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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너무 자주 봐서 살짝 질리는 책 추천 시간입니다.
네, 저는 질려도 작품은 안 질릴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감상을 쓰고 있죠. 저는 늘 보는 녀석이지만 작품은 언제나 새롭잖아요?
도서명: 은수의 레퀴엠
저자: 나카야마 시치리
* 이 소설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3번 추리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을 이어폰으로 듣고 ‘드디어!’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던 시리즈물 3편이 나왔으니 당연하다. 그 이름하여 ‘은수의 레퀴엠’, 흔히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라고 불리는 작품의 3번째 책이다.
여기서 ‘은수’라는 단어가 좀 생소하다. 사람 이름 같은 이 단어를 풀이하면 이렇다. ‘은혜 은’과 ‘원수 수’, 즉 은혜와 원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10년 전의 원한과 25여 년 전의 은혜가 교차하는 레퀴엠!
소설은 처음부터 충격으로 시작한다. 일본으로 향하던 한국 국적의 배 블루오션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전복된 것이다. 침몰 과정에서 한 남자가 한 여성의 구명조끼를 무력으로 빼앗아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장면이 한 승객의 휴대폰 영상으로 공개되어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블루오션호의 침몰, 251명 사망, 실종자는 57명,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 장면이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과적, 긴급 상황에서의 선원들의 대응, 이런저런 참사의 모습에서 지난 사고가 떠오른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가 이 이야기를 세월호 사건 이전부터 구상했는지, 아니면 그 이후에 구상한 건지, 그도 아니면 세월호와는 무관하게 영화 타이타닉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실감나는 상황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여하튼 경찰은 남자를 폭행죄로 체포, 검찰에 송치하지만 그의 변호사는 ‘긴급 피난’을 명목 삼아 무죄를 주장한다. 결국 남자는 법정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개된다.
“어디까지나 자네가 생각하는 이익이지. 당사자가 원하는 건 아니야.”
미코시바 레이지는 뛰어난 능력과 그만큼의 악명을 갖춘 이중적인 변호사이다. 일단 범죄자를 최소 집행유-예, 최대 무죄로 만드는 실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승부사 기질과 논리적이고 치밀하며 화려한 언변까지 정말 머리 하나는 끝내준다. 한편 악명으로 따지자면 경찰과 검찰뿐 아니라 의뢰인에게까지 두루 얻어먹고 있는 실정이다. 검경에게는 범인을 기껏 잡아다 법정에 세웠더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게 만들어서 그렇고, 의뢰인에게는 만족스러운 성과만큼 비싼 수임료를 청구해서 그렇다.
하지만 최근 미코시바는 나름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 지난번에 맡은 사건으로 그의 과거가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코시바 레이지, 그는 과거 ‘시체 배달부’라는 이명을 얻었던 소년 범죄자였다.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를 토막살해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그런 사실이 밝혀지며 변호사 일에도 제법 차질이 생겼다. 그래도 범죄 집단에게는 신용을 유지하는 모양인지 ‘고류회’라는 조직의 사건을 맡고, 그에 더해 고문 변호사 제안을 받기도 한다. 그 고류회의 변호를 처리하고 온 미코시바, 그는 우연히 본 신문에서 뜻밖의 기사를 접한다.
백띾원 요양병원에서 입소자와 보호사가 서로 다투다가 입소자가 보호사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내용만 보면 흔한 일이다 싶지만 문제는 그 사건을 일으킨 피의자가 다름 아닌 이나미 다케오라는 사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5여 년 전 소년원 시절, 그에게 삶의 규범과 지침과 속죄에 대해 가르쳐준 그 교관 이나미 말이다.
그는 단박에 백락원 요양병원 사건을 맡으려 하지만 이나미에게는 이미 전직 검사 출신의 쓰루가 마키오 국선 변호사가 배정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미코시바의 악명이 유명무실하다. 그는 비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까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이나미의 변론을 맡는다. 그러나 피의자는 범행을 인정하고 죗값을 받겠다고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는데..... 살인 동기와 기회, 범행 방법, 심지어 자백까지 모든 요건이 갖춰진 상황에서 미코시바는 25여 년 전의, 또 현재까지의 그의 은인, 이나미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야기 초반에 등장했던, 10년 전의 블루오션호 침몰 사건의 남자는 어떤 식으로 재판에 엮이게 될까? 과연 이나미와 남자는 어떤 식으로 엮여 있는 걸까?
‘은’과 ‘수’를 동시에 쥔 존재, 인간!
“자네는 자네 일을 하게. 다만 내 마음은 그것과는 별개라는 뜻이야. 죄인과 변호사가 한 몸이 되어 싸우는 건 억울한 무죄 사건, 그리고 양형이 지나치게 무거울 때.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겠나?”
