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블, 이단을 스캔하다 : 탁지일 교수 >
교회’와 ‘이단’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 신앙의 유일한 안전장치는 무엇일까 신앙은 ‘바름’이고, 교리는 ‘다름’이며, 이단은 ‘틀림’이다. 우리 신앙의 유일무이한 표준은 『성경』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를 신약성경은 ‘이단’(αἵρεσις)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친절’하게 다가온 후,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을 제공해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마침내 ‘치밀’한 미혹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줍니다. 때문에 남녀노소, 신앙의 연수, 직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단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단을 분별하는 것도 의외로 간단합니다. ‘신학적 지식’이 아닌 ‘신앙적 상식’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단의 본질과 위험성을 정밀하게 살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은 성경 말씀으로 이단을 분별하고 대처하고 싶은 고민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바이블, 이단을 스캔하다』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회와 이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교회에 관한 연구는 이단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며, 반대로 이단에 관한 연구는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정결한 교회가 이단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교회의 이단 연구와 비판은 주변 사회의 동의와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중세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경건주의자들에게 종교개혁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단을 비판하는 것보다 말씀을 알고 그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말씀에 관한 ‘앎’과 ‘삶’이 인생의 최우선순위이며, 이단을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입니다. 바이블은 이단의 본질을 정밀하게 스캔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단에 대한 비판은 곧 성경에 관한 변증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삶은 이단 예방과 대처를 위한 필수 아이템입니다. 널리 알려진 찬송의 가사처럼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고 ‘날 사랑하심’이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이단 분별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책의 특징이자 독창적인 부분은 구약의 창세기부터 신약의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 전체를 관통하며 이단을 분별하는 영적 스캐너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27절의 창조 기사를 통해 이단들의 왜곡된 인간관과 교주 신격화를 꼬집고,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를 통해 유일하신 하나님 신앙을 재확인한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부르시기보다 그분의 뜻대로 부르시고 준비시키는 분입니다. 마치 다양한 모양의 퍼즐 조각처럼,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어떤 모양이든지 상관없습니다. 크든, 작든, 가운데든 언저리든,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위치하든 모두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온전하게 완성하기 위해 모든 조각은 하나하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갈라디아서 2장 4절에 기록된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며, 디도서 3장 10절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는 단호하고 실천적인 지침까지 망라한다.
“1844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던 ‘안식교’에 뿌리를 둔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곱째 날을 주님의 날, 즉 ‘주일’로 기념하는 전통을 공유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무엇이 복음이 아닌지’를 연구하고 분석해 알리는 것보다 ‘무엇이 복음인지’를 “담대하고 거침없이”(행 28:31) 드러내고 전하는 소박한 사치를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