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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보기가 쉽다고?
박 완 서
지겹던 늦더위 끝에 반갑잖은 가을장마가 지더니 오랜만에 청명한 날씨였다. 아까부터 마당에 내려가서 맨손으로 클럽 휘두르는 폼을 재고 있던 맹범(孟凡)씨가 주춤주춤 마루로 올라왔다. 잠깐 마나님 눈치를 보다가 이 방 저 방 다니며 장롱을 뒤지기 시작했다. 뭘 찾는 데는 워낙 재간이 없는 맹범씨였다. 지금
도 자기 힘으로 찾으려는 게 아니라 마나님이 알아서 찾아주든지 귀띔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러나 마나님은 못 본 척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저명인사와의 대담 프로였다. 마나님은 그 집 마당의 장미가 참 곱다고 생각했다. 맹범씨네 정원도 예년 같으면 늦장미가 제철 장미보다 더 화사할 땐데 장마 끝이라 퇴락해 보였다. 마나님은 별것도 아닌 것에 묘한 질투가 나서 매스컴 타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딘가 달라도 다르니까, 하고 명사를 깔보았다.
“여보, 내 골프 바지 어디 있소?”
드디어 맹범씨가 계면쩍은 얼굴로 마나님에게 물었다.
“안 돼요. 김박사는 110이었고 당신은 120이라는 거 벌써 잊으셨수?”
110, 120은 최저혈압을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구라 노년에는 비슷한 고혈압 증세로 여러 가지 생약과 민간요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느라 가족끼리도 친척처럼 친했던 김박사가 골프장에서 뇌일혈로 급사하자 맹범씨는 다시는 골프를 안 치겠다고 맹세했었다. 골프가 지병을 악화시키고 죽음을 재촉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 사는 것의 덧없음과 친구에 대한 감상적인 의리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반년도 채 안 돼 고혈압엔 맑은 공기, 적당한 운동, 잔 근심으로부터의 해방 등이 최상의 치료법이란 말이 친구 생각보다 훨씬 더 솔깃했다.
“오늘 당장 시작하겠다는 게 아니라…….”
맹범씨는 친구의 죽음을 목 놓아 울며 굳게 맹세한 게 계면쩍어서 이렇게 얼버무렸지만 건성이었다. 마나님 역시 끝끝내 말릴 생각은 아니었다. 등산이나 낚시보다 훨씬 격이 높은 취미라고 생각했고, 일요일날 온종일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지 않으면 낮잠으로 소일하는 졸때기들의 마나님인 친구들한테 골프 때문에 일요 과부가 된 자기 신세를 한탄할 때처럼 으쓱한 우월감을 느낄 적도 없었다. 한번 맛들인 우월감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그 맛에 연연하게 될지도 몰랐다.
백 평이 넘는 제법 넓은 마당에 은행나무는 아직 청청하고, 자귀나무는 분홍색 깃털을 가진 어여쁜 새들이 무수히 내려앉아 고개만 푸른 잎 사이에 감추고 있는 것처럼 화려하게 하늘대고, 담 모퉁이의 빨랫줄 아래 자생한 맨드라미꽃은 장닭의 벼슬처럼 도도하게 검붉고, 장마통에 여기저기 웃자란 잡초만 제거해준다면 잔디의 푸르름도 반드르르 한결 더 윤기가 흐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전성기에 있지 않았다. 그런 것들 사이에 소리도 그림자도 없이 고루 스민 가을 기운의 사정없는 잠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마나님은 춥지도 않은데 공연히 어깨를 웅숭그리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처서만 지나면 나무뿌리 풀뿌리가 물 빨아올릴 기운이 없어진다더니 정말인가봐요.”
“옛말 그른 거 없다지 않소.”
“왜 없어요. 그른 거 천지죠. 난 옛날식보담 신식이 더 좋아요.”
“임자 좋아하는 걸 누가 말리겠소.”
“두 늙은이 살기엔 집이 너무 큰 것 같지 않수?”
“또 아파트 타령을 하고 싶소?’:
“겨울에 기름값 생각하면 끔찍해서 그래요.”
“아직은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요. 할망구가 점점 걱정도 팔자라니까.”
“할망구라뇨. 말조심하세요. 접때 종혁이 소풍 갈 때 따라갔더니 다들 막내인 줄 압디다. 남보다 일찍 본 손자도 아닌데 그렇게들 보더라구요.”
“눈들이 삐었남.”
“왜 약오르슈?”
“약이 올라서가 아니라 측은해서 그래요. 그 소리가 듣기 좋아 두고두고 우려먹는 걸 보면 임자도 별수 없는 할망구야.”
“당신은 어떻구요. 백화점 아가씨가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잘 받을 것 같다고 권하는 게 온통 새빨간 넥타이더라고 얼마나 여러 번 자랑을 하셨수?”
“그건 사실이라구. 난 아직 어디 가서 할아버지 소린 안 들어봤으니까.”
“그런 데만 골라 다니시니까 그렇죠. 시내버스 한번 타보시구랴.”
맹범씨는 마나님의 말을 되받지 않았다.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종류의 단조로운 입씨름이란 태엽이 풀릴 때까지 작동하는 기계처림 입아귀가 아플 때까지 마냥 계속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난 예감이 그를 권태롭게 했다.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마루에도 전화기가 있건만 마나님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나님의 목소리는 맹범씨가 구태여 귀를 곤두세우지 않아도 될 만큼 시끄러웠다.
“여보세요. 응, 혜숙이구나. 앨 봐달라구? 시어머니한테 봐랄래렴. 나 외손자 보는 거 취미 없는 거 알잖냐. 차별하는 게 아니라 외손자가 한결 더 조심스러워 그런다. 새빨간 남의 자식 아니냐. 그리고 그 시간엔 나도 나갈 일이 있단다. 계동 아줌마 있잖아, 그 아줌마 딸이 오늘 시집가는데 안 가볼 수 있냐? 영동 복화예식장에서 한 시에 한단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미장원 다녀가려면 지금부터 서둘러도 늦겠네. 그러니까 시어머님한테 좀 봐주십사고 그러렴. 뭐, 시어머님도 한 시까지 목화예식장 가신다고 했다구? 아, 맞다 맞어. 계동 아줌마하고 느이 시어머님하고 여학교 동창 아니니? 그렇게 됐구나. 오랜만에 사돈 마나님 뵙게 됐네. 그건 그렇구 네가 딱하게 됐구나. 웬만하면 애를 데리고가렴. 으응, 그럼 그런 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갈 순 없지. 아버지? 계셔. 얘는, 아버지가 애를 어떻게 보시냐? 뭐라구?”
