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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입장에서 쓴 아이들 일본간사이배낭여행기
*입출국 카드 작성도 직접 해보고
세상이 참 좋아졌다.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쉽게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서울 안 가 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은 구지 여행을 하지 않아도 여행 사이트 몇 군데만 들어가면 어지간한 외국 풍물에 대해서는 마치 가 본 듯이 알게 된다. 그렇지만 어디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만 하랴! 낯설고 물 선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늘상 먹던 밥과 마시던 물과 호흡하던 공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부족하고 아쉽게만 여겼던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함께 또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른 아침 김해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올망졸망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로 전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 아이들의 표정이 다들 상기되어 있다. 아무리 외국 여행이 흔한 일이 되었어도 부모님 품에서 어리광 피우던 아이들에게 일본 배낭여행은 특별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유년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배낭여행의 기억을 이 아이들은 훗날 유쾌하게 꺼집어낼 때가 있겠지. 재잘거리는 무리를 이끌고 입국장으로 들어선다.
말이 여행이라지만 아이들과 4박 5일 동안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둠을 정해서 움직이게 하지만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하기 전 연신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건만,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비행기 표를 잃어버린 아이가 생겼다. 이런 일이 생기면 아이도 어른도 정신이 없다. 다행히 분실한 표를 누군가가 주워 승무원에게 맡겨서 일이 정리가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휴~ 싶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그런 일도 다 경험이라고 토닥거려주면 놀라서 졸아붙었던 아이의 마음도 금세 풀린다.
입출국 카드를 작성하려면 한자 이름을 쓸 줄 알아야 한다. 한문 이름을 알아오라고 미리 당부를 하지만 쓸 줄 모르는 아이들 몇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건 영어로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아이들은 드물다. 확실히 국제화시대다. 영어 국제화시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지금 세상과는 많이 다르겠지. 그때는 나이 먹어가는 어른들과 의사소통이나 제대로 되려나... 한자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메모지에 대충 적어준 엉터리 한자 이름을 손가락에 힘을 줘가며 입출국 카드위에 삐뚤삐뚤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기내식이 한 끼 점심이다.
우리나라 항공사 기내식은 좋은 편이다. 많이 먹어둬야 한다고 자꾸 권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음식을 남긴다. 입맛에 썩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어 둔다. 늘 배가 불러서 탈이었지 배고픔 설움이란 걸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고 산다. 하지만 배낭여행을 하면서 그것도 알게 될 거다. 먹고 싶은 걸 골라서 먹을 수도 있지만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요놈들 얼마 후에 기내식을 제대로 먹지 않을 것을 곧 후회하게 되리라. 후후~
요즘은 부산 일본으로 가는 짧은 노선은 기내식이 없는 항공사가 많다.
남 따라 내리다 잘못 하면 미아된다.
4박 5일 동안 일본을 두루 여행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비싼 돈 들여서 왔는데 싶은 마음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 볼 수 있도록 빠듯하게 일정을 짠다. 첫날은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오사카성, 우메다 공중정원 전망대를 둘러본다. 둘째 날은 나라 도다이지, 나라 박물관, 코후구지, 히메지 성을 찾아간다. 셋째 날은 교토를 찾아 니조조, 산쥬산겐도, 교토박물관, 귀무덤, 키요미즈데라, 은각사, 도톰보리 상점가를 둘러보고 넷째 날은 유니버셜스튜디오, 카이유칸, 서점을 둘러보게 된다. 이 일정은 기본일정이지만 때에 따라 가는 곳과 차례가 달라진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마음은 멀고 거리는 짧은 나라... 원래 그렇다. 이웃사촌지간에 잘 지내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겉으로는 좋은 척 해도 잘 되면 이불 뒤집어쓰고 배 아파하는 게 사촌지간이라나... 지금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를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에 탈락했을 때 가장 기뻐한 나라가 일본과 중국이라니, 아무튼 그렇다. 한 시간 삼십분이면 일본 땅에 도착을 하게 된다. 그야 말로 한걸음이다. 요즘은 길이 좋아서 그 시간이면 창원 마산에서 우리나라 남쪽 동네는 어지간하면 다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 가까운 거리 안에 일본이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만약을 대비해서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하는 지를 연습하는 것이다.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내 휴대폰에 직접 전화를 해보게 한다. 그래야 그런 상황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목적지인 오사카 난바에 있는 호텔로 출발을 한다. 아이들이 전철 노선도를 가끔 보는 아이들이 있지만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다. 난바 역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그만 우루루 내려버렸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는 나를 아이들이 차창 밖에서 뒤늦게 발견했다.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차는 출발했다. 혹시나 싶어 난바 역에서 20분을 기다렸지만 아이들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그새 그런 시근이 생겼을 리가 없지. 다시 반대편 전철을 타고 역에 내리니 아이들이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말이 통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떨고 있던 차에 나를 발견했으니 오죽이나 반가우랴. 일본 땅 밟은 신고식을 호되게 한 셈이다.
일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지하철 노선이 사통팔달 연결되어 있어 다닐 때 자가용이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길이 상당히 좋아졌다. 다니다 보면 그런 걸 절로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은 대중교통노선이 발달되어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자가용을 타고 다니기에 편리하다. 쭉쭉 뻗어있는 길도 자가용이 없으면 그림의 떡처럼 보일 때가 얼마나 많든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일본을 다니면서 하게 된다. 아이들은 여행을 하는 동안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지하철 노선을 짚어가며 목적지를 모둠별로 찾아다니게 된다.
오사카 한 눈에 알기! 오사카 역사 박물관을 가자!
