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새재사랑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산아 오상수
[새재사랑산악회-164차 산행] 백두대간 문경 <황정산>
▶ 2016년 5월 15일 (일요일) ◀
* [산행 코스]
벌재 터널 앞(10:30)→ (윈시림의 산록)→ <백두대간>의 능선길→ 928고지→ 패백이재→ 치마바위(1,004m)→ (암릉구간)→ 985고지(헬기장)→ <황장재>(문경시 동로 생달리-충북 단양 방곡리)→ 직벽오름길-감투봉→ (암릉구간)→[안부] 점심식사→ <황장산> 정상(1,077.3m)→ 멧등바위→ 암릉→ 너덜암릉→ 작은 차갓재(하산 길)→ 장대한 수림→ 계곡(동굴카페 CAVE)→ (오후 4시), 안산다리(안생달)-<장병국 고문 본가> 하산뒤풀이→ 귀경 길→[여우목]→[문경읍]→ ‘비 내리는 고속도로’
* [프롤로그] — 싱그러운 오월, 신록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청정한 모습이다!
☆… 오월(五月)이다. 싱그러운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다. 봄 들어 연둣빛 신록(新綠)이 천지를 물들이기 시작하더니, 오월 들어 본격적으로 그 물색 고운, 작은 나뭇잎들이 온 산야(山野)를 온통 ‘초록의 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사계절을 몸에 익혀 살다보면 겨울 지나면 그냥 봄이 오고 봄이 가면 그냥 여름이 오겠거니, 무심코 지나기 일쑤지만, 신록의 물결로 출렁이는 산천을 바라보면 새삼 생명(生命)에 대한 경이(驚異)로움을 느낀다. 신록(新綠)은 사람의 생애로 말하면 한창 성장하는 순수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화창한 오월은 자라나는 어린이들 세상이다. 신록이 청정하여 아름답듯이 어린들의 모습 또한 예쁘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집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가정은 늘 생기(生氣)가 넘친다. 그래서 일찍이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831) 선생은 오월을 어린이 세상으로 선포하였다. 숨 막히는 일제 강점기에, 오직 ‘어린이’만이 우리 민족의 미래를 담보하는 희망(希望)이기 때문이었다.
방정환 선생은 1921년 5월 1일 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浩) 등과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표어 아래 본격적인 소년운동을 전개했다. 1922년에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였다. 1923년 3월 20일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고, 그해 5월 1일 도쿄에서 손진태(孫晉泰)·윤극영(尹克榮)·진장섭(秦長燮)·고한승(高漢承)과 더불어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했다.
이후, 5월 1일은 노동절과 겹쳤기 때문에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일요일에 행사를 진행했는데, 일제의 탄압이 있던 시기인 1939년부터 중단되었다가, 광복 이후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살리기 위해 1946년에 부활되었다. 1961년에 제정·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이후 1975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 4월의 하늘을 뒤덮던 미세먼지와 뿌연 황사(黃砂)도 오월의 하늘을 범하지 못한다. 신선하고 맑은 기운이 넘치는 오월을, 시인 노천명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예찬했다. 더구나 신록으로 넘실거리는 산(山)은, 우리에게 신선한 정기(精氣)를 흠뻑 안겨준다. 그래서 우리는 산(山)으로 간다. 한반도의 중추를 이루는 <백두대간> 문경구간 중, 문경 동로의 ‘황장산’을 타면서, 번잡한 문명의 옷을 벗고 잠시나마 신선한 자연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백두대간 문경 황장산 구간] — ‘벌재’→ ‘황장재’→ ‘황장산’→ ‘작은 차갓재’
☆… 오늘의 산행들머리 59번 도로의 ‘벌재’는 충정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마루금이 통과하는 지점이다. 저 동쪽, 금강산-설악산에서 강원도 태백산(太白山)까지 남행(南行)하던 장대한 산줄기가, 그 방향을 서쪽의 돌리어 소백산(小白山)의 장엄한 산체를 이루고, 안부 죽령(竹嶺)을 뛰어넘어 도솔봉을 솟구쳐 올리고 난 후, 줄기차게 달려와 이곳 ‘벌재’에 와서 한숨을 돌리는 것이다. 이곳부터 대간의 문경구간이 시작된다. 동로 벌재에서 황장산-대미산-포암산-(하늘재)-부봉-(문경새재)-조령산-(이화령)-백화산-희양산-악휘봉-(버리미기재) 그리고 문경시 농암면 조항산-청화산까지, 장장 110km의 구간이다.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 황장산의 서쪽에 위치한 ‘차갓재’는 백두대간 남한구간 700km의 바로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 황장산(黃腸山, 1,077m)은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에 있는, 충청북도 제천시와의 경계에 인접해 있는 산으로, 빼어난 암벽과 골짜기가 깊고 원시림이 아름다운 산이다. 정상(頂上)에 오르면 천하 사방의 조망이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도락산(965m)과 문수봉(1,162m)이 버티고 있고, 서쪽으로는 대미산(1,115m), 남쪽으로는 공덕산(913m)과 운달산(1,100m)이 지척으로 보인다. 또한 황장목(소나무)이 많아서 조선시대에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어 황장봉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봉산(封山)이란 국가에서 궁전이나 재궁, 선박 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당한 지역을 선정하여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산으로서, 개인은 입산이 금지가 된다. 이 곳 황장산의 황장목은 목재의 균열이 적고 단단해서 임금의 관(棺)이나 대궐을 짓는데 쓰였다고 하는데, 19C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도 이 곳의 황장목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황장산은 조선말까지는 작성산(鵲城山)으로 불리었다.
