설렘은 오랫동안 지켜온 편안함을 이기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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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영화보구 싶다. 이런 영화라면 특히~영화보다 평론이 더 좋은 건 아니구요~한국여화는 항상 뒤가 좀 ~~ㅎㅎ^^
음악도 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