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본 문 = 에스겔 22;17~31
찬 송 =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Focus = 개인과 공동체의 정결함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무너진 데를 막아설 사람을 찾으십니다.
배경 이해하기
바벨론이 세운 유다 왕 시드기야는 애굽과의 동맹을 시도하며 반(反)바벨론 정책을 추진 했습니다. 이는 유다를 더 큰 혼란에 빠트리는 계기가 됩니다. 지도자들은 부정과 폭력으로 백성을 억압했고, 조공 부담이 커진 백성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속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인 성전에서 이방 신을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사명과 책임을 저버렸고,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무시한 채 거짓으로 백성을 현혹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 거룩함이 사라진 자리에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이는 유다가 심판받는 원인이 됩니다.
본문 해설
찌꺼기가 된 족속 22:17~22
이스라엘 백성은 쓸모없는 찌꺼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찌꺼기란 금속을 제련할 때 나오는 폐기물을 뜻합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신 26:18)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공의를 실천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은 이스라엘은 찌꺼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용광로로 삼아 분노의 불로 그들을 녹이시고 다시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심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소중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죄인인 땅 22:23~31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죄인입니다.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지도자들은 권력으로 백성의 영혼을 삼켰고, 율법을 가르쳐야 하는 제사장들은 율법을 무시했으며,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전했습니다. 백성 또한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것을 훔치며, 가난한 이들을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습니다. 하나님 백성다움을 잃지 않은 이를 한 사람도 찾을 수 없기에 결국 그들은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곳을 막아설 한 사람,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말씀 요약
하나님은 찌끼기가 된 이스라엘을 풀무 불 속에 던져 금속처럼 녹이실 것입니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고관과 백성 모두 반역하고, 포악과 강탈을 일삼고, 궁핍한 자를 압제했습니다, 하나님은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설 사람을 찾으셨으나 찾지 못하셨기에 진노의 불로 그들을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은 죄로 인해 부패한 이스라엘 족속을 무엇에 비유하셨나요? (18절)
2. 하나님이 분노를 이스라엘 백성 위에 쏟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30〜31절)
적용과 나눔
1. 하나님은 내가 마음과 삶에서 무엇을 버리고, 어떤 면에서 더 성숙해지길 원하실까요?
2. 사회와 교회,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각자 어떤 부분을 놓고 기도하며 힘쓸지 나누어 보세요.
말씀 다지기
하나님을 떠나 부패한 인생은 불순물처럼 무의미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찌꺼기 같은 죄악을 제거하고 그분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진노의 불로 연단하십니다. 금광석은 용광로에서 제련 과정을 거쳐야 순금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정결함과 순전한 믿음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내와 연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죄로 물든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의의 길을 따르며 세상을 위해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도는 공동체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회개하며, 진노의 심판을 막아서는 중보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분노의 심판이, 택하신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깨닫습니다. 죄의 찌꺼기를 걷어 내고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서게 하소서. 죄에 삼켜진 것처럼 위태로운 현장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며 믿음을 지키는, 그 한 사람 되게 하소서.
묵상 에세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가?
하나님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신다.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만큼 그분과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유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분과 우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완전한 일체가 된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더 온전하게 뒤얽힐수록 그분의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도 사랑하고, 그분이 슬퍼하시는 것에 우리도 슬퍼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봐도 불경건하기 짝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변에 가득한 악을 보고도 우리의 심령이 무덤덤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상황에 무관심하기가 쉽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보며 상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에게 악한 세상을 보며 근심하는 남은 자들을 모으겠다고 약속하셨고(습 3:18), 주님의 마음으로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다(계 2:6).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성과 백성이 망한 것을 생각하며 울었고(느 1:4; 2:2~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백성 때문에 눈물을 시냇물같이 흘렸다(시 119:136). 우리가 신경 쓰는 많은 것은, 알고 보면 하나님이 전혀 신경 쓰시지 않는 것들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들에 우리는 관심이 없을 때가 많다.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을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그 한 사람이 되라.
한절 묵상
에스겔 22장 26절
성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법을 잘 알고, 그것을 백성에게 가르쳐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당시의 제사장들은 율법을 업신여기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성물과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며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생명임을 알고, 하나님이 부정하다 하시는 일을 멀리하는 것이 올바른 섬김입니다.
오늘의 명언
참된 지도자는 위기를 언변으로 모면하려 하지 않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철저히 회개한다.
생명의 삶 중에서
첫댓글 개인 사정으로 일찍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