마나님이 별안간 깔깔대기 시작했다. 소녀처럼 거침없고 경망스러운 웃음소리도 귀에 거슬렸지만 그 울림 속엔 그가 여직껏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랄한 야유와 버릇없는 능멸이 들어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 느닷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맹범씨는 그걸 이상해하기 전에 식구들로부터 경멸뿐 아니라 따돌림까지 당했다는 배신감과 고독감에 사로잡혔다. 어떤 결말이 났는지 전화를 끊고 나온 마나님 얼굴엔 아직도 그 기분 나쁜 웃음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막연한 느낌을 근거로 마나님에게 뭘 따진다는 건 금물이었다. 어느새 망령이 나셨수, 할 게 뻔했다.
“당신 오늘 애 좀 봐주셔야겠어요. 서너 시간이면 된대요. 애가 워낙 순해서 별로 힘 안 드실 거예요.”
“날더러 애를 보라구?”
맹범씨는 사태가 피할 수 없이 됐다는 걸 느끼면서도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펄쩍 뛰고 보았다.
“그럼 어떡해요. 혜숙인 김서방하고 점심 초대를 받았다는데 안 갈 수 없대요. 초대받은 것만도 영광스러워해야 할 자리라니 우리가 안 도와주면 누가 도와주겠어요. 다 들으셨죠? 시어머님도 마침 볼일이 생긴 모양이니 친정 좋다는 게 뭐겠수?”
“글쎄, 난 못 해요. 어디서 모녀가 생각한다는 게 고작…….”
“여보 우리 영감, 이러지 맙시다. 당신 애 보기에 소질 있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뉴?”
마나님이 이렇게 능청을 떨더니 뭐가 재미있는지 혼자서 깔깔대기 시작했다. 전화에다 대고 웃던 바로 그 웃음소리였다. 그래도 맹범씨는 모녀가 그리도 행복하게 죽이 맞아 그를 조소하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교묘하게 양지 쪽만 걸어온 그의 생애는 누구에게나, 특히 가족들에게 떳떳했다. 그러나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내색을 한다면 마나님의 경멸 속에 충분히 포함된 친밀감마저 잃을까 두려워 그는 어정쩡하게 웃으면서 어정쩡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왜 이래요? 얼렁뚱땅 떠맡길 일이 따로 있지. 애 보기가 무슨 장난인 줄 아남.”
마나님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안방에서 외출 준비를 했다. 삼십 분도 안 돼 딸과 사위가 외손주를 데리고 달려들었다. 아홉 달 된 손자녀석은 그 동안 먹여야 할 것만도 한 보따리였다. 우유와 야채죽과 과즙과 과자와 철분과 기침약이 한 보따리, 기저귀와 옷이 한 보따리, 보행기와 장난감이 한 보따리, 도합 세 보따리는 사위가 두 손에 들고 어깨에 메고 딸은 아기를 안고 들어 왔다.
“우유 먹을 시간은 열두시예요.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정각에 먹이세요. 죽은 두시쯤 멕이시구요. 잘 안 먹으려고 그럴 거예요. 어떻게 된 애가 발육에 비해서 이유가 순조롭질 않아요. 울려가면서 막 퍼넣으세요. 어떡하든지 멕이기만 하면 소화는 잘 시키니까요. 식후에 철분하고 기침약 먹이세요. 과즙하고 과자
는 칭얼댈 때 조금씩 주시구요. 참, 곧 낮잠 잘 시간이에요. 푹 자고 나면 보행기 타고 잘 놀 거예요. 선잠 깨면 투정이 굉장하니까 절대로 선잠 안 깨도록 하세요. 뗑깡 부릴 때는 먹을 것도 막무가내지만 차만 태워주면 직통으로 뚝 그치는데, 오늘 천기사 안 나왔죠? 아버지 골프 그만두시고 나서 천기사만 수 났네.”
이렇게 단숨에 말하고 난 혜숙은 나가는 길에 태워다드리마고 어머니를 재촉했다. 요새 제 차를 장만해서 사위가 직접 모는 딸네는 첫밗이라 차 인심이 좋았다.
“알았다, 알았어. 우리 딸네 자가용을 타아구말구. 미장원 들러 가려구 했더니 그 동네에 가서 할까보다.”
화장을 짙게 한 마나님이 입을 함박꽃처럼 벌리고 좋아했다. 크림색 마직 투피스에다 진주 목걸이를 늘인 마나님은 머리 손질 안 해도 귀부인 티가 번지르르 흘렀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이 좋은 일요일날 애를 보시게 해서…… 영준이 빠이빠이 아빠 다녀올게. 빠이빠이.”
두 여자를 앞세우고 조금 뒤떨어져서 현관을 나서던 사위가 그렇게 장인과 제 아들에게 인사를 차렸다. 구원을 청할 마지막 기회다 싶어 맹범씨는 사위에게 애걸을 한다는 게 헛되이 입술만 실룩거리고 있었다. 사위는 한 눈을 찡긋했다. 장인한테 윙크를 할 정도로 버르장머리 없는 사위는 아니니까 제 아들에게 애정 표시를 그렇게 했으리라. 그러나 맹범씨는 자신이 조롱당한 것처럼 느꼈고 모녀가 주거니 받거니 낄낄대던 웃음과 한통속으로 그 조롱의 의미를 파악하려 들었다. 사위의 뒤통수가 현관문 밖으로 사라지고 애 보기가 그만의 것으로 현실화되자, 그제서야 마치 시험지를 내놓자마자 떠오른 정답처럼 깔깔대던 조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의미는 떠오르면서 날카롭게 그의 자존심을 관통했다. 저, 저런 괘씸한 것들이 있나. 맹범씨는 모녀와 사위가 사라져간 현관을 향해 헛되이 격앙했다. 맹범씨는 유신정치 때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었다. 맹범씨는 그런 경력을 매우 대견스럽게 생각했고 그후에도 그의 처세에 여러모로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었으므로, 그런 그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식구들로부터 비록 악의적은 아닐지라도 경박한 야유의 대상이 됐다는 건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식구들의 난데없는 빈정거림이 그의 자랑스러운 경력과 관계있다는 걸 진작만 깨달았어도 가장으로서의 권위로 한바탕 크게 호통을 쳤으련만. 물론 정말 애 보기를 떠맡는 얼간이짓을 했을 리도 만무였다. 그는 비록 국회의원을 지냈다고는 하지만 공천을 받고 선거를 치르느라 패가망신의 위험성을 각오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위에서 지명해서 되는 국회의원이었다. 이 나라엔 그때부터 그런 국회의원 제도가 생겨났고 그는 주는 떡도 못 받아먹는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기회가 그에게 돌아가기까지의 경위가 밖으로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구구한 욕된 소문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운이 좋은 사람, 될 만해서 된 사람, 무난한 사람 정도로 넘어갔다. 그건 그만큼 존재가치가 희박한 국회의원이었단 얘기도 되지만, 그 희박한 존재가치로 하여 그후의 여러 고비의 정변 때도 다치는 일이 없었으니 행운을 타고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행운이 자기 편이란 믿음 때문인지 맹범씨는 자기에게 돌아온 행운을 받아들일 때 과연 받을만한가 아닌가 망설이거나 개인적인 행운과 그 시대와의 관계에 어렴풋이라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가 지난 지금도 그 시대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일이 없었다. 타인이 질문을 던지거나 의혹을 갖는 것도 싫었다. 그의 시각으론 마냥 같은 시대가 계속되는 결로 보였고 따라서 그 시대를 반성하거나 정리해야 할 까닭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딴 사람도 아닌, 그의 행운의 덕을 가장 많이 누린 식구들이 행운에서도 가장 꽃다운데에다 그런 방자한 평가를 내리면서 즐거워하다니 울분이 목줄기를 뿌듯하게 했다. 그는 울분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는 기물이라도 부수고 싶은 강렬한 충동으로 반짝이는 크리스털 그릇이 정연하게 앉은 장식장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땡그렁 소리는 그가 장식장 문을 열기도 전에 났다. 보행기를 타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느라 엄마 아빠의 외출에토 별 관심이 없던 아이가 탁자 위의 늘어진 난초 잎을 잡아당긴 모양이다. 화분째 떨어지면서 아이는 흙을 뒤집어쓰고 화분은 마룻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큰 소리와 흙벼락에 놀란 아이가 까무러칠 듯이 울기 시작했다. 난초 중에선 줄기가 잘 뻗고 번식력이 강한 흔해빠진 종류였지만 분은 이름 있는 도예가가 구운 운치 있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선 그걸 함부로 깨뜨린 녀석을 아무리 혼내주어도 직성이 안 풀릴 것 같은데 녀석은 뭘 잘했다고 점점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제서야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결 알았는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서럽게 우는 꼴이 좀처럼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간무슨 일 날 것 같았다. 