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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까지] 06
S#1. 경춘국도 (새벽)
견인차가 와서 유리의 승용차를 끌고간다. 근처에 서서 지켜보는 세준. 유리, 뒤쪽에서 쌀쌀한 듯 몸 움츠리며 걸어온다.
세준 : 어디 갔었어?
유리 : (캔 하나 내밀고) 이거 사구... 집에다 전화했어.
세준 : 잘했다. 걱정 많이 하시지?
유리 : 오빠랑 있대니까 걱정은 커녕 들어오지 말라는 눈친데?
세준 : (기막혀 허, 웃고)
유리 : 기다려. 한시간 안으루 데릴러 올거야.
세준 : 데릴러 오라구 그랬어?
유리 : 음. 박기사님 와주신대. 걱정마. 한시간만 내 유혹에 안 넘어가면 돼.
세준 : (한숨)
유리 : (하늘 보며) 별 좀 봐. 오빠 별자리 좀 알아? 북두칠성이 어딨드라 ...
곁을 보면 아무도 없다. 세준, 어느새 길가 한쪽에 가서 담배 붙여물고 있다. 유리, 무안하다.
S#2. 거리 (새벽)
민혁, 차 몰고 간다. 울리는 핸드폰.
민혁 : ...네....들어가는 길이예요....(잠시 듣고 있다)....어딘데요?
S#3. 경춘 국도변 (새벽)
날이 훤히 밝아오고 있다. 유리, 세준, 길가에 앉아있다. 세준 눈치를 살피는 유리.
유리 : ...화났어?
세준 : 그래, 화났어. 인제 다신 그런 짓 하지마.
유리 : 화내지마...나두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그랬겠어? 이해가 가지?
세준 : ...
유리 : 응? 이해가 가지?
세준 : ...(못말리겠다는 듯 웃고)
유리 : 역시! 멋있는 오빠.
세준 : (씁쓸히)
유리 : ...
세준 : 유리야,
유리 : (쓸쓸해지며) 알았어...무슨 말 할려는지 알아. 나 안 들을거야.
세준 : ...
순간, 두사람 앞으로 헤드라이트가 비친다. 눈 부셔 일어나는 세준과 유리.
차에서 내리는 민혁. 눈 마주치자 당황하는 세준.
유리 : (놀라) 오빠가 왔어?
민혁 : 타라.
세준 : (복잡해지며)
S#4. 민혁 차 안 (새벽)
민혁, 운전하고 있다. 뒤에 타고있는 두사람.
민혁 : 분위기 좋든데... 끼어들어서 미안하다.
유리 : 놀리지마.
세준 : ...
민혁 : 어디 여행이라두 가던 참이었냐?
세준 : ...
유리 : 앞 봐, 앞! 운전이나 잘해. 오빠두 내 짝 나지말구.
민혁 : 면허 딴지 얼마 됐다구 서울을 벗어나? 그것두 그 시간에...앞으로 조심해.
유리 : 알았어...오빤 이시간에 어디서 오는 길인데?
민혁, 대답 대신 음악을 튼다.
민혁 : (룸미러로 세준을 본다) 잘 지내냐?
세준 : ...잘 지낸다.
민혁 : 유리야, 세준이 너무 괴롭히지 마라. 사고는 혼자 쳐라. 너두 나 닮아가냐?
유리 : (세준 눈치 살피며 본다)
세준 : ...(창 밖 바라볼 뿐)
S#5. 민혁집 외경 (아침)
S#6. 동 거실 (아침)
장회장, 출근 차림으로 나온다. 뒤이어 나오는 장회장 처. 이층에서 내려오는 민혁. 외면하고 나가는 장회장.
민혁 : ...예전에 엄마한텐 얼마 주셨어요? 헤어지는 댓가로 얼마나 주셨어요?
장회장 : (발길 멈춘다)
장회장처 : (얼굴 굳으며) 나가요, 여보.
마주보는 민혁 부자. 긴장 흐르다가
장회장 : 다음달부터 은행에 니 카드 일체 중지시키라구 지시했다. 도박으루 빚진 거 니가 갚아라.
민혁 : (멈칫 본다)
장회장 : 도박은 니가 했는데 왜 애꿎은 애비 돈이 나가야 해?
우리 회사 사람들이 니 술값, 니 노름빚 벌려구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게냐?
민혁 : ...
장회장 : 용돈은 에미한테 타 써라.
장회장, 나간다. 민혁, 우두커니 서 있다.
S#7. 거리 선물가게 앞 (낮)
서희, 선물가게 쇼윈도우 앞에 서있다. 여러가지 인형들이 주욱 진열 돼있다. 가만히 곰인형을 하나 들여다본다.
S#8. 소망원 마당 (낮)
뛰노는 아이들 서너명 명. 정문 입구 담벼락에 몸을 바짝 숨기고 서있는 서희. 감회겨운 눈으로 소망원 건물을 둘러본다.
마침 공 주우러 뛰어오는 꼬마 한명.
서희 : (손짓하며) 얘, 얘,
꼬마, 돌아본다. 다가오면 이쁘다 하고 머리 쓸어주는 서희.
서희 : 이쁘다...너 여기 새로 왔니?
꼬마 : ...네.
서희 : 어쩐지 처음 본다! 너 혹시 순미라구...김순미 알지?
꼬마 : ...네.
서희 : (밝아지며) 안에 없니? 좀 불러줄래?
꼬마 : 순미 없어요. 저번달에 입양 돼서 나갔어요.
서희 : (실망하며) 어, 그래?
