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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부를 해서 두 달 동안 번 돈이 묵주 한 알 값이 되었습니다.
성모님께 기도해서 번 돈이니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큰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 집안이 갑자기 기울었습니다.
그 때, 돈을 벌겠다고 별의별 일들을 다 하고 돌아다니며 하느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하는 일마다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이나 냉담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이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지게 되었는데, 갑자기 예전에 함께 레지오를 했던 자매가 생각났습니다. 같이 레지오 활동할 때, 그 자매는 부회장을 하고 저는 회계를 맡았었습니다.
그분은 그 때나 지금이나 아주 열심한 신자이십니다.
5년이나 성당에 나가지 않아 기도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 건지 다 잊어버리고, 막막한 심정에 그 자매를 찾아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교통사고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 자매님께서는 그동안 어디 가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지내고 있었냐면서 안타까운 눈으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냉담하고 지냈다는 이야기를 하며, 기도하는 방법을 다 까먹었으니 기도하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 자매님께서 남양성모성지에 가서 기도해 보라고 권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가끔씩 남양성모성지를 찾아와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잘 걷지도 못 할 때였습니다.
서울서부터 오려면 남들은 2시간이면 온다는데, 저는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니까 3시간씩 걸려 기다시피하여 성지까지 와서 기도하고 가곤 했습니다.
그 때는 큰 아들네 살았는데, 큰 아들은 아주 열심한 기독교 신자여서 저와 신앙적으로도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네서도 지내다가 이런 저런 이유와 서울서 왔다갔다 하는데 드는 교통비와 시간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남양에다 월세를 구했습니다. 워낙없이 사는 사람이라, 보증금도 없는 월세방에서 2달 정도를 살았습니다.
자식들하고도 자꾸 부딪치기만 하고...마땅한 일자리도 없이 지내다 보니 월세도 내지 못할 형편이 되어 알고 지내던 자매님들 집을 전전하며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슴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유방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라고 했지만, 저는 어차피 목숨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니 죽을 사람은 수술을 해도 죽고, 살 사람은 수술 안해도 살지 않겠냐고 하며 수술을 마다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가끔 병원에 가면 수술하라는 이야기만 하고, 약도 주지 않고 항암 주사만 놓아 주었습니다.
항암주사를 자꾸 맞으니 머리만 다 빠지고, 돈도 너무 많이 들어 아예 병원에도 가지 않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저에게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물어보지만, 병원에서도 주지 않는 약을 제가 어디서 구해 먹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 건강해져서 이젠 뛰어다닐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통증이 있고, 제 병이 완쾌된 것은 아니지만, 제 몸을 제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머물 곳도 없고, 가진 돈도 하나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살림해주고 아기도 보아주면 밥도 주고 머물 수 있는 집이 생겨 2달 째 그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이렇게 기도하러 올 수 있는 시간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또한 이번에 두 달 동안 파출부 일해서 번 돈이 60만원이 되었는데, 묵주 한 알 값이 60만원이라고 하기에 이렇게 가지고 왔습니다. 기도로 이만큼 나아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제일 먼저 성모님께 드리는 게 당연하지요.
10여 년전 15단 묵주기도 길을 만들며 '묵주알을 봉헌해 주세요'라는 모금을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움 가운데 묵주알을 봉헌 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제게 주셨던 고맙고 눈물나는 편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손을 얹고 기도하는 남양성모성지의 묵주알 한알 한알에는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