*[산으로 가는 길] — 한마음으로 동행하는 ‘새재사랑’ 가족
☆… 오전 7시 40분, 서울의 군자역에서 버스가 출발했다. 오월 특유의 맑고 쾌청한 아침이다. 오늘 산행에는 호산아·정병국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을 비롯하여 한영옥·장태임 부회장, 민창우 기획·박은배 총무, 유형상·허향순 부대장이 임석하고, 늘 한결같은 전진국·강재훈·안상규 삼총사, 언제나 다정한 김재철 부부, 꽃구름의 남자 이달호 님, 문승배·임백기·김기봉·박현주·김행국·김정출 님, 핸드폰의 지기 행주 님, 늘 다정한 친구 김정순·이명자·장영서 님, 순이 씨 그리고 오늘 처음 나오신 여성 대원도 자리를 잡았다. 반갑고 정겨운 산우들의 면면이 오월의 하늘만큼이나 환한 표정이다. 특히 바람처럼 김정출·아리송 김행국 님이 오랜 만에 나와서 반가웠다. … 어제 아들 혼사를 치룬 남정균 회장은 오늘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는 관계로, 이른 아침 출발지에 나와 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건강하고 즐거운 산행을 기원했다. 그리고 지난 달 대사를 치르고 난 전진국 님은, ‘사은(謝恩)의 떡’을 준비하여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따끈하고 맛깔스러운 오곡찰떡이었다.
☆… 오늘은 오후 늦게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아침하늘은 아주 화창했다. 서울을 출발한 우리의 분홍버스(권영길 기사님)는 중부고속로를 경유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에서 40번 고속도로(평택-제천)를 타고 <천등산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남제천J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내려가다가 단양IC에서 내려 36번-59번 국도를 타고 산행들머리인 벌재에 도착했다. 36번 도로를 지나는 길목에, 차창으로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절경의 사인암(舍人岩)이 눈길을 끌었다. …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 황장산은 우리 산악회 장병국 고문이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 마을에 솟은 산이다. 그리하여 달리는 차안에서 장 고문이 마이크를 잡고 황장산과 고향에 대해 자상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중국 <장가계 여행>을 다녀온, 특별한 소감과 함께 영상자료를 보여주었다.
이곳 단양 적성 출신의, 고려말의 강직한 대학자 우탁(禹卓)이 은거했다는 사인암(舍人岩)
* [벌재를 기점으로 한 산행] — 조심스럽게 찾아든 원시림의 신록(山麓)
☆… 황장산(1,077m)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산으로 오랫동안 감추어진 비경(秘境)이었다. 산은 이미 전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고, 백두대간의 마루금에 있는 기차게 아름다운 명산(名山)임에도 이제껏 굳게 닫혀있었다. 1984년 12월 월악산국립공원 권역으로 지정된 이후 한 번도 코스 개방이 되지 않았으니 31년 만에 빗장을 푼 것이다. 연전, 문경시와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MOU를 체결하고, 비밀의 하늘 정원, 황장산에 각종 안전시설을 갖추고 드디어 지난 5월 1일, 세상 사람들에게 그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그 동안, 우리에겐 동경(憧憬)으로만 살아있던 산이었다. 명산을 찾아내어 탐방하는데 남다른 촉수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명민한 지평대장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그곳으로 길을 열었다. 그런데 개방구간은 안생달-황장산-안생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의 한정된 코스, 그것만으론 단조롭기 그지없는 산행이 될 게 분명하였다. 그래서 길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 오전 10시 30분,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가 길을 찾았다. 오늘은 승조와 김동만 두 대장이 나오지 않아 지평 대장 혼자서 고심을 했다. 임기응변으로 황장산 산행 경험이 있는 한 대원을 선두로 삼고 지평 대장이 후미를 수습하면서 산행을 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산록에는 지난 가을에 쌓인 낙엽이 그대로 깔려 있고, 사람이 출입하지 않아 길이 없었다. 신록의 숲은 청신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그 연둣빛 수림 속에 뒤늦게 꽃망울을 드러낸 하얀 산목련이 맑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골짜기에서 가파른 산록을 치고 올라갔다. 낙엽이 쌓인 가파른 오르막을 30분 정도 올라가서 백두대간의 능선 길에 올랐다.
