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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이 땅 어느 곳인들 이념 갈등의 흔적이 없으랴만, 특히 남한의 최북단 인공호수인 파로호는 ‘화천호’라는 본명조차 바꿨을 정도로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그리고 진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파로호를 껴안고 있는 화천·양구 접경지역은 요즘도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올 듯 말 듯 애태우던 봄이 성미 급하게 훌쩍 지나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 이 계절에 파로호로 발길이 끌린 이유는, 요즘 천안함 때문에 남북 관계가 위태롭지만 결국은 동족상잔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적으로 이뤄야 할 남북통일을 간절히 기원하기 위해서다.
파로호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던 전투의 현장
현재 동홍천까지 뚫려 있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르다. 이어 춘천나들목으로 나와 곧장 46번 국도를 타고 배후령을 넘은 뒤 461번 지방도를 연결해 간동면을 거치면 파로호에 닿는다. 구만리 선착장 근처엔 파로호 안보전시관이 있다.
파로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북 분단과 밀접한 호수로 각인돼 있다. 이 땅에서 이 파로호만큼 온몸으로 남북 분단의 상흔을 껴안고 있는 호수도 드물 것이다. 호숫가에 서면 그 때의 아우성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1951년 5월, 국군은 중공군 제10연대, 제25연대, 제27연대와 해병 1연대를 화천저수지(파로호의 옛 이름)에 수장시켰다. ‘파로호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가 끝난 뒤 호수 일대는 중공군 시체로 뒤덮여 국군이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내면서 전진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와서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 명명하고, 친필 휘호까지 썼다. 이름의 유래조차 전장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은 아무래도 파로호의 운명인 모양이다.
한편 최근 시조시인의 고향인 동촌리에 태극문학관(033-440-2228, www.itaegeuk.com)이 문을 열었다. 그간 달랑 시조비 하나만 보고 스쳐가야 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시조비가 있는 안보전시관 앞에서 승용차로 20분쯤 걸려 도착한 태극문학관에선 월하의 작품 세계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 내친 김에 월하문학관에서 추천하는 시조 한 번 들어보자. 지난 봄의 추억이 아랑아롱 솟아날 테니.
‘아롱아롱 뻗어난 꿈 / 금잔디에 얹어 두고 / 아스라 하늘 저편 / 연처럼 띄우는 정 / 하고한 세월을 비껴 / 불러보는 이 봄아 // 고사리 손 여린 줄기 / 망울망울 터지는 소리 / 아플사 보듬어서 / 보조개 짓는 모습 / 헝클은 길손의 가슴에도 / 푸른 빛이 고이네’
-시조시인 이태극의 ‘이 봄아’
숙식>> 파로호 전시관 부근의 구만리선착장(033-442-3127)엔 호수횟집(033-442-3232), 뱃터횟집(033-442-2236), 서울횟집(033-442-5016), 파로호횟집(033-442-3123), 강변횟집(033-442-5007) 등 민물고기 전문식당이 있다. 잡고기·메기매운탕 소(2~3인분) 3만 원, 중(3~4인분) 4만 원, 대(4만~5만 원). 쏘가리회(1kg) 10만 원.
화천댐 하류의 구만교 부근에도 대붕회가든(033-442-5706), 평화가든(033-442-2660), 화천댐가든(033-442-6850), 비목쉼터(033-442-0322) 등 민물고기 전문횟집이 많다. 언덕위에 하얀집(033-442-0024), 어룡동민박(033-442-4409) 등의 숙박시설도 있다.
파로호 선착장에서 읍내 방향으로 4km 정도 떨어진 화천읍 대이리 평양막국수(033-442-1112)의 초계탕은 화천의 여름 별미. 2인분(기본) 2만5,000원, 3~4인분 3만8,000원, 닭무침 1접시(3~4인분) 1만5,000원, 막국수 1인분 5,000원.
평화의 댐
코흘리개 아이들도 평화통일 기원하는 명소
월하의 시조 덕분에 분위기가 제법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뿐. 다시 길손은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통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파로호 상류, 즉 북한강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해산터널을 지나서 만난 평화의 댐. 북한강 수계 최상류 댐인 화천댐보다 위쪽에 위치한 이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이 착공한 금강산댐(임남댐)이 유사시 수공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89년 건립된 댐이다.