첫 번째 목적지는 오사카 역사박물관이다. 뭐든지 몸으로 경험해야 자기 것이 되는 법이다. 내가 인솔하는 대로 차를 타고 움직이게 되면 아이들은 자기들이 지나왔던 길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면서 기억 속에는 목적지만 소롯이 남게 된다. 여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직접 승차권을 구입해서 목적지를 찾아가게 되면 그런 사소한 과정들이 여행의 재미가 되어 고스란히 기억에 남는다. 정해진 시간 내에 찾아오지 못하는 모둠은 전화를 하게 하면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팀 간의 협동심과 친목도 두터워지게 되니 그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크다. 거기에다 얻게 되는 성취감까지. 그런 것들이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싶다.
헐레벌떡 하나 둘씩 오사카 역사박물관 앞으로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와 스스로 해 냈다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몇 분 전에 헤어진 친구들을 몇 년 만에 만난 듯이 반가워한다. 한 숨 돌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오사카 역사박물관 관람이 시작된다.
오사카 역사박물관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꼭대기 층부터 한 층 한 층 걸어 내려오면서 관람하도록 되어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밀랍인형과 모형, 영상자료, 체험실을 잘 갖춰 놓고 있다. 경험 많은 노인 분들이 오사카 역사 지도를 놓고 아이들과 주사위 놀이를 하면서 옛 이야기를 들러주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그 모습을 통해서 고령화 시대에 어른들이 소외되지 않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발견하게 된다. 오사카시도 2차 대전때 미군 공습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적은 유물이지만 고대와 현때 까지 아이들이 쉽게 다가 갈수 있도록 전시 기법에 많이 신경을 쓴 모습이다.
박물관 계단 창문으로 대략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오사카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사카 역사박물관 근처에 NHK 방송국이 있다. 시간이 맞으면 유리창으로 녹화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아쉽지만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다음 일정인 천수각으로 이동을 하기로 한다. 오사카 성 가장 중심인 천수각은 걸어가면 이십분 거리에 있다. 더운 날씨에 땀은 흐르고 목이 마르다. 한 병에 우리 돈으로 천원 정도하는 물을 사기 위해 아이들이 자판기 앞에서 줄을 섰다. 우리나라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커피나 음료수 등 종류가 적은데 비해 일본은 자판기 천국이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빠르고 간편한 것이 최고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검소하게 사는 일본인의 생활모습을 자판기 문화 속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오사카시의 상징 오사카성과 우리나라 성과 견줘보기
박물관 건너 신호등이 있는 곳에 천수각까지 가는 느림보 청룡열차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운행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수원 화성에 있는 느림보 청룡열차를 떠 올리면 그래도 제법 다녀본 아이들이다. 우리 것을 알고 외국을 다니면 훨씬 좋은 점이 많다. 좀 더 객관적이고 주체적으로 문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200엔 학생은 100엔이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맞아야 한다. 아이들은 타고 싶은 마음에 침을 꼴깍 삼킨다. 그 눈치를 슬쩍 무시해버린다. “기다리는 시간에 걸어가면 천수각을 가고도 남겠다 걸어가자 그것도 경험이다.” 약간의 우격다짐이 섞인 설득이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먹혀들어간다. 아이들과 함께 뜨거운 햇살을 가르며 걷다보면 자판기에서 뽑은 생수가 금방 동이 난다.
오사카성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어마어마한 성의 크기에 압도당하고 만다. 성 둘레에 있는 해자는 거의 계곡 수준이다. 저 큰 돌을 과연 누가 옮겼을까? 설마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날은 것은 아닐테고, 결국 백성들이 골병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면서 그 규모에 감탄을 하지만 성을 쌓기 위해 흘린 백성들의 피와 땀방울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이 근사한 문화재를 남겼지만 어떤 것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것인지는 생각을 해볼 일이다.
오사카성은 2차 대전 때 미군 비행기 폭탄 세례에 모두 부셔졌는데 지금의 건물은 복원이 된 것이다. 오사카 성 안에 있는 천수각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박물관이라고 보면 된다. 오사카박물관처럼 맨 위층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람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한눈에 잘 들어와서 편하게 볼 수 있다. 부산시립박물관에도 이와 비슷한 전시 기법을 조금 도입하고 있지만 오사카성 천수각 박물관에 견줘어 조금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박물관 후미진 곳에 눈길이 잘 가지 않는 곳은 어김없이 토요토미 히데요시 일대기를 담은 그림을 확대한 영상으로 꾸며 놓았다.
천수각 일부가 금색으로 되어 있는 것도 히데요시가 금을 좋아해서 콘크리트에다 금색을 칠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 방 모형이나 망새에도 금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우리나라보다는 중국풍에 가깝다.
다니다보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우선은 아이들 허기를 달래야 한다. 그래야 다니기가 수월해진다.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는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사 먹으면 된다. 그렇지만 외국에 나오면 그 간단한 일이 약간 복잡해진다. 우선은 너무 비싸면 안 되고 또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할게 많아진다. 시원하게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야지 했던 아이들이 멈칫한다. 350엔, 아이스크림 하나가 3500원이라니~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천원 안팎으로 주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가 있는데 아! 쮸쮸바도 그립고 팥빙수도 생각난다. 결국 생수 한 병에 다끼야키 한 개를 사서 나눠먹으면서 아이들은 사소한 향수에 젖는다.
다음 목적지는 수상버스 선착장이다. 히데요시 아들이 도쿠가와이에야스와 싸움에 패배한 뒤 자결한 곳을 지나면 오사카 비즈니스파크가 나온다.
