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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30917 주일오전예배/김동건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여호와께 피하는 자 |
성경 | 시편 11:1-7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시편 11:1-7)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녹취자료 |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사람의 말을 들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신 겁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는 예배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준과 수준이 무너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충만하게 담는 예배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를 통해 현장에 사실적으로 응답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놓치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수준으로 이해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방법이 있습니다. 믿는 겁니다. 계산하고 따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수준과 기준에 맞추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하고 안 맞는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거예요.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을 모릅니다. 나중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도 부모님의 생각과 사랑을 모르듯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과 입장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것 저것 판단하거나 사람의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임하고, 우리 교회에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움직여 나가십니다.
구약에 이러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의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이 도피할 수 있는 도피성 제도가 있었어요. 우리가 살다보면, 살인이 큰 죄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돌을 아무데나 던졌는데 동물로 비유하자면 개구리가 죽는 것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의가 아닌데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였습니다. 자, 이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잡혀서 영적 문제가 이미 와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도피성이 필요해요. 그 현장에 도피성되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가 나와 상관없이 계속 온다는 사실? 몰라요. 영적인 근본이 무너져서 온 문제, 죄인데, 사람들은 그 죄가 내 죄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을 떠나고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잡힌 근본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 현장은 모릅니다.
요즘 복음을 전하면 매체나 영상이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나도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고 말해요. 예전에는 거절했는데 요즘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서 무시하고 가버립니다. 하나님을 도무지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도피성 같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모든 현장의 불신자의 영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현장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중요한 분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현장이 살아나요.
여호와께 피한 다윗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셨어요. 아!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다 산다! 오늘 어떤 상황과 고민, 걱정을 가져오셨습니까? 하나님앞에 피하면 되요. 도피성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됩니다. 아무 문제되지 않습니다.
1. 불신앙과 시험만 주는 다윗의 사람들
다윗 주위의 사람들은 믿음이나 복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타깝지만 불신앙과 시험만 주는 사람들이었어요. 자 오늘 1절에 보니까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가? 다윗이 하나님께 피하려고 했더니 사람들이 믿음이나 복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같이 도망가라는 불신앙을 말하는 거예요. 나뭇가지에 새가 앉았을 때 사람들이 옆에 가면 파다닥 하면서 도망가잖아요. 혼비백산하고 가잖아요. 다윗아! 도망가. 하나님께 뭘 피해? 새처럼 도망가라니까!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위기를 피해. 그 사람이 죽든지 말든지 밟고 일어서! 인본주의 사용해. 불법을 써서라도 도망가! 갖가지 얘기들을 복음 가진 저와 여러분에게 얼마나 말하는지 몰라요. 성경의 이야기이지만,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배 속에서 은혜받고 복음으로 살고자 결단할 때 사단은 이걸 알고 주변의 모든 요소를 시험으로 줍니다. 그러니까 위기 상황까지 조성해요. 2절을 보니까요.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마음이 바른 자가 누굽니까. 구원받고 복음가진 자를 자꾸 위기 속으로 상황을 조성하는 겁니다. 부채질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죠? 불신앙을 자꾸 조성하죠. 불신앙을 조장합니다. 사실 불신앙이 맞는 말이 많습니다. 사실이에요. 근데 그 사실의 말로 우리의 영이 살아나지 않아요. 그래서 늘 맞는 말 바른 말 불신앙의 말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영은 피폐해집니다. 사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시험과 불신앙을 많이 주지 먼 사람은 주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다윗을 힘들게 했습니까. 친자식인 압살룸. 양자가 아닙니다. 친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막 따라다니는 거에요. 저주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다.
사울이 천오백명의 군대를 끌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들어가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난거에요. 이정도로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불신앙과 시험을 줍니다. 저도 이제 집사람하고 이런저런 포럼을 하고 하면 정말 중요하게 영적으로 결단하고 응답받는 내용은 대화가 안되더라고요. 뭔가 되는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응답받으려고 하는 그 영적 비밀은 대화가 안돼요.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이럴수록 더욱더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구나. 결국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구나.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얼마나 불신앙을 조성합니까. 그런데 그게 맞는 이야기라니까요. 그 맞는 얘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수 없는 거예요. 지적을 하고 율법적이고 바르게 하라고 얘끼는 해주지 그 사람이 변화도 안될뿐더러 영이 피폐해지는 겁니다.
또 이런말들을 합니다. 얼마나 설득력있는 말들을 하는지 몰라요. 예수 믿는다고 밥나오냐, 돈나오냐.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냐.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는거다. 이런얘기를 하고 추상적이다, 허상이다, 공상이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합니까. 현실성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요. 믿은을 가지고 현장에 나갔는데 영적으로 데미지를 계속 입는 거예요.
