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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12월 6일 토요정례법회 ○
단법회
정산종사법어 '권도편'을 가지고 각 단별로 단법회가 있었습니다.
김제원 교무님 설법
뉴스를 보면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에서 어떤 부부가 나왔는데 이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이 팔리지 않아서 한 집에서 아직 살고 있다고 하죠.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에서 150억의 정부 지원을 받기로 했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으로 나앉을 것 같다.
미래 사회에서는 신기술을 개발하여도 3년 이상을 활용하지 못하고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그런 시대가 다가왔다.
정보사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엄청나게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살면 제대로 모르고 죽을 수 있다.
이번주와 다음주하면 새로운 단으로 편성된다. 아쉬움이 많이 있을 것이다.
권도편 많이 공부해 오셨는가.
마지막 단회니까, 그런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상황성이 살아있지만 상황이 근본을 쳐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권도편은 도를 권장한다는 내용이다.
도를 권장한다는 것은 지혜를 권장하는 것이며, 선을 권장하고 깨달음으로 권장하고 행복의 세계 낙원의 세계로 권장하는 것이다.
오늘 권도편은 정산종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1장은 청법의 도에 대해서 나오는데 그것은 갈망하는 마음으로 신성으로 무한동력으로 들으라 하신 것이다.
오늘은 제가 44장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44장 법문을 보면, 원만한 인격이라는 것은 쉽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는 어디에 해당되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
교만한 사람, 정말로 배울 줄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교만하지 않고 잘 배우고 항상 자기를 점검하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같이 한번 앞부분 봉독해 봅시다.
44.병자의 맥이 너무 급하면 느리게 하고 너무 미하면 강하게 약을 써서 그 혈맥이 골라져야 병 없는 육신이 되는 것 같이, 우리의 마음 쓰는 데에도 과불급과 편착심이 있다면 그것을 불편 불의한 중도에 골라서게 하여야 병 없는 성질이 될 것이니라.
한의원에 가면 맥을 보게 되어 있다. 맥이 여러가지가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맥 중에서 급하다 느리다 하는 것이 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맥이 약하다고 한다. 그러니 뇌에 전달이 안되어 잠을 못 잘 수도 있고 위에도 관계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맥을 보고 판단하는데 맥이 급하면 느리게 해야 하고 너무 약하면 강하게 해야 한다.
약이 무엇이냐. 어떤 이들은 보약이면 다 좋은 줄 안다.
약은 사실 정상적이지 않은 겁니다. 사실 보약은 밥입니다.
약은 치우침으로써 중도를 잡게 해 준 것이다. 자력이 약할 때, 한쪽에 치우쳐 있을 때 약을 써준다.
만약 우리 마음이 원만하면 상관없지만 한쪽에 치우쳐져 있다면 조정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병은 과불급과 편착심이다.
몸으로 따지면 너무 열이 많다거나 맥이 심할 수 있다. 그러면 약하게 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너무나 열성적으로 한다거나 한 사람은 조절해 주어야 한다.
반면에 불급한 사람, 소극적인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상황성에 맞아야 한다.
예전에 총부에 불이 났는데 어떤 사람이 불이 났다는 말을 전하는데 단전에 마음을 두고 느릿하게 말을 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장난인 줄 알았다.
그 때의 도는 무엇인가? 빨리 말해야 한다. 지금 불이 났으니 어서 나오라고 하는 것이 도이다.
항상 단전주에 주를 하는 것이 도가 아니다.
좌선을 진행합니다. 그때는 편안하고 졸리듯이 해야 합니다.
목탁을 쳐도 마찬가지이다. 놀라도록 쳐서는 안된다. 지금 입정하고 있으니 거기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동양음악이 바로 그런 중도사상이다. 천도재를 하면 똑같이 독경을 해도 느리게 한다. 기쁨의 생일기도를 할 때는 다르다.
자, 이것이 바로 상황성에 맞는 마음이다.
원만한 마음이란 중도에 맞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착합니다, 편착심을 갖는다.
한쪽으로 편향되었다는 말이다. 편향되어 착 붙어버렸다.
그 사람은 주로 약속시간이 늦을 것이다 한 것도 편착심이다.
법회출석도 항상 늦는 사람이 있는데 일 때문에 늦을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은 성격이 느린거죠. 자기 가치가 편착 된거죠.