보행기에서 들어올리려니 영양 좋은 아홉 달찌리는 갈비뼈가 휘게 무거웠다. 안아주어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긴커녕 할아버지 얼굴을 한번 빤히 바라보고 나서 불에 덴 것처럼 더욱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오냐, 오냐, 괜찮다. 착하지, 할아버지하고 놀자. 우리 아기 착하지. 고작 이런 말로 얼러봤지만 아기는 그의 가슴을 밀치면서 더욱 힘들게 악을 썼다. 금세 아기 목이 쉬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다. 맹범씨는 진땀이 버쩍 났다. 아이가 온몸으로 그의 가슴을 밀칠 때마다 녀석을 힘껏 내동댕이치고도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애 잡을 것 같은 두려움이 그의 가슴을 옥좼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 사십오분이었다. 떠나기 전에 일러준 말이나 밖에서의 용건으로 미루어 딸 내외와 마나님이 돌아올 시간은 일러도 세시는 넘어야 할 것 같았다. 넉넉잡고 네시쯤으로 잡아놓고 기다려야 안달을 덜 할 것 같은데, 지금부터 네 시간이라니, 맹범씨는 하룻밤 새에 머리가 하얗게 센다는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짧고도 긴 고난의 시간을 연상하고 지를 떨었다. 어떻게 해서 이 지경이 됐는지 너무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울어서 죽는 법은 없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도 같았으나 아기는 정말 울어도 너무 울었다. 어느 순간 숨이 꼴깍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게 온몸의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가만히만 있을 수 없어 안고 흔들면서 집 안을 몇 바퀴 돌았건만 울음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겨우 오 분이 지나서 열두시 십 분 전이었다. 울 때는 그저 젖으로 틀어막던 예전 육아법과 함께 우유 먹을 시간이 열두시라고 일러주던 딸의 말이 생각났다. 열두시까지는 아직 십 분이 남았지만 십 분 상관으로 큰일이 아니랴 싶었다. 무작정 울어대는 입을 틀어막을 게 생각났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잘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고 했겠다, 그만큼 울었으니 우유를 먹으면서 곯아떨어질 만했다. 맹범씨는 처음으로 한숨 돌리면서 우는 아이의 입에 우윳병을 물렸다. 워낙 몹시 울던 끝이라그런지 아이는 몇 모금 빨다간울고 빨다간 울곤 했다. 그래도 울음의 기세가 많이 꺾이고 우유도 반병쯤 줄었다. 눈엔 졸음도 어리는 듯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네시까지만 자거라, 맹범씨는 비로소 애 보기에 자신이 생기는 듯했으므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축수했다. 그때 아이는 울컥 목이 메게 우슈를 토해내고 나서 더 다급하게 울기 시작했다. 다시 우유 꼭지를 물리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혹시 급한 병이 난 게 아닌가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를 짚어보니 식은땀이 쪽 흐르는 게 열은 없는 듯했지만 너무 차가운 것도 겁이 났다. 둥개둥개 흔들면서 집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흔들 동안만 조금 울음을 그쳤다간 조금만 덜 흔들어도 악을 썼다. 팔이 떨어져나가는 것 겉았다. 가슴까지 담이 든 것처럼 결렸다. 겨우 열두시 오분이었다. 먹는 건 막무가내니 흔드는 것 말고는 재간이 없었다. 국회의원한테 애 보기나 하라는 엉터리 같은 발상을 제일 먼저 한 건 만화가일까, 신문기자일까, 흔해빠진 칼럼니스트일까? 아무튼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악담이 저절로 나왔다. 어깨가 내려앉고 팔이 저려 더이상 아이의 무게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울음이 너누룩한 걸 기화로 그는 아이를 보행기에 앉혔다. 낮잠 잘 때가 가깝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되는 게 아이의 눈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심상치 않은 적의마저 번득이고 있었다. 아이는 보행기로 한달음으로 장식장 앞으로 가더니 미니 양주병을 꺼내 유리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맹범씨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양주병을 빼앗았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쉰 소리로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는 다시 아기를 안아올려 우유를 마저 먹이려 했지만 아이는 도리질을 하면서
밀쳤고 과자도 과일즙도 막무가내였다. 아까 토한 우유가 맹범씨 트레이닝복에 허옇게 얼룩져 시척지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걸 닦거나 갈아입을 새도 없는 악전고투의 시간이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열두시 이십분이었다. 아이들 키가 넘게 큰 괘종시계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한껏 굼뜨게 추가 오락가락해서 어째 믿을 만하지가 못했다. 가끔 망령을 부린다고 마나님이 타박하는 소리를 들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안방의 탁상 전자시계도 경대에 풀어놓은 그의 금딱지 롤렉스도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쳐서 오락카락 서성대는 시간 때문에 환장을 할 것 같았다. 아이보다 더 큰 소리로 울면 아이가 질려서 혹시 울음을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긍하면 통한다고, 이때 비로소 아이가 심통 부리고 울 때 차만 태우면 뚝 그치는 버릇이 있다고 일러주던 딸의 말이 생각났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천기사는 안 나왔지만 택시나 버스를 태울 수도 있었다. 어어기 가자, 빵빵 타고 어어기 가자. 그렇게만 말해도 아이는 잠깐잠깐씩 울음을 그치고 솔깃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현관문과 대문 단속을 대강 하고 나서 정원으로 내려선다. 빨랫줄과 장독대가 있는 담 모퉁이에 옆집 마당과 통하는 협문이 있었다. 서로 집을 비울 때 이용하기로 하고 낸 문이었다. 마나님은 파출부가 안 오는 날 더러 이용하는 눈치였다. 맹범씨가 이용하긴 처음이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아이의 얼굴은 코와 눈물로 더럽게 얼룩지고 한결 수척해졌을 뿐 아니라 눈치가 빤해서 영락없는 천덕꾸러기였다. 토한 젖의 시척지근한 냄새는 아이한테서는 더 심하게 났고 옷 꼴도 꾀죄죄했다. 협문을 통해 옆집 마당에 들어선 맹범씨는 그런 아이 꼴이 창피해서 집 비우고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잘 부탁한다고 소리치고는 얼른 그 집 대문을 나섰다. 거실 유리문 안에서 맹범씨의 이런 거동을 지켜보던 그 집 새댁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중얼댔다. 저 댁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이웃집 주인영감임엔 틀림이 없는데 출근할 때 봐오던 그 신수 좋은 멋쟁이 노신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맹범씨는 손님을 맞을 명절 때 아니면 집에서 평상복 겸 잠옷으로 트레이닝복을 애용했다. 누워서 뒹굴기에도 마당을 서성이다가 생각난 듯이 맨손체조를 하기에도 산책 겸 담배를 사러 동네 나들이를 나가기에도 편하고 무난했기 때문이다. 요새 부쩍 젊어 뵈는 빛깔을 받쳐 입는 영감님을 위해 마나님이 손수 고른 짙은 포도주 빛 트레이닝복은 빨래할 때 파출부의 취급 부주의로 표백제가 묻어 여기저기 허옇게 얼룩져 낡고 초라해 보였고, 윗도리엔 아기가 토한 우유가 어른이 게운 밥풀찌끼처럼 엉겨붙어 있었다. 보채는 아이 하고 씨름하느라 지퍼가 반 넘어 내려와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고, 엉겁결에 맨발에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그 노인에 그 아이 였다.