이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이 오늘 예배에 나오셨습니다. 오늘 예배가 그냥 예배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드린 예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한 주간 데미지 입은 불신앙과 시험을 오늘 다 내려놓고, ‘아니다. 나는 그래도 다윗처럼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되겠다.’ 이 언약을 붙잡으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에 보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 바라기만 하면 추상과 허상과 이상이 맞습니다. 근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얼마나 하나님 말씀이 정확합니까. 바라는 것들의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기도했더니, 안보이지만 영적사실로 실상으로 왔다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 보이지 않는데 영적 증거가 온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상과 추상과 현실성이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현장에 복음이 증거되고 흑암이 꺾이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언약을 잡고 현장에 돌아가야 해요.
2.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다(4절)
자, 그랬더니 1절에요. 다윗이 하나님께 피했죠.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다윗은요 4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늘도 보좌의 축복으로 시공간의 초월로 저와 여러분들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영적인 비밀을 다윗이 알았던거예요. 알았습니다. 보좌의 축복을 알았던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전의 실체에 대해서 알았다니까요. 오늘 성전을 통해서 주시는 보좌의 축복이 가정과 개인과 현장에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전의 축복입니다. 성전을 통해서. 성전의 실체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도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신앙과 시험을 주는 사람들의 얘기를 닫아버리고 하나님께 피했다니까요.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축복하십니다. 그래서요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어요. 다윗은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항상 주위에는 사무엘 선지자, 나단 선지자, 선지자들이 항상 있었어요. 하나님은요, 선지자 주의 종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 붙잡고 한 주간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축복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적으로 훌륭한 게 아니라 그래서 주의 종이 귀하다는 겁니다. 인간적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의 종을 통해서 영적 질서를 통해서 말씀을 주신단 말이에요. 다윗은 훌륭하지만 다윗이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선포했어요. 그 말씀을 아멘으로 듣고 다윗이 항상 기도의 비밀, 복음의 비밀 하나님께 피했던 인물이 누굽니까? 다윗이에요.
오늘 다윗처럼 다시 한번 오늘 강단의 메시지를 붙잡고 강단의 메시지는 한 주간 살아갈 영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없듯이 영적인 우리가 이 영의 양식을 우리가 담지 않으면 한 주간 살아갈 수 없는 거예요. 당연한겁니다 이거는.. 한 주간 어려움, 문제, 고난, 사건, 사고.. 나에게 영적인 힘이 없어요. 영적인 양식이 없어요. 하나님 말씀이 내게 없어요. 그럴 수 밖에 없죠. 하나님 말씀을 주중에 듣지 않고, 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떻게 내 영이 하나님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예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깨달으시길 축원합니다. 그 말씀을 붙잡으셔야 돼요. 길게 잡지 마세요. 한 단어, 한 문장..
그래서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감찰하십니다. 악인이 무조건 망한다! 그 얘기가 아니에요. 악인은 하나님 안 믿으면 저주 받는다! 그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 6절에 보니까요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흑암과 저주와 재앙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물을 딱 옭아 매는 겁니다. 빠져나갈 수 없도록.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유황과 태우는 바람, 불이 뭡니까? 배경 자체가 흑암과 저주와 지옥 배경이라는..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악인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돼 있어요. 사단의 12가지 문제가 있잖아요. 그 문제를 통해서 계속 사단이 옭아 매는 거예요.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지금 뉴스나 현장이나 많은 사건 사건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지금 이 시대가 흑암과 저주의 시대인지 몰라요. 막 조그마한 것도 참지 못하고요, 인내도 없고요, 어떤 예의도 없고요, 기본적인 에티켓도 없고요, 상식도 없고요. 그냥 화만 내고.. 그냥 연세가 드시든 어리든 간에 자기한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그냥 막 소리 지르고 싸우고 이런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다윗처럼 여러분들을 부르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잘 몰라서 그렇죠, 한 주간 정말 영적 생활 안 되고 힘들고 내가 구원받았는지 구원 안 받았는지 헷갈릴 정도로 너무 힘든데.. 괜찮습니다. 오늘 다시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으시면 돼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힘을 얻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성도가 되면 되는 거예요. 자, 그리고요 하나님은 재앙의 잔의 소득에 임하도록 복음 없는 자를 이 배경 속에 몰아가시지만 의인의 복음 가진 자는 좋아하십니다. 왜냐?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그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으로 살아계심을 체험하도록 구원과 축복을 체험하도록 하나님이 복음 가진 자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오늘 7절에 보니까요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의로우사 의로운 일, 하나님의 자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축복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피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피하는 자의 축복
