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고(金觚)
[본관] 함창(咸昌)
[생졸년] 1369년(고려 공민왕 18)~1435년(조선 세종 17) / 향년 66세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국헌(國憲), 호는 귀재(歸齋). 아버지는 사재감 정(司宰監 正) 김천강(金天降), 할아버지는 문하평리 판전공시사(門下評理 判典工寺事) 김중기(金重器), 증조할아버지는 문하평리 판례의시사(門下評理 判禮義寺事) 김구(金龜)이다.
처는 생원(生員) 조석린(趙錫麟)의 딸 숙부인 풍양 조씨(豊壤 趙氏)로 알려져 있다. 김고는 함창 김씨(咸昌 金氏)의 비안(比安) 입향조이다. 1369년(공민왕 18) 영주(榮州)에서 출생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경상도 관찰사가 김고의 덕행을 보고 천거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이어 통훈 대부(通訓大夫)로 승격하였으며, 고성 현령(固城縣令)을 역임하면서 많은 치적을 쌓았다.
세종 연간에는 의성 교수(義城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연로한 부모 공양을 위해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벼슬에 큰 뜻이 없어 만년에는 경상도 비안의 후천(後川)[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으로 옮겨와 살며,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다. 1435년(세종 17) 세상을 떠났다. 김고가 정착한 이래 그의 후손들이 비안면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봉성산 남쪽에 있다. 김도화(金道和)가 묘비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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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인물지]
고성 현령 귀재 김공 묘갈명 병서(固城縣令 歸齋 金公 墓碣銘 幷序) - 척암 김도화
우리나라 태종조(太宗朝)에 고성 현령 귀재 김공이 선덕(宣德) 을묘년(乙卯年, 1435, 세종 17)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 묘소가 비안현 북쪽 봉성산(鳳城山) 태좌(兌坐) 언덕에 있다. 지금 김공이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났고, 집안에 대대로 큰 변화가 있었던 탓에 오랫동안 묘비를 세우지 못하였으니, 개탄할 만하다.
공의 후손 성각(聲慤)등이 이것을 한스러워하여 묘소에 비석을 세우고자 족인 기로(基魯)‧여성(汝誠)을 시켜 나에게 묘갈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하게 하였다. 나는 스스로 생각건대 노쇠하니 어찌 이 부탁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삼가 그들이 먼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에 감동하여 끝내 사양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공의 휘는 고(觚), 자는 국헌(國憲)이고, 귀재(歸齋)는 그의 호이다. 함창 김씨(咸昌金氏)는 덕원군(德原君) 종제(宗悌)를 시조로 한다. 종제가 감찰어사(監察御史) 균(鈞)을 낳고 균은 사재감 주부(司宰監主簿) 녹문(祿文)을 낳았다. 3대에 이르러 소부시 승(少府寺丞) 경고(鏡高)가 있었다. 경고는 국자좨주(國子祭酒) 보문학사(寶文學士) 적(鏑)을 낳으니, 이분이 공에게 5대조가 된다.
고조는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 중정(中正)이다. 증조는 문하평리 겸 상호군 (門下評理兼上護軍) 구(龜)이다. 조부는 문하평리 판전공시사(門下評理判典工寺事) 중기(重器)이다. 부친은 중훈대부(中訓大夫)이자 사재감을 지낸 천강(天降)이고, 모친은 그의 부친이 어디에 봉해졌고, 어느 성씨인지 전하지 않는다.
공은 홍무(洪武) 2년 기유년(己酉年, 1369, 고려 공민왕 18) 생으로 인덕이 순수하고 품행이 고결하여 고장에서 큰 추앙을 받았다. 영락(永樂) 갑오년(甲午年, 1414, 태종 14)에 관찰사 배환(裴桓)이 천거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에 특별히 제수되고 이어서 고성 현령에 제수되니, 치적이 여러 고을 중 으뜸이었다.
세종조에 또 의성 교수(義城敎授)가 되었지만, 어버이가 연로하다는 것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고 영천(榮川)에서 병산(屛山)의 북쪽 후촌리(後村里)로 이사하니, 자손들이 이에 대대로 그곳에 살았다고 한다.
배위는 풍양 조씨(豐壤趙氏)로 생원(生員) 조석린(趙錫麟)의 따님이니, 묘소는 공과 쌍분雙墳하였다. 아들은 부사정(副司正) 세로(世老)이고, 손자는 경차관(敬差官) 유지(有智)와 직장(直長) 수지(守智)이다.
수지의 아들은 제용감 참봉(濟用監參奉) 세번(世藩)이다.
세번의 아들은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 덕린(德隣)이다.
덕린의 아들은 유인有仁이니 학행이 있고 호가 위애(渭厓)이며, 도사(都師) 경인(景仁)과 판관(判官) 극인(克仁)이다.
유인의 아들은 기업(基業)‧희업(煕業)‧휘업(徽業)‧진업(振業)이다. 그 이하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고향에서 살 때는 덕망이 높았고 / 居鄕有德
고을을 다스릴 때는 치적이 있었네 / 莅縣有績
이런 까닭으로 훌륭한 명성이 / 是以令聞
백 대가 지나도 어제와 같았네 / 百世如昨
봉분을 세우니 / 有封若堂
봉성산의 기슭이라네 / 鳳城之麓
이에 내가 묘갈명을 지어 / 我庸銘之
나무꾼과 목동의 출입을 금지하네 / 呵禁樵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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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固城縣令 歸齋金公墓碣銘[幷序]
國家太宗朝固城縣令 歸齋金公卒于宣德乙 卯、其葬在比安縣北鳳城山負兌之原。今距五百 餘歲之遠、家世滄桑舊無表隧之石、可慨也。其裔 孫聲慤等爲是之恨、將伐石而豎墓、使其族人基魯汝誠謁銘於不佞、自顧耄荒何足以堪是寄、竊 感其追遠之誠篤、遂不辭而敍之曰:公諱觚、字國憲、歸齋其號也。金氏之系出咸昌者、以德原君宗 悌爲始祖。是生諱鈞、監察御史。是生諱䘵、文 司宰 主簿。至三世有諱鏡高、少府寺丞。是生諱鏑、國學 祭酒、寶文學士、於公爲五世也。高祖諱中正、成均 祭酒。曾祖諱龜 門、下評理兼上護軍。祖諱重器、門 下評理 判典工寺事。考諱天降、中訓大夫 司宰監。 妣某封某氏不傳。公以洪武二年己酉生。德器醇 深、行誼高潔、大爲鄕里所推重。永樂甲午以觀察使斐桓薦特拜中書舍人、尋除固城縣令。治績爲 列郡最。世宗朝又爲義城敎授、以親老辭不就、 自榮川移卜于屛山之北、後村里子孫仍世居云。 配豐壤趙氏生員錫麟女。墓與公雙墳。子世老、副 司正。孫男有智敬、差官。守智、直長。直長子世藩、濟 用監參奉。參奉子德隣、司宰監僉正。僉正子有仁、 有學行、號渭厓。景仁 都事。克仁 判官。有仁子基業。 熙業。徽業。振業。以下多不盡錄。銘曰: 居鄕有德、莅縣有績。是以令聞、百世如昨。有封若 堂、鳳城之麓。我庸銘之、呵禁樵牧。<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