서희, 낙심하며 소포포장을 가만히 꺼내본다. 돌아설까 하다가 다시 꼬마들을 돌아본다.
서희 : (외침) 얘들아!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갈래?
멈칫 바라보는 아이들.
서희 : (손 번쩍 들어보이며) 갈 사람! 손 들어봐!
아이들, 머뭇머뭇하더니 저요, 저요, 하고 손 들어보인다. 서희, 좋아서 웃는다.
S#9. 오피스텔 안 (낮)
들어오는 민혁. 방이 텅 비어있다. 표정이 싸늘해진다.
급히 옷장을 열어보고 책들을 확인한다. 어디 사라진 건 아닌 듯 하다. 안심한다.
S#10. 중국 음식점 (저녁)
서희와 꼬마들 둘러 앉아 짜장면과 탕수육을 정신없이 먹는다. (4살,8살,9살 쯤 4-5명)
흘리면 닦아주고 물도 먹이고, 여념이 없는 서희. 흐뭇하고 즐겁다.
곁에 앉은 네살 된 꼬마1. 몹시 수줍음 타며 조심스레 먹는다.
서희 : 맛있어?
꼬마1, 창피한 듯 빨개지며 고개 숙인다. 서희, 뭔가 좋은 생각난다.
가방에서 소포 꺼낸다. 탁자 아래서 얼른 푼다. 곰인형 나온다.
서희 : 얘들아, 내가 문제 하나 낼께. 맞추면 상품은 (들어보이며) 짜잔! 곰인형이 되겠습니다!
아이들 끼리끼리 마주보며 흥미있다는 듯 서희를 본다.
서희 : 문제 나갑니다! (생각) 되게 어려운 문젭니다. 자아, 맞춰 봐... 토끼랑 거북이랑 달리기를 했는데 누가 이겼게! 어렵지?
머리 큰 아이들, 어이없는 듯 에에 하더니 탁자를 치면서 발 구르고 웃는다.
꼬마1 : 그것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꼬마2 : 맞아요!! 그게 뭐가 어려워요? 엉터리야!
서희 : (웃음) 뭐가 엉터리야? 어려우니까 괜히 그러는 거지?
야유하는 아이들. 꼬마1, 주눅 들어 눈치 슬슬 보다가
꼬마1 : (조그맣게) 거북이요.
서희 : (멈칫보다) 와! 맞췄습니다. (꼬마1의 손을 들어주고)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꼬마1, 좋아라 받는다. 나머지 아이들, 야유하며 그런게 어딨어요! 말두 안돼! 하고 왁자하게 떠든다.
서희, 깔깔 웃는다.
서희 : 다음주에 또 올거야. 다음주엔 진-짜 어려운 문제 낼거야. 선물두 기대하시라!!
S#11. 오피스텔 앞 (밤)
터덜터덜 걸어오는 서희. 안으로 들어간다.
S#12. 오피스텔 방 안 (밤)
키로 문 열고 들어오는 서희. 불을 켜는데 침대에 걸터 앉아 서희를 쏘아보는 민혁.
서희, 놀라서 흠칫 뒤로 물러선다.
민혁 : ...어디 갔다 오니.
서희 : ...자,잠깐...어디 좀.
민혁 : 어디?
서희 : 산책하고 왔어요.
민혁 : 산책을 열시간이나 하고 와?
서희 : ...
민혁 : 어디 갔었는데.
서희 : ...소망원에 내려갔었어요.
민혁 : (본다)
서희 : 따르던...따르던 꼬마가 있었는데, 그 아이 만나러요...
민혁 : ...(잠시 가만히 본다)
서희 : ...(두렵다)
민혁 : (일어나는) 나가자. 저녁 먹자.
S#13. 한식집 (밤)
깔끔한 한정식집. 서희, 민혁, 마주 앉아 식사한다.
생선가시를 발라내던 민혁. 잘 안되니까 신경질적으로 밀어버리고 서희 밥먹는 모습을 가만히 본다.
민혁 : 머리 모양 바꿔.
서희 : 네?
민혁 : 나 그 머리 싫다. 다르게 바꿔.
서희 : ...
민혁 : 그리고 앞으론 가능하면 치마 입어. 바지 입지마.
서희 : ...네.
민혁 : ...(본다) 비싼 거 사주면 비싼 걸 먹을 줄 알아야 흥이 나지. 왜 콩나물, 김치 이런데만 젓가락이 가는건데?
먹어본 적 없는 건 못먹어?
서희 : (멈칫 본다..고개 떨구며)
민혁 : 너 나한테 돈 달라 그랬지? 돈 주면 뭐해? 쓸 줄두 모르는 거. 콩나물 사먹으라구 돈 주니?
그리구 앞으론 내 앞에서 소망원 소자두 꺼내지마.
서희 : ...네.
민혁 : (본다) ...그리구 우리집 사람들 찾아와두 신경 쓰지마. 그사람들 말 다 흘려버려. 다 헛소리니까.
서희, 묵묵히 밥 먹고 있다. 민혁, 다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민혁 : (무심한 척) 세준이 소식 안 궁금해?
서희 : (멈칫 본다..다시 고개 숙이고) ...
민혁 : (잠시 의미심장하게 보다가 결심한듯) 지금 병원에 있어. 중태래..
서희, 멈칫 젓가락질을 멈춘다.
민혁 : (괴로운 듯) 새벽에 유리랑 차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어.
서희 : ...(천천히 고개 들고 본다)
민혁 : 한 번 가보는 게 도리 아니겠어? 나 괜찮으니까 한 번 가 봐. 어차피 우리 두사람 지은 죄두 없다곤 말 못하니까...