그런 사람은 미래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몸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듯이 우리 마음도 과불급하기도 하고 편착되기도 한다.
이것을 뜯어고치는 것이 마음공부요, 몸에 있어서는 약을 쓰는 것이다.
몸에 병이 났는데 약 안 쓰면 어떻게 되죠?
가셔야죠.
생로병사라. 사람의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바로 병고이다.
지옥이 바로 병고이다. 그런데 지옥에서도 공의 마음이 되면 바로 지옥을 초탈한 사람이다.
병이 오면 힘드니 종교도 바꿔버린다.
우리의 마음도 편향되어있거나 미치지 못하거나 과하면 조정할 필요가 있다.
중도란 상황성이다.
그런데 그 상황성이 무엇을 잃지 않는가. 내 자성의 자리를 여의지 않는 것이다.
능히 동할 수 있고 능히 정할 수 있다. 능히 빠를 수 있고 느릴 수 있다. 능히 아플 수 있고 능히 초탈할 수 있다.
이 자리를 진공묘유라 이야기 합니다. 비우기만 해서는 안된다. 비운 가운데 묘하게 있는 것이 있다.
정중동 동중정.
정한 가운데 동해야 하고 동한 가운데 정해야 하죠.
내가 만약 시험에 떨어졌다면 정한 가운데 동해야 하죠.
내가 지금 취업이 안된다. 철저하게 정한 가운데 철저하게 준비하는 거예요.
음양은 상추라 서로 미는 것이다. 경기가 항상 안 좋은가.
미국에 현재 38만3천명이 단 두달 만에 실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 때 40만명이 실직했다고 한다. 그때보다 조금 나았다.
역사는 음양의 조화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썼는데 각종 일거리를 만들어 낸거죠.
왜냐면, 가속력. 경제는 원심력이 있어요. 한번 돌면 계속 돌려는 성질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한번 서브 프라임 때문에 무너지니 동시에 가속도가 붙는다.
주식 살 때 전체 곡선이 내려갈 때는 절대 사면 안돼요.
내려가는 곡선은 내려가게 되어있다. 심리적인 것이다. 반드시 상향 곡선일때여야 한다. 가속력의 문제다.
역사를 놓고서 보면 뉴딜정책을 통해서 그 대공황이 몇 년이나 갔느냐.
그러면 이런 걸 통해서 내가 국가 경제가 어려우니까 취업이 어려우니, 시험에 붙고 떨어지니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 도인은 뭐하냐.
정중동이라. 대종사님은 깨달으시고 나서 바로 익산에 가셔서 교화하자고 않하셨다.
변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인연 만드시고, 책 만드시고.
이것이 바로 정중동이다.
성질이 급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과불급이다.
이게 중도예요.
대종사님께서도 기도를 하시고 기초로써 방언공사 하시고 변산 가셔서 교재 집필 하시고 기본을 탁 터득하시고, 당신도 수양을 더 하셔서 힘을 딱 갖추셨다.
이것이 정중동이다.
깨달음 얻자마자 바로 팔랑팔랑 강의하고 다니지 않으셨다.
우리가 크게 놓고 봐야 한다.
그랬을 때는 설사 시험에 붙었어도 붙었다고 교만하지 않거나 떨어졌다고 그냥 자포자기 하지 않는다.
왜, 돌고 도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평상심이 곧 원만행이요, 중도행이다.
이 세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교리에는 어디에 나왔나. 일원상 수행에 나와있습니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요.
그리고 그 마음을 수호하자는 것이다.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마음을 잘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중도요, 일원상의 수행이다.
일원상 법어에서는 뭐라 그랬어요. 원만구족지공무사한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안이비설신 육근이 원래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것이다.
원래 그래서 항상 소극적이고 항상 죄만 짓고 그게 아니다.
이것을 수행에서는 딱 묶어 놓은 것이 정각정행이다.
일원상의 마음을 깨쳐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를 쓰자는 것이 정각정행이다.
그래서 오늘 그것에 대해 좀 설명이다.
이걸 볼 때 연결이 안되면 안되죠. 바로 일원상 자리를 설명한 것이다.
사람의 성질이 진착하기만 하면 조그마한 경계 하나도 넘어서지 못하는 병이 있고,
활발하기만 하면 너무 허허하여 함부로 하는 병이 있으며,
너무 정중한 사람은 민첩하지 못한 병이 있고, 재주만 있고 보면 경망하고 박덕한 병이 있으며,
진착이라는 것은 진중하다. 침착하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어떻게 되느냐. 조그마한 경계 하나를 넘어서지를 못한다.