산목련(함박꽃)의 꽃망울 한 송이
* [928고지와 패백이고개를 지나며] — 흠뻑 흘린 땀이 가슴을 적시는 상쾌함 …
☆… 오전 11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산길은 초록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맑은 햇살이 내라는 능선 길은 청신했다. 하늘은 맑고 바람결은 부드럽고 신선했다. 우리가 걷는 백두대간의 산체는 장엄한 토산(土山)이었다. 한참 동안 가파르게 올라가면 다시 안부로 내려가고 그리고 이어지는 오르막길—, 그렇게 ‘928고지’에 올랐다. 선두의 대원들이 후미의 대원을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했다. 모든 대원들이 합류한 산봉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하나의 산정(山頂)에 올라서면 다시 저만큼 거대한 산봉(山峰)이 버티고 있었다. 산줄기의 한 산봉이 끝나면 다음의 산봉이 멀쩡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록의 색깔이 신선하고 생기에 넘친다. 길목의 곳곳에는 연분홍 산철쭉이 반발하여 그 고운 자태를 보인다. 이곳은 고산냉지여서 꽃도 뒤늦게 피고 있는 것이다. 연두빛 녹음 속에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철쭉꽃, 그 자태가 여간 곱지 않았다. 여러 개의 산봉을 오르내려서, 한 안부에 도착했다. 옛날, 남쪽의 동로에서 단양의 방곡리로 넘어가는 ‘패백이고개’였다.
* [치마바위의 조망] — 낙락장송의 우아한 모습과 천하를 조망하는 호쾌함 …
☆…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을 치고 올라간 곳이 ‘치마바위(1,004m)였다. 오는 도중의 한 산봉에서 본, 산의 허연 절벽이 마치 치마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암릉의 산봉이다. 정작 그 봉우리 위에서는 전체의 풍경을 볼 수 가 없지만, 천인단애의 암벽 위에 온갖 풍상을 다 겪은 거대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허공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은 아주 장관이었다. 남쪽으로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 고지(高地)의 전망은 아주 멋진 풍경이었다. 저 아래쪽 동로면소재지와 생달리 사이에 우뚝하게 솟은 천주산(天柱山)과 공덕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단양 도락산의 거대한 암봉이 눈에 들어왔다. 대원들이 낙락장송의 그 절묘한 풍경에 자신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아래 동로가 보인다
* [황장재를 지나며] — 감투봉의 가파른 산길, 험난하지만 아름다운 풍경들 …
☆… 다시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내리고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암릉 길, 좌우가 천인단애의 절벽 길이다. 편마암 계통의 각진 바위와 작은 반석(盤石)들이 산길을 만들고 있었다. 두 개의 바위를 포개 놓은 듯안 지점은 사방이 환하게 열렸다. 그리고 잠시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른 곳이 ‘985고지’, 그리고 아래로 급하게 쏟아지는 산길 안부에 도착했다. 옛날 동로의 생달 마음에서 단양의 방곡 마을로 넘나들던 ‘황장재’였다. 황장재에서 대원들이 모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시간은 어언 오후 1시를 넘기고 있었다. 지평 대장이 서둘러 앞서 갔다. 선두의 대원들을 잡아 점심식사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눈부신 오월의 햇살
☆… 황장재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위를 타고 가파른 산허리를 한참을 돌아드니 직벽의 산길이 아득하게 올려다 보였다. 바위의 틈을 잡거나 심지어 나무뿌리를 잡고 힘겹게 올라갔다. 결코 짧지 않은 급경사의 구간에서 많은 대원들이 고생을 한, 아주 험난한 구간이었다. 그렇게 산의 능선에 올라서니 이어지는 암릉 구간, 거대한 산체가 앞을 가로 막는다. 산줄기는 어느새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르다가 칼날 같은 암릉 길을 지난다. 그렇게 ‘감투봉’을 지났다.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많이 벌어졌다. 칼날의 능선 위에서 지평 대장이 대원들의 안전 산행을 도모하고 있었다. 감투봉 넘어 좁은 안부에서 점심식사를 하도록 조치를 하고 위험한 암릉 구간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어기차게 달려온 대간의 능선
여인의 등에 운달산의 거대한 산너울이 걸려있다!