이 책 ‘은수의 레퀴엠’은 ‘속죄의 소나타’와 ‘추억의 야상곡’에 이은 미코시바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주요한 테마는 모름직이 ‘속죄’와 ‘책임’이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미코시바 레이지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와 그가 맡은 사건을 통해 3편의 시리즈 내내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저지른 범죄에 비해 그 책임이 가벼워지는 소년범죄를 다룬 1편 ‘속죄의 소나타’, 직시하기 힘든 실상이더라도 마주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진실의 무게를 다룬 2편 ‘추억의 야상곡’, 그리고 심판받지 않는 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게 되는 책임을 담은 3 편까지 정말 꾸준하게 본래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런 한편으로 다양한 사건을 구상함으로써 그 변주된 이야기를 통해 같은 주제를 질리지 않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테마는 3번째 시리즈인 ‘은수의 레퀴엠’을 통해 절정을 찍은 것 같다. 이번 작품의 피고인 이나미 역시 전작들의 피고인처럼 진실의 일부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전작들의 피고인과는 달리 숨기고자 하는 그 행동이 마냥 수상쩍은 뉘앙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피의자가 감추려 하는 진실을 끝까지 캐내는 미코시바의 집념도 참 대단하다. 그와 더불어 끝까지 자신에게는 살의가 있었음을 말하며 정당한 처벌을 받으려 하는 이나미 또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도지마를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 그가 학대한 사람이 오래 전 이나미의 아들이 목숨을 바쳐 구한 고토 세이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나미가 백락원 요양병원을 선택한 까닭이 그의 아들 다카시가 구한 생명이 그곳에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나미를 보고 있으려니, 공자의 제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 ‘증자’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그가 임종을 앞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삿자리에 얽힌 심오한 사건이다.
자세한 이야기 해설은 너무 기니까 생략하고, 요점만 콕 말하자면, 증자는 제자와 아들 앞에서 말한다. “나는 다만 바르게 죽고 싶다는 소망, 이 한 가지뿐”이라고 말이다. 당시 읽은 내용에 의하면, 그가 깔고 누운 삿자리가 대부에게 하사받은 것이었다. 목숨줄이 간당간당하는 그 순간에 비록 선물을 받은 것일지언정, 자신의 지위에 걸맞지 않으니 당장 교체하라는 웃긴 내용이었다.
내용은 코믹인데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여태 예를 지키며 살아온 삶, 자신이 관철하고 고수한 소신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뜻이니까. 잘 죽게 해달라는 증자의 말이 이나미가 했던 속죄하게 해달라는 말로 들리는 건 무슨 영문일까? 그것은 아마 그들의 행동이 묘하게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지려고 하는 그 행동 말이다.
“악인들만을 보아 온 인간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구제받지 못하는 게 얼마나 잔인한지를. 처벌받지 못하는 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만약 사건이 이나미의 의협심에서 끝났다면,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에게 ‘반전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거기서 끝났어도 속죄나 한 인간이 삶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를 어필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의 끝에 ‘오가사와라 사카에’라는 노부인을 심어두었다. 그 인물은 10년 전 블루오션호 침몰에 더욱 견고한 연결고리가 된다.
사건과 관계된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재판의 향방은 요양병원 내의 갈등과 그로 인한 살인에서 긴급 피난으로 그 쟁점이 옮겨간다. 바로 10년 전, 블루오션호 사건에서 나왔던 문제의 그 쟁점 말이다. 그에 더해 백락원 요양병원의 보호사, 살해당한 피해자가 10년 전에 긴급 피난이 적용되어 법정에서 벗어난, 가녀린 여성 히우라 가오리의 구명조끼를 탈취해 살아남은 남자, 도지마 마모루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덧붙여 백락원 요양병원에서 벌어진 상습 학대와 일상적인 폭행, 극단이 극단이 아니게 된 상황도 함께 드러난다.