경계 하나가 오면 속으로 꿍.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능히 정할 수 있고, 동할 수 있으며 능히 선한 마음이 날 수 있고 악한 마음이 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이것이 유무자리죠.
정에만 집착되어 있어. 이런 사람은 앉아서 뭐하느냐.
열심히 적극적인 사람에게 너무 서두르는 거 같은데, 한다.
그러고 남들 다 나서는데 복 지을 때도 가만히 있고.
양면을 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옛날에 황희 정승이 대단한 사람이다.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그랬잖아요.
맞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는 손 바닥이고 이렇게 보면 손 등이지만 다 손이다.
소 자리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더 크게 봐야한다.
진착한 사람은 절대 실수를 안하죠.
큰 일도 안 맡죠. 대중 앞에 드러나 실수하면 안되니까.
많은 사람들을 보면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하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항상 실수를 안하려고 한다. 실수를 하면서 크는 것이다. 큰 사업가가 한번도 실패를 안해보고 큰 사람이 없다.
자, 그 다음이 활발하기만 하면 너무 허허하여 함부로 하는 병이있으며.
허허하다는거는 뭐예요. 빌 허. 비었다는거예요. 속이 차지 않았다.
깊이가 없다.
그리고 함부로 하는 병이 있다. 서두르죠. 실수하죠.
서로 상대를 째려보며 저 사람은 너무 빨라. 너무 느려. 하면서 서로 보고 있다.
그럼 그 보다 더 큰 사람은 누구겠어요? 둘 다 쓰는 사람이다.
너는 먼저 나서라. 너는 뒤에서 봐줘라. 지도자는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야, 너는 이것 좀 보완해라. 하는 것이 리더쉽이다.
그런데 개인으로 놓고 보면 치우친 측면은 잡아줘야 한다.
너무 정중한 사람은 민첩하지 못한 병이 있고.
항상 뒤에 서죠.
지금 10일간의 출가여행도 최대한 누가 가는가 보고 늦게 신청한다. 사색형이죠.
지금 인도 여행 가는 것도 누가 가나 보고 결정한다. 서로 그런 게 있으면 어떻게 일이 되겠어요. 누군가 앞장 서 해 줘야 한다.
너무 서둘러서 생각 없이 신청해서 나중에 못 가겠다 해도 문제지요.
생각을 깊이 하되 빨리 할 자리에서는 빨리 하고, 복 지을 자리는 빨리 복 짓고.
나중에 신축한다고 할 때 봅시다. 딱 봐서 속으로 말 않고 크게 저금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뭐 한다고 하더니 개인사정으로 뒤로 쏙 빠져 버리는 사람 있고 다양하다. 남들 하는 거 보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이 다 일원상의 진리, 신심과 공심에 바탕 하지 않는 마음, 인과에 바탕한 마음이냐 아니냐.
자기의 특성, 업력, 습관이죠.
제가 말한 피플 스마트 있죠?
사색, 지시, 사교, 관계.
이것이 뭐냐. 업력이예요. 자기가 익혀 온 습관이다.
내가 습관으로 살 거냐. 아니면 그 습관을 일원상에 맞게 살 것인가.
우리 정각정행이라는 것은 그 습관을 깨쳐서 내가 어디에 편착 되어 있다는 것을 깨쳐서 일원상의 바탕의 행으로 나가자 하는 것이 우리 마음공부죠.
계속 자기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러면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법문 있죠.
장점을 살려라. 칭찬하자.
맨날 장점과 칭찬만 찾으면 뭐 합니까.
자기가 하는 부분만 만족하고 긍정하고 다른 것은 모르겠다 하고 살면 그것이 원만구족한 일원상에 바탕한 마음인가요?
물론 필요하죠.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도 필요하다. 때로는 맞기도 해야한다.
왜 칭찬만 받으려 하는가. 칭찬은 어렸을 때 받는 것이다.
약자가 받는 것이다. 강자는 오히려 충고해 주십시오 한다.
시험 못 본 사람이 틀린 개수 세고 있죠. 잘 본 사람은 틀린 거 그것만 딱 고치면 된다.
이것이 사회에서 있어지는 전체를 보지 못한 작은 부분이다.
