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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지리산 남부능선의 삼신봉 (07. 6. 10)
*청학동-삼신봉-내삼신봉-송정굴-쇠통바위-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
*산행시작~종료시간 ; 09시 54분 ~ 4시 45분
*총 산행시간 ; 6시간 51분 = 산행 4시간 31분 + 정지 2시간 20분
*GPS 실거리 약 13.6 km (도상거리 약 11.6 km)
◎ <일시> 2007. 6. 10.(일) 대체로 맑음
◎ <인원> 43명
◎ <산행 코스 및 주요지점 통과시간... ( )안은 구간별로 휴식 제외한 소요시간>
(出)- 주차장 (09*54)
(11분)- 탐방안내소 <↑삼신봉 2.5 ↑세석대피소 10>
(33분)- 삼신천 <↑삼신봉 0.8 / ↓청학동 1.7>
(10분)- 갓걸이재(능선 안부4거리)에서 좌 <←세석대피소 8 / ↓청학동 2>
(9분)- 삼신봉 아래 3거리 <청학동 2.5 / 세석대피소 7.5 / 쌍계사 8.9>
(2분)- 삼신봉(1284m.. 지형도에는 1289m) (11*11~) - BACK
(2분)- 삼신봉 아래 3거리
(19분)- 내삼신봉(三神山頂 △1354.7m) (11*43~)
(10분)- 1335.8봉(지능선분기점 Y")에서 우
(1분)- 송정굴 (12*12~53..중식)
(20분)- 쇠통바위
(17분)- 폐헬기장(1301봉 청학봉?)
(16분)- 1162봉(능선분기점 Y")에서 우 (좌 ; 성제봉)
(4분)- 상불재(4거리)에서 우 (2*02~)
(17분)- 계곡 건너다
(14분)- 긴급통신중계기(1) <15-07>번호목
(14분)- 긴급통신중계기(2) <15-05>번호목
(8분)- 불일폭포 삼거리에서 좌
(7분)- 불일폭포 전망대 (3*22~) - BACK
(7분)- 불일폭포 삼거리
(2분)- 봉명산방, 불일평전
(12분)- 환학대
(13분)- 국사암 입구 삼거리
(8분)- 쌍계사 대웅전 (4*25~)
(6분)- 탐방지원센터 안내소
(3분)- 문화재관람료 요금소
(6분)- 쌍계사 주차장 (4*45)
◎ <산행지 소개>
.삼신봉은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대로서 참다운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악양으로 흘러내린 형제봉 능선과 멀리 남해 바다의 일망무제, 탁 트인 전경을 선사해준다. 특히 인적 드문 비경의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를, 서쪽으로 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이 있어 교통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상형을 찾아 헤매면서 유독 이 일대를 중심으로 입산, 은거했다는 점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 내삼신봉으로 세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통칭 삼신봉은 1.284봉(지형도에는 1289m)을 대표해 부른다. 이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으며, 세석에서 10 km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삼신봉을 기점으로 해 남부능선 코스는 내삼신봉을 거쳐 멀리 성제봉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남부능선 전체의 구간으로 세석에서 근 일백여리에 가까운 장대한 능선으로 주릉에 버금간다.
◎ <산행 길잡이>
* 가는 길 ; 화원나들목(07*07)-거창휴게소(07*39~08*15)-단성 나들목(09*04)-나들목 나오자마자 우회전 20번 도로 진행-59번 갈림길에서 직진(↑-)(09*17)-1047번 도로로 좌회전(←|)(09*28)-예치터널 지나 내대교 지나자마자 송화가든에서 좌회전-삼신봉터널(09*36)-고운동 갈림길(T")에서 우회전(09*38)-청학동 방면으로 좌회전("Y)-하동, 진주 갈림길에서 청학동으로 우회전(|→)(09*41)-삼성궁 갈림길에서 도인촌 방면으로 우회전(Y")(09*46)-청뫼향식당 앞에서 좌회전하면 주차장(09*48)
* 주차장 ~ 탐방안내소
.삼신봉터널이 생긴 이후 청학동으로 가는 길이 훨씬 편해진 것 간다. 삼신봉터널을 지나고 청학동 이정표 따라가다가 도인촌 방면으로 가면 청뫼향식당 앞에서 좌회전하면 주차장이고 직진하면 삼신봉 가는 길이다. 우선 주차장에서 버스를 멈추고 일행이 준비운동을 하는 동안 먼저 호산자님과 길을 나선다. (09*54 出)
청뫼향식당을 좌로 둔채 아스팔트 길 따라가면 청학서당을 지나 (10*00) 청학동버스정류소를 지나 탐방안내소에 이른다. (10*05~07) <00-01>번호목과 <↑삼신봉 2.5 ↑세석대피소 10>이정표와 <삼신산> 표석이 있다.