“아이고 맹사장님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골목어귀 구멍가게 남자가 이런 맹범씨의 몰골이 민망해서 바로 보질 못하고 괜히 손을 부볐다. 맹범씨는 아이가 거리로 나오자 울음을 뚝 그친 것만 고마워 계속 둥개둥개하면서 큰길로 나가다 말고 돌쳐와서 가게 남자에게 말했다.
“잔돈 좀 꿔주겠나?”
“네? 잔돈이라뇨?”
“이 녀석 빵빵을 태워주려고 나왔는데 마침 돈을 안 가지고 나왔네그려.”
남자는 꿔주는 게 아니라 꾸는 것처럼 연방 머리를 조아리며 오천원짜리를 내놓았다.
“뭘 오천원씩이나. 천원짜린 없나?”
“넉넉히 가져가시는 게 안 좋겠습니까?”
“아닐세. 택시 타고 동네나 한 바퀴 돌걸 뭘.”
맹범씨는 천원짜리를 한 장 꿔가지고 큰길로 나왔다. 빈 택시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아이는 둥개둥개 흔들지 않으면 당장 칭얼거렸다. 어떻게 하든지 울리지를 말아야지 한번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울음끝이 질기다는 데 맹범씨는 거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만치 시멘트 교각 위로 풀빛 전동차가 가는 게 보였다. 전철이 이 동네를 지난 지 대여섯 해는 됨직한데 맹범씨는 그걸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그게 승용차보다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더라고 칭송이 대단한 친구도 있었지만 언제고 한번 타봐야지 하는, 격이 다른 교통수단일 뿐이었다. 격이 다르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괜히 한번 친한 체해보는 위선적인 서민성이 그에겐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맹범씨는 죽자꾸나 아이를 둥개둥개 흔들면서 멀지 않은 전철역으로 갔다. 표 파는 데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역 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는 걸음마도 못 하는 주제에 아이들을 보자 좋아라 환성을 지르며 내리겠다고 맹범씨 가슴을 밀쳤다. 팔이 떨어질 듯이 아픈 맹범씨는 양회바닥에 잠깐 아이를 내려놓고 줄을 섰다. 표를 사가지고 아이를 안아올리니 엉덩이가 결레처럼 새까맣다. 그제서야 맹범씨는 아이의 기저귀와 함께 바지가 질펀하게 젖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벌로 기저귀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맹범씨는 난감했다. 마침 역 구내에 약국이 있었고 그 안에 일회용 기저귀 봉지가 산적해 있는 게 보였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거든. 맹범씨는 이렇게 안도하며 약국으로 들어갔다. 청년에게 드링크류를 팔고 있던 아리따운 여약사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맹범씨를 일별했다.
“종이기저귀 하나만 줘요. 애 보기도 경험이 있어야지 아무나 보는 게 아닙디다. 가장 중요한 걸 빠뜨리고 나왔지 뭐유.”
맹범씨는 불필요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선웃음을 쳤다. 약사가 밀가루 자루만한 기저귀를 통째로 꺼내놓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이천원 되겠습니다.”
“옛? 이천원이요.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집에 기저귀가 없나 뭐.”
약사는 말없이 봉지를 본디 있던 자리에다 던져놓고 다음 손님을 상대했다. 날이 선 코와 얇은 입술이 인정머리 없어 보였다.
“몇 개만 파시구려. 네, 약사 선생?”
맹범씨는 아니꼬운 걸 꾹 참고 비굴하게 웃으면서 빌붙었다.
오줌을 쌌으니 똥도 쌀지 모르고, 갈아댈 기저귀 없이 차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녀석이 아까부터 그렇게 보챈 게 젖은 기저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자 한시가 급하게 갈아주고 싶기도 했다.
“간이 많이 나쁘신 것 같으네요. 간장약은 이게 제일이에요. 술 좀 덜 드시구요.”
중년 남자가 단골인 듯 미주알고주알 세세하게 얘기하는 증세를 다 듣고 난 약사가 상냥하게 웃으면서 은박지에 포장된 약을 내놓았다. 그 쌀쌀한 여자가 딴 사람한테는 그렇게 상냥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맹범씨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걸 따지고 시비를 걸 계제가 아니었다. 그에겐 마른 기저귀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그것 한 봉지를 다 살 돈은 태부족했다.
“약사 선생님, 부탁 좀 합시다. 딴 일도 아니고 어린이를 위하는 일이니 사정 좀 봐주시구려. 낱개로 몇 장만 팔면 안 되겠소?”
못 들은 척 중년 남자와의 수작을 좀더 계속하고 간장약을 팔고 난 약사가 삼한 눈으로 맹범씨와 아이를 째려보더니 기저귀 봉지를 쌩 바람이 나게 낚아채다가 진열장에 놓으면서 물었다.
“낱개론 백원씩이에요. 몇장 필요해요?”
“아이고, 이거 고맙구려. 한두 장? 아니 석 장만 주구려.”