그 옆 수로가 있는 곳이 수상버스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요도바시까지 작은 배를 타고 도심 속의 수로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선착장 도착 시간이 6시 20분이다. 마지막 배가 6시까지 있단다. 아쉽지만 할 수 없이 일정을 변경해서 난바 도톰보리로 간다. 도톰보리에서 저녁을 먹고 수상버스를 타는 것으로 서운함을 대신하는 수밖에......,
*비교적 싼 가격에 일본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도톰보리
난바는 번화가다. 온통 사람의 물결이다. 자칫 그 물결에 휩싸이면 일행과 떨어져서 길을 잃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짝 긴장을 한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톰보리라고 불리우니 음식가에 들러서 각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먹는 것이다. 식당에 들어가 다 함께 음식을 먹으면 시간도 절약하고 편하다. 그러나 그러면 재미가 없다. 이리저리 메뉴를 골라 다니는 재미도 있고 각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흩어졌던 아이들이 밥을 먹고 다시 모였다. 대부분 오사카 라면을 먹었단다. 겨우 라면이라니 하겠지만 일본의 라면은 인스턴트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거의 요리 수준이다. 돼지국물로 우려낸 오사카 라면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다코야끼로 저녁을 대신 아이도 있다. 오사카 라면을 처음 먹은 아이중에는 배탈이 나는 경우도 있다. 배가 부르니까 모두들 얼굴에 생기가 돈다.
도톰보리는 1612년 인공수로 공사를 한 ‘야스이 도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수로 곳곳에 작은 다리가 있어 큰 배는 몸체를 물속에 가라앉히고 다닌다. 옛날에는 물자를 실어 나르던 배가 이제는 도톰보리 야경을 줄기는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고 있다. 물 위를 한가로이 오가는 수상버스 모습에서 작은 수로 하나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끌어 모울 수 있는 일본인의 숨어있는 지혜와 저력을 엿보게 된다. 수상버스를 타기위해 줄을 서 있는 아이들의 표정 속에는 호기심이 묻어난다. 한강 유람선이나 수상버스나 그게 그거다. 그런데 유람선이라는 이름보다 수상버스라는 말에 아이들은 더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수상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도톰보리 수로 나무판자에 빙 둘러앉았다. 오늘 하루해가 여느 때 비해 몇 배는 길었으리라. 난생처음 부모님 품을 떠나 외국에 온 아이도 있을 거고 처음비행기를 타 본 아이도 있을 거다. 입에 맞지 않아 다코야끼로 배를 채운 아이는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이 생각날 거다.
낯선 일본 땅에서 저무는 하늘을 보며 생각하는 가족이나 학교 그리고 친구들은 꿈속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겠지... 내일 6시 30분에 일어나서 지하철 패스, 노선도, 물병 챙겨서 7시까지 호텔 식당에 내려와서 아침밥 먹을 것. 모든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하기. 우렁찬 목소리에 아이들은 금새 귀를 모은다.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나라, 히메지를 가다
돈까스, 생선가스, 야채, 빵 등이 아침 식사로 차려진 호텔 뷔페 음식들이다. 어른들은 그다지 반가울 거 없는 메뉴지만 요즘 아이들 입맛에는 딱이다.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세대는 서로 소통되는 공통점이 많다. 된장찌개 세대, 햄버거 세대 그래서 그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벽이 있는 것이다. 조용조용 밥을 먹은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 왔다는 여행사 직원이 의외의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한국 아이들 맞아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비결은요? 식당에서 떠들면 그날 용돈이 적다. 오사카는 상업의 도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한국인에 대해서 적은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남을 심하게 배려하는 일본인이 한국 사람보다 가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사람도 의외로 많단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는 활발하게 생활하는 것도 좋은 거지. 그러니 너무 주눅들지 말고 즐겁게 밥을 먹자.
오늘은 오사카 시내를 벗어나 나라와 히메지를 간다, 우메다 역은 출퇴근 시간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전철에서 꾸여꾸역 밀려나오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서 저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떻고 먹고 살아가는가 싶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문득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우메다 역 둘레는 높은 빌딩과 빌딩 지하로 연결된 상가. 지하철, 전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사람들이 각자 전철 속으로 건물들 속으로 물처럼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나오고 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싸우려 나가는 군인들의 군화 발자국 소리로 바꿔 들릴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환청일까?
우메다 역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모둠별로 길을 찾다가 두 명이 아이가 전철 타는 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두 명의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역 둘레를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없다. 시간이 지나도 손에 들고 있는 전화기가 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은 아이들은 이제 바닥에 주저앉아 놀이를 하고 있다. 이리 저리 찾다가 꼬박 40분이 흘렀다. 그래도 감감무소식~ 그렇다고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하루 일정을 말아먹을 수가 없다. 전화연락이 있을 거라 믿고 히지메 성으로 출발을 한다.
오사카에서 산요 전철을 타고 히메지를 가다보면 작은 공장과 빽빽이 들어선 집들 사이로 일본 내해가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면 으례히 자리를 잡고 있는 팬션 같은 것은 볼 수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자연조차도 부자들의 휴식처가 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펜션을 짓더라도 우후죽순처럼 짓지말고 한 곳에 모은 다거나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개인의 소유개념이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자손대대로 공유해야할 자산임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바깥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자연보다는 물건이나 사람한테 더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전철에 타고 있는 일본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귀에 엠피쓰리 꽂고 휴대폰을 가지고 노는 것 까지. 그런데 일본 아이들은 피부색이 좀 더 검다. 그것은 생활체육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차장 밖으로 보이는 시골 학교 운동장에 있는 야외수영장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유치원부터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고 글자를 배울 때 일본 아이들은 수영을 배워서 몸을 단련시킨다. 그러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그렇게 말하겠지. 우리아이들도 수영장에 보내서 수영을 시키거든요. 그 뜻이 아니라는 것은 구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일본 여성들은 파마를 한 모습을 그의 본적이 없다. 관광지에서 파마를 한 여성은 한국 여성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 모른다. 아이들은 아이들 모습에 어른은 어른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다,
전차가 한 시간 정도 달렸다. 드디어 휴대폰에서 진동이 왔다. 사라진 아이들이다. 전차를 타고 히메지 역에서 내려 히메지 성 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어라. 우리는 이제부터 걸어서 천천히 갈테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야기를 했지만 전화를 받고 보니 마음이 놓인다. 처음에 왔을 때 떨면서 제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던 놈들이 이제 제법인데 싶다.