상태가 안 좋대. 한 번 가봐. 갈거지?
서희 : ...(다시 식사하며) 아뇨...안 가요.
민혁 : 얼마나 다쳤는지두 안 묻니? 심각해...그러지말구 가 봐...병원 알려줄께.
S#14. 오피스텔 앞 (밤)
서희, 걸어온다. 구급차 한 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서희 뒤로 지나간다.
서희, 고개 돌려 바라본다. 아득해진다.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천천히 돌아선다. 이윽고 마구 달려간다.
S#15. 종합 병원 외경 (밤)
S#16. 동 입원실 앞 복도 (밤)
주위 두리번거리며 급히 뛰어들어오는 서희. 입원 환자들을 살펴 본다. 간호사실로 다가간다.
서희 : 죄송하지만...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간호사 : (본다)
서희 : 이세준 환자...어제 교통사고로 들어온 이세준 환자 상태를 좀 알고 싶은데요. 많이 심각한가요?
간호사 : 어제 들어왔다구요? 몇호실요? (챠트보며)
서희 :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중태라구 그러든데...
간호사 : 그런 환자...없는데요?
서희 : (점점 상황이 짚히기 시작하는데) ...
S#17. 병원 앞 (밤)
서희, 나온다. 병원 주차장에 서 있는 민혁. 눈 마주치는 두사람.
서희, 두려움에 흠칫 물러선다.
서희 : 왜... 거짓말... 하셨어요.
민혁, 차갑게 본다.
민혁 : ...니 거짓말이 싫어서.
서희 : ...(두렵다)
민혁 : 그렇게 못잊고 그리운 사람을 어떻게 떠났니. 어떻게 그렇게 그 뻔한 거짓말에 매번매번 속아넘어갈 수가 있지?
서희 : (떨리는데) 그런 거 아니예요..
민혁 : ...(점점 더 화나는데)
서희 : 미안해요...그런 거 아니구요.
민혁 : (괴로워진다)
차에 올라 타고 사라지는 민혁. 서희, 그자리에 떨구고 서있다.
S#18. 의과대학 실험실 (저녁)
강의 끝난 텅빈 실험실. 가운 입은 세준, 혼자 앉아있다. 도구를 정리하다가 창 밖을 바라본다.
S#19. 회상
- 산판에 여행 가서 세준오빠 눈 낫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던 서희.
- 음식 차려놓고 폭죽 터뜨리던 서희.
- 옥상에 앉아 나두 내가 좋아, 바이킹 타러 간다, 하던 서희.
S#20. 강의실 (현재)
세준, 도구 챙기는 손 떨리며 마음이 아파온다.
S#21. 호텔방 (저녁)
민혁, 친구들 서넛과 담배연기 자욱한 방안에서 포커치고 있다.
호텔 여자 종업원 한명, 안주쟁반 들고 들어온다. 울리는 핸드폰. 민혁, 전화 받는다.
민혁 : 네에...
세준(E) : ...너 좀 만나야겠다.
민혁 : ...
S#22. 대학교 공중전화 부스 (저녁)
세준, 통화하고 있다.
세준 : 얼굴 좀 보자....언제 시간 있냐?
S#23. 호텔방 (저녁)
민혁, 전화기 들고 묵묵히 있다. 한손에는 포커패 들었다. 술병 흩어져있다.
민혁 : 지금? (잠깐 생각)... 괜찮아, 지금 좋아....(곰곰 생각) 아냐, 그러지 말구...오피스텔로 와라. 거기가 좋겠다.
잔인한 냉소 어린다. 여자 한사람, 민혁에게 안주를 건넨다
S#24. 공중전화 부스 (저녁)
전화기 들고있는 세준. 조용히 있다.
민혁(E) : ...왜? 싫어?
세준 : ...(입술 깨물고) 아니...그렇게하자.
S#25. 오피스텔 복도 (밤)
걸어오는 세준. 덤덤하게 벨을 누른다. 한쪽 벽에 기대고 서서 기다린다. 문 열린다. 서희와 눈 마주친다.
놀라는 서희.
세준 : ...(돌아보며) 잘지내니.
서희 : ...
S#26. 오피스텔 안 (밤)
소파에 앉는 세준. 서희, 그리움 감추며 시선 돌리고 있다.
세준 : (씩 웃고) 좋구나...그땐 몰랐는데 방이 아주 좋은데?
서희 : ...어어.
세준 : 어디 아프니?
서희 : 아냐...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세준 : 열 있구나.
서희 : ...음.
세준 : 어릴때부터 감기란 감기는 혼자 다 앓아요.
서희 : 그러게.
서희, 마음이 몹시 아프다. 내색 않으려 애쓴다.
서희 : 오빠 뭐...마실래?
세준 : 아니, 됐어. 민혁이 오면.
서희 : (본다)
세준 : 나, 민혁이 만나러 왔어.
서희 :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
세준 : 음.
어두워지는 서희.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 서희, 세준 왼쪽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서희 : 오빤...어때? (긴장하며 조심스레) 눈은...어때?
세준 : 내 눈이 뭐? 잘생겼지 뭐!
서희, 웃는다. 세준, 그 웃음이 밉고 가슴 아프다.
세준 : 서희야...너한테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망설이다가)
서희 : (본다)
세준 : 나...니가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살든지...그런건 아무 상관이 없어...니가 좋으면 그걸로 됐다.
서희 : ...