“원은 낱개로 안 파는데 할아버지가 하도 불쌍해서 드리는 거예요.”
약사는 아기가 기어다니는 그림이 있는 푸른 봉지를 끄르고 기저귀를 석 장 꺼내서 딴 비닐봉지에 넣어주면서 말했다. 삼백 원을 낸 맹범씨는 얼른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아기를 안고 구석 배기로 돌아앉았다.
“할아버지, 냄새나게 어디서 기저귀를 갈려고 그래요. 데리고 나가세요. 노인네가 염치도 없어.”
약사가 맹범씨를 거러지 내쫓듯 했다. 맹범씨는 그게 구박에 익숙해져서 고분고분 약국을 나와 쓰레기통 그늘에서 아이의 바지를 내리고 홈빡 젖은 기저귀를 뺐다. 그사이에도 아이는 쉬지 않고 버둥대 한 손으로 아이의 몸을 지탱하며 다른 한 손으로 새 기저귀를 채우는 일이 야생마한테 재갈을 물리는 일만큼이나 힘에 겨웠다. 그래도 바깥 구경에 팔려 악을 쓰고 울지 않는 것만 고마웠다. 기지귀를 갈았다고 바지까지 부숭부숭해지는 건 아니었다. 걸레가 다 된 바지를 치켜올려주고 나서 다시 안아올렸다. 홈으로 나가 전동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기는 처음으로 벙글벙글 웃었다. 맹범씨는 비닐봉지 속에 챙겨넣은 젖은 기저귀를 꺼내 아기의 더러운 얼굴과 새까만 발바닥을 대강 닦아주었다. 학생이 얼른 자리를 내주었으므로 맹범씨는 아기를 창가에 세우고 비스듬히 앉았다. 아기는 정말 차 타기를 좋아했다. 꺅, 꺅 환성까지 지르며 창에 꼭 붙어서 있었다. 옆에 앉은 부인이 아기에게 닿을세라 몸을 자꾸만 오그리고 있었다. 엉덩이 쪽만 결레 같은 게 아니라 옷 전체가 더럽고 냄새났다. 그는 창구에서 무턱대고 행선지를 댔으므로 차표에 명시된 역에 내리고 나서도 멍청히 왜 그 고장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려고 했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고층 아파트 단지였다. 작년엔가 친구가 그리로 이사해서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단지였다. 전혀 우발적이 아니었다는 게 되레 그를 낭패스럽게 했다. 그는 행여 친구나 친구의 식구를 만날까봐 잔뜩 겁을 먹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새로운 단지는 단독 주택가인지 불도저로 밀어놓은 광활한 택지가 나타났다. 아이가 얼굴을 들입다 부비며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흙을 보자
맹범씨는 느닷없이 예전에 돌아간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는 다섯 남매를 낳아 다 길렀고 아이들은 비교적 무병하게 잘 자라주었다. 아이들마다 앓은 병은 홍역과 태열이 고작이었다. 홍역은 그때만 해도 누구나 한 번 지르는 병이었지만 태열은 흔치 않은 피부병인데도 그의 아이들은 하나도 안 빼고 다 앓았다. 그 병은 걸음마할 때까지의 한창 예쁜 아기를 보기 싫게 했을 뿐 아니라 자각증상도 상당히 괴로운 편이어서 아이들이 돌 안에 심하게 보챘다. 병원 약이나 생약도 태열엔 별로 신통한 게 없었고 그때의 속설로는 아이가 흙을 밟게 되면 저절로 낫는 걸로 돼 있었다. 그건 아마 걸어다니게 되면 낫는다는 뜻이련만 그의 어머니는 그 동안을 못 참고 어린 손자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맨발에다 흙을 쓱쓱 묻혀주면서 흙 밟고 태열뚝 떨어져라, 흙 밟고 태열 뚝 떨어져라, 하고 주문처럼 되뇌곤 했다. 그럴 때 흙은 신비한 생명력의 근원이고 자연의 만병통치 약이었다. 흙과는 본능적인 친화감이 있는지 아이들도 그런 흙장난을 좋아했다. 본디 청결을 좋아하는 맹범씨였지만 그의 어머니가 손자의 발에 흙을 묻히는 경건한 의식에는 미소를 금치 못했었다. 어머니에겐 종교에 가끼운 의식이 아이에겐 유쾌한 놀이였고 의식과 놀이의 조화가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한번 발에 흙을 묻히는 재미를 터득한 아이는 손으로도 흙을 만지고 싶어했고 나중엔 흙에 뒹굴고 싶어했다. 그러고 나서 흙강아지가 된 아이를 씻기면 밭에서 갓 뽑은 무를 씻는 것처럼 살갗이 싱싱하고 건강했었다.
맹범씨는 흙을 보자 그 옛날의 어머니처럼 손자와 함께 흙장난을 하고 싶어졌다. 아이의 손발과 옷은 벌써부터 꾀죄죄했지만 그건 흙이 아니라 도시의 먼지였다. 진짜 흙을 묻혀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뜻밖의 생각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손자에게 할아버지다운 정이 우러나는 걸 느꼈다. 그는 돌이 적은 고운 흙을 골라 아이를 내려놓았다. 예상한 대로 아이의 표정이 싱싱하게 살아나면서 흙과 자유자재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기운차게 흙 위를 기고 뒹굴고 흙을 파고 주무르고 흩뿌리고 맛보면서 연방 낄낄거렸다. 아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맹범씨는 개의치 않고 같이 장난을 치면서 히히거렸다. 아이의 손톱 밑이 새까매지고 머리털 속에도 흙이 버적버적 했다. 어느 틈에 흙을 주워 먹었는지 아이의 입에서 흙물이 흐르면서 욕지기를 했다. 맹범씨가 더러운 손가락을 아이 입에 넣고 휘저었다. 아이의 입 속이 온통 깔깔한 흙이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욕지기를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흙장난이 과했던 것 같아 얼른 안고 달랬지만 아이의 울음은 심상치가 않았다. 주위를 휘둘러보니 저만치 천막집이 보였다. 포장마차보다 조금 큰 집엔 장독대도 있고 줄에 빨래도 널려 있었다. 문이라기보다는 구멍으로 들여다본 그 안은 대낮의 밝음에 익은 눈으론 아무것도 분간 못 할 만큼 어둑시근했다. 누군가가 그 안에서 꿈적거리고 있다는 걸 거우 어림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례합시다. 물 한 대야만 얻읍시다.”
“뉘시우?”
대답은 천막 뒤 한데서 났다. 호미를 든 노인이 바지춤을 여미며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머리는 하앳으나 체격이 우람하고 피부가 건강한 옹기빛이어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주인장이슈? 물 한 대야 얻읍시다.”
“물을 한 대야씩이나 뭘 하게? 여긴 물이 귀한데.”
“보면 모르슈. 이 아이를 좀 씻기려고 그러니까 편의 좀 봐주슈.”