히메지성은 1300년대에 처음 쌓은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 손녀 딸 히메지를 위해 더 크게 쌓은 성이다.
나무로 지은 것으로 수리도 하면서 잘 보존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수각 올라가는 중간 중간에 지방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새긴 여러 가지 문양의 기와를 볼 수 있다.
김해에서 나온 가야시대 방패 꾸미게 문양도 보인다. 일본의 성은 우선 크기에서 압도당한다. 크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술력과 함께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재의 규모가 크다는 것은 강력한 힘과 기술력이 앞섰다는 의미에서 새겨볼만하다.
신간센을 타고 히메지를 지나면서 바라본 밤 풍경 속의 히메지성은 더욱 인상적이다. 오사카성과 견줘 볼만한 성이다.
히메지성 옆에는 동물원이 있다. 일본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 곳곳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많다. 그리고 정원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문화권이 다르지 않지만 실제로 다른 점이 많다. 일본이 공익을 우선하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최대한 넓혀서 그 안을 아름답게 꾸며놓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본은 개인이 소유하는 집은 넓지 않지만 공공시설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함께 즐긴다. 내 것에 집착하다보면 공공의 것에 무심하기 쉽다. 그것은 쓰레기 하나를 생각없이 버릴 수 있는냐 마느냐의 차이로 이해하면 된다. 개인주의가 삶의 방식을 좀 더 물질적이고 이기적으로 흘러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일본의 그런 문화는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히메지 시는 과자와 함께 자전거 도시로 유명하다. 해마다 벚꽃이 필 때면 히메지 시에서는 과자 축제도 함께 열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히메지뿐만 아니라 일본은 자전거와 전철역의 문전연결성이 대단히 잘 되어 있다. 창원에서도 최근 자전거 타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면서 이곳을 베치마킹 하기 위해 견학을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산요히메지 옆에는 JR히메지 역이 있는데 JR히메지 역 안내 센타에 가면 자전거를 무료를 빌려주는 증명서를 내어준다. 히메지 성 쪽으로 500M 쯤 못 미쳐 지하도 안에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여기서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히메지 성을 둘러보면 좋다. 미성년자는 안 빌려주는 게 약간 흠이다. 히메지성은 2차 대전 때 미군 비행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검게 칠해진 망을 덮어 씌워 공격을 피하기도 하고, 기울어져 가는 망루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쓸 만큼 공을 들인 성이다. 어이없는 화재로 허망하게 불탄 숭례문을 생각하면 애국자가 아니어도 열이 솟구친다.
2009년 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해왔다. 달리 선진국이 아니구나 싶다. 문화재 보호는 말이 아니라 노력과 행동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천수각 나무집을 타고 올라가면서 히메지 시가지와 천수각 안에 전시된 일본 유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수각 꼭대기에는 히메지 성을 보호 해주는 신을 모신 신사가 있다. 우리나라 절에 있는 가람각과 비슷한 느낌이다. 천수각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흘린 땀을 식히고 또다시 왔던 길을 조심조심 되짚어 내려간다.
다음 목적지인 나라로 가기 전에 공원에서 일본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도시락하면 간단하게 요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일본의 도시락은 가격별로 메뉴나 질이 천자 만별이다. 일본 사람들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대충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에 비해 우리는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고 하면 적어도 수 십 가지 반찬이 올라오는 한정식을 떠올린다. 얼마 전 잔반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일을 생각하면 음식에 대한 기본 생각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도시락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식당가서 밥을 사먹고 와도 좋다고 했더니 모두들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다.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도시락 가격이 조금 싸겠지요. 아이들이 벌써 돈에......,
그러나 도시락 용기를 대부분 화학 재질을 사용하면서, 분리 수거는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분리 수거는 우리나라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히메지 성을 갔다가 고베로 가기도 한다. 고베는 야경이 아름다워 선남선녀들은 좋아 하지만 아이들은 인기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다. 히메지 성을 둘러보고 신카이치역에서 전철을 타고 꼬불한 산길을 따라 아리마 온천도 가기도 한다.
*나라의 상징 동대사 큰 불상
히메지역에서 우메다역, 우메다 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나라역에 도착 했다. 전철 타는 시간은 배낭 여행자의 편안한 휴식 시간이다. 또 걸어야 한다. 가자. 젊음이 뭐꼬? 자고 나면 힘이 생긴다.
몸이 나른하다. 아이들 발걸음이 늦어 진다. 이러다가 어느 시간에. 안되겠다.
긴테츠 나라 역에서 도다이지 매표소 까지 먼저 찾아오는 모둠은 상금 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느슨하던 아이들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 해가면 묻는 아이도 있고 무작정 뛰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다. 가는 길에 사슴 구경하는 아이들이 모둠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동대사(도다이지) 문 닫기 전에 어서 가자 사슴 구경은 도다이지 나와서 해도 된다. 역시 아이들이다.
도다이지 전각과 청동불상 크기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불전 건물 기둥이 통나무가 아닌 나무를 조립해서 만든 기둥이 색다르다.
아이들은 구멍사이로 빠져 나오는 재미에 신이 난다. 들어 갔다 나오면 올백 이다. 정말? 노력도 해야지.
너무 큰 소리 나지 않게 살살 쳐라!
동대사 대불전을 돌아 나오면 어김없이 잇는 선물 파는 곳. 여자 아이들은 그냥 지나 치지 않는다.