세준 : (머쓱 웃고) 그러니까...앞으로두 날 피하지 말구...가끔이라두 만나자. 난 니가 어떻게 사는지, 몸이나 안 아픈지...
그것만 좀 알구 살아야겠어..부담은 갖지말구...그저 피하지만 말아주라.
서희 : ...
세준 : 안되겠어?
서희 : (굳어진) ...
세준 : (씁쓸한 미소) 한심하냐? 한심해두 뭐...할 수 없다...나 오늘 민혁이한테 잘보이러 왔어.
서희 : (멈칫 본다)
세준 : 그래야 민혁이가 너한테 더 잘해줄 거 같아서...
서희 : (마음 무너지는데) ...
세준 : (착잡하게 혼잣말) 한심하네, 증말.
서희, 감정 표내지 않으려 애쓴다.
S#27. 거리 - 민혁 차 안 (밤)
차 몰고 가는 민혁. 신호대기 한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시계를 본다.
S#28. 오피스텔 앞 (밤)
차에서 내리는 민혁.
S#29. 오피스텔 안 (밤)
문 벌컥 열리며 들어오는 민혁. 두사람을 짧게 바라본다.
서희, 긴장하며 재빨리 일어난다.
민혁 : ...(태연히 세준보고) 왔어?
세준 : 늦었구나.
서희, 일어난다. 씽크대로 간다.
서희 : 차 끓일께요. 뭐 드실래요?
소파로 와서 앉는 민혁.
민혁 : (서희보고) 커피 줄래? 도와줄까?
서희 : 아뇨. 괜찮아요.
민혁 : ...저녁은? 먹었어?
서희 : 네... 민혁씬요?
민혁 : 먹었어.
세준, 잠시 서희를 바라본다. 복잡해진다.
민혁 : 할 얘기가 뭔데?
세준 : ...(치욕스럽다)
민혁 : 무슨 일 있어?
잠시 바라보는 세준.
세준 : 지난번 일두 그렇구 해서...좀 만나고 싶었어.
민혁 : (심중을 읽어본다) 지난번 무슨 일? 아아...치구 받구 한 거? 뭘 그래, 새삼?
서희 : ...
세준 : ...(착잡해지는) 그때 일...사과한다. 미안하게 됐다... 나 용서해라.
멈칫 보는 민혁. 서희, 굳어져 있다. 잠시 침묵...
세준 : (난감한 듯 시계보는) 그만 가봐야겠다.
민혁 : 왜 벌써? 차라두 마시구 가.
세준 : (일어나며) 아냐, 됐어..약속 있어서..
서희, 돌아서서 본다.
세준 : 서희야...갈께.
서희 : (본다) 어어...(안타깝다) 갈래?
서희 눈빛을 읽는 민혁. 표정 굳는다.
민혁 : (태연히) 짜식 싱겁긴.. 뭘 벌써 가.
세준 : 간다.
돌아서는 세준. 문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세준 : ...(끓어오르는것 참고) 민혁아...
민혁 : (본다) 왜.
돌아보는 세준. 민혁과 눈 마주친다. 긴장 흐른다.
세준 : ...같이 가자.
민혁 : (본다)
서희 : (멈칫)
세준 : ...(당황하며 머쓱하니 시계보는 척) 어어, 너무 늦었잖아.
민혁 : (딱한 듯 웃고) 먼저 가.
절망하는 세준. 서희, 고개 떨군다.
S#30. 오피스텔 로비 (밤)
터덜터덜 건물을 나오는 세준.
S#31. 오피스텔 안 (밤)
커피잔 들고 오는 서희. 민혁 앞에 마주 앉는다. 지긋이 바라보는 민혁.
민혁 : 반가웠지?
서희 : (본다)
민혁 : 둘다 그리워 죽겠다는 표정이든데?
서희, 말없이 설탕을 넣고 젓는다.
민혁 : 대답해봐. 안그래?
서희 : 안그래요.
민혁 : (본다)
서희 : (잔 내밀며) 드세요, 민혁씨.
민혁, 커피잔을 받더니 바닥에 던져 깨뜨려버린다. 놀라서 바라보는 서희.
민혁 : (일어나며) 한서희! 너 나한테 오빠라구 불러준 적 있어? 끝끝내 그 말 안나오지?
끝끝내 난 너한테 민혁씨지? 민혁씨! 민혁씨! 내가 니 친구야?
서희 : ...
민혁 : 너 한 번이라두 나한테 세준이 바라보듯 본 적 있어?
서희 : (두려운 눈빛) ...
민혁 : 그 눈! 눈!
민혁, 더 화가 난다. 다가가 잡아 일으킨다. 거칠게 겉옷을 벗긴다.
서희, 눈을 감는다. 눈물 흘러내린다.
S#32. 대형 할인점 (낮)
지영, 걸어온다. 남자직원들을 기웃기웃 살피며 물건을 고르고 있다.
재석, 먼발치서 지영을 본다. 슬슬 따라온다. 지영, 구두끈이 풀려 한순간 넘어질 듯 한다. 주저 앉는다.
한손엔 책을 들고있어, 끈이 영 안 묶인다. 재석, 성큼 다가오더니 주저앉아 끈을 질끈 묶어준다. 놀라는 지영.
재석 : (휘파람) 이런 건 제가 또 전문 아닙니까. (손으로 쓱쓱 닦아준다)
지영 : (놀라 물러서는)
재석 : (일어나며 씩 웃는) 안녕하세요?
지영 : (수줍은 미소) ...
재석 : 자주 오네요?
지영 : ...(빨개진) 지,지난번에는 미안해요.