* 탐방안내소 ~ 삼신천 ~ 갓걸이재
.공단여직원의 따뜻한 인사를 듣고는 인적사항을 기재한 후 산죽이 섞인 돌길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면 우측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지류를 두 번 건넌 후 우측에 <탐방로 아님> 푯말을 지나 (↑-) (10*13) <지리 14-01>번호목을 지나 (10*15) 다시 우측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지류를 건너 (10*21) 너덜지대를 건너면 (10*31) 작은 나무다리를 지나 <지리 14-03>번호목을 지나면 조그마한 터 나무아래 샘터가 있다. 삼신천이다. (10*40~48) <↑삼신봉 0.8 / ↓청학동 1.7>
샘터를 지나 나무통계단을 오르면 갓걸이재(능선 안부4거리)에 이른다. (10*58) <←세석대피소 8 / ↓청학동 2> (우측 외삼신봉 / 직진 下는 거림) 좌측으로 진행한다.
* 갓걸이재 ~ 삼신봉
.완만하게 서서히 오르는 등로는 <14-04>번호목을 지나 우측 희미한(?) 갈림길(↑-)을 지나 (11*03) 서서히 삼신봉의 암봉이 보이면서 좌측으로 전망이 보이더니 삼신봉 아래 삼거리에 이른다. (11*07~09) <↓청학동 2.5 / →세석대피소 7.5 / ←쌍계사 8.9>
우측으로 바윗길을 잠시 오르면 암봉으로 된 삼신봉에 이른다. (11*11~20) 바위터로 이루어져 있어 주변 조망은 좋다. <三神峰 1284m> 라고 새긴 정상석과 산제를 지내는 제단, 지리산경관해설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현 지형도에는 1289m로 되어있다.
세석에서 뻗어내려 온 남부능선의 위용이 바라보이면서 저멀리 촛대봉과 반야봉이 바라보이지만 천왕봉은 구름에 덮여있어 보이질 않는다. 날씨만 좋다면 과히 남쪽에서 바라보는 지리조망이 환상적일 것 같다.
* 삼신봉 ~ 내삼신봉(삼신산정)
.삼신봉 아래 3거리로 되내려와 (11*22~24) 쌍계사 방면으로 가자마자 우측에 나무울타리(폐쇄된 등로인 듯)를 지나 완만한 산죽 길을 따라 가면 <15-17>번호목이 있는 바위 좌측으로 지나가면 조그마한 공터를 지나 다시 바위 좌측으로 지나가면 (11*34) 우측에 산죽 갈림길(?)을 지나고 (11*40) <15-16>번호목을 지나자마자 두 개의 바위 사이(석문)를 올라가면 암봉으로 이루어진 내삼신봉이다. (11*43~12*01)
삼각점(△1354.7m)과 <三神山頂 1354.7m> 정상석이 있다. 조망은 삼신봉과 다를 바 없이 좋다. 비교적 넉넉한 바위터로 되어있다.
* 내삼신봉 ~ 지능선분기점(Y") ~ 송정굴
.정상석 건너편에 밧줄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바위틈새 사이로 내려가는 밧줄구간을 내려가면 완만한 숲길이 이어지면서 <15-15>번호목을 지나면서 (12*09) 잠시 오르자 1335.8봉 지능선분기점(Y")에 이르는데 (12*11) 좌측에는 밧줄에 걸려있는 <←탐방로→>푯말이 있으며 우측으로 내려가면 이내 커다란 암봉 아래 굴이 있다. 송정굴이다. (12*12~53..중식) 조선 중기 학자였던 송정 하수일 선생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피난을 했다고 하여 '송정굴' 이라고 한다. 길이 20여m, 폭 10여m, 높이 1.5∼2m의 다소 널찍한 앞뒤가 뚫린 굴이다.
