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걸리던 영어논문 작성 1시간이면 끝나
기업 효율도 개선… 20명 일하던 회사 3명만 남아 업무
미국 오픈AI의 인공지능(AI) 챗봇 '챗GP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30일로 1년을 맞는다.
공개 당시만 해도 이전에 없던 신기한 서비스 정도로 여겨졌던 챗GPT는
전 세계인의 일상은 물론 IT·금융·물류 등 산업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재편하는 파괴적 혁신의 표상이 됐다.
장문의 글과 이미지, 영상까지 만들어내는 챗GPT는 출판·미술·음악 등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탄생 1년 만에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던 AI 대중화라는 꿈같은 일을
이끌어낸 것이다.
대전 원자력연구원 유용균 박사는 출근길에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챗GPT, 오늘 오전 업무가 뭐지?'라고 물어보며 하루 일정을 확인한다.
평소 10시간 넘게 걸리던 영어 논문 작성 시간도 챗GPT의 도움을 받아
1시간으로 줄였다.
AI가 수 분 만에 논문 초록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퇴근 후엔 열 살 딸에게 원어민 발음으로 영어 문장을 읽는 챗GPT 음성을
들려준다.
기업들도 챗GPT 활용에 따라 효율성이 크게 달라진다.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는
한때 20명이 넘었던 인력 중 현재 셋만 남았다.
이 회사는 정치·사회 등을 주제로 한 토론을 주최하는데, 챗GPT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 주제를 알아서 뽑아주면서 운용 인력이 크게 줄었다.
급격한 AI 도입은 세계 곳곳에서 진통도 낳고 있다.
AI 확산으로 일자리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AI가 만들어낸 글과 이미지,
발명 등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AI 윤리에 대한 논쟁도 거세다.
조대곤 KAIST 교수는 "생성형 AI는 인터넷,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짧은 기간에 더 큰 변혁을 몰고 왔다"면서 "AI 경쟁력이 기업은 물론 국가 간의
역학 구조까지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 업계 판도 재편
챗GPT 등장 이후 불과 1년 만에 글로벌 테크 산업은 '누가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앞서나가느냐'의 경쟁이 됐다.
글로벌 테크 업계를 주도하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간의 판도는 AI의 등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2007년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아이폰에서 시작된
'스마트폰과 모바일 혁명 시대'와 지난 40년간 반도체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인텔의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들의 자리는 오픈AI를 등에 업은 MS와 AI 반도체 시장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대신할 전망이다.
25일(현지 시각) MS 시가총액은 2조8052억달러(약 3663조원)로 글로벌 시총 1위
기업 애플(2조9546억달러)과 약 1500억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픈AI 최대 주주인 MS가 AI 중심의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올해 초 주당 250달러
수준이던 주가가 400달러를 육박할 정도로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MS는 윈도를 앞세워 1990년~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소프트웨어 업계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애플은 물론 검색 포털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앞세운 구글에도 밀렸다.
이 과정에서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의 승부수가 빛을 발했다.
나델라는 2019년 당시만 해도 별다른 서비스조차 없던 오픈AI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2021년과 2023년에도 각각 20억달러와 100억달러를 쏟아부으며
챗GPT 상용화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AI의 챗GPT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자 MS는 윈도에 AI 비서를 탑재하고
검색 엔진에도 챗GPT를 접목했다.
그저 그런 낡은 회사로 인식되던 MS에 가장 혁신적인 서비스를 접목하면서
기업 가치 폭등과 미래 산업 주도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반면 애플은 생성형 AI 시장 진출에 소극적으로 일관하며 아직 뚜렷한 계획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AI는 소프트웨어 분야로 여기기 쉽지만 하드웨어 업계에서도 AI 열풍의 승자가 있다.
미국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칩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사실상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AI 칩은 AI 모델을 구축하고 학습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고가임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되면서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만 약 250% 뛰었다.
구글, 테슬라, MS 등 수많은 기업이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당분간 엔비디아 AI 칩을 뛰어넘는 제품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3분기 인텔의 영업이익률은 5.7% 수준인데, 엔비디아는 57.5%에 이른다.
빅테크들도 AI를 공격적으로 업무에 활용해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마존은 물류 효율화와 관리에 AI를 활용하면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존은 3분기 순이익이 9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억달러보다 세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일하는 방식이 통째 바뀌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여론조사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는
한때 20명이 넘었던 인력 중 현재 셋만 남았다.
트위터·에어비앤비 엔지니어 출신인 유호현 창업자 겸 대표, 최고운영총괄(COO),
한국 사업 개발 담당자 셋뿐이다.