재석 : 뭐가요?
지영 : 우,우리 아빠가...
재석 : 아이구, 뭐가요? (짐 들어준다)
나란히 걷는 두사람. 어색한데...재석, 흘깃 지영을 바라본다.
재석 : 이상하게 지영씨 생각이 계속 나드라구요. 눈 감어두, 눈 떠두, 화장실 가두, 밥을 먹어두...반찬을 먹어두...
지영 : (놀라서 빨개진다)
재석 : 저 여기 관뒀거든요. 오늘 짐 가질러 온겁니다. 근데 딱 만나네요. 인연이 있나봐요. 그죠?
지영 : (당황)
재석 : (잠시 생각) 소원이 있습니다.
지영 : (눈 동그래져서 본다)
재석 : 집까지 바래다 드리구 싶습니다. 서희 봐서 한 번만요. 괜찮죠?
지영 : (본다)
S#33. 거리 (낮)
걸어가는 지영과 재석.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얼굴 빨개져서 쩔쩔매며 따라오는 지영.
재석, 그냥 씩씩하게 걷는다.
S#34. 지영집 앞 골목 (낮)
지영과 나란히 걷는 재석. 뭐라고 말할려고 애쓰는 지영.
지영 : 다,다,다왔어요.
재석 : (집을 잠깐 올려다본다) 고맙습니다. 소원 성취했습니다!
지영 : (얼굴 빨개지는)
재석, 불쑥 로션을 하나 내민다.
재석 : 선물입니다!
지영 : (당황)
재석 : (억지로 쥐어주며 씩 웃고) 이만 갑니다!
꾸벅 인사하고 뛰어간다. 지영, 멍하다.
가다가 문득 돌아보는 재석. 손 흔들어보이고 다시 뛰어간다.
얼굴 붉어지는 지영. 돌아 서는데 뭔가 홀린 듯 하다. 곰곰 생각하다가 점점 수줍어지며 미소를 짓는다. 로션을 들여다본다.
S#35. 단란주점 룸 안 (낮)
손님 없는 이른 시간. 혜정, 혼자 앉아 거울 보며 화장 고치고 있다.
문 벌컥 열리면 들어오는 재석. 혜정, 올려다 본다.
혜정 : (반가운) 왔어?
재석 : 돈 있음 좀 내놔.
혜정 : 무슨 돈?
재석 : 내놔 봐.
혜정, 주머니 뒤진다. 만원짜리 몇장 꺼낸다. 나꿔채는 재석.
혜정 : 어따 쓰게?
재석 : 쓸 데가 있어!
혜정 : 어따 써? 야 좀 작작 뺏어가라. 일은 인제 안 할거야?
재석 : 두고 봐...인제 내인생두 해 떴다! 나중에 내 덕 볼테니깐 미리 투자하는 셈 쳐라!
건들거리며 돌아서서 나간다. 혜정, 어이 없다.
S#36. 오피스텔 외경 (아침)
S#37. 오피스텔 안 (아침)
서희, 홀로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민혁이 남기고 간 담배꽁초가 수두룩히 보인다.
서희,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개 집어든다. 라이터가 보인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대본다.
기침이 마구 쏟아지며 찡그린다. 얼른 제자리에 놓으며 매워서 눈물이 핑 돈다.
벨소리. 놀라서 움찔 고개 드는데...눈 앞에 송원장과 형준이 서 있다. 서희, 후다닥 일어난다. 얼어붙는다.
송원장 : (안을 둘러보다가) 문이 열렸드구나... 전화를 할까 하다가 요 앞서 형준이 만나는 바람에 바로 들렀다.
잠깐 시간 좀 있니?
서희 : ...
송원장 : 밖에서 기다리마. 챙겨입구 나오너라.
S#38. 커피숖 (아침)
송원장, 형준, 서희 마주 앉아있다.
송원장 : 장회장님한테 연락 받구 급히 올라온게다. 처음엔 기겁을 했다. 뭘 잘못 들으신게지 싶드라.
그런데 내 눈으루 보구나니까...인제야 이게 사실이구나 현실로 받아 들여진다. 세상에...참 무섭구나, 무서워.
서희 : ...
송원장 : 니가 나한텐 딸이나 마찬가질테니까 잘 좀 얘기해달라 그러시드라. 우리 악연이 끝이 안날 모양이다. 어떻게 된거냐.
서희 : ...
형준 : 괜찮아, 얘기해봐.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서희 : ...
송원장 : 니 속을 알다가두 모르겠다. 그렇게나 내 속을 뒤집구 결국 세준이 눈까지 멀게 만들어 놓드니...
그러구서 만나는 게 민혁이냐?
서희 : ...
송원장 : 우리 세준이는 유리랑 외국 나가 공부하게 될 것 같다. 아마 눈두 치료 받을 거같구...
(짐짓 한숨) 이 모든게 니 덕분인지 니 탓인지 나두 모르겠다.
형준 : (송원장을 멈칫 본다)
서희 : ...
송원장 : 하기야 뭐, 사람 마음 변하는 거 누가 알겠니. 살다가두 헤어지는데....내가 널 미워하다가두 한편 생각하면
너두 참 안쓰럽구나 싶어. 너랑 나두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길래...번번이 널 만나 이런 얘길 해야하니...(한숨)
서희 : ...
송원장 : 민혁이 오늘 맞선 본다드라.
창백해지는 서희.
형준 : (난감한) 모르구 있었구나.
서희 : ...
