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은 아들에게 낚싯줄에 추를 매달고 바늘을 묶어서 미끼 끼우는 방법을 가르친다. 낚시를 물에 떨구는 요령이나 밑밥을 뿌려 고기를 불러모으는 일까지 세세히 시범을 보인다.
물이 맑아 물 속 바닥까지 훤하게 보인다. 어룽거리는 수면에서 울렁대는 찌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몹시 어지럽다. 파도가 콘크리트 삼발이 사이로 철퍼덕 밀려들었다가 이내 쪼르륵 빠져나간다. 그 소리가 주변을 몹시 산만하게 만든다. 남편과 아들은 연달아 망상어를 낚아 올렸으나 나는 아직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오후가 되어 바윗돌 그늘이 길어지자 작은 게들이 바위틈으로 올라와 살금살금 기어다닌다. 돌 위에서 일광욕을 하듯 입에 보글보글 거품을 내뿜고 있던 게는 신중한 내 손놀림을 피해 재빨리 돌 틈으로 숨어버린다. 나는 신발을 벗어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오랫동안 게 잡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삼발이 틈새로 소리치던 괴상한 물소리와 시선을 어지럽히던 얼룩덜룩한 수면, 미끼를 물지 않던 물고기에 대한 지루함까지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들이 게를 잡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냐며 다가온다. 낚시와 다름없지 않겠냐는 내 말에 아이가 실쭉 웃는다. 제 어미가 게를 마구 잡는 행위를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게를 잡는 것이 물고기를 잡는 것과 다를 것이 뭐냐는 내 말을 아이가 되받는다. 먹으려고 잡는 것과 재미로 잡는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며 전자는 음식이고 후자는 살생이라 한다. 그런 것 같다. 생업으로 하는 어부들의 고기잡이와 레저로 하는 특정인들의 낚시는 분명히 다르다. 낚시는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취미로 즐기는 행위이다. 더 생생하게 표현하자면 고기가 낚시 바늘을 삼키고 괴로움에 버둥대는 것을 손맛이라 말하며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본능적 잔인함이다.
이렇게 본다면 뭇사람들의 낚시나 오늘 나의 게 잡는 행위는 아이의 말처럼 먹이사슬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곧 집을 떠나 대처로 나갈 아이가 세상의 이치를 그런 식으로 깨달아갔으면 하고 바래본다. 아이는 앞으로 부모 품을 벗어나 많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고기를 제대로 낚을 수 있는 기술은 세상에서 터득해야 하기에 더 넓은 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남편은 낚았던 물고기를 도로 물에 넣어주며 나를 돌아본다. 틀림없이 오늘밤 게 귀신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어서 내가 잠을 못 잘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부둣가 모텔에서 세 식구가 한 방에 나란히 누웠다. 한 달 후면 집을 떠날 아들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이라 조금 불편해도 괜찮았다. 모두가 단잠에 빠졌는데 괴기한 흐느낌에 소스라쳐 혼자 잠이 깨었다. 왼쪽에 누운 아들아이가 잠꼬대를 하나싶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에 돌아누운 남편이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주절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2.
오랜 친구와 함께 아내를 동반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열차 의자에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았는데 우연히 내려다보니 다리가 일곱 개였다. 하도 기이해서 저 쪽에 앉은 친구 다리부터 차례차례 세어보았다. 친구 다리 두 개, 아내 다리 두 개, 내 다리 두 개, 각각 두 개씩 다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 쪽에 앉은 친구의 다리가 내 몸에 하나 더 붙어있다. 내 판단에 친구 행세를 하는 얼굴도 알 수 없는 그 놈은 분명 귀신이었다. 나는 전혀 눈치를 못 챈 척 친구를 대하면서 틈만 나면 나를 찾지 못할 곳으로 사력을 다해 도망을 다녔다.
