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 모임 전반에 관한 질의 응답
■ 제9차 2010년 소공동체 전국모임 참가자들은 마지막 날인 5월 26일 대강당에 모여, 위원장 주교와 세미나 발제자와 논평자들이 등단한 가운데 소공동체에 관해 궁금한 사항들을 질의하고, 답변을 들었다. 다음은 대표적인 질의 응답들을 녹취한 다음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이다.
1. 소공동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소공동체라는 타이틀을 접하고 교육을 받게 되면서 기초 공동체라는 취지가 구역반 공동체인가 아니면 가정 공동체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후자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가 더 발전하려면 가정 사목이 더 중점적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이병호 주교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 동구권 교황이다. 이분은 인류가 어떻게 할 것인가? 재임 시작부터 4년 동안 남녀 관계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갖고 노력하였다. 즉, 부부를 중심으로 전세계가 변화하기를 꾀하였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 혁혁한 공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업적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남녀, 부부의 공동체를 그 원동력으로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가장 기초가 되는 공동체는 부부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를 통해 이 세상의 일치와 변화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 정월기 신부
-소공동체는 육화의 신비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고 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이야기하고 있다. 소공동체의 마지막 종착역은 가정 공동체이다. 즉 가정, 소공동체, 본당 공동체가 바로 핵심이다.
2. 소공동체가 젊은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소공동체는 성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이 방법론을 전달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전원 신부
-청소년 사목 당시 구역 중심의 두레 모임을 실시하였다. 청소년들과 성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 모임을 실시해 볼 필요가 있겠다. 효과가 있다고 판단된다. 사목 구조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 조재연 신부
-청소년 사목과 소공동체 사목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것 같다. 20년 동안 청소년 사목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청소년 사목은 사라지는 사목이라는 것이다. 즉 20년 후에나 그 결과, 그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청소년 작은 공동체 운동을 실시해 본 바 있다. 아이들은 하려고 노력했는데 어른들이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즉 주일학교 체제로 다시 회귀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다양하고 좋은 방법들을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3. 소공동체에 대한 용어 정립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공동체 이름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 전원 신부
-소공동체(SCC)보다는 기초 교회 공동체(BEC; Basic Ecclesial Communities)라는 말이 더욱 의미가 있겠다. 교회의 소공동체 정신을 담아 표현해야 하는 공식 문헌에는 SCC/BEC로 동시 표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말 어감이 소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소자(小者)는 작은,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작은 자임을 고백하는 사람, 작은 자들을 가장 앞자리에 두는 공동체가 바로 소공동체라는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에 동감하며, 소공동체의 내면적인 정신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근본적인 측면을 먼저 생각하고 이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 교구는 지침을 내렸는데도, 본당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도자와 사제와 평신도의 수직적 관계가 90%이다. 요즘은 평등시대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평등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교구의 1993년도 사목 지침에서도 소공동체 사목을 지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년 동안 본당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것을 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구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 박문수 박사
-유교 문화 때문에 더욱 그러한 모습이 불거진다. 유교를 전혀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개인주의 문화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평등의 모습을 체험하고 살고 있다. 이런 문제는 평신도들에게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몇 년 사이에 평신도들이 교회에 대해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러한 모습이 앞으로 지속되면 교회의 모습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요즘과 같이 역할이 모호한 상황에서는 교구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이병호 주교
-그래서는 안 된다. 주교가 말했으면 따라 주어야지…. 밖의 권력은 구속력이 있으나, 교회에서는 구속력이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교가 좋다고 판단해 그렇게 하도록 결정했다면 따라 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줘도 고맙다. 그렇게 생각한다.
5. 교회에서는 상향 소통이 안된다. 의견들이 자주 묵살된다.