그러면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칭찬이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원불교의 법위를 꿈꾸고 불보살을 꿈꾸는 사람은 그런 것의 선을 훨씬 넘어서야 한다.
너무 정중한 사람은 민첩하지 못하다. 사색형들이죠.
나는 활발하여 허허하고 함부로 하다. 사교형은 거의 다 해당되죠.
재주만 있고 보면 경망하고 박덕한 병이 있다. 사교형은 재주가 많아요.
예술인들의 8-90%가 그렇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떻죠? 이혼의 확률이 높다. 경망하고 박덕하다.
이런 사람은 철학적인 토론보다 쇼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이것도 정보에 대한 편착이다.
그런데 쇼프로그램이 너무 경망스럽다 해서 무시해도 안되겠죠. 그 속에 대중 교화가 있고, 대중문화라는 것이 있어야죠.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가만히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읽는다.
사람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뜻이 너무 고상하면 오만한 병이 있다.
일종의 럭셔리 클럽들이죠.
이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은 만나지도 않아요.
고상해서 오만합니다.
단회 가라고 하면 어리다고 갑갑하다고 하죠.
이게 다 병이다.
또 마음에 겸손하기만 하면 향상하려는 용기가 적다.
겸손에 편착 되어있다.
제가 항상 그런 생각이 있었다. 저는 절대로 1번 하지 않으리라 하는 생각을 했다.
공부를 하면 1등을 해야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1등을 하면 안된다 하는 치심이죠.
우리 명선이처럼 1등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무슨 병이 있을 수 있느냐. 박덕하고 오만할 수 있다.
원만한 일원상 같은 인격을 갖는 다는 것은 끊임없는 단련의 과정 아니겠느냐.
원불교 조금 다녀놓고 알 거 같다. 그렇게 경거망동하면 안되죠.
저도 지금도 새롭고 새로운데.
자기가 계획을 세웠다면 수 십 생 계획 세웠는가.
수행했으면 진경에 1-2시간 있어 본 적 있는가. 이게 끊임없는 공부이다.
원대한 생각만 가진 사람은 작고 가까운 일에 소홀한 병이 있다.
방에 가면 머리카락이 너부러져 있죠.
그런데 뜻은 막 세계사업하고 있다.
큰 뜻만 있어서 방청소도 안하고 옷은 대충 입고 다니고 면도도 안하고, 미용실도 안가고 그러면 안되죠.
대와 소. 유뮤. 대소요무.
변과 불변이, 유와 무가 골라 맞아져야 한다. 동정이 골라 맞고, 완급, 고저, 강약이 골라 맞아야 한다.
여기 온 것을 보면 원대한 생각은 있는 것이다.
설사 나는 아웃사이더로 놀 것이다 하여도 사실 그 내면에는 간절한 구도심이 있다. 원대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입교하면 이미 불지출발이라고 하셨다. 원대한 불지를 향해 우리는 이미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자칫 가족 불공에 소홀하고, 직장을 우습게 알 수 있고, 옛날 철학자나 연예인 같이 면도 안하면서 철학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다 편착한 것이다.
게으른 것을 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다. 알고 보면 엄청난 게으름이고 편착인 것이다.
우리가 손님을 맞이할 때는 깔끔하게 하고 거기에 맞는 어법, 차림 등이 되어야죠.
그래야지 진공묘유, 원만한 도에 맞는 것이죠.
너무 세밀한 사람은 대체와 강령을 잡지 못하는 병이 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 할 일이 열 댓가지가 넘는다.
어떤 사람은 순서가 안 정해지고 얽어진 사람이 있는데 절대 안됩니다.
하루 일을 하더라도 시간 별, 선후 별, 중하고 덜 중하고 하는 것을 순서를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너무 세밀해서 한 두 개만 잡고 완벽하게 하면 되는 줄 안다.
강령을 잡지 못하는 것이죠.
서브프라임도 일종의 그것이다. 세밀하게 들어가 파생상품 만들고, 만들고.
결국 머리 좋은 사람들이 결국 세밀하게 그것만 해서 나라 망하게 만든 것이다.
작은 것만 보았지 큰 것을 못 본 것이다.
너무 열성이 과한 사람은 걸핏하면 승기자를 미워하는 병이 있다.
사교형은 사교형끼리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서려는 자리에 나서버리니까.
항상 자기 중심인 사람은 자기가 들어간다.