“먹으려고 구걸해다논 물을 세숫물로 달래? 아니꼽게.”
노인은 숫제 반말이었다.
“여긴 평진데 물이 왜 그렇게 귀해요?”
“평지라도 수도꼭지가 없으니 귀할 수밖에.”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수도쯤은 끌고 살아야죠. 기본적인 생활여건이니까.”
“에이 여보슈. 뭐 이런 맹문이가 다 있어. 우린 여기서 살라는 걸 사는 게 아니거든, 끌기는커녕 끊어버렸다우.”
그렇게 말하는 노인은 신산스럽기는커녕 매우 자랑스러워 보였다. 맹범씨는 속으로 약간 돈 노인네가 아닌가 싶어 섬뜩했다.
“그럼 실례했수다. 어디 간들 물 한 대야 못 얻겠수?”
그때 천막 안에서 여자 소리가 났다.
“물 한 대야 드려요. 물 적선이 제일이란 소리도 못 들었수?”
“먹을 물이 아니라 씻길 물이래.”
“알아요. 그애 꼴 좀 봐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목소리만 들리던 여자가 안에서 나왔다. 오십 세 전후의 허여멀건한 여자였다. 여자는 선선히 속에서 물을 한 대야 퍼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맹범씨가 아이를 씻기려 하자 아이는 발버둥을 치면서 또 울기 시작했다. 지겹게도 울기 잘하는 아이였다.
“이리 줘요. 왜 애 씻기는 게 그 모양이에요'”
여자가 화난 듯이 애를 뺏더니 벅벅 씻기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입 안도 마구 후벼냈다. 애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지만 수건질할 땐 그치고 똘방똘방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봤다.
“어메, 씻겨논게 제법 훤한 도련님이네. 낯도 안 가리고. 너꾹너꾹.”
여자가 평상에 퍼더버리고 앉아 넓적한 얼굴을 허물고 아이를 얼렀다. 천막 안에서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계집애가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 쪼르르 나오더니 아이에게 주려고 했다.
“이 계집앤 애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사내동생도 하나 못 보는 주제에, 저리 치지 못해, 남의 애 목메.”
여자는 계집애가 부득부득 아이 입에 처넣으려는 고구마를 뺏더니 자기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뱉어 아이 입에 조금씩 넣어주었다. 아이는 새처럼 입을 짝짝 벌리고 잘 받아먹었다. 맹범씨는 그 여자의 다루는 법이 믿음직스럽고 또 잠시나마 아이 안는 일은 면할 수 있어 여간 고맙지 않았지만 천막 속에 사는 정체 모를 여자가 씹어 뱉은 결 아이에게 먹인다는 걸 애어미가 어디서 보면 기절초풍을 할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얘가 배가 되게 고팠네. 고구마 하나 더 가져온.”
계집애가 안으로 들어갔다.
“아녜요, 아주머니. 우유 먹일 시간이 다 됐으니 그만 집에 가 봐야죠.”
맹범씨가 아이를 받으려 하자 아이는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여자의 가슴에 찰싹 붙었다. 여자는 아이의 뺨에 쭉 입을 맞추고는 기저귀를 만져보더니 아이구 딱해라, 아이구 차거워라, 하면서 기저귀를 뺐다. 아이가 시원한 듯이 흥얼대며 다리를 쭉 뻗었다. 아이고매, 고추도 잘도 생겼네. 조년은 언제나 이런 사내동생을 보누, 하며 기저귀 채울 생각은 안 하고 고추를 만지기 시작했다. 계집애도 신기한 듯이 생그레 웃으면서 들여다봤다. 맹범씨가 비닐봉지에서 새 기저귀를 꺼내면서 아이를 빼앗으려 하자 아따 고추 닳을까봐 겁나요, 하면서 자기가 갈아주고 나서 바지를 치켜주고 끌끌 혀를 찼다.
“헌 옷이 있으면 한 벌 줬으면 좋으련만 워낙 애 길러본 지 오래돼서…… 글쎄 조년이 돌문을 닫고 나왔는지 아수가 없네요.”
“아들 딸 가리지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란 소리도 못 들었어? 애 에미 듣는 데선 제발 그 아들 타령 좀 그만 혀.”
“아드님 내외도 같이 사시나보죠?”
맹범씨가 아까보다 한결 잘 보이는 천막 안을 기웃대며 넌지시 물었다.
“장가 안 든 아들이 둘이나 더 있어요. 손이 귀한 집도 아닌데.”
여자는 아직도 아들손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심란한 얼굴을 했다.
“그 여러 식구가 여기서 다 함께 산단 말입니까?”
“임시지, 우리라고 생전 이러고 살라구요. 이렇게 살고 싶대도 살게 내비두지도 않을 거구먼요.”
“흥, 저희들이 안 내버려두면 어쩔 거야. 누가 이기나 보라지.”
영감이 허공에다 대고 눈을 부라리며 별렀다.
“이 땅에 소송이라도 붙었습니까?”
맹범씨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걸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아네요, 이 동네가 다 개발인지 쇠발인지 결려서 벌써 없어졌는데 우리는 보상금 까탈로…….”
“정부하고 합의가 잘 안 돼서.”
여자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노인이 얼른 말꼬리를 낚아챘지만 노인 역시 말끝을 맺진 못하고 별안간 괜히 으스대기만 했다. 정부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거만을 떠는 게 자신과 정부를 일대일의 대등한 위치로 가정하는 데 쾌감을 느끼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제 크 고집 좀 그만 피우시우. 우리보담 더 억울한 왕근네도 진철이네도 결국은 떠났잖아요.”
“듣기 싫어. 그 배신자덜 소린 왜 또 혀?”
“암튼 우리가 한 번 돈을 받아먹은 건 사실 아녜요.”
“닥치지 못해. 조, 조놈의 여편네 입초시에 될 일도 안 된다니께.”
“몰라요. 난 암것도 모른께 낼부터 물도 당신이 길어요.”
“아따따, 물 긷는 자세 또 부리네.”
“물 한 바가지나 길어보고 하는 소리여요. 아빠뜨 수위가 오죽 지랄을 하는 줄 알아요. 젊은놈이 늙은일 사람 취급도 안 한다구요.”
“아 즈네들 흥청망청 차 닦는 물 먹는 물로 선심 좀 쓰는 게 그렇게 아깝대. 나쁜 새끼 같으니라구.”
“그 사람 나무랄 것도 읎어요. 차 닦는 물이라고 거저 나오는 게 아니래요. 공동수도료도 다 같이 문다니 밖의 사람 퍼주면 욕 안 먹겠어요?”
“아따따, 이해심 많아 좋다.”
“빈정거리지 좀 말구 마음이나 고쳐 잡수세요.”
“날더러 마음을 고쳐먹으라구? 내가 뭘 잘못했게.”
“고집도 잘못이에요. 남 하는 대로 하고 삽시다.”