송원장 : 거기서 나오너라...더 망가지기 전에 거기서 나와. 내 진심으루 널 위해 충고하는 거야. 누가 시켜 이러는게 아니야..
에미 맘으루 이러는게다. 어디 너 있을만한델 알아보자. 취직자리 물색해보마.
잠시 사이. 고개 숙이고 있던 서희.
서희 : ...원장어머니.
송원장 : (본다)
서희 :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송원장 : (차가워지는) ...
서희 : ...
S#39. 오피스텔 안 (낮)
치마 정장을 입은 서희, 거울 앞에 앉아 마스카라를 그리고 있다. 급한 마음. 잘 안그려진다.
지우고 다시 그려본다. 서툴러서 엉망이다. 민혁이 사준 목걸이를 두르고 있다. 구두를 신는다. 초조하다.
S#40. 고급 미용실 앞 (낮)
걸어오는 서희. 미용실 간판 올려다 본다. 망설이다가 들어간다.
S#41. 미용실 안 (낮)
서희, 거울 앞에 앉아있다.
서희 : 짧게 잘라주세요.
미용사 : (머리 만지며) 아유, 많이 기르셨는데 아깝다.
서희 : (거울 속 자기 모습을 결연하게 본다)
S#42. 미용실 앞 공중전화 부스 (저녁)
머리 짧게 자르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서희,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간다. 핸드폰 번호 누른다.
서희 : ...(반가운) 저예요...
S#43. 호텔 앞 (저녁)
차에서 내리는 민혁. 전화받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민혁 :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야...오늘 좀 곤란해.
S#44. 공중전화 부스 (저녁)
서희, 통화하고 있다.
서희 : ...(어두워지며) 그래요?...아니요, 그냥...아뇨, 괜찮아요...네...
전화 끊고 돌아선다. 거리로 나온다. 절망한다.
S#45. 호텔 별실 (저녁)
장회장 부부, 은지와 김회장 부부, 함께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장회장 : 요즘 혈색이 아주 좋아지셨습니다.
김회장 : 장회장 만나 기분 좋아져서 그렇지요.
장회장 : (너털 웃고) 아이구 무슨 말씀...
장회장처 : 은진 암만 봐두 어릴때하구 똑같네? 똑같이 이뻐..
은지 : (웃고) 고맙습니다.
김회장 처 : 민혁이가 늦네요.
장회장 : 곧 올겁니다...저두 쑥스러워 그런 모양입니다..
은지 : 민혁씬 어때요? 어릴 때랑 많이 달라졌어요? 중학교때 보구 처음이라 되게 기대 되는거 있죠?
장회장처 : 걔두 똑같지 뭐. 미국선 뭘 전공하구 있다 그랬지?
은지 : 미술사 공부하구 있어요. 요번 학기 졸업이예요.
들어오는 민혁. 어색한 얼굴로 인사 꾸벅한다.
민혁 : 죄송합니다. 길이 막혀서요.
장회장 : 전화라두 해야지, 다들 기다리시는데.
은지 : (환히 웃고 일어나 악수 청하는) 오랜만이야, 민혁씨.
민혁 : ...(씩 웃는) 야아, 다 컸구나.
S#46. 까페 (저녁)
지영, 들어온다. 한쪽에 앉아있는 서희. 다가가는 지영. 와서 마주 앉는다.
지영 : ...(서희 차림을 보며) 머,머리 잘랐구나?
서희 : 이상해?
지영 : (미소 띠며 고개 젓는)
서희 : 우리 놀러가자! 영화두 보구 맛있는 거두 사먹구...내가 저녁 사줄께.
지영 : (물끄러미 본다)
서희 : 왜.
지영 : ...너 나빠.
서희 : (멈칫)
지영 : 세,세준오빠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서희 : ...
지영 : 자,잘,잘못한거야...왜,왜그랬어?
서희 : 우리 영화보자...보고싶은 거 없어?
지영 : (시계 본다) 약,약속있어.
서희 : (실망) 그래?
지영 : (착잡한 듯)
S#47. 의과 대학 강의실 앞 복도 (저녁)
세준, 황교수 나란히 걷는다..
황교수 : 지영이한테 들었다. 그동안 니 녀석이 눈 때문에 비실 거린게 아니었드구만?
세준 : ...
황교수 : 실연 당했다구? 거 참 샘통이다.
세준 : (본다)
황교수 : (어깨 치며) 잘됐어. 의사라면 실연두 당해봐야 남 아픈 마음두 치룔 하지.
세준 : ... (씁쓸히 웃고)
황교수 : 세상사 뜻대루 되는거 하나두 없다. 우리 지영이 에미는 지영이 낳다 죽었는데 난 손하나 까딱 못했어.
명색이 외과의산데 말이지.
세준 : ...
황교수 : 지영이 그거는 다섯 살때 열을 심하게 앓드니 말을 딱 더듬드라구...뭐 에미없이 너무 집에 혼자 내버려둬서
그런 것 같기두 한데...나 그것두 전혀 손두 못쓰잖아? 명색이 의산데?
세준 : ...
황교수 : 내가 살아보니 그렇드라. 뭐든지 그냥 내버려 두는거야...가는 사람 잡지말구 오는 사람 막지말구...
그게 인생사 제일 큰 약이구 명의드라.
세준 : (씁쓸히 웃고) 고맙습니다.
황교수 : 고마우면 우리 지영이 밥이나 좀 사주구!
S#48. 노래방 (저녁)
노래를 꽥꽥 부르고 있는 지영. 재석, 자리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가끔 눈 마주치면 창피한 듯 머쓱 웃는 지영. 높은 옥타아브를 큰소리로 외쳐부르고 있다. 즐겁다.