그 귀신은 다리가 하나뿐인데도 어디로 가든 계속 따라 다녔다. 내 손에 이끌려 도망치던 아내가 겁에 질러 뒤를 돌아만 봐도 어느새 쫓아와 내 몸에 다리 하나로 붙어 있다. 기겁을 하며 그 다리를 떨쳐내면 이 번엔 아내의 어깨에 팔이 되어 달려 있었다. 정말 혼비백산할 일이었다. 아무래도 아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내 친구인 척하는 그 귀신이 몹시 얄미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귀신은 연민뿐만 아니라 원망이나 미움 등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지면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는 논리적 존재였다. 내 꿈 이야기를 다 들은 아내가 게 귀신 꿈이라며 피식 웃는다. 틀림없이 아들과 셋이 한 방에 누운 것이 배경이 되었다 한다. 내가 어제 저녁에 아내에게 덤벼들 것이라 했던 게 귀신이 내게 덤벼들었다는 해괴한 꿈 해몽을 했다.
3.
아버지의 꿈 이야기를 듣고 다시 잠들었던 나는 어머니의 휴대폰 알람소리에 잠이 깨었다. 딸랑딸랑 경매 종소리 들리는 선착장의 아침바람은 상쾌하였다. 배에서 금방 내려진 고기들이 철퍼덕 물을 튀기며 팔딱댄다. 소매상들에게 낙찰되는 물고기를 구경하다 배가 하얗고 몸매가 늘씬하게 생긴 작은 상어를 처음으로 구경하였다.
해뜨기 전에 가까운 어촌에 가서 고기잡이배를 빌려 타고 아침바다에 떠올랐다. 이전부터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선장아저씨는 외발이었다. 손을 지팡이 삼아 배 난간을 짚고 한쪽 다리로 노련하게 배 안을 뛰어다닌다. 점점 어촌과 멀어지며 넓은 바다로 내닫던 배는 이윽고 선장의 양식장 부근에 멈추었다. 선장은 동력을 끄고 빨간 부표 고리에 배에서 내린 밧줄로 묶어 배를 고정시켰다. 나는 외다리 선장에게 쏠리는 연민을 떨쳐버리고 묵묵히 낚시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먼저 커다란 '놀래미'를 연달아 두 마리 낚았다. 선장은 혼자 뱃머리에 앉아 도다리만 연신 낚아 올린다. 잠시 후 어머니도 도다리를 서너 마리 낚아 올리더니 나중에는 빈 조가비에 숨은 '주꾸미'도 낚아 올렸다.
아버지는 낚싯대를 뱃전에 내려놓고 계속 미끼를 따먹히는 나와 손맛에 제법인 어머니의 낚시바늘에 갯지렁이 끼우기에 바빴다. 어머니가 아직 한 마리도 낚지 못한 내 흥미를 걱정하자 선장이 엿듣고 다가와 철책을 쥐어주었다. 아버지 것보다 추가 상당히 무거운 낚시였지만 덕분에 나도 홍도다리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선장이 흑 도다리보다 값이 두 배나 비싼 고기를 잡았다며 나를 추켜세워 주었다. 어머니가 좌.광.우.도를 설명했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선장 아저씨는 눈이 왼쪽에 붙었으면 광어이고, 오른쪽에 붙었으면 도다리라는 것은 몰라도 물고기를 눈으로 직접 보면 도다리인지 광어인지 알 수 있다 하였다. 그것은 어떤 현상을 남에게 들어서 아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 이론적 지식보다 실질적이라는 뜻이었다.
3시간에 걸친 배낚시를 끝내고 부둣가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술 한잔할 나이가 되었다며 내게 소주를 한 잔 따라주신다. 오랜만의 성인대접이었다. 여태 또래만의 세계를 쫓다보니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극히 드물었다. 이번에 함께 했던 아버지의 "논리적인 귀신"이라는 꿈 이야기는 유머로 남았다. 사실 반도체 칩의 발달 이전에 "두뇌귀신" 이야기는 이미 공상과학 소설로 붐을 이룬지 오래되었으니 격세지감이었다.
그후, 내가 집을 떠난 지 일 년만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나는 그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서 어머니께 물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지명을 짚어보니 동해안의 외진 작은 축산항구이었다. 부모님이 망망대해에 배 띄워 내게 세상살이를 가르치려했던 그 여름날을 떠올려본다. 04.08.10 - 05.08.19
첫댓글 참 행복한 가정의 그림입니다. 문단마다 화자를 바꾼 것도 창의적이고 재미있습니다.
the same fee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