* 송정굴 ~ 쇠통바위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바위암봉을 좌우로 우회하듯 피해 지나가면 <15-14>번호목을 지나면서 (1*01) 숲길이 이어지면서 잠시 내려가는 듯 하더니 완만한 길이 이어지다가 점차 오르는 길이 이어지는 도중에 우측에 산죽으로 덮인 나무울타리(지능선 분기점, 폐쇄된 등로인 듯)를 지나니 (1*07) 커다란 암봉(쇠통바위) 직전에 이정표가 있다. <↑쌍계사 6.5 상불재 2.5 / ↓세석대피소 10.0 삼신봉 2.5>
암봉을 직등 하려하니 만만치 않자 바위 우측으로 돌아가니 두 개의 바위가 서로 기대어 있는 듯 그 틈새(굴)를 올라가니 암봉 위에 열쇠구멍을 닳은 구멍이 있는 또 하나의 기암이 얹혀있으니... 이게 쇠통바위임을 알 수 있다. (1*13~21)
열쇠구멍처럼 바위굴이 관통되어 있는 등 이 거대한 바위의 모습이 쇠통(자물통)처럼 생겼다고 하여 '쇠통바위'라고 한다. 청학동의 학동마을에 있는 열쇠 모양의 바위로 이 쇠통바위를 열면 천지가 개벽하고 새로운 천국이 열린다고 한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청학동 일대의 조망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인간이란 존재는 위대하지만 또한 나약한 존재일까 ? 이상향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이 바위에도 묻혀있구나...
* 청학동이란 ?
.<청학(靑鶴)은 중국의 문헌에 나오는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고 또 운다"는 전설의 새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청학동이라 불렀다. 일찍이 <정감록>에서는 "진주 서쪽 100리, (중략) 석문을 거쳐 물 속 동굴을 십리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하였으며, 이를 본 고려시대의 이인로, 조선시대의 김종직과 김일손, 유성룡의 형인 유운용 등이 청학동을 찾아 나선 바 있다.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고 엎드려 수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청학이 그 곳에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 아마도 옛날 세상에서 숨은 사람이 살던 곳으로 무너진 담장이 아직도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 라고 하였으나 청학동을 끝내 찾지 못하였다고 고백하였고, 김종직은 피아골을,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운용은 세석 고원을 청학동이라고 짚어 보긴 했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하였다. 현재 지리산에 청학동이라고 불리는 곳은 현재의 청학동 말고도 여러 군데가 있다. 불일폭포 부근, 세석고원, 청학이골(악양면 등촌리 위쪽), 상덕평 마을(선비샘 아래) 등이다. 말하자면 지리산 곳곳이 청학동인 셈이다.> -인용한 글-
* 쇠통바위 ~ 폐헬기장
.쇠통바위를 내려와 암봉 옆에 <15-13>번호목을 지나 우측 희미한(?) 갈림길(↑-)을 지나 (1*29) <15-12>번호목을 지나면서부터 (1*32) 오름길이 시작되더니 조그마한 공터 봉우리(Y")(폐헬기장 1301봉 청학봉?)에 이른다. (1*38~42) <세석대피소 10.7 삼신봉 3.2 / 쌍계사 5.8>
좌측에는 밧줄로 길 아님을 표시한 듯 한데 아마 그쪽으로 가야 독바위를 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쉽게 길이 눈에 띄지 않아 우측으로 등로 따라 간다.
* 지리산 독바위
.지리산에는 세 개의 독바위가 있다. 노장대라고도 불리는 함양 독바위, 쑥밭재~새봉 부근의 산청(혹은 진주)독바위, 그리고 이곳 하동 독바위 !
이 하동 독바위만 올라가면 지리 독바위는 접수 완료되는데 왠지 그냥 지나치려니 찜찜하기도 한데 등로는 계속 내려만 가니 이거 독바위 구경도 못하는 거 아닌가 싶더니 조그마한 바위에 이르러 (1*48) 비로소 뒤돌아 공터봉우리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형상의 독바위가 보인다.
아~~ 결국 접수는 못하고 바라만 보게 되는구나. 줌으로 땡겨보지만 그리 신통치 않게 나오네..