옥소폴리틱스는 정치·사회 등을 주제로 토론을 주최하고,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가입자 30만명에 이르는 플랫폼을 세 명이서 돌릴 수 있는 이유는, 두달 전부터
모든 운영을 챗GPT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에 맡겼기 때문이다.
옥소폴리틱스의 AI는 8시간마다 국내를 비롯해 세계 뉴스를 스스로 검색해
10개 핵심 토픽을 꼽은 뒤 스스로 고민해 매일 하나의 토론 주제를 선정한다.
챗GPT 기반 프로그래밍으로 웹사이트가 자동 업데이트되고, 캐릭터와 그래픽
일러스트도 이미지 생성AI '미드저니'로 대체했다.
사람은 AI 작업 결과물을 모니터링할 뿐이다.
유 대표는 "지난 10월 투자금이 떨어져 포기하는 심정으로 AI로 모든 것을
대체해봤는데 원활하게 운영이 됐다"면서 "스타트업이 혁신을 하는 줄 알았는데,
혁신마저 AI 몫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오픈AI의 챗GPT가 출시된 지 1년 만에 전 세계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업들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AI를 각자의
목적에 맞춰 도입하면서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그 결과 고용 시장까지 변하고 있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의 92%가 기업 활동에 챗GPT를 활용하고 있다.
◇부조종사 AI 확산
MS와 구글은 화이트칼라 업무 일부를 AI가 대신하는 챗GPT 형태의
'코파일럿(Copilot·부조종사) AI'를 지난 7~8월 잇달아 공개했다.
MS의 'MS 365 코파일럿'은 워드·엑셀·파워포인트 작업을 대신 해준다.
코파일럿 엑셀은 분기별 매출액과 단가, 판매국별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매출 트렌드를 뽑고 그래프로 만들어준다.
구글의 '듀엣AI'는 화상회의를 하는 동안 AI가 알아서 음성을 인식해
회의 메모를 작성·요약하고, 18개 언어로 자동 번역한다.
챗봇이 관련 업무 담당 직원을 찾아, 이메일 초안을 대신 써주기도 한다.
이런 부조종사 AI는 미국 내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먼저 출시됐고,
향후 다른 국가와 개인 고객에게도 판매될 예정이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직원들마다 회의나 과제, 기획을 정리하는 수준과
방식이 다른 것이 기존 기업들의 고민이었는데 챗GPT의 등장으로 이런
걸림돌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공개형 서비스인 챗GPT를 필요에 따라 응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국내 여행플랫폼 스타트업인 마이리얼트립은 지난달 고객상담용
자체 챗GPT를 만들었다.
월 300만명이 사용하면서 수시로 들어오는 환불 요청, 여행 중 고객 불편
사항에 대응하기 위해 상담사들이 불편 해결 사례나 고객 약관을 챗봇에
물어보면 답하는 식이다.
이동건 대표는 "과거엔 상담사들이 사례를 직접 찾거나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했는데, 이젠 챗GPT가 바로 응답해주니 상담 성과가 20%가량 향상됐다"며
"고객 응대 데이터를 넣고 맞춤형 챗GPT를 만드는 데 3주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삼성 AI 가우스 내년 출시
보안이 중요한 국내 대기업들은 챗GPT의 기본 원리를 활용하면서도,
협업·자체 개발을 통해 각자만의 AI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가우스'를 공개하고
내년 출시 예정인 스마트폰 갤럭시 S24에 탑재할 계획이다.
가우스는 올해 내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 경험) 부문에서
먼저 사용할 계획이고, 삼성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설루션)
부문은 네이버와 협업해 맞춤형 AI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밖에 LG는 지난 7월 특허·논문 등 약 4500만 건의 전문 문헌과
3억5000만 장의 이미지를 학습한 전문 지식 특화 AI '엑사원 2.0'을 공개했다.
SK텔레콤은 이달 초 AI 비서 앱 '에이닷'에 아이폰 통화 녹음 기능을 추가하고
챗GPT의 대항마라 불리는 미국 AI 개발사 앤스러픽에 1억달러를 투자하고
협력 모델을 개발 중이다.
☞오픈AI·챗GPT·생성형 AI
오픈AI
'안전한 인공지능(AI)' 개발을 목표로 2015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와
샘 올트먼 전 와이 콤비네이터 CEO 등이 창업한 비영리 기업.
2018년 머스크가 AI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이사회에서 사임했고,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으며 제한적 영리기업으로 전환했다.
챗GPT
인공지능이 학습한 거대 언어 모델(LLM)을 사람의 감독을 거쳐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낸 오픈AI의 채팅 로봇.
질문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서 다음에
어떤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 적합한지 유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생성형 AI(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글, 문장, 오디오, 이미지 같은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AI).
기존 AI가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해 대상을 모방했다면 생성형 AI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