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1월 12일(화)■
(히브리서 10장)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묵상)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1)
율법이 참형상이 아니고 그림자라는 것은 당시 유대인에게는 엄청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실체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율법을 실체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율법에서 의식법만을 따로 떼어 설명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율법 전체를 그림자로 간주하고 있다.
안식일도 그리스도 안의 있는 안식의 그림자요(골 2:16,17) 도덕법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믿음에서 나온 사랑'의 그림자다(딤전 1:5-7).
대부분의 사람들은 율법에서 의식법만 그림자로 취급한다. 그 외에는 모두 실체로 알고 있다. 그것을 실체로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적이 되고 윤리 도덕이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5절에서 8절은 시편 40편 6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인용하되 의역하여 인용한 것이다. 5절은 히브리서 기자가 신약의 선지자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있다고 말했다. (엡 2:20)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
도덕법조차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할 뿐이며,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방법은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뿐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룩함을 얻고 믿음으로 거룩한 삶이 이루어진다.
즉 도덕법이 우리를 성화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성화되게 하는 것이다.
믿음이 율법으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아니라, 율법이 믿음으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다.(갈 3:24)
마귀는 이 순서를 바꾸어놓음으로써 성도들이 평생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게 하였다.
믿음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꽤 모호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수 밖에 없다. 믿음이란 또렷하게 가르칠 수 있는 지식으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지식처럼 머리 좋은 사람들이 더 유리한 것이 아니다.
믿음의 비밀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주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주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이 없이 어떻게 믿음의 비밀을 알겠는가?
믿음 안에서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이루어진다.
오, 주 예수님, 율법으로 굳어버린 편견과 아집을 깨기를 원합니다. 자기 의에서 건져주시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저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