* 1162봉(능선분기점 Y") ~ 상불재(4거리)
.<15-11>번호목을 지나면서도 (1*51) 내리막길은 계속 되어가다가 산죽 길을 지나면서 점차 완만하게 포근한 길이 이어지면서 1162봉(능선분기점 Y")에 이른다. (1*58) 좌측 산죽으로 덮인 길은 성제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이며 우측으로 가면 곧 <15-10>번호목을 지나면 (2*01) 이내 상불재(4거리)이다. (2*02~15) <↱불일폭포 3.1 / ←삼성궁 2.3 / ↓삼신봉 4.1>
언뜻 3거리 같아 보이지만 좌측 삼성궁 가는 길과 직진하는 등로(탐방로 아님..지능선 분기점)와 직진하자마자 우측으로 쌍계사 가는 길이 있다.
* 계곡을 건너고..
.직진하자마자 우측으로 돌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산죽길이 나타나더니 다시 돌길이 나타나면서 계곡에 이르게 되자 곧 계곡을 건너면 (2*32) 이정표가 있다. <↓삼신봉 4.8 / →쌍계사 4.1>
산죽을 따라 가면 우측으로 계곡에서 작은 폭포가 보이더니 다시 계곡을 건너자 (2*38) <15-08>번호목을 지나면 곧 우측으로 지능선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 내려가면 작은 소지류를 건너자 넓은 공터를 이룬 낙엽송지대에서 잠시 쉬었다간다. (2*41~48)
* 불일폭포
.왼쪽으로 쌍계계곡을 발아래 멀리 둔 채 진행하면 긴급통신중계기(1)와 <15-07>번호목을 지나면서 (2*53) 점차 계곡에 접근하더니 나무통다리를 지나면서 (2*55) 다시 계곡과 멀어지고 소지류를 건너 <15-06>번호목을 지나는데 (3*00) 완전히 내려가는 구간이 아니라 산사면으로 진행하듯 비스듬히 진행하게 되고 긴급통신중계기(2) <15-05>번호목을 지나 (3*07) <탐방로 아님> 우측 갈림길(↑-)을 지나 (3*11) 내려가니 나무울타리를 나오면 불일폭포 삼거리이다. (3*15) <←불일폭포 0.3 / ↓삼신봉 6.9 / →쌍계사 2.1> <15-04>번호목
다리, 안전시설 등이 설치된 등로를 따라 올라가면 좌측 위로 불일암이 있으며 잠시 내려가면 불일폭포 전망대에 이른다. (3*22~28)
<불일폭포(佛日瀑布) ; '지리십경' 중 제7경이다.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 남한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폭포이며 높이가 60m에 달한다.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과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절벽에서 흘러내리는 불일폭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중간의 학연에서 돌려 다시 쏟아져 내린다. 높이 60m, 폭 3m의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거폭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있는 폭포이며,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연중 단수의 고갈은 없다. 폭포 밑에는 용추못과 학못이 있어 깊은 자연의 신비를 안겨주기도 한다.
불일폭포는 고려 희종때 보조국사 지눌이 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한 후 왕이 내린 '불일시조'라는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폭포자체도 장관이지만 폭포 뒷편 협곡에 재미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변규화옹과 최화수님의 말을 인용해 보면 "불일폭포 뒷편 협곡에는 일반인이 도저히 못가는 험난한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협곡에 내려가 보면 번잡한 세상과 단절된 별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불일폭포 아래에 또 다른 폭포가 걸려있습니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폭포가 20미터 높이로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 '겹용소'(옛 문헌에는 '학연(鶴淵)'으로 기록)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의 큰 용소 바깥에 또 하나의 용소가 겹으로 이뤄져 있어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참으로 신통한 모양의 '겹용소'입니다. 저쪽 안쪽 용소 깊은 곳에 여기서 가야산까지 통하는 터널이 있고, 그게 최치원선생이 신선이 되어 두 산을 오가는 길이라고 전해옵니다. 내가 몇 차례나 그 터널을 찾아보려고 시도했지만, 워낙 깊고 안쪽 용소로의 접근이 어려워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속에 신선세계가 있다는 것인가? 이곳에서 '三神洞(삼신동)'이라 새겨진 돌이 발견됐다고도 한다.