대불전을 나와 도다이지를 본 느낌과 우리나라 절을 서로 견줘보면서 나라 박물관으로 이동을 한다. 우리나라 절은 아무래도 규모면에서 딸린다. 서둘러도 나라 박물관 유물을 자세히 보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많은 유물 중에 불상이 많고, 중국, 한국 유물이 많다. 고려, 조선이라고 적혀 있는 것들이 왜 일본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을까? 아이들의 질문이 많아진다.
도다이지에서 키테츠 나라 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코쿠류지 오층 목탑은 바빠도 꼭 챙겨서 본다.
왜냐하면 나무로 만든 탑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난바 역 둘레 센니치마에 통로에 있는 대형 서점에 아이들과 함께 들렀다. 학생인데 일본 서점을 보고 가야지. 사지 않더라고 어떤 책을 많이 보는지 책은 어떻게 전시하는지 잘 살펴보자.
만화도 전부 일본 글로 되어 있지만 그림으로 대충 이해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서점은 역시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 아이들이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도 서점이 점점 대형화 되어가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는 놀라지는 않는다. 식품 매장에 있는 삼각 김밥을 보고 이거 한국에 있는 것을 일본 사람들이 보고 배운 것이라며 한 아이가 반가워했다. 우리나라 상인들이 일본에서 배운 것일까요? 일본 상인들이 우리나라 상인들에게 배운 것일까요?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상업도시 오사카를 장사나 사업을 구상하는 한국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일본 옛 수도 교토를 찾아서
2차 대전 때 미군의 공격에 일본의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다. 그 폭격을 비껴간 덕분에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교토를 찾아 간다. 전쟁은 개인의 삶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자산까지도 철저하게 파괴하는 무서운 것이다. 한국 전쟁 때 미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 냈던 김영환 장군이 있었다. 그 장군 덕분에 지금 우리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안전했던 도시 교토를 찾아가면서 문득 팔만대장경이 떠오른다.
난바에서 우메다까지 가서 한큐 전철을 타고 교토를 간다. 교토 가는 전철에는 교토라고 써 있지 않고 가와라마치 행이라고 써 있다. 교토라는 이름을 찾다가는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가쓰라 역(?)에서 전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다 내린다. 역무원이 와서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내려서 옆에 있는 전차를 타라고 한다. 우메다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가다가 전철이 가쓰라 역에서 두 개로 나눠진다. 가쓰라는 갈림길 역이다. 우메다에서 가와라 마치에 가는 전철을 탈 때 직행을 타야 하는데 보통을 타서 그렇다. 또 전철을 탈 때도 앞쪽에 타야 한다. 갈림길에서 전철이 나눠지기 때문이다. 멋도 모르고 앉아서 가다가 조금 후에는 서서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 으로 인해 당황하는 일은 여행을 하면서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오미야 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니조조를 찾아간다. 일본 시내버스는 가는 방향 표지가 화살표로 되어 있어서 처음 찾는 사람들도 글만 알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는 시내버스 가는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익숙하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본 시내버스에는 다음 정차 할 곳이 전자안내판에 자막으로 안내된다. 그리고 운전기사가 마이크를 머리에 꽂고 다음 정차할 장소를 직접 방송한다. 우리나라도 시내버스 안내체계가 시민들을 위해 많이 발전했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일본인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아시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쇼군이 일본 권력을 장악하고 난 뒤 천황은 허수아비가 된다. 도쿄에 있던 쇼군이 교토에 내려오면 머문 집이 니조조다. 힘이 없었던 천황 집 못지않게 화려하고 크다. 니조조 방 벽과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 나무 조각이 예사롭지 않다. 방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마루 바닥을 걷게 되면 나는 소리는 자객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격자쇠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일본 영화에서 검은 복면을 하고 복수를 위해 침입하는 자객의 모습이 떠오르는 분위기다. 관리의 편리성 때문인지, 입구 바닥에 깔아 놓은 자갈 부시럭거리는 소리도 휘파람 마루와 닮았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물길을 낸 안쪽 해자와 바깥 해자에 금붕어가 놀고 있다.
일본에는 성이나 절, 궁은 해자를 파서 적으로부터 보호 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이 일어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왕궁과 절은 대부분 외부의 적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자기끼리 싸우다 세월을 다 보냈다. 섬이라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외침보다는 내부의 환란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관람 마지막에는 늘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에어콘 바람도 쐬면서 상품은 눈요기만 하고 잠시 쉬었다 가기로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물은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호텔에서 준비 해온 것을 마신다. 처음에는 모르고 안 챙겨오는 아이들이 물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잘 챙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천원과 이곳에서 쓰는 천원의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알게 된다. 이런 것을 거창하게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하게 되는 것이다.
교토 역이다. 교토 역 건물을 보면 하늘이 훤하게 보이도록 가운데가 확 트여 있다. 시원시원하다. 가슴이 열리는 기분이다. 건물의 모양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달라진다.
초가집을 볼때와 기와집을 볼 때 그리고 아파트를 볼 때 각각 마음이 다르다. 그래서 건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예술이라 말한다. 교토 역 앞에는 번개소년 아톰 동상이 있다.
아저씨 어릴 적 흑백 텔레비전 속에 나타나서 아이들 마음을 온통 빼앗아간 만화 주인공이다. 드라이몽도 짱구도 아톰도 모두 일본 사람들이 만든 거다. 이런 캐릭터들이 일본을 부강하게 만드는데 공을 세운 일등 공신들이다. 캐릭터를 무시하라 마라.