북한의 수공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빠져 온 국민이 뜻을 담아 성금을 모았으나 이 댐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당시 집권층이 북한의 수공을 정략적으로 과장해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댐이 수량 조절 기능을 하면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평화의 댐이 ‘남북 분단의 비극적 상황에서 탄생한 희극적 냉전 구조물’인 것은 사실이다.
최전방에서의 어려움을 상징하던 군생활의 이 넋두리는 인제·원통 지역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 겪는 고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 군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인제·원통 병사들도 바로 이곳, 양구에 배치된 병사들이 나타나면 살짝 꼬리를 내렸다 한다.
지금은 양구가 오지 중의 오지라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양구는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이었다. 큰길이 지나갔으므로 강원 내륙의 산간지역이긴 해도 지금처럼 확고한 오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 때문에 남북 분단으로 접경지가 되면서 오지로 뒤바뀐 것이다.
해안분지의 분위기는 강원도의 여느 산골과 비슷하다. 논농사도 짓고,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최근엔 사과 농사도 짓는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해안분지에서도 사과 농사가 되는데, 심한 일교차 덕분에 당도가 최고란다.
해발 1,049m의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해안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5월 중순에 오른 을지전망대. 남녘의 산하는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했건만 아직 군사분계선 이북의 산하는 이제야 칙칙한 겨울색을 벗어나는 중이다.
눈 밝은 이들은 망원경을 쓰지 않고 육안으로도 북한군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는 직접 경작하는 밭에서 채소나 곡식을 키우는 북한군의 모습도 보인다. 남한의 전파를 막기 위한 철탑이 있는 무산 너머로는 금강산도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 배치된 해설사는 가칠봉의 내력부터 풀어나간다.
“저 왼쪽으로 가칠봉이 보이죠. 거기 네모 난 건축물이 있지요. 그게 바로 수영장입니다. 그곳에서 대북 심리전을 위해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하기도 했답니다. 1992년 이곳에서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했을 때 탤런트 이승연이 미스코리아 미로 당선됐답니다.”
가칠봉 수영장은 북한 쪽에선 탈의실이 보이도록 3면을 투명하게 했다. 초소를 지키던 북한의 젊은 병사들은 잠 못 드는 밤이었을 것이다. 이에 북한은 가칠봉에서 마주 보이는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 운봉(일명 스탈린고지, 해발 1,358m)과 매봉(일명 모택동고지, 해발 1,290m)에 있는 20m 높이의 폭포 아래에서 여군이 목욕하는 방법으로 남한의 미인계에 대응했다고 한다. 이런 일 때문에 그 폭포의 이름도 ‘선녀폭포’라 불렸다. 한 중년 남성이 망원경에 슬그머니 눈을 대고 선녀폭포를 한참 응시하더니 짓궂게 한 마디 던진다. “아직 추워서 그런지 오늘은 안 나왔네.” 남북이 대치된 비극적인 상황에서 펼쳐진 이 희극적인 미인계도 평화통일이 된다면 서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을지전망대다.
해안분지는 출입이 자유롭지만,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을 관람하려면 해안면 월산리에 위치한 양구통일관에서 출입허가서를 작성하고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입장료 어른 2,500원, 어린이 1,3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입장 시각 09:30~16:00. 문의 033-480-2674.
숙식>> 해안면 중심가인 현리에 있는 정주골한정식(033-481-6777)은 한정식 1인 1만 원, 2인 이상 주문 가능. 각종 산채 등 14가지 기본 반찬에 더덕·황태구이, 된장찌개가 올라온다. 시래기고등어조림 1인 8,000원. 남원식당(033-481-0804)은 더덕구이백반을 차린다.
현리에 동부여관(033-481-0687), 펀치볼민박(033-481-0878), 평화펜션(033-481-5672), 해안황토민박(033-481-8009, 6777), 박정자민박(033-481-8009) 등의 숙소가 있다. 곰취마을로 유명한 동면 팔랑리의 풀하우스펜션(033-481-0422)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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