* 봉명산방.. 불일평전
.불일폭포 삼거리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불일암(작은 암자)을 잠시 들렀다가(3*31~34) 불일폭포 삼거리로 와서는 (3*38) 이내 봉명산방(鳳鳴山房)휴게소(불일평전)에 이른다. (3*40~52)
'봉명산방(鳳鳴山房)'은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이곳을 찾아 붙여준 이름으로 고려말 학자 이첨이 지리산을 찾아와 지은 시에 '산 중의 산'이라 하여 '봉황명(鳳凰鳴)'이라 쓴 구절이 있다. 거기서 따와 '깨달음의 완성'이란 뜻으로 '봉명산방'이란 이름을 지었다. 앞뜰에는 한반도의 모양을 닮은 반도지(半島池)라는 작은 연못이 있고, 샘터 위로는 소망탑이라는 돌탑群이 있다. 이곳 주인인 변규화씨(07. 6. 12 타계하셨다고 합니다.)가 이곳에 자리 잡고 한반도 모습의 반도지를 만들고, 집 뒤편 언덕에 여러 개의 석탑群인 소망탑(素望塔)을 10여년 동안 쌓았다고 한다.
* 환학대
.봉명산방 주변에는 넓은 정원처럼 꾸민 듯한 쉼터가 있으며 돌길을 지나 소지류를 건너가면 <15-03>번호목과 목교(1)를 지나 (3*59) 환학대(바위)에 이른다. (4*04) <↓세석대피소 15.3 불일폭포 1.2 / ↑쌍계사 1.2> 최치원이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최치원이 이곳에서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진감선사대공탑비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 쌍계사
.돌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15-02>번호목이 있는 목교(2)를 건너 (4*08) 소지류를 다시 건너 목교(3)를 건너 (4*13) <15-0>번호목을 지나자마자 국사암 입구 삼거리에 이른다. (4*17) <국사암 해발 250m ; 국사암 0.2 / 불일폭포 2.0 / 쌍계사 0.4>
왼쪽으로 가면 금당, 팔상전 입구에 이르면서 (4*22) <↓국사암 0.5 불일폭포 2.3 삼신봉 8.8> 좌측으로 쌍계사 경내로 들어가면서 대웅전에 이른다. (4*25~30)
쌍계사를 빠져나오면 탐방지원센타 안내소를 지나 (4*36) 포장길을 따라 문화재관람 요금소를 지나 (4*39) 다리를 건너면 용강삼거리에 있는 주차장에 이른다. (4*45)
* 쌍계사(雙磎寺) ;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다.
◎ <산행 사진>
▼ 청뫼향식당 앞에서 좌회전하면 주차장이고 직진하면 삼신봉 가는 길
▼ 주차장
▼ 삼신봉 가는 길
▼ 탐방안내소
▼ 탐방안내소 <삼신산 표석>
▼ 조그마한 터 나무아래 샘터가 있다. 삼신천
▼ 삼신봉의 암봉이 보이면서...
▼ 삼신봉 오르는 바위길
▼ 삼신봉
▼ 삼신봉에서 바라 본 지리 주능선
▼ 삼신봉에서 바라 본 남부능선
▼ 두 개의 바위 사이(석문)를 올라가면 암봉으로 이루어진 내삼신봉이다.
▼ 내삼신봉
▼ 바위틈새 사이로 내려가는 밧줄구간을 내려간다
▼ 송정굴
▼ 두 개의 바위가 서로 기대어 있는 듯 그 틈새(굴)를 올라가니..
암봉 위에 열쇠구멍을 닳은 구멍이 있는 또 하나의 기암... 쇠통바위
▼ 암봉 위에 열쇠구멍을 닳은 구멍이 있는 또 하나의 기암
▼ 쇠통바위에서 바라 본 청학동
▼ 뒤돌아 본 하동 독바위
▼ 불일폭포 전망대와 불일폭포
▼ 불일암
▼ 봉명산방.. 불일평전
▼ 봉명산방 앞뜰에는 한반도의 모양을 닮은 반도지(半島池) 작은 연못
▼ 언덕에 여러 개의 석탑群인 소망탑(素望塔)
▼ 환학대
▼ 쌍계사 대웅전
▼ 주차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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