*절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
다음 찾아갈 곳은 산쥬산겐도(삼십삼간당)와 교토박물관 그리고 귀 무덤이다. 세 곳은 모두 붙어 있다. 산쥬산갠도를 보면 불교 문화권인 아시아 문화의 특징이 피부로 느껴진다. 본당에는 중생의 고통을 구석구석 살피고 덜어 주는 천수관세음보살 한 명이 앉아 있고 그 옆으로 서 있는 관세음보살이 1000개가 있다. 그래서 모두 1001개다. 집 길이가 118m나 되는 세계에서 긴 건물로서는 으뜸이다. 지진을 견디기 위해 기초 공사부터 아주 튼튼히 했다고 한다. 대단한 규모도 그러하거나와 공법의 꼼꼼함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오랜 된 관세음보살 조각상 한 개만 해도 보물이 된다. 부럽다...
산쥬산겐도 맞은편에 있는 교토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한 번 가서 모든 유물을 다 볼 수 없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봐야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교토박물관에는 사무라이들이 들고 설쳤던 일본 칼과 화려한 기모노가 전시 되어있다. 아이들은 불교 유물보다는 기모노와 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색다르기 때문이다. 교토 명성에 견줘서 교토 박물관이 유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기모노나 일본 칼처럼 특색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크다. 귀무덤(미미자키)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지만 귀무덤 옆에 있는 교토 박물관을 들리는 사람들은 적다. 일정 탓이라기보다는 재미에 밀려서 일 것이다. 박물관이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한 장소가 되면 여행도 한결 다양하고 풍부해질 것이다.
교토 박물관 위로 푸른 하늘에 걸린 흰 구름이 따가운 햇살 속에 여유롭게 떠 있다. 박물관 옆에 토요토미 히데요시 신사가 있고 신사 왼쪽에 귀무덤이 있다.
그 곁에 ‘내가 조선을 정벌하고 명나라로 나아가 인도까지 정벌하기 위한 야망을 꿈꾸며 조선과 전쟁을 해서 얻은 전리품 조선인의 귀와 코다.' 라고 외치던 토요토미 히데요시 무덤이 나란히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에 짓밟힌 조선인의 억울한 원혼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이룰 수 없는 허황된 집착과 욕망도 이제 다만 침묵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여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는 모든 것들이 이처럼 허망한 것을... 조금씩 비우고 조금씩 버리고 사는 연습을 하자. 불운한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또 다른 물음을 던져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심때지만 귀무덤 둘레에는 주택가라 식당이 적다. 귀무덤 맞은편에 있는 우동 집에 가서 일본 우동을 먹는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우동, 소바집이다. 우동을 시키면 우동뿐이다. 단무지를 달라고 하면 새끼손가락 보다 가늘고 길이가 아주 짧은 단무지 세 개를 주면서 서비스라고 강조를 한다. 허 허 ~
우리 동네 수제비 집에 가면 잘 익은 깍두기와 배추김치 단무지가 무제한 셀프다. 음식을 남기지 않게 하는 좋은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게 늘상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아이들은 서비스로 준 세 가닥 단무지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젓가락만 빨고 있다. 인정머리 없기는...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귀무덤 옆에 산다는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면서 한국에서 왔냐며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묻는다. 한국 드라마가 좋아 센타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배용준 씨가 한국을 일본에 알린 공은 크다. 일본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묵어 있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그만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에서 새삼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힘을 느낀다. 배용준 씨가 죽으면 신사도 세울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청수사 가는 길에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유 욘사마’ 라고 하니 택시비를 10엔을 깍아 주더라고 아이들이 침을 튕기며 자랑을 한다. 대단한 배용준 욘사마다
키요미즈데라까지 택시로 간다. 알다시피 일본 택시 요금은 살인적이다. 어지간하면 택시는 안타는 게 남는 장사다. 청수사 가는 길이 오르막이라 땀 뻘뻘 흘리며 올라가면 기운이 다 빠져버린다. 아침에 나눠준 용돈을 십시일반하면 걷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낫다. 체력 관리 차원이다. 그런 속을 숨기고 아이들에게 일본 택시도 타 보는 게 체험이라고 생색을 낸다. 아이들은 다들 싱글벙글 한다. 시원한 에어콘이 나오는 택시 안은 천국이 따로 없다. 택시를 타기 전 일본에서 유명한 MK 택시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재미있게 듣는다.
유봉식 회장은 고향이 전남 해남인 재일교포 출신의 성공한 기업가다. 배타성이 강한 일본에서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MK 택시를 최고의 택시회사로 키워 놓았다. MK회사가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친절과 저렴함. 다른 회사에 비해 ‘할인은 크고 할증은 작게’라는 저가요금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할증의 경우도 다른 회사에 비해 할증 폭이 작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으면 성공을 하게 된다. MK회사의 성공을 통해 새삼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청수사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탑이 불그스레한 단청 옷을 입고 서 있다. 중국에는 벽돌탑,일본에는 나무탑, 우리나라 돌탑이 많다. 나무로 만든 청수사 오층탑을 보면서 고려 때 몽골군이 불태운 경주 황룡사 9층 목탑 위용을 떠 올리게 된다.
청수사는 언덕에 기둥을 세우고 몇 백 명이 앉아서 법회를 볼 수 있는 난간이 만들어져 있다. 일본은 백제기술자들이 전해준 건축 기술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었다. 모방을 승화시킨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기술과 문화를 일본에 전해주었다고 설명을 하면서도 막상 일본의 문화재를 보면 우리가 더 분발해야겠다는 위기감이나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내려가서 청수사 본당 건물 난간을 받쳐 주는 기둥도 꼭 보자.
청수사에 있는 물은 연명수라고 하여 수행자가 즐겨 마셨다. 워낙 물이 맑아서 키요미즈데라는 절의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세 갈래로 갈라지는 물줄기는 불, 법, 승으로의 귀의 또는 행동, 언행. 마음을 닦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여 고란사에 있는 고란정 물처럼 마시면 젊어지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많을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물맛을 볼 수가 있다. 질서를 무시하고 새치기 하는 몇몇 한국 사람들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때가 있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간혹 그런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아이들한테 부끄러워진다.
