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무아
[반야심경] 본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러 불교종파들이 '무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반야심경]에 담긴
'공성'이 무슨 뜻인지 더 세밀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무아론'은 모든 불교종파들의 핵심사상이지만,
'무아'라는 말을 정확히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 지는 종파들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티베트 사원의 강원에는 각 불교학파가 불교 용어들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문헌들을 공부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 문헌의 장르를 '각 학파의 교리 (티베트어로 둡타)'라고 부릅니다.
그런 문헌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철학적 견해들은 고대 인도의 주요한 네 가지 불교학파에서 나왔다고 하고,
무아론은 각 학파들의 발생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더 상세해졌다고 합니다.
그 네 가지 불교학파는 유부, 경량부, 유식학파, 중관학파 등입니다.
티베트 불교도들은 일반적으로 중관학파의 견해를 따릅니다.
왜 그런지 알고 싶은 사람은 다른 학파들의 견해을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겁니다.
중관학파의 견해가 더 많은 사람들을 해탈시키고 깨닫게 하는 정신과 어떻게 관련되는 것일까요?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려면 반드시 '공성'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어떤 점에서 잘못 이해할 수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가지 불교학파들의 공성관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공성에 대한 가르침을 철저하게 적용하지 못했던
부분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교리들을 연구해 보면 공성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잘못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공성의 가장 세심한 관점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인정하게 될 것ㅂ니다.
물론 공성을 지성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한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공성을 깨닫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깨닫는 것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지성적인 이해는 직접적인 깨달음 얻는데 필요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교리에 관한 문헌들은 두 종류의 무아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에 있어서의 무아'와 '현상에 있어서의 무아'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자아'에 대한 강한 느낌,
즉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나'를 말합니다.
'현상'은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요소(오온)들을 가리키지만,
그외의 모든 사물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네가지 불교학파 중 더 이른 시기에 속하는 유부와 경량부는 사람의 무아,
즉 사람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는 것에 관해 명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을 뿐,
현상이 무아라는 생각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의 두 학파인 중관학파와 유식학파는 사람과 현상이 모두 '무아'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 두 학파들은 '무아'의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가 제한되면,
즉 사람에게만 무아를 인정한다면 사람을 윤회에 매달리게 하는 장애와 번뇌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하지요
사람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사람의 무아를 확실하게 깨닫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