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삼사당
난국재 이예환
1772(영조48)∼1837(헌종 3)
조선의 학자. 자는 치화(致和), 호는 난국재(蘭菊齋), 고려의 門下侍中(문하시중) 齊賢(제현)의 후손. 宋穉奎(송치규)의 문인. 學行(학행)으로 관찰사의 천거까지 받았으나 벼슬은 못했다. 文名(문명)이 있었다.
난국재집 [蘭菊齋集]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예환(李禮煥)의 시문집.
내용
4권 2책. 목활자본. 1851년(철종 2) 손자 규현(奎鉉)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권두에 홍직필(洪直弼)·김면근(金勉根)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하백원(河百源)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은 부 1편, 시 90수, 권2·3은 서(書) 95편, 권4는 제문 27편, 서(序) 3편, 발문 1편, 잡저 7편, 행장·묘표·전(傳) 등 9편, 부록으로 실린 저자의 행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간은 조문호(趙文鎬)·조병덕(趙秉悳)·정규한(鄭奎漢) 등 다수 인사와 경전 및 성리학에 관하여 논란한 내용이다. 『대학』의 격물·치지의 효과가 제가(齊家)·치국(治國)으로 나타나는 예로 『중용』에서 대순(大舜)·문무(文武)가 천자가 되어 사해(四海)를 다스렸던 것이 바로 제15장의 ‘처자호합(妻子好合)’·‘형제기흡(兄弟旣翕)’에 근본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를 통하여 저자의 위기(爲己)·천리(踐履)의 사상과 학문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잡저의 「대학퇴기(大學退記)」는 『대학』의 내용을 분석하여 중요한 점을 다른 경전과 연관하여 해설한 글이며, 기타의 내용도 주로 『대학』과 『중용』을 근간으로 도학적 측면에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 이분에 대해서 족보를 찾아보니 익재공후 밀직공파 후손중 마곡공 숙지의 후손이며
보령 주산면에 세거를 하신 분이십니다.
마곡공파 족보가 2006년에 발행이 되었는데 마곡공파 족보 169페이지에 등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난국재 문집에 올려져 있기도 한 용암사당부,삼사당영정봉안문을 보면 당시 이분의
역할이 상당했던것을 알수 있답니다.
삼사당 입구에 보시면 이분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것을 보실수 있을것입니다.
혹 보령 삼사당에 가실 계획이 있으신 분이나 삼사당을 다녀오셨던 분들은
다시한번 삼사당을 떠올려 보면서 마곡공 후손인 난국재 이예환을 기억해
주시길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