반, 구역의 건의 사항들이 사목회에 올라가도 대부분 묵살된다. 올라간다 하더라도 한두 번 하고 만다. 세포에서부터 고충, 건의가 올라가면 반드시 수집해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전원 신부
-자치회를 하고 있다. 그러면 바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반장들이 하는 이야기들, 반구역 현황을 바로 잘 들을 수 있다. 교구 구조의 변경은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활동, 공유 구조이다. 수직 구조에서 수평적 조직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실제로 조직에 대해서는 본당의 소공동체적 사목 구조는 앞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6. 우리 교회는 ‘끼리의 교회’, ‘냉담의 교회’이다. 개선 대책이 있는가?
소공동체 운동이 한국 교회 발전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 가톨릭 교회가 두 개의 교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끼리의 교회이고, 냉담의 교회이다. 현재의 소공동체 사목 구조 내에서 냉담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실질적으로 먼저 냉담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다음, 지역 내의 소공동체 운동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실제로 그에 관한 많은 실증적 방법, 성공한 방법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그중에서 내가 속한 지역에 걸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실행해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똑같은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때는 피드백을 해보면 될 것이다.
7. 리더십에 대해 다루었는데, 능력 있는 지도자라면 혼자서 결정해도 좋은 것인가?
●소공동체는 혼자만의 의견이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8. 본당들의 경우 소공동체 사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평신도는 물론이고, 사제들의 소공동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히 소공동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남성들이고, 남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대책이 있는가?
● 정월기 신부
-우리 교회의 현실은 심각한데도 아무도 그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대충 살아 간다. 소공동체 사목을 하니까 이 문제가 가시화되고, 그러니까 소공동체를 버리려고 한다. 모든 이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직분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그에 걸맞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 본다.
8. 소공동체가 들어오면 레지오 마리애는 사라진다고 한다. 정말인가?
공동체는 민주주의이고, 조화라고 생각한다. 레지오 마리애와 소공동체가 협력하여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 이병호 주교
-교회는 민주주의 안 될 것이다. 독재도 아니요, 실로 오묘한 주의다. 민주주의적인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엄밀히 말하면 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는 주의이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신자들이 되었을 때 과거의 관습을 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하는 문제와도 비슷하다. 마지막에는 성령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늘 명심하자. 민주주의와 교회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성령 안에서 찾아야 한다. 잘못 기능하면 민주주의보다 못하다. 상식적인 면보다 못하게 된다. 성령 안에서, 기도 안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게 된다.
9. 그 외 여러 가지 질문들이 이어졌다.
예를 들면, 빈부의 차이 때문에 어렵다. 소공동체의 지향은 작은 자(가난한 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신자들이 노년층, 일용직인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성 참여 증가를 위한 소공동체 전략이 있는가?
● 전원 신부
-본당 안에서의 비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두가 다 소외되지 않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부조화 조직이었던 것을 수평적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 박기주 신부
-1990년대에 강 주교님과 돌아가신 김 추기경님은 비전을 잘 보신 분인다. 당시 소공동체가 낯설었다. 그 당시 현실이 소공동체가 뭔지도 모르는데 2000년대를 향해 소공동체를 치고 나간 것이다. 솔직히 본인도 2000년대 복음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주교님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룸코(성서사도직) 복음 말씀을 시작한 오스왈드 주교님을 초대했다. 오스왈드 주교팀이 와서 피정을 제시했지만 본당 신부님들이 거부하였다. 어제 강 주교님이 교회가 뭐냐고 하셨다-예수님께서 직접 만드신 교회가 어떤 교회상을 갖고 가느냐는 것이다. 십년 동안 해오면서 신부님 때문에 안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느님 말씀은 다 좋은데 왜 안 따라가는가?
실제로 본당에서 복음 나누기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해서 성서 40주간으로 바꿨다 복음 나누기를 해도 안되더라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어느 본당에서는 시작도 못했다. 떠날 때 하느님 말씀을 읽도록 시켜 준 것에 대해 신자들은 감사하더라. 또 다시 하느님 말씀을 접하도록 돕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지 않을 때 공동체는 힘들다. 말씀의 힘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되지 않는다. 성체의 사랑과 말씀이 살아있는 것이 바로 소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
소공동체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소공동체를 살아가는 것이다. 겸손하게 소공동체 정신으로 소공동체를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