미코시바 레이지는 이 특수한 실태를 제시하며 이나미 다케오의 사건에도 10년 전 도지마 사건과 똑같이 ‘긴급 피난’을 적용시켜 변론한다. 재단이 운영하는 요양병원, 내부 고발이니 뭐니, 학대 신고를 한다 해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되는 현실, 오히려 그로 인해 생애 마지막 보금자리마저 잃게 생긴 실상, 그런 환경에 놓인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타인을 지키기 위해, 학대와 폭행의 주범자를 살해한 상황. 그것으로 긴급 피난이 성립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법에도 ‘심판을 받지 않는 죄’의 경우가 몇 가지 있는 걸로 안다. 대표적으로 심신 상실, 특히 알코올에 의한 심신 상실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진짜 웃기지도 않는 경우라고 본다. 술을 마셨다고 운전대 잡고 달리다가 사람 치여서 하늘로 보낸 게 과실치사 같은 걸로 얼버무려진단 말인가? 운전대 잡을 정신이 있었으면 사고력 충분한 거다. 그 경우라면 미필적고위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지마 마모루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살기 위해 여성이 죽을 확률이 높다는 상황을 외면하고 구명조끼를 빼앗아 살아남았다. 그건 폭행이 가미된 과잉피난일까, 아니면 그저 살고자 했던 몸부림일까.
긴급 피난 매뉴얼을 보면 최우선으로 챙겨야 할 대상이 나온다.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여성, 소위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블루오션호와 같은 위기에, 인솔할 누군가도 없이 그런 일련의 지침이 잘 지켜질지 의문이긴 하다. 그러니 도지마의 태도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가 인간적으로 저질인 이유는, 그렇게 살아남았으면서, 그 행위를 바탕으로 약자를 학대했기 때문이다. 속죄도 그 개념을 인식한 이들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는 뻔뻔한 인간이 왕왕 있고 도지마 마모루도 그런 작자였다. 죽어도 싼 놈이지만, 그렇다 해서 이나미의 행위가 타당하다 할 수도 없다. 적어도 법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만약에 10년 전, 도지마가 법정에 섰을 때, 일말이라도 히우라 가오리를 사지로 몰아넣은 책임을 졌더라면, 이후의 그가 자행한 상습적인 노인 학대는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악인은 방종, 책임을 지지 않는 행위에서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선량한 노부인이 망가졌고, 한 사람은 살인의 죄를 짊어져야 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물론 찬동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나미의 입장에서는 좋은 결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코시바에게는 안된 일이나, 이나미 다케오는 끝가지 자기 신념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멋진 캐릭터, 한편으로는 안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오가사와라 사카에 부인도 똑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은과 원을 동시에 지닌 존재인 것 같다. 미코시바 역시 누구에게는 좋은 아저씨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인자니 말이다. 과연 어떤 법이 온당한 심판을, 온당한 속죄를 지게 할 수 있을까? 애초에 법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정의의 상한선 아닌가. 그러니 불완전하고, 그렇기에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사카에 부인을 처벌할 수 없고 이나미를 구제할 수도 없다. 도지마의 범죄를 방임함으로써 더 큰 상처를 남겼다. 법이란 건 죄를 처벌하는 도구가 될지언정 벌은 되지 않고, 속죄의 수단이 될지언정 죄를 사해주지는 못한다. 어쩌면 그 기능을 하는 건 인간이 아닐까 한다. 미코시바를 갱생시킨 건 법이 아니라 이나미라는 한 사람이었으니까.
이쯤에서 ‘은수의 레퀴엠’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우선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전매 특허가 되어버린 서로 다른 작품 속 캐릭터들의 등장이다. 와타세 경감도 살짝 보이고 비록 이름일 뿐이지만 미쓰자키 교수도 나온다. 숨은 까메오들 찾기도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또한 무슨 사건에서나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미코시바가 동요하며 불나방처럼 사전조사 없이 사건을 맡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라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그가 좀 인간답게 보이지 않는가.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정을 붙이기 어려운 미코시바 변호사의 사람다운 모습과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 듯한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음악이 등장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언제나 끝을 알 수 없고, 결말을 예상할 수 없을뿐더러, 은혜와 원수를 일컫는 은수와 진혼곡 레퀴엠(Requiem)이 만나 속죄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작품. 비록 독서를 하다 그 끝이 예상 가능한 결말임을 눈치챘더라도 그 결말을 향해 미코시바 변호사와 함께 수사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즐길 요소가 된다.
그러나 너무 억지스러울 정도로 연결시킨 느낌도 있었다. 처음 구명조끼 탈취사건도 또렷하게 살아 있는 여성이 아니라, 죽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었거나 크게 부상을 입은 여성의 구명조끼를 뺏어 입는 것으로 했으면 ‘긴급 피난’으로 인한 무죄판결이 적용된 예시로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거나 이거나 일단 살아 있는 사람을 죽게 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세월호의 비극을 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나라에게는 더욱 의미가 크지 않을까. 물론 정치적 의미 말고 순수한 인간적인 부분에서 말이다. 더불어 ‘법’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가사와라 부인의 말을 되새기며 감상을 마무리하겠다.
“죄도 벌도 그에 걸맞은 사람에게 걸맞은 형태로 주어져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