사람이 쌓은 성곽이 아니다
아이고, 정갈하기도 해라!! 무슨 꽃일까?
☆… 오후 1시 40분, 좁은 안부의 길목에서 식사를 했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장소도 협소하여 대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두서없이 식사를 했다. 후미의 몇 몇 대원이 아주 늦게 도착하여 마음이 바빴다.
* [새로 개방한 황장산 구간] — 쾌적한 산행을 위한, 깔끔한 시설물들 …
☆… 오후2시 20분,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산봉을 하나 넘고 난후 안부(鞍部)에 도착했다. 이번에 개통한 ‘황정산 코스’의 이정표와 안내판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고, 안생달에서 올라오는 목조계단 등 모든 시설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긴 철계단도 올려다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제까지 이정표 없은 산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시 오르막길, 가파르고 긴 철제계단이 타고 오르니 암릉 구간이 이어졌다. 가파르고 위험한 구간이 곳곳에 있었다.
첩첩산중의 골짜기 속의 생달마을
* [황장산 정상(頂上)] — 산길의 도처에 핀 연분홍 철쭉이 가슴을 물들이다.
☆… 오후 2시 45분, 해발 1,077.3m의 자연석 표지석이 서 있는 ‘황장산 정상’에 도착했다. 황장산 정상은 사방에 나무가 우거져 시야가 막혀있지만 정상석 주위의 작은 공터가 있다. 잠시 머물며 모든 대원들이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그리고 서둘러 산행을 계속했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암릉 구간은 아름다웠다. 황장산 정상에서 멧등바위까지는 칼날 능선이다. 양쪽으로 가파른 벼랑. 능선 길은 좁고 바윗길의 날카로움만큼이나 풍경 또한 짜릿한 감동을 준다. 화사한 연분홍 철쭉꽃이 그 하늘 길을 주변의 도처에 피어 있다. 해발 1,000고지의 하늘 길을 걷은 우리이게는 화사한 축복이었다.
* [멧등바위의 수려한 경관] — 첩첩 청산(靑山)의 파노라마를 조망하는 전망대
☆… 2시 55분 황장산 ‘멧등바위’, 하늘 가까운 전망대에 이르렀다. ‘멧등바위’는 이름 그대로 우람한 암봉이고, 고절하게 솟은 거대한 바위 위에는 갖은 풍상을 겪은 소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것이 황장산의 비경(秘境)이었다. 철제로 시설해놓은 전망대는 북쪽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고, 천인단애의 절벽에 시설해 놓은 철제 통로에서는 남쪽의 풍경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다.
☆… 멧등바위에서 바라본 전망은 장쾌(壯快)하다. 북으로 도락산의 도드라진 바위봉우리가 시선을 끌고, 저 멀리 소백산 연화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북쪽으로 단양의 황정산, 도락산이 그리고 서북쪽으로 문수봉, 월악산의 거대한 산체까지 눈에 들어왔다. 발아래로는 우리들의 하산지점인 생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남서쪽으론 문경의 ‘여우목 고개’를 중심으로 백두대간 능선인 대미산과 운달산, 그리고 저 멀리 주흘산 등이 크게 출렁이며 산자락을 잇는다. 멧등바위는 마치 분재공원 같다. 깎아지른 바위 능선에 수많은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렸다. 바위에서 자란 소나무의 둥치는 굵지 않고 또 많이 휘었지만 위엄이 뿜어져 나온다. 신산(辛酸)의 세월, 바위에 맺힌 이슬을 받아먹고 자란 단단한 소나무들이다.