자, 그러면 하나님께 피했더니 하나님이 어떤 응답을 주셨나요? 우리가 또 그것을 봐야겠죠. 오늘 하나님께 피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절대 배경인줄 믿습니다. 돈이 배경입니까? 주위의 사람이 배경입니까? 그 배경은 영원하지 않아요. 영원한 배경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이 영원한 배경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 배경입니다. 나 중심, 물질 중심, 성공 중심 아무리 세상 배경과 사람 의지해도 그때뿐이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배경이신, 천국의 소망과 배경이신 오직 하나님께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오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18편 1-2절을 보니까, 오늘 성시 낭독을 했죠. 하나님은 나의 힘이다. 나의 요새시고 나의 반석이고, 나를 건지시는 자이시고, 피할 바위시고, 방패고, 구원의 뿔이고, 산성이다. 누가요?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 축복이 여러분의 개인과 현장에 임해야 해요. 시편 23편 1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다. 그래서 내가 부족함이 없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2장 5절에 보니까 연회장에 포도주가 떨어졌어요. 그랬더니 예수님의 육신적인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시든지 아멘하고 순종해라‘ 예수님이 항아리에 가득 물을 담아서 연회장의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라고 말해요. 갖다 줄 때, 먹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주인으로 모실 때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데도요 주인으로 안 보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내 이익 타산 따지고, 어떤 내 계산 따지고, 나에게 이게 손해가 있나? 없나? 따지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손님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오늘 주인으로 모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인으로 모셔야 돼요. 그럴 때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빌립보서 3장 7절-8절에 보니까 그 대전도자 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어요. ‘우리가 아는 그 고상함 그 고상함이 그 고상함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가장 고상한 거다.’ 그리스도 외에 다 배설물로 여겼어요.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때 당시 로마 시민권, 강대국의 시민권, 어마어마한 파워가 있는 시민권, 성경에 그냥 너무 능통합니다.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 지금 하버드, 카이스트, 옥스포드 그런 거 상대 안 됩니다. 엄청나게 배운 사람이에요. 근데 그것을 내려놓기 쉽지 않거든요. 그걸 내려놓고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게 고상한 게 아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여러분들이 아는 그 복음이 최고의 지식인 줄 믿습니다. 어떠한 것도 비교 안 돼요. 그래서 하나님은요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말 잘하고, 많이 뭔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쓰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복음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이 그 영혼을 보시고 사용하시는 거예요. 내가 많이 가졌고 배웠는데도 그 속에 그리스도가 없다? 그럼 하나님은 쓰시지 않습니다. 근데 부족하고 저처럼 말을 또 잘 못하고, 단순하고 그래도요 여러분들 속에 복음이 있냐? 없냐? 하나님 그걸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께 피해야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니까, ‘세상이 감당 못하는 영성’ 여러분들 세상이 감당 못합니다. 여러분들을. 믿음의 사람은 세상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거예요. 불신자를 뛰어넘고 능가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그 영성,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영성, 그게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거예요. 세상에 감당 못합니다. 복음 가진 자는 그걸 알고 어떤 문제와, 어려움과, 내가 믿음이 없어지고, 한 주간 동안 내가 불신자인지 성도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씀을 놓치고 살아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피할 때 여러분들에게 관심 가지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오늘 찾고 계신 거예요. 그 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들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성도가 돼야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렘넌트가 돼야 돼요. 하나님께 피하는 중직자가 돼야 됩니다. 그렇다. 나한테 문제가 있지만 나는 오늘부터 하나님께 피하는 성도가 되겠다. 여러 가지 계산하고 따지지 말고 잘했느니 잘못했니 그걸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보다 앞선 건 내려놓고 나는 오늘도 언약 붙잡고 복음 붙잡고 하나님 의지하겠다. 그 한 사람을 오늘 찾고 계신다니까요. 하나님은..
