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특보로 온 국민을 긴장시켰던 제7호 태풍 '민들레'가 목포를 비롯한 남부지방을 잠시 침수 피해를 주긴 했지만 어제 소멸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주 40시간 근무제 본격 시행으로 첫 번째 맞는 연휴였지만 이번 주말은 친구들과 약속한 일요산행도 비가 와서 취소되었고, 특별한 계획도 없이 기상특보 보고 인터넷 서핑, 바둑, 싫증나면 텔레비전을 보면서 보냈다.
KBS-1TV 전국노래자랑 익산시 편을 보는데 23 살이라던가 동갑내기 2명이 나와서 익산의 귀염둥이 어쩌고 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문득 옛 생각이 나서 혼자 픽하고 웃어 보았다.
우리 어릴 적에는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한 동네 콩쿠르대회가 있었다. 어쩌면 이런 콩쿠르 대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국노래자랑이란 장수 프로그램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추석 같은 민족명절에 시장이나 넓은 공터에 간이무대를 설치하고 드럼, 기타, 섹스폰 정도의 밴드반주에 맞춰 노래자랑을 하는 것이다.
볼거리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 시절에는 그야말로 대단한 볼거리였다. 드럼통 위에 판자를 깔고 설치한 무대에는 동네 처자들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악단이 정면에 있고, 측면에는 파출소장, 동네에서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정도의 원로 등이 심사위원을 맡고 근엄한 폼을 잡고 있었고, 송 해 선생님 정도는 못해도 코믹한 사회자도 감초역할을 하며 풀 방게처럼 왔다갔다하며 무대를 주름잡았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난 학생의 신분으로 언감생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도 못해 봤지만, 한 친구 놈이 모자를 눌러쓰고(변장하고) 올라가서 이장희의 '그건 너'를 멋지게 불러서 난 가슴을 조이며 놀래기도 했다. 그 때에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나와서 학생지도도 했으니까.
지금도 웃음 짓게 하는 콩쿠르 대회 단골 손님이 있었는데 우리 보다 3 살 더 먹은 동네 누이들로 자칭 '이 시스터즈'다. 둘 다 과붓집 딸 이였는데 한 사람은 같은 동네지만 강을 건너 좀 떨어진 곳에 사는 간장집 딸이고, 다른 한 명은 우리 집에서 몇 집 건너에 사는 두부집 딸이다. 특히 두부집 딸은 두부를 많이 먹어서 인지 많이 뚱뚱한 편이였다.
두 분의 어머니 다 간장을 팔고, 두부를 만들어 팔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데 철없는 딸들이 콩쿠르대회 단골손님으로써 콩쿠르 대회 주최측의 재미를 쏠쏠하게 하고 사회자와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물론 동네 어른들은 "저년(?)들이 미쳤지. 지미는 죽도록 고생하는데 어디서 돈이나서..."하면서 혀를 찼었다.
처녀들 특유의 수줍음 모습으로 뛰어 올라가서 '이 시스터즈' 어쩌고 하면서 사회자의 농담 따먹기에 당황해 하다가 무슨 노래인가 부르다가 박자가 틀려서인지 땡! 하고 중간에 창피한 모습으로 내려오고 조금 있다가 다시 또 표 사서 올라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어느 날인가. 우리 어머니가 간장집 아주머니에게 간장을 사고 있는데 누가 골목에서 간장집 아줌마! 간장집 아줌마! 부르더란다. 아주머니는 간장을 팔다말고 골목을 다녀오더란다. 우리 어머니가 좀 이상해서 누구냐고 했더니, "누구긴 누구여- 징그런 딸년이지" 하시더란다. 엄마가 죽도록 고생해서 번 돈은 필요하고, 간장 파는 엄마는 창피하고...
그 쳐죽일 년이 지 엄마 세(혀) 빠지게 고생해서 번 돈을 콩쿠르대회에 퍼다 버리면서 간장 장수 엄마 창피하다고 "간장집 아줌마"라고 부른다며 흥분하시던 어머니 모습까지도 생각난다.
철없는 자식들이 다 그런 거 아닌가.
나도 양태(樣態)는 다르지만 비슷한 행동으로 부모의 속을 썩혔을 거고, 그래서 후회하고... 그 동네 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며 옛일을 후회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