* [멧등바위 → 작은 차갓재 구간] — 장대한 노송과 신록의 숲을 지나는 쾌적함…
☆… 오후 3시, 멧등바위에서 작은 차갓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지그재그의 철제 계단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암릉과 몇 군데 철체 계단, 그리고 산록의 중간에 설치된 전망대도 있었다. 산 아래 생달마을의 골짜기와 주변의 산줄기를 조망하는 데 그만이었다. 장대한 소나무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산길을 거침없이 내려왔다. 각진 나무로 만든 계단길이 이어지더니 장대하고 울창한 침엽수림이 하늘을 가렸다. 초록의 싱그러운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다. 숲 어디선가 ‘삐~삑 삐비삑’ 새들의 지지귀는 소리가 산속의 적막을 깨운다. 청아하다.
그 마을, 안생달
* [작은 차갓재] — 대간 길을 마감하고 마을로 하산하는 지점
☆… 오후 3시 40분, ‘작은 차갓재’에 도착했다. 우리가 걷는 백두대간의 산길은 여기까지이다. 이곳을 지나 서쪽으로 나아가면 대간 산맥은 ‘차갓재’를 경과하여 대미산으로 고도(高度)를 높여갈 것이다. 경상북도 문경은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다. 백두대간의 반쪽 남한 구간 700㎞ 가운데 무려 110여㎞가 여기 문경 구간이다. 이곳 황장산 옆의 ‘차갓재’는 그 백두대간 남쪽 구간의 딱 중간 부분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이다. 상행이든 하행이든 이곳을 지나면 종주(縱走)의 절반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방된 황장산을 비롯하여 주흘산, 희양산, 대야산 등 문경의 산들이 100대 명산에 들고 대간을 대표하는 산봉들이다.
작은 차갓재
* [하산 지점-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 ‘오미자’와 ‘문경사과’의 특산지
☆… ‘작은 차갓재’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벗어나 마을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다. 장대한 잣나무 숲이 울창하다. 쭉쭉 뻗은 침엽수 숲에선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숲에선 새들의 합창 소리도 들려왔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는 1km의 아주 산길은 쾌적했다.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오늘 산행의 하산 지점이다. 시린 계곡물에 발을 담구고 무거운 피로를 풀었다. 산 아래 절벽 밑에 동굴 카페 ‘CAVE’가 있었다. 와인을 저장하는 수장고도 있고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황장산 산행길 초입에 있는 ‘까브’ 와인동굴카페는 폐광산을 활용한 곳이다.
☆… 황장산이 있는 동로면은 문경에서도 오지(奧地)로 꼽히는 곳. 외진데다 표고도 높아 문경시청이 있는 곳과 비교하면 기온도 4,5도 낮다고 한다. 더구나 황장산 자락인 동로면 생달리는 ‘산다리’에서 연유한다. 첩첩의 골짜기 안에 있어 보이는 게 산과 달밖에 없는 동네란 뜻이다. 오지이기에 청정할 수 있었던 동로면은 우리나라 오미자(五味子) 생산지이기도 하다. 1994년부터 오미자를 생산하기 시작한 동로면은 이제 전국 오미자 생산의 40% 가량을 담당하는 오미자 특구다. 매년 문경시 주최로 오미자 축제가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을의 곳곳에는 높다란 덩굴의 오미자밭이 조성돼 있다. 멀리서 보면 벌집 같은 모양의 조형미를 지닌다. 또 백두대간 자락은 일교차가 커 과일의 당도가 유독 높다고 한다. 동로의 곳곳에 많은 사과 과수원이 들어선 이유다. 요즘이 향긋한 사과꽃이 하얗게 흐드러질 때다.
동로 오미자(五味子) 밭
사과꽃, 눈부신 오월
* [장병국 고문의 고향집] — 오미자(五味子)향이 그윽한 하산주를 들다!
☆… 오후 4시, 생달리(안생달)에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미리 예고한 대로 장병국 고문의 본가에 들었다. 당주(堂主)인 장 고문의 백형께서 마당에 나와 영접을 했다. 형수님께서 집안의 거실에 이미 상차림을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으로 빚은 부드럽고 고소한 손두부가 따뜻하다. 오미자 막걸리의 색깔은 매혹적인 분홍빛이다. 그리고 맛도 일품이다. 향긋한 오미자향과 막걸리 특유의 구수한 맛이 융합되어 절묘한 주향(酒香)을 이루는 것이다. 잘 익은 묵은지에 구수한 손두부를 싸서 먹으면 막걸리 안주로는 최고의 진품이다. 모든 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함께 건배를 했다. 음식은 정성(精誠)이다. 우리를 위해 상차림을 하신 장 고문의 형수님의 따뜻한 정성이 여간 고맙지 않다. 물론 이 자리를 만들어 준 장병국 고문의 마음은 말한 나위도 없다. 권커니 잣커니 환담과 정담이 어우러진 가운데, 대원들의 얼굴이 홍조를 띠면서 산행의 피로가 싹 가셔버렸다.