하나님께 피했더니 이제 응답이 오는 거예요. 창세기 39장 2절에 보니까 요셉이 나옵니다. 2절을 읽어보기 전에 뭐라고 그랬냐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함께한다. 이거는 형통을 넘어서 진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 함께한다는 게 하나님한테는 쉬운데 우리한테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모든 문제는 문제 안 되고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한 그 형통한 축복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해야 돼요.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나에게 역사하시는구나. 그럴 때 한계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영적 상태가 얼마나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영적 무기력했다가 영적으로 텐션 올라갔다가... 얼마나 이 업다운이 심합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어떤 시간분초, 아침, 점심, 저녁, 틀리고요. 날씨 계절 따라 틀리고요. 시간 따라 틀리고요. 얼마나 왔다 갔다 합니까? 영적 상태가요. 거기에 한계가 없어져요.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그래서 잘못된 각인 뿌리 체질이 나도 모르게 바뀌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착각을 좀 하잖아요? 그리스도 믿으면 다 끝난다고 하는데 왜 내 문제는 안 바뀌고 그대로 있나? 어떨 때는 예수님 안 믿을 때보다도 더한 문제가 오는 것처럼 착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가문 가정에 오래된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가문 가정에 숨겨진 문제가 있어요. 또 그 당사자는 알지 못하는 영적인 문제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게 쌓여서 어우러져서 결혼하면 양쪽 가문에 합쳐져서 그 문제가 오는 겁니다. 그게 각인되고 뿌리 내려지고 체질 됐으니까 진짜 언약 붙잡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가문 가정에 여러 가지 상황이 있지 않습니까? 또 다음 주면 이제 우리가 추석 명절을 지내요. 가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어마어마한 이런 것들이 몰려온다니까요. 각인 뿌리 체질로 와요. 나는 뭔지도 모르고 당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사단이 결박되는 겁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시킬 때요, 도무지 문제가 안 됐어요. 이 문제만큼은 견고해서 도저히 이 애굽나라를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상과 종교처럼 비스무리하게 다 따라 했습니다. 개구리, 이, 물이 피가 되고. 우상과 종교로 비슷하게 따라한 것 같아요. 9가지까지는. 근데 10가지, 한 가지는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뭘 따라하지 못했습니까? 어린 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발랐더니 죽음의 사자가 가서 그걸 보면서 뛰어넘었잖아요. 그게 뭡니까? 유월절이에요. 어떠한 문제도 견고한 진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무너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줄 믿습니다. 우상과 종교 갖고 안 됩니다. 열심으로 안 됩니다. 문제가 있는데 열심히 해 갖고 애굽에서 빠져 나와 보자. 종교와 우상으로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율법으로 따져가지고 우리 빠져나오자.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를 때 뛰어넘어가는 거예요. 저주와 가문의 문제와 여러분들의 모든 상황이 뛰어넘어가는 거예요. 이걸 알았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다니까요. 문제가 딱 있으면. 인본주의 쓰지 않았어요. 바로 피했어요. 복음으로 언약으로 예배로 전도 훈련으로 우리가 응답으로 피했다니까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여러분들 모든 현장을 비추고 죽었던 나의 모든 영적 상태가 살아나는 오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모두 다 살아나야 돼요. 견고한 진이 무너져야 돼요. 그럴 때 여러분들이 처한 현장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복을 받는 거예요. 7명의 렘넌트를 한번 볼까요? 7명의 렘넌트가 대단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7명의 렘넌트를 통해서 그 현장에 모든 복을 다 허락하셨어요. 때로는 예수님 믿는다고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또 지탄받기도 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요 현장은 개인은 가정은 여러분들 때문에 돌아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을 몰아가실 거예요. 그걸 뭐라 그래요? 플랫폼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응답을 몰아가실 줄 믿습니다. 왜냐?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피하는 자니까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여러분들이 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복음 누리고 복음 증인 되라고 하는 겁니다. 복음이 이해되어야 복음이 체험 되잖아요. 아니, 공부가 내가 방정식이나 근의 공식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공부가 어떻게 재밌습니까? 그것이 풀어지는 맛이 있어야 체험되면은 공부가 누려지는 것처럼 복음이 이해되고 알고 내가 체질이, 뿌리를 내려야 복음이 즐겁고 기쁜 거에요. 그러면 체험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나도 모르게 기쁨이 오고 즐겁고 응답이 오니까 누려지는 것이죠. 그래서 그 복음이해, 복음체험, 복음누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복음 증인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야,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요셉처럼, 보디발의 가정에서 이야 요셉을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앞으로 미래 시대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옵니다. 저 어릴때만 해도요, 뭐 여기 어른분들이 계신데 조금 죄송하지만, 저 어릴 때만 해도 예수 믿으세요 하면 다 따라왔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전도사님이 보니까 이만한 북을 가지고 딱 메고서는 딱 치면서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하고 그랬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에는 따라왔어요. 지금은요 예수 믿으라고 하면은 싫어합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완전히 무슨 미개한 사람처럼 쳐다본다니까요. 자, 그렇다고 할 때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이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뭐 밖에 없을까요? 비유 맞추고 잘 해주고 칭찬해주고.. 안됩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볼때에는 모든 교회와 영적인 부분을 가진, 우리 복음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옵니다. 하나님 앞에 무조건 엎드려야 해요.
그래서 미래의 선교는요, 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냐? 기도를 안 하느냐..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되느냐? 안되느냐.. 그 싸움이에요. 다시 한번 사도행전 1장 14절에 오로지 기도에 힘써서 우리가 다윗처럼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여호와께 피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늘 나아가고 하나님께 피했는데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로, 바른 말로.. 불신앙과 시험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이 시간에 알게 하시고 나의 현장, 우리의 현장에도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가려고 하는데, 너무 걸림돌이 많음을 이 시간에 고백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귀를 다 닫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주간도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추상이 아니라 실상으로 와서 응답 가지고 복음의 증인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님들 정말 복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께서 영적인 힘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 피하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도록 이 시간에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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