노래할 땐 하나도 안 더듬고 하나도 안 수줍다. 재석, 어떨떨하니 지켜본다.
S#49. 캠퍼스 (저녁)
세준, 걸어온다. 승용차가 뒤에서 슬슬 따라온다. 경적을 빵 울린다.
유리 : (차창 열고 소리치는) 거기 빌빌거리는 총각! 길 좀 비켜요!
세준 : (돌아보며)
유리 : 참, 죽을 상을 하구 있네! 나 차 고쳤어! 시험 시승해야지! (타라는 손짓)
S#50. 유리 차 안 (저녁)
타고가는 두사람.
유리 : 어디 가는 길이야?
세준 : 너 만나러.
유리 : (본다) 정말?
세준 : 정말이야...너한테 가는 길이었어.
유리 : 해가 남쪽에서 뜰 일이네.
세준 : 밥 먹으러 가자. 밥 사줄께.
유리 : ...(어이없고)
세준 : 밥 사달라구 맨날 찾아올 땐 언제구, 왜?
유리 : 속셈을 읽는 중임...잠깐 기다려. (곁눈으로 본다)
세준 : 속셈 없어.
유리 : (의아한데)
세준 : 앞으로 밥 사달라면 밥 사주구, 술 사달라면 술 사주구 그럴께.
유리 : ...(기막혀) 오빠,
세준 : 왜.
유리 : 나 감격해서 울 것 같애. 울어두 돼?
세준 : (피식)
유리 : (환히 웃는다)
S#51. 까페 (밤)
생맥주잔 건배하는 유리와 세준.
유리 : 오빠 나 요즘 큰일났어..아무리 손목을 찾아봐두 맥이 안 짚혀...왜그러지?
세준 : (무심히) 별 거 아닐거야. 많이들 그래. 잘 찾아보면 아마 있겠지. 맥없는 사람은 없어.
유리 : (무안) 그래두 한 번 안 봐줄래? 한 번 찾아봐주라. (손목 내밀고)
세준 : (하는 수 없다는 듯 짚어보는) 여기 있네.
유리 : (만져보며) 어디? 정말이네? 야, 역시 달라. 여깄었구나아..
세준 : (어느새 덤덤히 창 밖 바라본다)
유리, 지켜보며 마음이 조금씩 착잡해진다.
유리 : 오빠...
세준 : (시계보며) 너무 늦었다. 벌써 이렇게 됐네?
유리 : ...(무안)
세준 : 가자.
유리 : (얼굴 붉어지며) 잠깐만, 오빠.
세준 : 왜.
유리, 망설이며 가만 바라본다.
세준 : 왜.
유리 : (떠보듯) 우리 오빠 오늘 선봤어.
세준 : (당혹) 선?
유리 : 은지언니라구..어릴때부터 집안끼리 친하게 지내던 언니 있어. 아마 그언니네 아버지 회사사정이 잠깐 어려운 모양인데..
우리집에 도움을 바라구 있나봐. 우리 아버지가 그런 호기횔 놓칠 리 없잖아.
세준 : ...
유리, 표정을 가만 살핀다.
유리 : 거봐...얼굴이 확 달라지는데 뭐. 역시 오빤 안되겠다... 멀었어...
세준 : ...
유리 : (피식) 나 사실 이 얘기 죽어두 안할려 그랬는데 ...(허탈하다) 결국 해버렸네.
씁쓸히 창 밖 바라보는 유리.
세준 : 민혁이 그럼...결혼..하는 거니.
유리 : 우리 오빠한테 달렸지 뭐.
세준 : ...
유리 : 오빠, 마음에 없이 나한테 갑자기 잘해주구 그러지마...나두 대용품이나 뭐, 그런 거 하기 싫은 사람이니까.
세준 : ...
S#52. 옥탑방 옥상 (밤)
복잡한 얼굴로 층계 올라오는 세준. 송원장, 난간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세준, 멈칫 본다.
송원장 : (돌아보며) 늦었구나..
세준 : 언제 오셨어요?
송원장 : 이 방 오늘 내놨다. 당장 형준이네로 옮겨라. 앞으로 아르바이트구 뭐구 다 관두구 공부만 해.
에미가 다 알아서 처리해놨다...짐 들구 나와.
세준 : 어머니 저 여기서 지낼거예요.
송원장 : (굳는) 왜? 서희 돌아올까봐?
세준 : (본다)
송원장 : 다 알구 왔어. 한심한 녀석...(한숨) 내 언제고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 애들은 제 몸 귀한 줄을 몰라. 스스로 아끼는 법을 절대루 모른다.
세준 : (허탈한) ...서희 키우신 건 어머닙니다.
송원장 : (멈칫) 이 녀석이...
세준, 난간에 가서 기대고 선다.
세준 : (씁쓸히 바라보다) 어머니 이제 속이 시원하시죠?
송원장 : 너 아직두 정신 못차렸니? 아직두 내 원망이야?
세준 : 네, 어머니...저 어머니 원망스러워요.
송원장 : ...
세준 : 저 앞으로두 여기 살 겁니다. 내버려두세요.
송원장 : ...망할 자식.
세준 : ...
S#53. 옥탑방 안 (밤)
들어오는 세준. 빈 방을 물끄러미 보다가
유리(E) : 우리 오빠 오늘 선 봤어.
점점 화가 난다. 급히 돌아서서 다시 나간다.
S#54. 거리 (밤)
뛰어오는 세준. 급히 택시를 잡는다.