청수사 입구에 길게 늘어서 있는 상점마다 도자기를 비롯해서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다. 볼거리 들이 풍성하다.
내려가면서 구경도하고 일본 떡도 시식 코너에서 먹어보자.
청수사에서 내려와 서둘러 100번 버스를 타고 은각사(긴카쿠지)로 향한다. 은각사는 관음보살을 모신 절이지만 일본 정원의 형태를 하고 있다. 화려한 금박으로 유명한 킨카쿠지(금각사)와 발음이 비슷한 긴카쿠지는 1482년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장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사마사가 만든 별장이었다. 그래서 절 분위기가 아니라 정원의 분위기다. 일본 절 분위기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이다.
일본 정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 가레산스식은 물과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만으로 산수를 표현한 정원이다. 바위들은 산과 폭포를 뜻하고 흰모래는 바다를 뜻한다. 회유식은 봉건 영주를 위한 정원으로 거대한 바위와 나무가 경관을 재현하는데 쓰였으며, 사람들은 정원을 걸어 다니며 중앙의 연못을 감상하였다. 처음 보는 사람은 모래로 쌓아 올려 다듬은 정원 모습에 감탄을 한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낙엽, 이끼까지 사람들 손으로 일일이 다듬었다. 정리 정돈 잘 된 일식집 가든에 온 느낌이다. 너무 깨끗하면 보기는 좋지만, 계속 지내기에는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경주 양동 마을 언덕 위에 짓은 기와집을 보라! 풀꽃을 벗 삼고, 문 밖으로 보이는 것 모두가 뜰이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친화적인 정원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중국 정원은 흙과 돌을 가져와서 인공 산과 봉우리를 만들었다. 엄청난 규모로 만들어 놓은 중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은 크기는 다르지만 느낌은 비슷하다. 자연과 조화롭게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원이 훨씬 더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까!
*오사카 우메다 역에서 생고생
우메다 역에서 내려서 공중정원전망대로 간다. 우메다 역 복잡한 건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다. JR북 출구나 미도스지선 지하철 3번 출구를 나와 우메다 요도바시 카메라 건물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공중정원전망대가 나온다.
걸어서 15분 거리다. 늦게 도착한 한 모둠이 투덜거렸다. 손짓 발짓하면서 미도스지선 30번 출구를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역을 몇 바퀴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3번 출구인데 아저씨 자료에는 30번 출구로 적혀있어 30번 출구로 알고 고생을 했단다. 우메다 역에는 30번 출구는 없다. 굴렁쇠 아저씨가 자기들 골탕먹일려고 고의적으로 그랬다고, 고생한 이야기를 이틀 동안 하고 또 해서 귀가 따갑다. 절대 고의가 아니라 실수란다.
공중정원전망대는 오사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카이 빌딩이다. 우선 빌딩 지하에 오사카 옛 거리를 재현해 놓은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고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쌍둥이 건물로 올라가는 승강기 계단 사이로 보이는 오사카 밤 풍경이 좋다. 어디를 가도 밤풍경은 인상적이다. 빌딩과 차들의 불빛의 끝은 지평선이다. 빌딩 꼭대기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아이들은 유리벽을 바라봐도 어질어질하단다. 대부분 연인들이 찾는 곳이라 가끔 애정 표현을 진하게 하는 연인들 때문에 아저씨는 더 어질어질하다. 내려와서 이야기를 들으니 아저씨와 아이들의 생각은 거꾸로다.
빌딩 아래 분수대에서 모두들 퍼질러 앉았다. 벌써 저녁 10시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힘이 빠질 만도 하다. 그래도 호텔에 돌아가려면 걸어서 우메다 지하철역까지 가야한다. 운동화 신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겁 없이 폼 낸다고 샌달 신고 온 아이는 발바닥이 아프다고 난리다. 호텔가서 따뜻한 물 틀어 놓고 발 마사지 해라. 여기는 중국이 아니라 그런 서비스는 찾기 쉽지 않단다. 아이들은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또다시 걷는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에 모였다. 그런데 두 명이 늦잠을 자는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늦잠 잘 정도면 이제 배낭여행이 적응이 된다는 뜻이다. 긴장을 하면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서니 두 명이 식당에 내려온다.
오늘 일정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침밥을 먹고 가려면 다른 친구들에서 50엔씩 주어라.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는 시간에 대한 대가이다. 열 명이면 500엔이다. 주기 싫으면 아침은 굶어야 한다. 굶는다고 하는 걸 보니 그 돈이 아까운 모양이다. 시간도 돈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내 잘못으로 헛되이 소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모둠별로 사천왕사(시텐노지)를 찾아 나선다. 3일 동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아이를 길잡이로 내세운다. 배낭여행은 잘하는 아이들이 나서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며칠이 지나면 처음에 소극적이었던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사천왕사는 1500여 년 전 일본 문화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 성덕태자가 백제 기술자들을 들여와 지은 절이다. 지금은 모두 콘크리트로 복원을 해놓았는데 탑이 중심인 전형적인 백제 식이다. 우리나라 경주 불국사에서 볼 수 있는 회랑 등 삼국시대 절 구조를 이해 할 수 있는 절이다.
사천왕 역에서 JR 환상선을 타고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 탄생된 세계 최고의 영화주제 공원인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으로 간다. 니시구조에서 유니버셜시티로 가는 전철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광고 그림이 도배를 하고 있다.
유니버셜시티 역에 내려서 가면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합해져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모두 함께 다니면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녀야 한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간식을 미리 사서 메는 가방에 넣어 두었다.