[안생달-황장산-안생달]- 등산안내도
☆… 오후 5시, 귀경(歸京) 길에 올랐다. ‘여우목 고개’를 넘어 문경읍을 경유하여 고속도로에 올랐다. 여우목고개는 백두대간 대미산의 지맥이 문경시 권역의 한 복판으로 이어지는 문경대맥으로 통하는 안부의 길목이다. 이 고개는 문경의 물줄기를 동서로 나누는 분수령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동로-산북-산양을 거쳐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금천(衿川)이 되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문경-마성-점촌을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영강(穎江)이다. … 오후 6시 경, 기상예보대로 고속도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산행을 하는 낮 동안 아주 쾌청했다. 천우신조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비경을 지닌 황장산, 험난하지만 아주 보람찬 산행을 했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달리는 차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이다. …♣
* [에필로그] —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두빛 초록이 곱게 물들어 가는 오월(五月) —
산(山)이, 푸른 하늘로 오르는 길을 열었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의 황장산(黃腸山)!
황장산(1,077m)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산으로
오랜 시간 동안 감추어진 비경(秘境)이었다.
산은 이미 전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고
백두대간의 마루금에 있는
기차게 아름다운 명산(名山)임에도 이제껏 굳게 닫혀있었다.
1984년 12월 월악산국립공원 권역으로 지정된 이후
한 번도 코스 개방이 되지 않았으니 31년 만에 빗장을 푼 것이다.
드디어 지난 5월 1일,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길을 열고 그 진면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동안, 우리에겐 동경(憧憬)으로만 살아있던 산이었다.
명산을 찾아내어 탐방하는데 남다른 촉수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명민한 지평대장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그곳으로 길을 열었다.
그런데 개방 구간은
동로의 안생달-황장산-안생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의 한정된 코스,
그것만으론 단조롭기 그지 없는 산행이 될 게 분명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길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오늘의 산행은 '벌재'에서 시작하여 '황장산'을 찍고 '작은차갓재'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산줄기 --
산(山)은 아름다운 만큼 험난(險難)한 것
1,000고지 안팎의 수많은 산봉을 오르내리는 고단함 —
직벽의 산길을 오를 때는 나무뿌리까지 붙잡아야 올라가는 난코스
그리고 가파른 암릉과 암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
뜨거운 이마 위의 하늘은 높고, 발 아래 절벽은 아찔한 천 길 벼랑
그 바위 벼랑에도 낙락장송은 하늘을 지키고 있고
지나는 길목마다
수줍은 듯 연분홍 철쭉이 신록의 숲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달리는 산길의 곳곳에서
우리는 천하의 산들을 시야에 품을 수 있었다.
천주산, 공덕산, 운달산, 여우목, 대미산,
그리고 월악산, 문수봉, 도락산, 황정산 등 —
크고 작은 산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있는,
아, 장엄한 청산(靑山)의 파노라마
신선한 자연의 숨결이 우리의 가슴을 채워주었다.
오늘의 하산 지점, 문경시 동로면의 생달은
우람한 황장산을 병풍(屛風)처럼 두르고 자리 잡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첩첩산중의 산마을 —
오직 보이는 것은 산과 달밖에 없어 '산다리'로 불렸다가
'생달'이 되었다던가?
거기 안생달에
우리 산악회 장병국 고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이 있고
지금은 백형(伯兄, 장병운) 내외분께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계신다.
험난한 산행을 마치고 고향집 찾아 내려온 우리들을 맞아
정성으로 빚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손두부에
이곳의 특산 오미자로 빚은, 시원한 연분홍 막걸리로
따뜻하고 정갈한 상(床)을 차리셨다.
장병국 고문의 넉넉한 마음이다.
깊은 우정에 감사를 드린다!
—— 귀경 길에서야 비가 쏟아졌다.
산길을 달리는 동안 오월의 햇살이 너무 고왔다.
초록의 맑은 바람결이 더운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주었다.
그렇게 하늘이 도운, 하늘의 정원길,
황장산 산행이었다.
특히 오늘 산행을 위하여 혼자서 고군분투한 지평대장!!
그 노고에 뜨거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오늘 동행한 모든 대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호 산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