S#55. 거리 (밤)
서희,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다. 하이힐이 아파서 절뚝거린다. 초라하다.
S#56. 단란주점 뒷방 (밤)
서희, 소줏잔에 소주를 따르고 있다. 홀짝 마신다. 눈화장이 번져 엉망이다. 들어오는 혜정.
혜정 : (소줏병 빼앗으며) 얘가 왜이래?
서희 : (웃고) 왜? 이리 좀 주라.
혜정 : 얘 술꾼 다 됐네? 왜이러는데?
서희 : ...혜정아,
혜정 : 왜.
서희 : 혜정아...혜정아 있지...나는 정말 ...
혜정 : 너는 정말 뭐? ...복에 겨웠다, 복에 겨웠어.
서희 : (모로 누우며) 맞아...나는 참 행복해!...(하늘보고 잔 들고 외치는) 저 참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르르 잠든다. 혜정, 어이없는 듯 본다.
S#57. 오피스텔 안 (밤)
문 열고 들어오는 민혁. 아무도 없다. 들어와 담배 붙여물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S#58. 오피스텔 앞 (밤)
세준, 걸어온다. 창을 올려다본다. 안으로 들어간다.
S#59. 오피스텔 안 (밤)
민혁, 문 열어준다. 문 앞에 서 있는 세준.
민혁 : (멈칫)
세준 : ...
민혁 : (뭐라 말하려다가 피식 냉소 어리는)
세준 : ...잠깐 얘기 좀 하자.
민혁 : 들어와.
세준 : 여긴 싫다. 나가자.
S#60. 오피스텔 앞 공원 (밤)
세준, 민혁, 벤치로 와서 앉는다.
민혁 : 왜? 용건이 뭔데.
세준 : (잠시 보다가) 너 결혼하니.
민혁 : 누가 그래?
세준 : 결혼 하느냐구 물었어.
민혁 : 언젠간 하겠지. 왜? 아아...유리한테 뭐 들었냐?
세준 : 서희는?
민혁 : 서희랑 결혼 할거야.
세준 : (날카롭게 본다)
민혁 : 우리 영감님한테 잘보일려구 오늘 연극하구 온거야. 별걸 다 니가 걱정하는구나.
사이.
세준 : ...니 말 믿는다.
민혁 : (허,웃는) 미치겠군. 번번이 아주 돌겠어.
세준 : ...
민혁 : 나 맞선 봤다니까 금새 달려온거냐?
세준, 주먹을 꾹 쥔다.
세준 : (끓어오르는 것 참으며) 서희한테 상처 주지마라.
민혁 : (본다)
세준 : 부탁한다, 민혁아.
민혁 : (기분 상한다) 얘기 다 했냐?
세준 : ...
민혁 : ...다 했어? 가봐라, 그럼...(일어난다) 담에 또 보자.
세준 : (쥐고있는 주먹 떨린다) ...
S#61. 단란주점 뒷방 (새벽)
혜정과 나란히 누워있는 서희. 어느 순간 눈을 뜬다. 창밖이 밝다. 벌떡 일어난다.
S#62. 오피스텔 앞 (새벽)
허겁지겁 뛰어오는 서희. 하이힐이 삐끗한다. 벗어들고 뛰어들어 간다.
S#63. 오피스텔 안 (새벽)
들어오는 서희. 민혁, 침대에 꼿꼿이 앉아있다. 서희, 얼어붙는다.
민혁 : ...(돌아본다)
서희 : ...잘못했어요.
민혁 : 뭘.
서희 : 친구집에서...
민혁 : (밉다) 친구집에서 뭘.
서희 : 모르고 깜빡 잠이 들어서요.
민혁 : 내가 아직도 그렇게 무섭니.
서희 : ...
민혁 : 왜?
서희 : ...
민혁 : (다가오며) 왜냐구! 친구집에서 자는게 어때서...그게 뭐 어때? 너랑 나랑 같이 사는 것두 아니잖아.
서희 : ...
잠시 침묵. 민혁, 일어나며 베개를 바닥에 내팽개친다.
민혁 : ...우리 이쯤에서 끝내자.
서희 : (멈칫 본다)
민혁 : 난 너 정말 사랑했어. 니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어. 태어나서 이런 좋은 느낌은 처음이었어. 그런데 넌 아니드라.
넌 한순간두 나한테 마음이 없어. 그저 날 이용하고, 내가 사주는 밥, 내가 사주는 옷만 얻어먹고 입었을 뿐이지.
서희 : ...(두려운)
민혁 : 어차피 너나 나나, 그렇고 그런 관계는 이쯤에서 끝내구 서로 새 인생 시작하자. 니 꼴두 말이 아니구 나두 말이 아니다.
내가 너한테 못 할 짓 한 것 같지만 ... 피차 마찬가지라구 생각해라. 방 구할 때까진 여기 있어두 괜찮아.
돌아서서 나간다. 서희, 다급히 일어난다. 민혁 앞을 막아선다. 눈물 뚝뚝 흐른다.
서희 : ...잘못했어요.
민혁 : (본다)
서희 : 잘못했어요..정말 잘못했어요.
민혁 : ...
서희 : 잘할께요.
민혁 : (본다)
서희, 울먹이며 민혁 어깨에 매달린다..꽉 안는다.
서희 : 사랑한다면서요...나 사랑한다면서요..
민혁 : ...(차가워지며 냉소)
서희 : 가지마세요...잘할께요. 정말 잘할께요.
눈물에 눈화장이 더욱 얼룩져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