질문 할 때 보면요, 질문의 핵심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덤으로 꼭 자기 존재를 밝히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 상식을 설명하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질문에는 핵심만 말해야 한다.
반면에 온지 안 온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보니, 잘 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화합이 안 되는 집단이 바로 교수 집단이다. 교수들끼리 화합한 것을 못 보았다.
첫째는 뭐냐,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했잖아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인정 받은 것이므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한다.
윗사람에게는 잘하고 아랫사람은 잘 못하는 사람도 있고, 윗사람에게는 눈치 보면서 아랫사람에게만 잘하는 사람도 있죠.
이건 원만이 아니죠. 상통한 사람이 아니다.
사방팔방 툭 터져야 한다. 위, 아래가 어디있고, 좌, 우가 어디있습니까. 너와 내가 어디있고.
이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이다.
뜻 없이 평범하기만 하면 모든 일에 열이 적은 병이 있다.
항상 뜨뜨 미지근한 사람있죠.
관계형이 그렇죠.
평범해서 누가 부탁하면 들어주고, 네 서원이 뭐냐 하면 잘 사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좋아하는 말 있죠. 죄 안 짓고 살면 되지. 피해 안주고 살면 되지.
세상을 살면서 피해 안주고 살면 된다 한 사람이 과연 사은의 은혜를 알고 영생과 인과를 아는 사람인가.
원불교를 만나면 이런 생각이 탁 바꿔져야 한다.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다 아는 것이다.
어릴 때에 위인전을 읽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
제가 가만 생각해보면 저희 아버지가 제게 잘한 것이 있다면 중학교 때 세계위인전집 15권짜리를 제게 사주셨어요.
시골에서 도서관이 있겠으며, 책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몇 번을 읽었다. 다시 또 보고, 또 보고.
제가 설교하는데 중에 그 때 읽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것을 보면서 제가 꿈을 가졌다.
동네친구들과 이야기하면 포장마차나 슈퍼나 할련다 하는 사람과 퀴리 부인처럼 이런 큰 뜻을 가지고 노벨상을 타겠다 하는 사람과 같은가.
법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알아서 내 삶을 살면 자기 육신 하나 보호하고, 자기 먹고 사는 것 뿐. 그리고 기분 좋으면 한 두 번 튕겨 주는 거 밖에 없어요.
법회를 보는 것은 저 일원주의는 대생의 길이다. 생의 삶도 영생을 바라본다. 사람이 커지는 거예요.
얼마나 기분 좋아.
그 다음에
위엄만 내는 사람은 온순한 태도가 적은 병이 있고, 온순한 사람은 위엄이 적은 병이 있다.
그러면 온순하기도 해야 하지만 위엄도 있어야 한다.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 상황성에 맞게 각각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로서 때로는 가르칠 자리에는 가르치고 배울 자리에서는 배워야 한다.
이것이 편착이 없는 마음이다.
성질이 곧기만 하면 사람이 잘 따르지 않는 병이 있고, 뜻 없이 화하기만 하면 청탁을 가리지 못하는 병이 있다.
곧으면 뭐죠? 곧으니 화합을 잘 못하고 전부 치기만 한다.
회합을 잘 한 사람은 여기도 화합하고 저기도 화합하여 줏대를 잃는다.
상황성에 맞게 해야한다.
그래서 제가 일반 2단한테 몇 잔만 하시오 합니다. 만약 못 먹게 하면 떨어지시는데.
거기에 신심이 들어가면 한 잔만 하세요 하다가 먹지 마세요 해야죠.
단계를 두어 다르게 해야 한다.
그 다음
너무 강한 사람은 잔인한 병이 있다.
과거에 지도자들은 군사와 관련이 있었죠.
거의 많은 생명들을 앗습니다. 상대의 정적을 쳐버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도 불과 십 이 삼 년 전만 해도 그 전의 대통령들 사람 다 죽였습니다.
정적을 다 죽여요. 잔인한 병이 있는 거죠.
왜냐하면 주위의 시기에 다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죠.
유하기만 하면 일에 결단력이 적다.
민노당은 맨날 약자만 쳐다보고, 한나라당은 강자만 쳐다보는 거죠.
관계형들 결단력이 없다. 1년이 지나도 그저 좋은 사람.
진짜 욕 중에 욕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 사람 괜찮아. 별로 쓸모는 없고, 인간성 하나는 좋아.’ 물에 물탄듯 술에 술 탄듯, 사람은 괜찮아, 한 말이 안좋은 말이다.