구경하는 요령을 설명해주고 모둠별로 오후 3시에 입구에서 모이기로 하고 흩어진다. 유니버셜 출구로 모여드는 아이들 표정은 대개 두 부류다. 재미있었다는 아이도 있고, 줄 서다 시간 다 보냈다는 아이들도 있다. 어디를 가도 좋다고 소문난 곳은 대개 줄서고 사람구경하다 볼일 다 보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패은 1년 내내 붐빈다. 그래서 사전에 미리 알고 가야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쇼는 시간을 미리 알아서 시간에 맞춰서 가야한다.
일본 공휴일과 연휴가 겹치면 인기 있는 공연물을 보기위해 한 시간을 줄서는 각오를 해야 한다.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는 빠른 패스는 입장료의 곱을 줘야한다.
여름 8월 15일 연휴 기간은 최악이다. 겨울에는 학생 단체들이 많다. 학생 단체들과 만나면 정신이 없다. 공연물을 이용하지 않고 시설을 보고 사진 찍고 욕심내지 말고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비싼 입장료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입장료를 신경 안쓰고 나름 재미있게 구경을 할 수 있는 여유. 부러운 여유다.
전철을 타고 동양 최대의 수족관 해유관(카이유칸)으로 이동한다. 수족관 옆에는 바다도 있다. 가는 길에 전철에서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을 만났다. 해유관을 간다고 한다. 대학생 언니들과 합하면 15명이 넘는다, 단체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해유관 사무실에 가서 단체 신청을 하면 20% 할인이다. 해유관은 저녁 7시까지 한다. 마칠 때 가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해유관 안을 들어가면 큰 수족관에 헤엄을 치고 있는 바다 동물에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대형 수족관이 머리 위에도 있다.
바다 동물들이 머리위로 날아다니는 것 같다. 해유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 마지막에는 선물 코너가 있다. 다양한 바다 동물 모양의 캐릭터가 아이들 마음을 끈다. 눈으로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유니버셜스튜디오를 오가는 해적선 모양의 배가 항구로 들어온다. 여름 한 낮에는 직원들이 이벤트 행사로 얼음을 갈아 눈송이처럼 날리기도 하고, 야외에서 마술쇼도 한다.
해유관에서 나오자 아이들이 도톰보리에 저녁을 먹으로 가자고 조른다. 호텔이 도톰보리 부근이라서 저녁마다 도톰보리 먹자거리, 신사이바시 입자 거리를 휘 젓고 다녔으니 이제 낯이 익을 만도 하다. 오늘은 회전 초밥집을 가서 일본 전통음식인 초밥을 먹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초밥은 마트 일식 코너에서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초밥을 먹고 나온 아이들이 씩씩거린다. 어른들이 아무도 없으니까 집 나온 아이들이 아니냐고 오해를 받은 모양이다. 서툰 영어로 물어보는 어른에게 한 아이가 그냥 예스라고 해서 옥신각신 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어른 없이 한꺼번에 다니는 게 이상해보였겠지. 아무튼 뷔페식 전통 회전초밥 집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배부르게 초밥을 먹어봤으니 좋은 경험이다. 역시 초밥은 일본이 최고라고 아이들이 만족스러워 한다. 여행지에서 먹는 맛있고 특색있는 음식, 그것은 무엇보다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일본 선물 가게에서 간단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선물비를 나눠 준다. 학생들이 몇 만 원 짜리 선물을 살 수는 없다, 100엔 숍이 우리 수준이다. 도톰보리 센니치마에 거리, 빅 카메라 건물 8층에 100엔 숍이 있다. 물건이 많다고 이것저것 욕심내지 마라. 우리나라에 대부분 있는 것이고. 싸다는 것은 중국산일 경우가 많으니까 일본 와서 중국산 선물 사가지고 가는 것은 우스운 일라고 일러준다. 한 시간 뒤에 아이들은 비닐봉투에 볼펜이며 장난감을 담아왔다. 그 중에는 출국 심사장에서 빼앗길 침이 뽀족한 다트를 사온 아이도 있고, 선물 살 돈으로 터키 아이스크림 사먹은 아이도 있다
그리고 실내 물고기 낚시장에서 낚시 하느라 선물 살 돈을 날린 아이도 있다. 여행을 하면서 꼭 선물을 사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좋다. 여행은 머리와 가슴에 담아 가야 한단다. 꿈보다 해몽이다.
이제 마지막 밤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언제나 가슴을 짠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그동안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더듬어 본다. 많이 걸어 힘은 들었지만 아주 좋은 추억을 만들었어요... 대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함께 올거에요,.. 일본 말고 다른 곳은 안 가나요... 여행의 재미를 알았어요... 아이들의 의젓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돌아가면 또다시 개구쟁이 철부지 짓을 하겠지만 며칠 동안의 여행이 아이들의 생각을 부쩍 자라게 한 것 같은 느낌은 그냥 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짐을 정리하고 안내 데스크에 맡겨둔 여권을 챙겨서 호텔을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집으로 돌아갈 설레임이 뒤섞여 있다.
쿠로몬 시장은 우리나라 재래시장 같다. 상가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다. 수박도 쪼개 팔고, 채소, 과일, 생선 등등 없는 빼고 다 있다. 일하는 아가씨를 교육 시키는 모습도 보이고, 물건을 진열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풍경은 비슷하다. 시장은 언제나 활기차고 그 속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동안 쓰고 남은 동전을 모두 모아 돈이 되는 만큼 과일을 사서 아이들과 나눠먹는다. 입 안 가득 전해지는 단맛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이제 난바 역에서 전철을 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가야한다.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전철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잠이 들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모여앉아 과자 파티를 하느라 간밤에 잠을 설친 모양이다. 며칠 동안 함께했던 친구들, 시간들, 장소들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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