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독서 에세이】
중봉 조헌 선생의 위대한 생애를 읽으면서 ‘배천 조씨’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다
― 위인(偉人) 중봉 조헌 선생의 삶을 재조명한 조종영 작가의 『義에 살고 義에 죽다』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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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독서 에세이】 중봉 조헌 선생의 위대..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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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독서 에세이】
중봉 조헌 선생의 위대한 생애를 읽으면서 ‘배천 조씨’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다
― 위인(偉人) 중봉 조헌 선생의 삶을 재조명한 조종영 작가의 『義에 살고 義에 죽다』를 받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초등학생 손자를 둔 할아버지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손자를 생각한다. 손자가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쓴 글을 읽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초등학생 손자가 이해하기 쉽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초등학생 손자가 읽는 글은 이해하기도 쉬워야 하지만, 흥미로워야 한다.
손자가 흥미를 느끼게 글을 쓰려면 재미있는 요소도 찾아야 한다. 글을 쉽게 쓰면서 흥미로운 요소까지 담으려면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필자 자신부터 공부해야 한다.
오늘은 마침 그런 공부를 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역사 서적이 내게 왔다.
대전수필문학회에서 오랜 세월 인연 맺고 살아온 조종영趙鍾英 작가가 보내준 ‘역사 서적’이다.
▲ 조종영 작가가 서명하여 보내준 신간 저서 《義에 살고 義에 죽다》
‘중봉重峯 조헌趙憲’ 《義에 살고 義에 죽다》 조종영 지음(2024.11.25. 문경출판사).
‘중봉 조헌과 그의 의병들’ 《지당에 비 뿌리고》(2019년)에 이어 두 번째 받은 저서다.
▲ 2019년에 보내준 조종영 작가의 저서 《지당에 비 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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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영 작가는 중봉 조헌 선생의 12대손이다. 조 작가가 책을 펴내자마자 내게 정성껏 보내준 뜻을 헤아려보았다.
혈연, 지연, 학연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통해도 남다른 인연이라 할 수 있는데, 조종영 작가와는 ‘세 가지 인연’ 모두가 맥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첫째, 혈연(血緣)이다. 나의 할머니(趙 實 1873~1945)가 중봉 조헌 선생 12대손 조종영 작가의 본관과 같은 ‘배천 조씨’이니, 어찌 혈연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 둘째는 지연(地緣)이다. 조종영 작가의 고향이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이다. 김포에서 태어난 중봉 선생도 옥천에 묻혔다.
※ 옥천에서는 매년 선생을 기리는 ‘중봉 충렬제’가 열리고 있다.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였던 나의 장형(윤길원尹佶遠 : 옥천향토전시관장, 관성동호회장 등 역임)도 옥천이 ‘제2의 고향’ 일만큼 깊은 지역적 연고를 맺고 있다. 옥천중학교 교장, 이원중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면서 옥천지역과는 특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 셋째는 학연(學緣)이다. 같은 학교 동문만이 학연인가. 문학회에서 오랜 세월 인연 맺고 살아온 ‘문단 동인(同人)’ 역시 ‘학연’의 범주에 포함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손자가 궁금해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손자에겐) 고조 할머니가 어째서 자랑스러운가?’라는 점이다.
조상인 중봉 조헌 선생은 위인(偉人)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장렬히 순절한 역사의 인물이다. 『지식백과』에서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 중에도 ‘조헌’이란 휘자(諱字)가 보인다.
▲ ‘지식백과’에 수록된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 노래로도 제작되어 불리고 있다.
※ 손자야, <조헌 의병장>이 나오는 노래를 직접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fP7sVxEUJ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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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씨’ 후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할머니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중봉 선생 12대손인 조종영 작가는 ‘중봉 선생의 일대기’를 지역신문에 연재하고 잇달아 책을 펴냈다.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게 재조명하면서 업적과 뜻을 기리고 위대한 정신을 널리 선양하듯이 나 역시 ‘배천 조씨 할머니’의 손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배천 조 씨(白川趙氏)’
나는 과거 충남 청양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제사’를 모시면서 지방(紙榜)에 이렇게 썼다.
【顯 祖妣 孺人 白川趙氏 神位】
매년 할머니 기일 때마다 지방에 할머니 성씨를 붓으로 쓰면서 궁금했다.
‘백천 조씨’라 써 놓고 어째서 ‘배천 조씨’로 읽느냐는 거였다.
장형은 국어 교육자다. 한평생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장형은 또한 향토사학자다. 옥천향토전시관장을 지냈다. 장형으로부터 궁금증을 풀었다.
아는 것도 글을 쓰려면 재차 확인하듯이 ‘지식백과’를 살펴봤다.
‘白川郡’은 황해남도의 연백평야 동쪽에 있는 군이다. 한자 표기는 ‘白川’이지만, 활음조 현상에 의해 <배천>으로 읽는다.
※ 활음조(滑音調, euphony) 또는 호음조(好音調)는 언어의 화자가 어떤 어휘를 본래 어법에서 의도하는 발음과는 다른 발음으로 읽는 현상을 가리킨다. 민간에서 속되게 읽는 법이라 하여 속음(俗音) 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십월(十月), 육월(六月)에서 종성이 탈락하여 ‘시월’, ‘유월’로 발음하는 것이 대표적인 활음조 현상이다.
【관련 일화】
옛날 사람들도 헷갈렸는지, 전해오는 이야기에 배천 군수로 발령받게 되었다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하기 위해 백천 군수로 간다라고 말했다가 집안 어른에게 “제가 갈 고을 이름도 제대로 못 읽다니!”라고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흥선 대원군에게 ‘배천 군수’ 자리를 청하러 온 이가 이 고을 이름을 ‘백천’이라고 읽었다가 대원군에게 면박을 당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식백과 참조)
조헌 선생은 성리학자로서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효를 실천한 분이었고, 국가적으로는 정치 · 사회개혁을 주장하고 선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오로지 의로운 일에 물러서지 않았다. 백성에게는 자애롭고 부정한 권력자에겐 서슴없이 질타했다고 한다.
조종영 작가는 말한다.
“선비의 신분으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호남을 엿보는 왜적과의 일전에서 칠백의병이 하나 같이 선생과 더불어 최후를 함께 했다. 민족의 성지 금산 ‘칠백의총’이 그 역사의 현장이다.”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애국 애민 정신에 충실했던 역사적 위인이다.
조종영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칠백 명의 의병들이 어떻게 전장을 이탈하지 않고 조헌 선생을 따라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가 있었을까? 전무후무한 사실에 선생의 리더십을 주목하지 하지 않을 수 없다. (‘옥천향수신문’ 기고문 중에서)”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익혔던 중봉 조헌 선생의 명시조 ‘지당에 비 뿌리고’가 이 책에도 실려있다.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노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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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작가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이 시조를 통해서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당시의 불안한 국내외 정서 속에서 안일한 조정의 태도를 바라보며 조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심정을 이 시조에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날 중봉 조헌 선생과 같은 진정 나라를 걱정하는 참다운 ‘위인’을 정치 지도자로 만날 순 없을까?
배천 조씨 할머니, 그 답을 언제쯤 주시려는 지요? ■
2024. 12. 14.
‘배천 조씨 할머니’의 손자 윤승원 讀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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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종영 작가 댓글
◆ 손자야, <조헌> 의병장이 나오는 노래를 직접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fP7sVxEUJ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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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정구복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