“벌써 세번째야. 자리잡고 살 만하면 개발 쇠발 당한 게. 우리가 다 해논 개발을 누가 또 헌다고 지랄이야.”
“이이가 증말, 만길이 어멈 혼이 씌었나?”
여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씌면 좀 어때? 이 동네 사람덜 만길이 어멈 원혼이 안 씐 게 더 이상하지.”
“요새 세상에 원혼이 어딨어요.”
“원혼이 왜 읎어? 사람덜이 쇠붙이처럼 독해져서 씌일 데가 읎다뿐이지.”
“만길이 어멈이 어떤 사람입니까?”
맹범씨가 두 사람의 말다툼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 동네 도오쟈로 밀 때 앞장서서 말리다가 도오쟈에 깔려 죽은 여자랍니다.”
“네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맹범씨가 마음으로부터 비통하게 말했다.
“떨 거 읎어, 영감. 제 집 읎으면 그런 일 당하고 싶어도 못 당할 테니까.”
노인이 뽐내면서 맹범씨를 경멸했다. 아이가 또 칭얼대자 이번엔 계집애가 고구마를 씹어서 아이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도 허겁을 하며 받아먹으니까 계집애는 입으로 직접 아이 입으로 넣어주며 좋아하고 해해거렸다.
“그만 먹여라, 남의 애 체할라. 할아버지, 얘가 배가 많이 고픈가봐요. 집이 어딘지 어여 데려다 젖을 물리도록 하세요. 세상에, 가엾어라. 먹고살려고 저 입 벌리는 것 좀 보게나.”
아이는 입을 벌리고 고구마 부스러기가 묻은 계집애의 입술이라도 빨려고 허둥대고 있었다.
“보면 몰라, 에미 있는 애 같지도 않구먼.”
노인이 맹범씨와 아이를 가련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아이를 업혀드리리까. 안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 들 테니 업으시우. 우리 애 두르던 띠가 어디 있을 테니 잠깐만 기다려요.”
여자가 계집애를 앞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평상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물면서 맹범 씨에게도 권했다.
“안 피워요. 건강 때문에.”
“건강 좋아하네. 곧 죽어도 돈 읎어서 못 피운다고 안 할 얼굴이군.”
맹범씨는 갖은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노인이 밉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진 신세를 훗날 후하게 갚고 싶었다. 이런 데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소원은 뭘까? 고작 안전한 일자리 아니면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집이 아닐까? 맹범씨는 야담에 나오는, 미행을 나가서 만난 착하고 곤궁한 선비의 소원을 들어주는 임금님 생각을 했다. 이 노인에게라면 그런 임금님이 돼줄 수도 있었다. 그는 노인을 위해 수위나 농장 관리인 자리를 생각했고 비어 있는 별장과 비울 수 있는 농막도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건 자신의 변신을 노인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노인은 얼마나 놀라고 황공해할까? 야담의 클라이맥스는 결코 선비의 금시발복에 있지 않고 선비가 임금님이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보잘것없는 노인이었다는 걸 알아보고 황공무지해하는 대목에 있다. 맹범씨의 공상도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띠를 찾아가지고 나왔다. 군데군데 해지고 찌든 무명띠였다. 업으니까 한결 편했다. 그래도 여자는 타박을 했다.
“왜 애 업은 꼴이 그래요. 아이가 붙질 않고 겉도는 게 가관이네. 진지라도 따뜻하게 얻어잡수려면 애를 잘 봐야 돼요. 노인도 공밥 먹긴 힘든 세상이니까 애 보기 싫은 눈치 하지 말구요. 오죽해야 할아버지한테 애를 맡겼겠어요. 딱해라. 참 점심요기는 하셨수?
고구마나 두어 개 드리리까? 뭐든지 잡수셔야 허리를 펴고 애도 봅니다요.”
“걱정도 팔자야. 동냥자루 도루 달래면 될 걸 웬 걱정이야.”
노인이 또 밉상을 떨었다. 그러나 맹범씨는 그 동안에 속으로 노인의 일자리뿐 아니라 아들 며느리의 일자리까지 다 마련했으므로 여유 있게 웃으면서 물었다.
“노인장,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수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궁상 작작 떨고 어여 가봐요.
“노인장의 소원은 뭐유?”
“내 소원? 왜 들어줄라우?”
노인이 조롱하는 듯 시비하는 듯 물었다.
“어찌 들어줄 수야 있겠소만 늙은이끼리 서로의 소원을 알아두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흥, 난 당신 소원 알고 싶지도 않은데. 내 소원은 말야, 저놈의 아빠뜨나 읎앴으면 좋겠어. 우리집이 이래 봬도 정남향판인데 저놈의 아빠뜨 때문에 해가 들어야지. 앞으로 날은 점점 추워질 텐데 햇빛 뺏긴 게 생각할수록 억울하단 말야.”
“노인장, 노인장은 디오게네스를 알고 있었구먼.”
노인의 뜻밖의 대답에 맹범씨는 한편 놀라고 한편 이렇게 반색을 했다.
“내가 누구네를 안다고?”
맹범씨가 하도 반색을 하는 바람에 노인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디오게네스 말요. 디오게네스.”
“누구네라구? 되기네?”
“디오게네스.”
“여보 마누라, 되기네가 누구네지?”
노인은 드디어 아내에게까지 구원을 청했다.
“글쎄요. 잘 생각나지 않는데요.”
“그럼 노인장은 정말 디오게네스를 모른단 말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걸.”
“거 참 이상하다.”
“뭐가 그렇게 이상해요?”
“디오게네스도 모르구서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가 있단 말요. 그런 명답을 말요?”
“내 원 참, 별꼴 다 보겠네. 되기네를 모르면 그럼 어떤 대답을 해야 한단 말이요.”
“그야 우리네 상식으로야 감히 저 아파트 없앨 생각을 어떻게 하겠소. 이 천막집 없애는 게 훨씬 쉽지, 그게 순리구.”
“아니, 이 영감이 듣자듣자 하니 누굴 약을 올리러 왔나, 염탐을 하러 왔나. 말도 못 해, 말도. 그러니까 소원이지. 이 늙은 거렁뱅이야 썩 꺼져라. 퉤퉤, 오늘 재수 더럽다, 더러워.”
독이 머리끝까지 오른 노인이 아까 아이를 씻긴 대야의 구정물을 냅다 맹범씨한테 끼얹었다. 엉겁결에 도망을 치면서 맹범씨는 물벼락을 맞아 싸다고 생각했다. 디으게네스라니, 자신의 유치한 망발이 생각할수록 닭살이 돋을 것처럼 혐오스러웠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집이 어딘지 아기를 우유라도 한 병 사 멕여야겠습디다. 시상에 배가 얼매나 고픈지 먹는 거라면 환장을 해쌓는.”