쓸모는 없다는 뜻이다. 착실하다 괜찮다 하는 말을 들으면 사실은 자극을 받아야 한다.
쓸모는 없는데 이 중에 하나 괜찮은 게 있다는 뜻이다.
착하다는 말은 어떤 일을 확실히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착하다. 역량 없고 재주 없다는 말일 수 있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언제 어디서나 쓸모 있는 사람이다.
현진이가 인터넷부 중간에 맡았어.
전 잘 못하는데요. 못하니깐 해야죠. 꼭 잘하는 사람이 해야하나요?
잘 못하면, 언제나 배우면서 해야 한다.
못하니까 잘 못한다고 핑계를 찾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성질을 잘 짐작하여 어느 편이든지 기울어지는 병이 있거든 항시 골라 세우는 데에 노력할 것이며,
또는 공부를 하는 가운데 어느 과정 하나에만 편착하거나 사업을 하는 가운데 어느 부분 하나에만 편착하는 병이 없게 하며, 공부를 좋아하는 가운데 사업을 등한시 하거나 사업을 좋아하는 가운데 공부를 등한시 하는 병이 없게 할 것이니,
이러한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은 점점 원만한 도를 성취하여 쓸모 많은 사람이 될 것이며 그 성질은 흠 없는 성질이 되고 그 인격은 더욱 완전한 인격이 될 것이니라.
자. 원불교 공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나와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수양이나 연구에만 취사에만 치우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양 연구가 반드시 사업 공부로 이어져야 한다.
그 사업은 곧 공부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일심이요 보은이다.
원불교는 돌릴 줄을 알아야 원불교 공부이다.
수양만 잡고 있다던가 연구만 잡고 있다던가.
책만 보는 사람은 제대로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책 보는 데에는 멀리하고 공사에만 나서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재미있으나 한 쪽으로 편향하면 안된다.
더 들어가면 서로가 도움을 줘서 돌아보면 엄청나게 생생약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천재를 만드는 길이요 도인을 만드는 길이다.
대종사님께서는 공부와 사업 신앙과 수행이 바로 동시에 되도록 만들어주신 것이다.
정적인 것을 먼저 하고 나중에 동적으로 하겠다 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단회가 재미없다. 어떤 사람은 토요일은 재미있고 화요일은 재미없다 한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공과 사업을 다 병행하게 해놨는데 자기 취향이 공부만 좋아하는 사람 있고 , 봉사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는 안된다.
그 공부가 봉사로 이어지지 않으면 약한 것이다. 또 봉사가 봉사에만 그치지 않고 공부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깊어지고 커지고, 그러면서 법력이 증진되고 불법생활로 가는거죠.
어디가서나 쓸모가 있는 것이죠.
저 사람은 이쪽이다. 하면 원만성에서 벌써 벗어난 것이다.
원만구족 지공무사라는 것은 어디가서나 도움이 되고, 수행은 수행대로 공부는 공부대로 신앙은 신앙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질문 있으면 하시죠.
질문과 답변
Q. 류현진 교우님 :
중도는 상황성에 맞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지금 이 상황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또는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취하고 싶어서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자신이 자신에게 속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잣대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교무님 :
그것이 삼대력이다. 동과 정 사이에 얼마든지 수양 연구 취사로 묶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자력으로 충분히 판단을 해야 한다.
먼저 타력을 통해서 삼대력을 기르죠. 스승이나 법이나 단장이나 동지들을 통해 배운다.
이렇게 자력을 기른 후에는 자력에 바탕해서 반드시 타력의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자기가 자력도 없으면서 타력에 묻지도 않고, 또는 자기가 조금 알면 혼자 다 판단해버린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냉철하다. 지난 번에 오셨던 신산 박오진 교도님은 IMF 때 사업을 확장을 하셨다.
국가에서 이자를 싸게 주는데 그 이자를 갖다 써야지 현금을 확보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냉철합니까!
그러면서 과감할 때는 과감하다. 이 두 가지 조화가 있어야 사업을 잘 한다. 그게 우리 공부다.
많은 사람이 냉철하면서 과감하지 못 하고, 과감하면서 냉철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잡을 자리에 잡고, 놓을 자리에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채울 자리에 채우고 비울 자리에 비울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중도다.
