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종(李衍宗)은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규정(司憲糾正)으로 옮겼으며, 〈외직으로 나가서는〉 전라도찰방(全羅道察訪)이 되었다. 임파현령(臨坡縣令) 임기정(林起貞)과 보성부사(寶城副使) 정운(鄭雲)의 탐오(貪汚)한 것을 탄핵하고 받은 뇌물을 적몰(籍沒)하자, 수령(守令) 중에는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관직을 버린 자도 있었다.
우사의(右司議)와 군부판서(軍簿判書)를 역임하고, 충정왕(忠定王) 초에는 감찰대부(監察大夫)가 되었다. 왕이 원(元) 사신 쌍가(雙哥, 셍게)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공주[忠惠公主]는 남면(南面)하여 앉고 왕은 동면(東面)하여 앉으니, 이연종은 글을 올려 그것이 비례(非禮)임을 말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참소(讒訴)하는 자가 있어 〈왕이〉 좌우사(左右司)에 〈이연종을〉 내려 문책하였는데, 이연종이 예(禮)를 인용하여 힘써 판별하고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공민왕(恭愍王)이 원에 있을 때 밀직사(密直使)로 임명하여 감찰대부(監察大夫)를 겸하게 하였다. 왕이 귀국하자 금교역(金郊驛)에 나가 맞이하였는데, 왕이 말하기를, “경(卿)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는데, 얼굴을 보니 오히려 아직 늙지 않았으니, 노력하여 나를 잘 도와주시오.”라고 하였다. 이연종이 탄핵하여 논하기를, “찬성사(贊成事) 전윤장(全允臧)이 남의 금을 받아 옥에 갇혔다가 도망쳐서 원에 들어갔으나, 지금은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고 돌아와 단계를 뛰어 3재(宰)에 임명되었는데, 다만 돈을 하사하여 끌려간 사람을 도운 공로를 갚을 수는 있어도, 재상에 발탁하여 임명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2상(相) 조익청(曹益淸)이 남의 말(馬)을 받고 또 음사(淫祀)를 행하였으므로 이들 모두 처벌할 것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왕이 원의 제도를 따라 변발(辮髮)과 호복(胡服)을 하고 궁전에 올라앉으니, 이연종이 간언(諫言)하려고 문밖에서 기다렸다. 왕이 사람을 시켜 물으니 이연종이 말하기를, “왕의 앞에 가서 얼굴을 맞대고 말씀드리기를 바라옵니다.”라고 하고 들어가니 왕이 좌우를 물리치자, 이연종이 이르기를, “변발과 호복은 선왕(先王)의 제도가 아니므로 원컨대 전하(殿下)께서는 본받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곧 변발을 풀고 옷과 이불을 하사하였다.
이연종은 간교하고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왕의 기분을 잘 맞추어 시사(時事)를 여러 차례 말하므로 어떤 사람은 그가 철석(鐵石)과 같은 간장(肝膓)을 가졌다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왕이 일찍이 밤에 이제현(李齊賢)을 불러 국사(國事)를 묻고 살폈는데, 인하여 〈이제현이〉 왕에게 말하기를, “이연종은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연종의 나이가 이미 70세여서 사직하려 하였으나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처음에 이연종이 조일신(趙日新)에 붙어 이 관직을 얻었는데, 조일신이 공(功)을 믿고 마음대로 행하였으나 이연종이 탄핵하지 않고 그대로 두자 원사(院使) 기원(奇轅)이 이연종을 기롱(譏弄)하여 말하기를, “이 노인은 들어서 아는 것이 없는가? 어찌하여 시비(是非)를 살피지 않는고?”라고 하였다. 이연종이 말하기를, “근래에 조익청과 전윤장을 탄핵하였는데, 만약 이제현과 조일신을 탄핵한다면 왕은 누구와 함께 국사를 의논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집의(執義) 김규(金㺩)와 지평(持平) 곽충수(郭忠秀)가 그제야 조일신을 탄핵하자, 조일신이 대관(臺官)과 함께 내정(內廷)에서 변석(辨釋)할 것을 청하였다.
왕이 이연종과 정당문학(政堂文學) 이공수(李公遂)에게 명령하여 내정에서 양쪽의 논의를 듣도록 하니, 이연종이 직접 탄핵하는 문장을 들고 조목별로 물었다. 김규가 말하기를, “공(公)께서는 헌사(憲司)를 맡아 이미 죄인을 탄핵하지 않았는데, 도리어 우리들에게 묻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이연종은 부끄러워하며 화를 내었다. 김규와 곽충수가 또 조일신의 가노(家奴)를 전법사(典法司)의 옥에 가두자, 조일신이 옥을 부수고 꺼내고는 도리어 대관을 소송하므로 왕이 김규 등에게 사임하라고 명령하였다. 처음에 김규 등이 이연종이 늙고 간사하여 조일신에게 아부한다고 하여 조일신을 탄핵할 때 함께 의논하지도 않았으므로 이연종이 이를 싫어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왕이 이연종을 사헌부에 나오라고 명령하자, 규정(糾正)이 뜰에 나와 맞이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사헌부 밖에 앉아서, 결국 김규와 곽충수 및 장령(掌令) 경천흥(慶千興)을 탄핵하였다. 그러나 조일신은 탄핵을 받아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