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자리
세상은 변해도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이번 추석에도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다의 밀물처럼 고창을 찾아왔다 또 썰물처럼 바로 떠나버리니 썰렁해진 고향만큼이나 마음까지 텅 비어버리는 것 같다.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내와 말 안 듣는 첫 째 딸, 말썽만 부리는 둘 째 딸아이와 단란하고 때로는 정신없는 가정을 꾸려 가고 있다.
아내는 지난 8월 20일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2년마다 갱신을 해야 하는 불필요한 족쇄 같은 우즈벡만의 출국비자를 갱신 하고자 간 것이다.
아이의 비자 발급이 담당영사의 휴가로 인해 한 달 이상 소요됨에 아이는 데려가지 않고 아내만 친정에 보냈다.
어느덧 아내의 출국이 40여일 지난 지금 아내의 빈자리를 말해본다.
1. 아내가 떠나던 날
7월 시작된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우리 가족은 고창의 집에서 무장 부모님 댁으로 들어갔다. 부모님 댁에서 여름을 보내다 아내는 출국했었다.
아내가 떠나던 8월 20일 아침 아빠, 엄마, 언니라고 말만 하는 둘 째 아이는 엄마의 자리가 한 달 이상 비어질 것도 모르고 여느 때처럼 잠깐 나갔다 돌아 올 줄 아는 엄마를 향해 손 흔들며 인사를 한다. 차안에서 아이의 인사를 받는 아내는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날 밤 평상시처럼 나는 여름밤의 고요함을 느끼고자 집 앞 담장 앞에 나왔다.
깔깔거리는 두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손녀들의 재롱에 즐거워하시는 부모님 웃음소리가 뒤이어 들린다. 그런데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나를 때리고 간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야할 타이밍인데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 우즈벡에 갔지....’ 잠시 잊어버린 기억이 떠오른다.
집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할아버지할머니의 웃음소리로 알 수 있는 행복해 보이는 한국 사람들 모여 사는 한 가정에 외국인인 아내가 같이 살면서 느꼈을 외로움이 내게 다가온다.
온통 한국인인 주변과 집에, 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썼을 마음과 자신의 가족과 떨어져 낯선 이국인의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야 했을 쓸쓸함이 다가온다.
아마 이 시간에는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한국 가족과의 이별에 마음 아프고 또 우즈벡 가족과의 만남을 기뻐하며 가고 있겠지 하고 생각이 들었다.
2. 두 아이 키우기
첫 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둘째와는 달리 아침잠이 많은 첫 째는 아침에 깨워 어린이집에 데려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 옷을 입히고 간단히 밥을 떠먹이고 하는 것들이 평소 자주해보지 않은 내게는 어려웠다. 아침마다의 작은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다. 물론 요즘도 그렇게 전쟁 중이다.
첫 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 일요일은 그야말로 전쟁은 세계대전이 돼버린다.
두 아이의 이런저런 요구와 떼쓰기, 말썽, 놀아주기, 집안 어지럽히기 등 하루가 참 힘들게 지나가더라.
서두에도 썼지만 말 듣지 않는 4살 첫 째 아이와 말썽 부리는 2살 둘 째 아이를 봐야 했던 아내에게 애들에게 소리치지 말고 때리지 말고 키우라며 잔소리 했던 내가 무안해진다.
아내의 육아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
3. 아이들 옷 골라주기와 머리 묶어주기
아내가 떠나고 보름에서 20여일이 지났을 무렵 계절이 바뀌어 여름에서 가을이 되니 짧게 입던 옷들이 긴 옷으로의 변신을 해야 했다.
아이들의 여름과 가을 사이의 긴팔 옷을 찾아야 하는데 아이들 옷장 이곳저곳을 찾아봐도 집안 옷장을 모두 뒤져봐도 그런 옷들은 보이지 않고 겨울옷이 있던가 조금 두꺼운 가을 옷만 있는 게 아닌가.
최근 이사를 해서 옷 정리는 아내가 했기에 나는 도무지 어디에 어떤 옷이 있는지 찾기가 참 어려웠다. 아내에게 전화로 물어도 찾지 못해서 이쪽 집 저쪽 집 이곳저곳을 찾아야 했다.
결국 며칠 만에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옷들을 찾았는데 보물찾기 보다 어려웠다.
아이들 옷을 입혀주기 역시 어려운 일이다.
4살 아이는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이 아니면 잘 입지 않으려 하고 2살 아이는 옷을 자주 더럽혀서 하루에 몇 번이나 갈아입혀야 한다.
4살 아이는 아침잠이 많아서 겨우 깨워 머리도 묶지 못하고 세수도 하지 못 하고 어린이집에 데려 갈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어린이집 선생님께 육아에 익숙지 않은 아빠의 역할을 떠넘기곤 했다.
4. 평화
여느 집이나 그렇듯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은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 시간을 이용해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빨래를 널기도 한다.
어린 두 아이를 돌보다 보면 금세 다치기도 하고 사고가 갑작스레 발생 하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놀고 있는 상황을 자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마당에서 뛰어 놀다가도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거실에서 뛰어가다 미끄러져 다치기도 하고 물을 쏟기도 하고 정리해 놓은 옷들 다 이곳저곳에 풀어헤처놓기 등 아이들이 자는 시간은 전쟁 중에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낮잠을 제때 재우지 못하고 오후 늦게 아이가 잠을 자버리면 큰일이 생긴다.
만약 밤 9시에서 10시 때론 밤 12시경 아이가 잠에서 깨기라도 하면 참 곤란해진다.
아이가 몇 시간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 4살 아이는 조금 전 잠에서 깨어났다. 피곤한 몸은 아이가 잠이 들어야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지금 아이패드로 유아 애니를 보고 있다. 언제 잠을 자게 될지는 모른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 역시 크다는 것을 아이들의 옷이나 얼굴 머리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다.
옷을 반대로 입히기도 하고 긴 머리가 한쪽은 묶여 있고 또 한쪽은 풀어져 있기 일쑤이고 아이스크림이라도 쥐어주면 아이스크림 잔뜩 묻어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로 만들고 장난감이 들어 있는 커다란 바구니를 끌고 나와서 거실에 쏟기를 하루에 여러 번이고 컴퓨터의 간단한 유아용 게임을 조금 할 줄 아는 첫째는 아빠가 컴퓨터만 켜고 앉아 있으면 아빠 무릎에 올라와 키즈짱을 켜 달라 떼쓰고 시도 때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라고 소리치는 둘째 이 두 아이를 40여일을 넘게 아내 없이 돌보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어린 애들 돌보려면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정답인 것 같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곁에 없으면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인가 보다.
첫댓글 고생이 많네요 언제나 웃음과 모든일에 최선을 다 하시기에 미래 주인의 길을 개척하리라 확신합니다.
아내의 빈 자리속에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가정을 천국화 하소서....................
이사장님의 따스한 정에 매번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