삼학공부를 하다 보면 자동적으로 체득되어 간다.
좌선 하나 하는 것, 기도 한 번 하는 것, 법회 하나를 보는 것, 일기 하나를 기재하는 것이 다 그런 힘을 쌓는 것이고,
삼학팔조 사은사요가 그 지름길로써 제시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취향 따라서 ‘나는 좌선이 싫어’ ‘나는 연구가 싫어’ ‘나는 책만 볼래’ ‘나는 사은만 좋아’
하는 것도 다 편착된 생각인 것이다.
회사 사장이 자기가 멘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멘토여도 반드시 멘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사장이어서 자력을 갖추었어도 내가 물어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도 바라보고 저렇게도 바라보는 것이 객관이다. 골라맞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과불급이 없고 편착심이 없는 원만한 인격을 갖추어서,
이것이 사업에 적용되어 현실적 능력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하다보면 거기서 또 시행착오가 나온다. 그러면 다시 수정해서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 책들이 다 이 소리 하는 것이다.
비전이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공부와 서원, 그보다 더 큰 비전이 있는가.
우리는 시간으로 봐도 영생이요 공간으로 보아도 우주를 넘어선 것이다.
Q. 박성은 교우님 :
원만구족 지공무사를 병행하는 것과 정중동을 하는 것이 헷갈린다.
대종사님도 대각을 하신 후 바로 사업을 하지 않으셨는데,
원만구족 지공무사로 병행을 하는 것이면 바로 사업을 시작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A. 교무님 :
변산에 가지 않고 바로 가서 교화한다고 나설 수도 있고, 변산에서 다시 영산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변산에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다. 이것이 동중정이다.
바로 가면 돈이 있어요 인연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방언사업도 하고 변산에서 교재를 정비하고 출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원만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일생 이렇게 살래! 몇 사람 데리고 조용한 것이 좋다’ 한 것은 편착된 것이다.
과감히 익산으로 나가셨다. 과감히 불법연구회를 선포하셨다. 창립총회도 과감히 하셨다.
자중할 때는 자중하고, 과감히 튀어나올 때는 튀어나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튀어나가기만 하거나, 자중하기만 한다.
출가여행을 갈까말까 갈까말까 계속 자중만 하고 이러면 안 된다.
자중하다가 툭 튀어나와야 한다.
Q. 박순명 교우님 :
사람들이 각자 성격이 있지만, 앞으로 계속 변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성격도 빠르고 잘 적응하는 성격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는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고, 리더가 되는 것도 한정이 되어 있기도 한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 않는가.
A. 교무님 :
종법사님만 뛰어난 사람이에요? 종법사님이 아닌 교무님 중에 종법사님 못지 않게 뛰어나신 분이 있을 수 있다.
회사 사장만 뛰어난 사람인가? 비서가 더 뛰어난 사람도 있다.
어떤 그룹 보니까 사장보다 비서가 더 뛰어더라. 적어도 30%정도의 성장은 비서 하나의 능력으로 성장한 것 같다.
내 직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성장 발전해야 하지 않느냐.
우리의 법은 강자와 약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강자가 되자는 것이다.
강자가 되지만 직책은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한쪽으로 편착된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장점을 잘 활용하되 부족된 점을 채워나가자는 것이다.
호겸교우와 내가 잘 안 맞잖아요.
스타일이 다르지만 호겸교우의 장점을 활용해서 원만하게 갖춰나가고 내 장점을 활용해서 원만하게 갖춰나가되 똑같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장점을 잘 활용해서 자기의 위치와 역할을 잘 해나가자. 이것이 처처불상이다.
‘나는 문제만 있어.’ 이것이 아니다.
고집이 있는 사람은 고집 때문에 해낼 수도 있고 고집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고집없는 사람은 원만한 것 같지만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집없는 장점에 고집을 세울 줄도 알아야한다.
나의 장점과 단점이 바로 업력의 소산이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심신작용 지어나갈 것인가.
이왕이면 장점 챙기고 단점 보완해 나가자, 왜 길들인 대로 되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스텝 바이 스텝이다. 수양을 해도 천 번 연구하여 만 번 연구하고 억만 번 하라고 한다.
그러면 그 속에서 원만이 이루어진다.
나는 중생이라는 특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 특성을 활용한 원만성을 말씀드린 것이다.
첫댓글 볼 때마다 참 찔리는 법문.. 은전교우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