그 동안에 정이 들었는지 여자가 도망치는 맹범씨한테 이렇게 악을 썼다. 그러고 보니 열두시에 우유 반병 먹은 건 다 넘기고 그후 변변히 먹은 게 없었다. 고구마 얻어먹던 데를 떠나니까 아이는 등에서 몸을 비틀면서 기색을 하는 소리를 냈다. 우유를 사 먹이라는 귀띔이 고마워서 맹범씨는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맹범씨는 친구네를 의식하고 가까운 아파트 단지는 피해 아직 택지가 조성 안 된 ‘재개발 지역’ 이란 큰 글씨를 아치형으로 써불인 이웃 동네 쪽으로 갔다. 곧 갈아엎을 동네라 집 같지도 않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좁은 골목도 꼬불탕꼬불탕했다. 그러나 구멍가게는 자주 눈에 띄었다. 이왕이면 깨끗한 구멍가게를 고른다는 게 모주꾼같이 생긴 남자들이 몇 명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제법 큰 가게를 기웃거리게 됐다. 냉장고도 갖추어져 있었고 팩에 든 생우유가 이백원이라고 했다. 꽤 큰 펙이어서 맹범씨가 먼저 목을 축이고 나서 컵을 하나 빌렸다.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아이는 젖꼭지 없이도 잘 마셨다. 가끔 사레가 들려 킥킥대다가도 울지도 않고 다시 허겁지겁 컵에 달려들곤 했다. 그럭저럭 한 컵의 우유를 다 마신 아이는 좌판을 짚고 서서 이것저것 장난을 하려고 했다. 주인남자는 연탄난로에서 부글부글 꿇는 냄비를 열고 젓갈로 그 안의 제육 덩어리를 찔러보다 말고, 원 녀석 잘생겼다 하며 씽긋 웃는 게 마음 좋아 보였다. 맹범씨는 주인의 인심에 힘입어 거기서 잠깐 쉬기로 했다.
“영감님, 막걸리 한잔 하십시다.”
우락부락한 젊은이가 플라스틱 컵에 부연 막걸리를 가득 부어서 맹범씨한테 불쑥 내밀었다.
“아니, 아닙니다요.”
맹범씨는 막결리가 얼마나 비위생적이라는 데 겁을 먹는다는 게 그만 젊은이에게 너무 공손하게 쩔쩔매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단 자초한 터무니없는 저자세는 쉬 번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사양 말고 쭉 마셔요.”
딴 모주꾼들도 합세를 한다. 여기서 비위생이라는 핑계로 사양한다면 아마 디오게네스보다 더 큰 망발이 되리라.
“아닙니다요. 술을 한 방울도 못 합니다요.”
맹범씨는 이렇게 뒤늦게 마땅하고 무난한 변명을 생각해 냈다.
“술은 한 방울도 못 한대.”
“술도 못 하는데도 늙게 저렇게 되는 수가 있나.”
“딴 짓을 했겠지, 뭐. 노름이나 계집질이나.”
저희끼리 이렇게 수군거렸다. 주인이 제육을 꺼내 도마도 없이 비닐을 깐 좌판에 놓고 쑹덩쑹덩 썰기 시작했다.
“어째 비계가 좀 적은 것 같다.”
“글쎄 비계가 두툼해야 우리같이 먼지 마시는 놈들 목구멍이 미끄덩 씻겨내려가는데.”
다 썰기도 전에 소금을 꾹꾹 찍어 먹으면서들 하는 소리였다. 맹범씨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한 식욕으로 눈앞이 다 어질어질했다. 주인남자가 제육을 따로 몇 점 담아서 맹범씨 앞으로 넌지시 밀어놓았다. 맹범씨는 체면불구하고 잘 무른 제육을 아귀아귀 먹었다. 제육이 그렇게 맛있는 줄을 여직껏 모르고 살아왔다니.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게 맛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맹범씨가 제육을 하도 맛있게 먹자 먼저 막걸리를 권한 젊은이의 얼굴에 문득 연민이 스치더니 제육을 몇 점 더 보태주었다. 그제서야 맹범씨는됐습니다요, 잘 먹었습니다요, 하고 인사를 차릴 만큼 제정신이 돌아와 있었다.
“아이고 이 녀석 봤나, 일을 저질렀네그려.”
주인남자가 난처한 얼굴로 아이를 안아올렸다. 그 동안 소리가 없길래 잊고 있던 아이가 좌판에 있는 카스테라 팥빵 따위를 몇 개 홈빡 짓이기며 놀고 있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 녀석이 기어코 큰일을 저질렀네. 염려마십시오, 주인어른 도합 얼맙니까? 제가 물어드리죠.”
주인이 비닐봉지를 헤어보더니 꼭 삼백원어칩니다, 고 했다. 그때 맹범씨 주머니엔 딱 삼백원이 남아 있었다. 십원만 모자랐어도 망신당할 뻔했다 싶은 마음에 맹범씨는 오랜만에 떳떳한 얼굴로 그걸 털어놓고 아이를 업었다. 주인남자가 아이가 못 팔게 망쳐놓은 빵과 카스테라를 기저귀 봉지에 꾹 찔러주면서 큰 적선이라도 베푸는 얼굴을 했다. 맹범씨는 거기 있는 모주꾼들한테 연방 허리를 굽신거리며 그 가게를 떠났다. 돼지고기 때문인지 허리에 한결 힘이 생겼다. 그제서야 등에서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고난과 수모를 같이한 외손자의 체온과 숨결이 맹범씨의 가슴을 편하게 했다.
지하철역 창구엔 여전히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그 끄트머리에 줄을 서려다 말고 맹범씨는 무일푼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철로 이백원 거리가 몇리쯤 되는지 어림짐작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어떤 사람의 표정엔 불쾌감이, 어떤 사람의 표정엔 무관심이 어리는 걸 맹범씨는 색깔을 구별하듯이 명료하게 알아보았다. 자는 아이는 깨어 있는 아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자꾸만 옆으로 뭉그러져내렸다. 그는 아이를 힘겹게 추스르며 역내를 마냥 헛되이 서성댔다. 문득 그의 모습이 역내의 대형 거울에 비쳤다. 저 늙은이가 누굴까. 저 늙고 초라하고 더럽고 비굴한 늙은이는 누구란 말인가. 그 늙은이가 그가 매일 아침 거울에서 봐온 품위 있고 건강하고 자신 있게 늙어가는 자신이란 말인가. 구내의 전자시계는 세시 사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그건 돈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금 필요한 이백원의 가치를 그가 여직껏 쓰거나 모아 온 재산과 같은 단위로 헤아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오랫동안 직시하고 나서 창구 앞에 줄선 사람들한테로 갔다. 그리고 떨리는 두 손을 모아 구슬픈 소리로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를 불쌍히 여기시어 차비를 좀 보태주십시오. 집은 먼데 차비가 떨어졌습니다. 이 늙은이와 등에 업힌 이 어린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한 푼만 보태주십시오.
맹범씨는 버스나 전철을 타본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정말로 돈이 없거나, 노망기로 정거장에서 구걸하는 노인을 구경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걸은 그에게 썩 잘 어울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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