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앞을 지나며
김 홍 은
한해가 저물어가던 어느 겨울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낭랑한 목탁소리가 새벽에 들렸다. 야릇하게 목탁소리는 점점 가슴속으로 이상하게 빨려 들었다. 집 가까이에 성당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루는 우연히 성당 앞을 지날 때다. 바로 성당정문 앞 입구에 커다란 절을 상징하는 만자(卍)의 표시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심리적으로 묘한 생각이 스쳐갔다. 스님은 왜 하필이면 성당입구 길가 집에다 처소를 마련하였을까.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남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듯 싶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국가에서 특별히 제한하는 장소를 빼고는 어느 곳에 가서 주거하던 누구나 자유일 거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장소를 가릴 줄은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도 싶다. 어쨌든 그 이유를 모르고서는 이 스님은 조금은 얌체 같다는 소리를 듣겠다.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성당 앞을 지났다.
절을 어디다 짓던 말건 내가 나서서 할 말은 아니다. 나야 무종교인이지만 별로 좋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 이웃 간으로 불화라도 일어 날까봐 걱정도 된다.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하도 네 것 내 것을 따지는 이권 다툼의 세상이라서 그렇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이 보이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종교인들이 더 정신적 다툼이 강한 점이 있다. 크게는 국가 간의 종교전쟁까지 일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는 늘 종파싸움까지 하고 있지않는가. 종교를 갖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어찌 되었던 믿음이란 그 뜻은 하나라는 생각이든다.
옛말에도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감는다고 하지 않던가. 종교도 보면 말 싸움에서 시작된다. 이로 볼때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입은 화를 불러 들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口是入禍門 舌是斬身刀)듯이 사람이 사는 집 앞도 어쩌면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한다.
누구든 종교의 집 앞을 지날 때면 경건한 마음으로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下心), 비우며(捨心), 닦게 하는(修心) 자세를 갖게 된다. 나는 가끔 성당 앞을 지나는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라도 성직자의 겸손한 마음이 되어 이 길을 자주 걷는다.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목탁소리를 들으며 절집 앞을 지나 성당 마당으로 들어갔다. 너른 광장은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아무도 오고간 발자국이 없다. 그러나 마리아상 앞에는 눈이 깨끗이 쓸어져 있다. 어느 여인이 십자가 앞에서 양팔을 합장하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목례를 한다.
마치 절집의 도량에 들어설 때의 신도가 하는 모습 같다. 이를 보는 순간 천주교와 불교는 종교적으로 가르치는 점이 유사한데가 있음을 느꼈다. 종교란 결국 착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 아니던가.
천주교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 하고, 불교는 이를 스스로 깨우쳐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쉬운듯 하지만 참으로 어렵다. 어찌 인생이 살아가는데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수가 있단 말인가. 무엇이던 갖고 싶다가도 이를 갖고 나면, 오만 방자해 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래서 마음공부는 끝이없나 보다.
이놈의 마음이란 하루도 수없이 변한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줄만 안다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련만 쉽지가 않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마음을 알아 잡아 매 둘 수만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욕심을 버린다면 보고, 들어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겠지. 마음에는 항상 욕심이 따라 붙는다. 이 욕심을 어찌 한단 말인가.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함을 가질 수 있는 동중정(動中靜)의 겸손한 삶이 그립다. 저물어가는 이 하루도, 절과 성당앞을 지나며 스스로 마음을 닦는 연습의 걸음으로 한발 한발 조심있게 걷는다.
(4월 4일.오후의 일기)
(4월 11일. 1차 교정)
첫댓글 선생님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으니... 순간적인 마음의 흔들림 때문에 종종 살아가는 재미와 변수도 있는 듯 .....
교수님의 글 잘읽어 보았습니다. 다시금 저를 숙연하게 만들고 노력하게 합니다. 하심. 사심. 수심.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데 마음만이지 실행이 않되는 소인을 반성해 봅니다.
천주교와 불교는 오히려 궁합이 잘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저는 예전부터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답니다...^^ 겉 형태와 추구하는 방법이 좀 다르지만 글에서 처럼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글처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입과 혀는 정말 잘 다스려야 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갑니다....^^*
(口是入禍門 舌是斬身刀). 한치 혀 밑에 도끼가 들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 인가요. 사람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자중하라는 도움이 될 참 좋은 말씀 마음에 새겨둬야 겠습니다.
많이 배우고 마음에 담아 갑니다. 종교는 십자가 실천의 높낮이만큼 오는 부활축복도 다르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